이성민은 두렵지만 나아간다
‘내 연기에 더없이 만족했다’고 말했다면 오히려 고개를 끄덕였을 거다. 배우 이성민이니까. 그의 연기를 보면서 의구심을 품은 적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그가 어렵고 두렵다고 말했다. 겸손해 보이고자 하는 말이 아니었다. 연기를 하면서 새롭게 마주하는 벽에 진심으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언제나 최선을 다한다고 말했다. 예상치 못한 대답에 계속해서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그의 연기관에 대해 알아나갔다. 여전히 더 나아지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는 배우 이성민은 영화 <비스트>에서 욕망에 사로잡힌 형사 ‘한수’를 연기했다.
<비스트>는 어떤 영화인가?
야무지고 묵직한 영화다. 양념을 많이 치지 않고, 돌직구로 이야기를 던지는 것이 이 영화의 색다른 맛이다.
형사 역할을 맡았다는 말을 듣고 전작 <방황하는 칼날>의 억관이 떠올랐다.
이번 작품 속 ‘한수’는 억관과 전혀 다른, 정반대 지점에 있는 캐릭터다. 억관은 생각을 거듭하는 신중한 형사라면, 한수는 바로 질러버리는 직선적인 성격의 형사다.
그래서일까? ‘계산하는 것이 아닌 본능적으로 연기했다’는 이야기를 남겼다.
감독님의 스타일이기도 하다. 감독님은 상황을 만들어놓고그 안에서 배우가 어떻게 연기하는가를 지켜보는 식이었다.
그래서 상황에 집중해서 즉흥적일 수도, 본능적일 수도 있는 연기를 해야 할 때가 많았다.
영화 <비스트> 속 모든 인물은 선과 악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
그게 이 영화를 통해서 감독님이 하고 싶은 이야기다.
영화는 누구나 괴물이 될 수 있고, 그래서 누가 괴물인가에 대한 의문을 던지며 나아간다. 내가 연기한 ‘한수’ 역시 거대한 악을 잡아 나가면서 선과 악의 경계가 흐려지고, 절망 혹은 지옥으로 빠지게 된다.
내 앞에 새겨졌을 때
아쉬움이 남지 않는 영화이길 바란다.”
혹시 시나리오를 보면서 ‘한수’ 외에 탐난 캐릭터가 있었나?
장혜진 배우가 연기한 춘배 역할이 매력적이다. 굉장히 역동적이고 감정의 진폭이 크다. 무엇보다 ‘한수’와 ‘민태’가 이 영화가 나가는 데 가장 많이 영향을 미친 캐릭터다.
영화 개봉이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이런 순간을 수없이 겪었음에도 여전히 긴장될까?
이런 감정은 절대 무뎌지지 않는다. 더 예민해지고 불안해진다.
불안감은 어떤 이유에서 생기는가?
단순히 관객 수의 문제는 아니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본다는 건 좋은 영화라는 뜻이기도 하니까. 우리가 만족하는 결과물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길 바라고, 좋은 영화가 되길 기대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불안하다. 왜냐하면 그동안 노력해온 시간이 있고, 땀이 있으니까. 그것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불안함으로 나타나는 거지.
반대로 영화에 대한 확신이나 자신감을 갖는 부분이 있다면?
이 영화에 배우 유재명이 나오는 것이 든든하다. 그만의 섬세한 연기를 보는 재미가 있을 거다. 또 오랜만에 ‘영화다운 영화를 보는구나’라는 반응도 기대 중이다.
영화 <비스트>가 필모그래피에 어떤 식으로 자리 잡을 거라 예상하나?
흥행이 잘된 영화. 하하. 또 모든 작품이 그렇듯 내 앞에 새겨졌을 때 아쉬움이 남지 않는 영화이길 바란다. 관객들에게도 내게도. 그러기 위해서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본다.
배우 이성민은 지금 어느 주기를 지나고 있다고 생각하나?
글쎄 모르겠다. 건강을 챙겨야 하는 주기이지 않을까. 나이 50이 넘었고 체력도 떨어지고 있다.
연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와 지금, 가장 많이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스무 살 때 극단 워크숍 공연에 출연한 게 처음이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그때는 겁나는 게 없었고 떨리지도 않았다. 아무 생각도 없었고, 마냥 즐거웠다. 그런데 지금은 많이 떨린다. 겁도 나고, 두렵기도 하다. 하면 할수록 쉬워지고 관성도 생겨야 하는데, 이 일은 그렇지 않다. 갈수록 어렵고, 큰 벽들이 나타나고, 갑갑해진다.
반대로 여전한 건?
좀 더 나아지고 싶은 욕심. 영화에도 욕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나는 그게 없으면 연기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기하면서 지양하거나 경계하는 것들이 있나?
나는 조화로움을 좋아한다. 그래서 반대의 경우를 지양한다. 모두가 조화롭고, 자유롭고, 평등하기를 원한다. 역할의 크기에 따라 차별이 없었으면 한다. 배우와 배우, 배우와 스태프, 스태프와 스태프 간의 관계가 평등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그런 것에 약간 판타지를 가지고 있다.
왜 판타지라고 생각하나?
바람이고 희망이니까. 영화 현장에 완벽하게 그런 세상이 올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언제나 그런 생각을 하려고 노력할 거다.
마지막으로 배우 이성민의 장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이번 영화처럼 스릴러일까? 좀 파란만장하다. 아마 대하사극? 꽤 길 거다. 편당 20부작씩 시즌 3 이상은 나가야 할걸. 나름 인생 굴곡이 많았다. 매회 장르는 다양한데, 액션은 없다.
결국 왕의 자리에는 앉았나?
왕까진 안 가고, 대신 성 하나는 지었다. 하하.
최선을 다하는 유재명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면 준비한 질문은 다 했는데 더 붙잡아두고 싶은 사람이 있다. 다른 경우도 왕왕 있지만, 대부분은 대화가 즐거워서 그렇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사람의 이야기가 더 듣고 싶어서. 배우 유재명이 그랬다. 유머 있는 사람은 아닌데 대화는 재밌었고, 물어보지 못한 내용이 남아 있는 것도 아닌데, 자꾸만 더 묻고 싶었다. 유재명에게 작품이 막 끝난 후 근황을 묻자 ‘후련하고, 겨우 안도하고 있는 상태’라고 대답했다. 얼마나 치열한 긴장과 고민 속에서 연기했을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날 유재명과 나눈 이야기 대부분은 이렇게 공감하고 짐작할 수 있는 솔직한 것들이다.
처음 <비스트> 시나리오 받고 어떤 느낌을 받았나?
종잡을 수 없었다. 보통 시나리오 읽고 나면 어떤 이야기인지, 내가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게 될지 생각하고 유추하고, 분석하게 되는데, 영화 <비스트>는 쉽게 단정할 수 없었다. 이정호 감독님하고 이야기 나누면서 어느 정도 윤곽이 보이더라.
‘민태’를 어떤 캐릭터로 이해했나?
속을 알 수 없는 인물이다. 민태가 가진 특유의 감정선이 있다. 무표정하고, 예민하고 곤두서 있는. 겉으로는 이성적으로 대화하고 행동하려고 하지만 속에서는 들끓는 욕망이 똬리를 틀고 있는 인물이다.
‘한수’와 대립 구도다.
라이벌 ‘한수’와의 경쟁 심리에서 비롯된 질투심이 굉장히 강하게 나타나면서, ‘민태’의 모습이 그려진다. 하지만 ‘한수’와 마찬가지로 범인을 잡고자 하는 열망, 직업에 대한 사명감은 굉장히 투철한 인물이다. 관계를 잘 못 맺는 성향 탓에 독단적인 생각과 행동이 두드러지기도 한다.
외로운 인물 같다.
대체로 그렇다. 섬 같은 인물이다.
수시로 이정호 감독과 이야기 나눴다고 했다.
‘민태’라는 캐릭터가 어떻게 보면 식상할 수도 있지 않나. 차갑고 이성적이고. 김독님은 글로 쓰거나 설명을 했을때 그런 인물인데, 민태가 가진 외로움, 거기에서 나오는 눈빛들, 태생적 결함들을 짐작하면서 같이 만들어가보자고 했다.
어려운 숙제였겠다.
그래서 치열하게 해석했다. 이야기 구조상 ‘민태’는 ‘한수’의 경쟁자일 뿐이지만, 캐릭터에 집중하면 ‘한수’ 못지않은 괴물 이미지를 표출해내야 했으니까. 그 지점이 가장 중요했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비스트’는 어떤 모습일까?
예고편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누구나 다 가슴속에는 괴물이 하나씩 존재한다.’ 영화는 이런 철학적인 주제까지 건드리고 있는 것 같다. ‘절대악’이라는 존재와 그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유한함. 그래서 선택하게 되는 불가해한 모습들. 이런 걸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을까.
촬영장 분위기는 어땠나?
재밌었다. 뭐 힘든 거야 당연하고. 하하. 뭐가 재밌었냐 하면 현장에서 오케이가 났지만, 다르게 찍어보는 상황이 많았다. ‘조금 전 상황을 또 다르게 해석한다면 어떨까?’라는 물음에서 이전 것과는 다르게 가보는 거다. 정답을 찾기 위한 과정이라기보다는, 정답을 만들어가는 모습에 더 가까웠다. 다시 의심하고, 가장 적합한 건 어떤 모습일까 고민하고. 이런 과정이 힘들게 보일 수도 있는데, 결과적으로는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
경험이 곧 연륜이라는 말에 동의하나?
대체로. 배우란 물리적으로 한 해, 두 해가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나이를 먹는 존재는 아닌 것 같다. 작품을 통해서 나이를 먹는다는 생각이다. 그런 의미로 보면 <비스트>는 한 살 더 먹게 해준 작품이다. 하나의 경험이 더해진 거다. 그래서 남다른 애착이 가는 작품이고.
치열했던 촬영이 끝났다. 후련한가.
그럼. 후련하고, 겨우 안도하고 있는 상태다. 참 개인적인 성격일 수도 있는데, 나는 새 작품을 시작할 때마다 ‘잘할 수 있을까’ 불안해하고, 고민하고 그런 과정들이 고통스럽다가도 지금처럼 안도하고…. 그런 사이클을 계속 되풀이하는 것 같다.
배우 유재명에게 ‘즐긴다’는 건 어려운 일일까?
연기를 할 때는 모르지만, 작품이 끝나고 나면 한바탕 잘놀았다는 기분이 가끔씩 들 때가 있다. 연기를 시작하기 전에는 늘 긴장하고 두렵지만, 일단 들어가면 최선을 다해서 해석하는데, 그런 순간들 사이사이 나도 모르는 에너지가 나를 이끌어가는 느낌이다. 그 에너지에 푹 빠졌다 나오면, 즐긴 거 아닐까.
그런 의미로 보면 <비스트>는
한 살 더 먹게 해준 작품이다.”
배우 유재명을 가장 긴장시키는 게 있다면 무엇일까?
배우는 하나지 뭐. ‘유재명 연기 이제 별로 재미없어’ 같은 말들. 아무리 멋있는 새 옷도 입다 보면 물이 빠지듯이 사람도 똑같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을 거다. 내 연기도 그렇게 느낄 수 있고. 그런데 그걸 억지로 이겨내는 건 쉽지 않고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한데, 요즘 그런 고민을 한다. 나이 들어가는 배우 유재명. 거기에 걸맞은 모습. 멋있는 물빠짐을 위해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유재명이 먼저 연기가 재미없어지는 날도 올까?
그럴까봐 걱정이다. 그래서 아끼는 동네 친구들한테 이야기한다. ‘내 연기가 재미없어지거나, 내가 재미없다고 말하면 언제든 뒤통수를 한 대 때려달라’고. 지금 내가 사는 술값은 그거라고.
오랜만에 쉴 수 있겠다.
나는 뭐 일상이 거의 없는 사람이다. 분명한 취미가 있지도 않고, 운전을 잘하는 것도 아니어서 자주 여행을 떠나지도 않는다. 그냥 동네 흔한 아저씨처럼 친구들하고 술 한잔하고 청소도 하면서 쉰다. 작품 들어가면 알 수 없는 내 안의 에너지들이 확 올라왔다가 끝나면 적당한 중년 남자로 돌아왔다가. 그러는 것 같다.
최다니엘이 배운 것
최다니엘이 오랜만에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낸다. 영화로는 <치외법권> 이후 4년 만이다. 영화 <비스트>에서 최다니엘은 강력계 형사 ‘종찬’을 연기한다. 배우 이성민과 유재명의 치열한 감정 연기 사이에 그가 있다. 인터뷰 내내 힘든 작품이었다고 말하는 최다니엘이 기대되는 건 이번 작품을 통해 얻은 게 있어서다. 그것은 어쩌면 지금의 최다니엘이 반드시 느껴야 했을 것들이다.
영화로 최다니엘을 만나는 게 얼마 만이지?
군대 가기 전에 찍은 <치외법권> 이후니까 4년 정도 됐다.
오랜만에 복귀한 현장이라 더 낯설었겠다.
그렇지. 그런데 영화 엄청 하고 싶었다. 영화에서 내 얼굴을 찾고 싶었거든. 그런데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아니니까. 그러던 중에 행운처럼 <비스트>에 참여하게 됐다. 무엇보다 이정호 감독님은 예전부터 꼭 뵙고 싶었던 분이어서 꿈같았다.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
우리가 주 52시간 근무제를 지키면서 촬영했는데, 그러다 보니까 거의 촬영에만 집중하게 되더라. 나는 이성민, 유재명, 전혜진 선배님 모두 이번 작품을 통해서 처음 뵀다. 내 욕심대로면 더 같이 있고, 친해지고 싶은데, 시간 여유가 없다 보니 촬영에만 매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쉬운 마음에 선배들한테 많이 의지하면서 촬영했다.
<비스트>에서 맡은 ‘종찬’은 어떤 인물인가?
‘종찬’은 ‘한수’팀이다. 이성민 선배가 연기한 ‘한수’가 강력 1팀. 유재명 선배의 ‘민태’가 강력 2팀이다. 두 팀은 라이벌이자 공생 관계인데, 어떻게 보면 두 팀 사이에 놓인 인물이다. 중립적인. 조금은 관전자 같은 인물이기도 하고.
잘못된 걸 바로잡은 느낌이다.
아프고 힘들었지만 멀리 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받아야 했을 수술이었다는 생각이다.”
‘한수’팀이지만 중립적인 인물이라는 건 독립적인 인물이라는 얘기도 된다.
맞다. ‘종찬’은 맹목적으로 ‘한수’를 따르지 않는다. 함께 일을 하지만 ‘한수’의 모든 걸 좋아하지는 않거든. 어떻게 보면 독립적이지, 주관적이고. 감독님도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종찬은 과연 한수를 믿어서 따르는 걸까?’라는 의심을 연기하면서 해볼 수 있다고.
그런 ‘종찬’을 연기하면서 결국에는 어떤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나?
평범한 사람. 극의 대립 구도에서 보면 철저하게 제3자의 모습이다. 그런데 재밌는 건 제 3자가 ‘한수’와 같은 팀이라는 거다. 더군다나 ‘한수’ 바로 아래 후배고, 부팀장 같은 위치에 있는 인물인데 관전자인 거다. 그렇다고 해서 냉정한 인물은 아니고, 극 중 ‘한수’와 ‘민태’의 관계에서만 보면 그렇다. 그 관계를 벗어나면 인간적인 면이 많은 캐릭터다. 밝은 면도 있고.
어려웠을 것 같다.
맞다. 처음에는 진짜 어려웠다.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선을 넘지 않는 ‘조절’이 필요한 역할이었으니까.
감독님하고는 ‘종찬’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처음 시나리오를 받고 ‘이건 이렇게 하면 되겠다’ 싶었는데, 현장에서 감독님의 생각은 달랐다. 이런 경우가 꽤 있었다.
그래서 현장에서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조율하는 시간이 많았다. 감정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감독님과 수위를 맞추는 작업이 꽤 힘들었다.
웬만하면 힘들다고 이야기 안 하는데.
그렇지. 그런데 정말 지금껏 경험한 것 중에 가장 힘들었던 작품 1, 2위를 다툴 정도였다. 감독님과 조율하면서 고민하고 표현하고, 다시 해석해보고, 또다시 표현하고. 새로운 시도와 도전의 연속이었다.
형사들의 자연스러운 생활감 연출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고 들었다.
감독님께서 생활감, 자연스럽게 습관에서 나오는 행동들, 이런 작은 부분들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셨다. 물론 연기를 하는 입장에서는 쉽지 않았다.
이를테면 어떤 걸까?
나도 처음에 같은 질문을 했다. ‘예를 들면 어떤 거지?’ 쉽게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감독님은 책상에 앉아 있을 때도 무엇을 고민하거나, 사건을 떠올리는 듯한 연기를 주문하셨는데 생활감, 그러니까 생활 속에서 하는 행동들이니까 과장하면 안 되는 거다. 원래 자연스러운 게 가장 어렵다. 하하.
그렇게 힘든 과정을 통해서 얻은 게 있다면?
다르게 보게 됐다. 감독님이 굉장히 디테일하다. 집요할 정도다. 남들이 못 보는 부분을 잡아내고, 이끌어내는 감독님의 능력에는 이런 세심한 요소들이 많다. 조금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나는 ‘이렇게 하면 되겠다’고 캐릭터나 연기를 예상해버리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번 작품을 하면서 관점이 다양해졌다. 전에는 컵을 보고 단순히 컵이라고만 생각했다면, 지금은 화분으로 쓸 수있고, 저금통으로도 쓸 수 있고. 역할을 한정하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 좀 더 주체적인 입장에서 해석도 해보고.
<비스트>를 통해 많이 배웠겠다.
현장에서 선배들 연기 보고 ‘아 저런 거였어?’ 하면서 그때그때 배우며 연기한 순간들이 정말 많았다. 다른 선배님들 연기를 모니터하면서 속으로 계속 질문하고, 공감하고 그랬다. 후반기 작업 즈음에는 오히려 재밌었다. 어떤 느낌인지 알겠으니까. 그때부터는 재밌더라.
그만큼 치열하게 연기했다. 거듭 배우면서, 깨달으면서.
힘든 건 일차원적인 거고. 표현이 조금 세지만 큰 수술을 받은 느낌이다. 잘못된 걸 바로잡은 느낌이다. 아프고 힘들었지만 멀리 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받아야 했을 수술이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개봉을 앞둔 지금 기분은 어떤가?
후련하고, 기쁘고 그렇지. 아, 군대 전역한 기분 비슷하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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