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 신기호
힙한 게 싫어서? 아니, 그런 분석이 싫어서
2014년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 4명의 10대 아역 배우가 출연했다. 좋아하는 음악을 소개하는 코너에서 김유정은 ‘옥상달빛’의 ‘수고했어, 오늘도’를 불렀다. 나머지 배우 역시 ‘제이래빗’ ‘10cm’의 노래를 선곡했다. 한창 예민할 10대 아역 배우들이 인기 TV 쇼에서 드러낸 취향은 모두 인디 음악이었다. 그리고 다음 해 <무한도전>에 ‘혁오밴드’가 출연했다. 그렇게 혁오는 ‘나만 알고 싶은’ 밴드에서 ‘누구나 아는’ 밴드가 됐다.
스마트폰과 함께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의 전성기가 시작되고, SNS로 좋아하는 음악가를 팔로하며, 유튜브로 ‘덕질’을 하는 시대. 음악을 듣는 방식은 이전보다 훨씬 다양해졌다. 이를테면 SNS 바이럴을 통해 인기를 끈 인디 음악가 ‘볼빨간사춘기’는 <아이돌룸>에 출연하고, JYP의 ‘백예린’은 인디 음악가가 주로 출연하는 <네이버 온스테이지>에 출연한다. 또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한 2000년대생 음악가의 인스타그램 팔로어 수가 얼마 안 돼 10만 단위가 되고, 2006년에 데뷔해 예능인처럼 소비되던 래퍼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독특한 말투와 허세로 인기를 얻어 대학 행사에 섭외될 정도의 인지도를 얻는다.
그런데 여기에 2019년 트렌드 ‘뉴트로’라는 필터를 얹으면 양상은 더 복잡해진다. <고등래퍼 3>에 출연한 양승호의 유튜브 채널엔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방영된 <날아라 슈퍼보드>의 곡과 영상을 샘플링한 곡이 있다. 얼마 전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1위를 차지한 잔나비의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는 노래도 예스러운 데다 뮤직비디오까지 1990년대를 그대로 옮겨온 것처럼 보인다. 뮤직비디오 감독은 음악가 전용현으로 혜은이, 영심이, 나미, 김혜림 등이 등장하는 그의 유튜브 채널을 보면 이 뮤직비디오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알 수 있다. 참고로 그는 뉴트로와 관계없이 거의 10년 전부터 이 같은 취향을 드러낸 음악가다.
2015년에 출시된 게임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에서 예술 고등학교에 다니는 주인공은 중고품 할인점에서 LP 레코드를 사려다 “그건 너무 힙스터 같지 않아?”라며 독백한다. 인디 음악을 소비하는 건 너무 힙스터 같아서, 반작용으로 ‘메인스트림 팝을 소비하는 힙스터’에 관한 분석도 있다. 지금 가장 힙한 곳으로 불리는 을지로에서 열리는 파티에서 SM의 노래가 흐를 때 사람들이 가장 열광하는 모습을 보면, 그 분석이 유효한 것 같다.
하지만 글쎄. 이 모든 걸 ‘뉴트로’나 ‘힙스터’ ‘힙한 게 싫어서’ 같은 단어나 문장으로 정리해도 될까. 인터넷은 세상의 모든 음악을 집어삼키는 도서관이 됐고, 스마트폰은 거기에 24시간 접속된 포털이다. 그곳에서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로 흐르기보다, 커트 보니것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트라팔마도어’처럼 과거와 미래를 함께 경험할 수 있는 매개이자 개념이 됐다. 시대는 작용과 반작용으로 흐르고, 이제 이 메커니즘의 속도는 인터넷 속도에 비례해 가속도가 붙고 있다. 그 속도에 발맞춰 여전히 누군가는 음악을 만들고, 또 누군가는 빠르게 찾아 들을 뿐이다.
WORDS 하박국(영기획 대표, 기술인간 유튜브 채널 운영자)
초연결적 사회에서 음악 듣기
잔나비는 여전히 막강하다. 이뿐만 아니다. 백예린, 장범준, 볼빨간사춘기의 노래도 한 달이 지나도록 차트 최상위권을 유영 중이다. 무슨 일일까? 잔나비가 BTS와 경쟁하고, 1970년대 시티 팝이 활발하게 소비되고, 1990년대 가요가 재발견되고 있다. 이제 대중은 K-팝, 아이돌, 댄스 음악 따위에 질린 걸까? 설마, 그건 좀 아닌 것 같다.
세 가지 전제를 염두에 두자. 일단 차트는 현상이 반영된 결과다. 두 번째로 K-팝 산업은 팬덤을 기반으로 작동한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은 의외로 음악을 찾아 듣지 않는다. 종합하면, 차트에서 K-팝이 아닌 음악이 강세를 보이는 건, K-팝 팬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음악을 듣는다는 뜻이다. 어떻게? 그리고 왜?
여기서부터는 4차 산업혁명을 소환하자. 정확히 말해 미디어 플랫폼의 변화. 더 좁혀보면 유통 구조의 변화. 정리하면 바야흐로 음악 유통 구조가 바뀌었고,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음악을 듣는다. 매스미디어를 통해 신곡을 홍보하는 대신, 유튜브나 페이스북, 트위터, 사운드클라우드와 같은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콘텐츠로 소비되는 식이다. 모바일 환경에서 ‘음악 듣기’는 극단적으로 개인화되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음악의 영향력을 측정하는 기준이 ‘모두가 듣던 음악’에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으로, 나아가 ‘차트’에서 ‘취향’으로 소비 패턴이 바뀐 것이다. 미디어 활동이 거의 없던 백예린과 잔나비의 폭발적인 인기에는 이런 구조가 작동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스포티파이, 유튜브, 애플뮤직은 정교한 플레이리스트를 제공하는 걸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 심지어 이런 추천 플레이리스트에서는 곡의 발표 시기도 중요하지 않다. 과거와 현재가 취향을 기준으로 뒤섞이는 것이다. 이런 환경은 특히 1990년 전후에 태어난 세대의 감수성에도 영향을 준다. 잔나비를 보자. 과거 지향적인 그들의 음악은 사실, 2019년을 사는 동시대 청년들의 마음을 정확히 겨눈다. 겉모습만 과거 지향적일 뿐 본질적으로는 지금의 정서인 것이다. 내 얘기 같은 가사가 옛날 느낌의 멜로디와 결합될 때 떠오르는 건, 알 수 없는 노스탤지어다. 겪은 적 없는 것들에 대한 묘한 그리움은 그렇게 대중에게 빠르게 번졌다.
그러니까 이런 시대의 ‘초연결’은 장소뿐 아니라 시간에도 관여한다는 것. 고밀도의 네트워크 환경에서 우리는 과거 혹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와 연결된 채 나도 모르게 정체불명의 감각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플레이리스트의 영향력이 강해지는 유통 환경에서 음악 생산자는 마케팅이 아니라 음악 자체에 집중하는 게 오히려 더 효과적임을 깨달은 것이다.
사람들이 좋아할 멜로디를 만들고, 공감할 법한 가사를 쓰는 일은 다시 말해 감각적이고 정서적인 쾌감에 충실한 음악의 기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2019년의 유행가는 의외로 많은 것들을 다시 생각하거나 추억하도록 종용하는 게 아닐까.
WORDS 차우진(음악 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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