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 조진혁
<내일은 미스트롯>과 어른의 예능
“첫 소절에 가슴이 꽉 막혀버려요. 신이 주신 훌륭한 목소리 최고입니다.” TV조선의 트로트 서바이벌 프로그램 <내일은 미스트롯> 출연자 홍자의 노래를 들은 한 남성이 남긴 감상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저절로 눈물이 나네요” “한이 느껴집니다”처럼 언뜻 보기에도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이 이 영상에 댓글을 달았다. TV조선은 그동안 김숙이나 최화정처럼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 있는 방송인들을 MC로 내세워 <연애의 맛>이나 <결혼의 맛> 같은 프로그램을 제작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일은 미스트롯>은 다르다. 아예 중년부터 노년 시청자까지 노린 프로그램이다.그리고 아주 현명하게도, TV조선의 전략은 완벽하게 통했다. <내일은 미스트롯>은 종합편성채널에서 매우 이례적으로 무려 18.2%(닐슨코리아 기준)라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흥미로운 사실 중 하나는 이 성공이 가장 가까운 경쟁자와 정반대 전략을 취하면서 이룬 성공이라는 점이다. TV조선과 함께 정치적으로 보수를 표방하던 채널A는 <하트시그널>로 젊은이를 공략했다. 그러나 TV조선은 젊은 시청자들을 유입하려고 노력하는 대신에 본래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던 시청자층에 철저하게 의존하는 전략을 택했다. 똑같이 과감한 선택이었지만, 나아가는 방향은 완전히 달랐다.
최근 2~3년 사이에 각광받은 프로그램들 중에는 장년층 이상에 소구할 수 있는 작품이 적지 않다. KBS <살림하는 남자들>, SBS <동상이몽 너는 내 운명>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제는 새로운 형태의 프로그램이 필요해졌고, 그 사이를 파고들어 성공한 작품이 바로 <내일은 미스트롯>이다. 이 프로그램에 대해 ‘장년층 버전 프로듀스 101’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프로듀스 101>을 처음 본 젊은 세대가 신선하다며 열광하던 모습과 <내일은 미스트롯>에 빠져든 장년층의 모습은 정확하게 겹친다. 물론 이 프로그램이 여성의 성상품화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피해갈 수는 없다. 다만 문화 혜택이 모든 세대에 고르게 주어져야 한다는 말에 집중한다면, <내일은 미스트롯>에 쏟아진 높은 관심은 이 프로그램에 대한 수요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장년층과 노년층이 볼 만한 콘텐츠 자체에 대한 수요라고 봐야 한다는 의미다.
나아가 <내일은 미스트롯>은 젊은 세대가 더 이상 TV 앞에서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는 점을 잘 아는 상태에서 제작된 콘텐츠다. 소파 위에 누워 감자칩을 먹으며 TV를 시청하던 젊은 ‘카우치 포테이토’들은 없다. 그러나 청년 세대가 스마트폰으로 원하는 콘텐츠를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즐기는 사이, 5060세대는 여전히 소파 위에 남아서 TV를 켠다. <내일은 미스트롯>으로 인해 이 사실이 명쾌하게 드러났고, 쭉 어른들을 위한 예능이 만들어져야 하는 명분이 생겼다. 이런 현실은 분명 새로운 시장이 열릴 가능성을 보여준다.
WORDS 박희아(웹매거진 <아이즈> 기자)
고자극 예능의 탄생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짤 중 이런 게 있다. ‘어제 학교 앞 호떡집이 휴무였던 이유’라는 제목의 게시 글에는 손글씨로 쓴 호떡집 사장님의 글귀를 찍은 사진이 첨부됐다. “요즘 인생의 낙인 미스트롯 결승전 보러 갑니다. 찾아주신 분들 죄송합니다. 전 꼭 가야겠습니다. 23일(수) 휴무.” 이 호떡집 사장님만의 얘기가 아니다. 집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평소 시와 소설을 가까이 하는 것을 자부심으로 알던 양반인데, 요즘 책은 뒷전이고 TV 앞에서 <내일은 미스트롯>을 보고 또 보신다. 9시 뉴스나 사극 드라마 <녹두꽃> 혹은 케이블에서 무한 재방송하는 <정도전> 정도에만 반응하던 아버지들에게 새로운 낙이 생긴 거다.이렇듯 ‘중장년층 버전의 프로듀스 101’으로 입소문을 타다 보니 ‘어디 얼마나 재밌나 보자’는 젊은 층도 자연스레 유입됐다. 갖은 애교로 무장한 교복 입은 친구들을 보다가 이미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고 쌓인 한을 노래로 토해내는 ‘미스트롯’ 후보들을 보면 감정 몰입의 깊이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월세방에서 비녀를 만들어 파는 부업을 하면서 노래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송가인, 출산 2개월 만에 몸조리도 하지 않고 노래를 하러 나온 정미애, 긴 무명 시간을 힘들게 견뎌온 홍자 등. 툭 치면 거의 <인간극장>급 사연이 우수수 떨어지는 미스트롯들의 노래는 그 자체로 드라마다. 오늘만 사는 것처럼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하는 출연자들을 보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재간이 없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일은 미스트롯>은 여태까지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한 예능의 모든 핵심 요소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간절한 심정으로 노래를 부르는 출연자와 냉정한 평가를 하는 심사위원, 매회 참가자들을 물리쳐야 하는 치열한 경쟁 구도, ‘악마의 편집’으로 불리는 자극적인 스토리 전개, 거기에 출연자들의 구구절절한 인생사까지. 성공한 예능의 정석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교본을 답습하기만 했다면 TV조선 개국 이래 가장 큰 성공을 거둔다는 것은 불가능했을 거다. K-팝과 힙합, 록까지 오디션 형식으로 다룰 수 있는 장르는 이미 다 나온 상태에서 TV조선은 과감하게 트로트에 도전했다. 요즘처럼 성인지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미스코리아’ 뽑듯 ‘진선미’를 매긴다는 것 또한 과감하기 짝이 없다. 연출과 편집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알고 있는 예능 공식에서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한 발 더 나아간다. 이 과감함은 그동안 채널 둘 곳 없어 방황하던 중장년층의 취향을 저격했다. 몸에 좋다는 유기농 음식의 ‘슴슴함’보다 MSG 팍팍 들어간 엽기 떡볶이의 강렬함에 끌리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
그간 타깃 시청자층이 아니었던 어르신들을 TV 앞으로 불러 세운 <내일은 미스트롯>의 매력은 짜릿하고 강렬한 자극에서 비롯된다. 이에 탄력받은 TV조선이 곧 ‘미스터트롯’도 기획 중이라고 하니 당분간 ‘고자극 오디션 예능’의 트렌드는 계속될 전망이다.
WORDS 서동현(프리랜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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