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이 시작됐다. 모니터에는 차승원의 훌륭한 옷태가 드러난 사진들이 떠오른다. 그러다 이내 장난기 어린 차승원의 표정이, 또 포즈가 화면에 가득 찬다. 그는 TV에서 본 것보다 더 재미있다. 촬영장 공기가 무거워지지 않도록 연신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을 주도한다. 적당히 위트 있는 표정을 보이고, 종종 농담도 던진다. 세련되게 분위기를 풀어내는 그를 보면 ‘인싸’는 저런 건가 싶은 생각도 든다. 유머는 여유에서 나온다. 차승원은 여유와 격식을 동시에 보여준다. 정중하게 인사를 주고받고, 질문을 경청하고 진지하게 답한다. 그럴듯한 답을 하기보다 솔직한 생각을 전하려 노력한다. 그게 인터뷰에 대한 예의라는 듯이.
<스페인 하숙>은 독특한 프로그램이다. 방송에서는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걷는 순례자들에게 식사와 잠자리를 저렴한 값에 제공하는 ‘알베르게’를 운영했다. 순례자들에게 음식을 대접한 특별한 경험에 대해 듣고 싶다. 인상적인 순간은 언제였나?
가장 기억에 남는 순례자를 꼽으라면 피아노 선생님이다. 60세가 넘으신 분이었다. 평생 피아노를 연주했는데 손가락에 문제가 생기면서 피아노를 그만둬야 했다. 유해진 씨가 괜찮냐고 물어봤다. 그는 이제 그만 치라는 뜻인 것 같다고 답했다. 평생 해온 일을 그만두어야만 하는 모습에 마음이 굉장히 아팠다. 좌절감을 느낄 수도 있었을 텐데, 여유 있게 말하는 게 신기하기도 했고. 그분은 800km 거리인 순례자의 길을 홀로 걸었다. 음식도 입에 안 맞고, 잠자리도 불편하고, 체력도 젊은 사람보다 달릴 텐데 혈혈단신 그 길을 걷는 용기가 대단했다.
<스페인 하숙>을 시작하기 전에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에 대해 알고 있었나?
음, 막연했다. 순례자의 길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었다. 하지만 현지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공통점을 발견했다. 순례자의 길을 걷는 사람들은 무언가 정리하고 싶어 했다. 매일 순례자의 길을 걷는 건 대단히 힘들다. 힘이 들면서 오로지 걷는 것 그 자체에만 집중하게 된다. 힘들게 걷는 과정을 통해 애쓰지 않아도 길 위에서 홀로 깨닫게 된다. 각국에서 오는 다른 순례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깨닫는 것도 있을 테고.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걷는 한국인이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인도 많다. 800km의 대여정이 프랑스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니 유럽인이 가장 많다. 미국인도 많고, 우리나라 분들도 많이 만났다. 누군가 나에게 그 길을 걸을 수 있겠냐고 물으면 선뜻 용기는 안 난다. 단지 옆에서 보며 느낀 것은 있다. 생활에 치이고, 삶에 쫓기며 살다가 아무 생각 없이 오로지 걷고 먹고 자는 것. 다음 날 먹고 걷는 단순한 생활을 통해 크게 얻는 바가 있으리라고 본다.
800km 걷는 고행은 내가 지금 이대로 존재함을 느끼기 위한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깨달음이나 통찰, 이런 것들은 그다음이고.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은 인생과 닮았다. 누군가는 앞서가고, 누군가는 뒤처지고, 또 좌절하고 포기한다. 누군가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준다. 또 누군가는 체력이 좋아 잘 걸을 것 같지만 뒤처진다. 다른 누군가는 걷는 게 불편해 보이지만 성실히 나아가기도 한다. 과정이 어떠한들 모두의 목적지는 하나, 그 성당이다. 그 길 자체가 인생의 축소판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은 혼자 걷다가 다른 순례자를 만난다. 언어가 잘 안 통해 깊은 대화를 나눌 수는 없지만 동질감을 느끼고, 서로 이해한다. 사람은 서로 이해해야 가까워질 수 있다. 그렇게 알게 된 사람들이 도움을 주고받으며 나아가는 모습은 인생과 같다.
그럼 순례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가고자 했나?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야겠다는 욕심은 없었나?
우리가 처음에 기획한 것은 그들에게 ‘많은 질문은 하지 말자’였다. 어떤 사연을 가지고 길을 걸었는지, 좋은 사연이건, 나쁜 사연이건 묻지 않기로 했다. 대신 그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잠자리와 든든히 먹을 음식을 제공하기로 했다. 그것만 해드려도 그들에게 큰 힘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순례자들의 사연이 방송에 더 나왔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방송의 재미를 위해 억지로 사연을 만들 수는 없다. <스페인 하숙>을 방문한 분들 중에는 먹는 모습만으로도 사연이 느껴지는 분도 있었다. 별다른 이야기를 안 해도 말이다.
"과정이 어떠한들 모두의 목적지는 하나, 그 성당이다.
그 길 자체가 인생의 축소판처럼 느껴진다."
음식을 먹는 모습만으로도 사연이 느껴지는 경우라면, 무슨 사연인지 궁금하지 않았을까?
나는 주로 주방에 있었고, 유해진 씨가 접촉을 많이 했다. 처음부터 그분들에게 뭐했는지, 먹고 싶은 게 무엇인지 묻지 않았다. 내가 할 일은 오로지 따뜻한 밥을 성심성의껏 만들어서 드리는 게 최선이라고 출발 전부터 생각했다. 식사가 어땠느냐고 묻는 것조차 굉장히 부담이고, 또 사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 이야기가 나오니, <스페인 하숙>에서 직접 만든 동그랑땡이 떠오른다. 블로그에는 레시피도 올라왔다. 음식에 대한 순례자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방송에 안 나온 요리도 있을 것이고.
가장 인기 있는 건 된장찌개와 김치찌개다. 그건 누구나 아는 맛이니까. 제일 보람 있었던 음식은 피아니스트 분에게 급조해서 드렸던 된장찌개다. 그건 아직도 생각난다. 순례자들에게 내놓은 음식 말고 우리끼리 먹은 것 중에는 라면과 햄버거가 제일 생각난다.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인생의 축소판과 같다고 했다. 그 길을 묵묵히 걷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깨달은 것이 있나?
그렇지 않다. 단지 그들의 가방이나 신발을 보며 여정이 녹록지 않았음을 간접적으로 느꼈을 뿐이다. 하루에 30~40km를 걷는다고 하더라.
하루 10시간 이상 걷는다는 뜻인가?
그렇다. 계속 걷는 것이다. 그리고 <스페인 하숙>의 알베르게가 그 순례길의 정점에 있었다. 100km를 남겨둔 마지막 정점. 그러니 우리 알베르게에 방문한 순례자들은 700km를 아주 오랫동안 걸어온 분들이다. 행색만 봐도 얼마나 고단했을지 짐작이 갔다. 한 순례자는 다리가 안 좋아졌다. 그렇게 걸었으니 무릎이 아픈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스페인 하숙>에서 식사를 하고, 편안한 잠자리를 들고 난 다음 날 ‘오늘 잘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하면 우리는 큰 보람을 느꼈다. 그것이 우리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전부였으니까.
<스페인 하숙>에서 또 발견한 것은 차승원과 유해진이 좋은 형님이라는 거다. 좋게 말하면 잘 알려주는 습관, 달리 말하면 잔소리인 ‘꼰대’ 기질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왕년’의 영광에 취한 형들이 아닌, 나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형 같았다.
나는 착하게 살고 싶다거나, 도덕적으로 완벽하다거나 또 그것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개인주의적 성향이다. 하지만 남에게 피해 주는 행동은 최대한 안 하려고 한다. 아주 작은 행동인데,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식당에서 일어날 때 의자를 제자리에 넣는 것, 밥을 다 먹은 다음 숟가락은 정리해놓기, 호텔에서 퇴실할 때 이불은 펴놓기, 화장실에서 쓴 용품은 세면대에 놓지 않고 쓰레기통에 버리기. 이런 작은 행동들을 습관처럼 하려고 노력한다. 남에게 피해 주지 않기 위한 자신과의 약속이다. 그리고 무엇이든 될 수 있으면 남에게 시키지 않고 내가 행하고, 관여하려고 노력한다. 사실 나는 특별히 이상하거나, 극단적으로 잘못되지 않은 이상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 지적하기를 꺼려한다.
"현장에서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의외의 결과물이 나오면 좋은 거다."
후배들에게 지적하지 않는 편인가?
꺼려한다. 스스로 실수를 깨우치는 과정도 필요하다. 자신의 잘못으로 인간관계가 불편해졌다면, 실수한 점이 무엇인지 직접 느끼고 찾아내야 앞으로 조심하게 된다. 선배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정답이 아니다.
정답이 아니라는 것은 무슨 뜻인가?
선배의 조언이 곧 정답은 아니다. 나는 내가 했던 그대로 하면 되고,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에게 내 삶의 방식을 강요할 수는 없다. 모두 다 나름의 색이 있다.
그런 습관, 아니 태도를 갖는 게 쉽지 않다. 특히 조직 생활, 회사원을 오래하면 상명하달에 익숙해진다. 그 기간이 오래되면 업무 조언과 삶의 조언의 경계가 옅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후배가 물어보지 않는 이상 먼저 이야기하지 않는다. 누가 도음을 요청하면 꼭 이렇게 말한다. ‘이건 너와 안 맞을 수도 있는데, 나는 그렇게 했어. 선택은 당신 몫이야’라고. 강압적이지 않게 말한다. 만약 후배가 나와 같은 선택을 했을 때 결과가 괜찮다면 그게 습관처럼 될 수 있을 것이다.
조언을 구할 때는 배우고 싶은 선배에게 묻게 된다.
배우고 싶은 사람은 나이와는 상관없다. 후배들 중에도 매력 있고, 근사해서 매우 배우고 싶은 경우가 더러 있다. 무엇이든 배울 수 있는 사람은 나이와는 전혀 상관없다.
영화 이야기도 해보자. 지난해 <독전>에서 보여준 악역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특별 출연이라 더 놀랍기도 했고.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도전적인 캐릭터를 많이 소화했다. 힘들고 어려운 캐릭터들이었다.
요즘은 조금 다르다. 캐릭터에 너무 목매어서 연기하지는 말자는 생각이다. 그렇게 해서 더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하는 게 훨씬 더 생산적일 수 있다.
어깨 힘을 빼자는 건가?
영화는 다 함께 만드는 것인데, 홀로 십자가를 짊어지진 말자, 작품에 내 혼신을 토해내지 말자는 것이다. 대신 안 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한번 해보자는 태도다. 안 되면 할 수 없고. 인위적인 시도는 지양한다. 그러면 나는 번아웃되지 않고 더 오래 연기를 좋아하면서 할 수 있다. 예전 작품을 보면 아쉬운 점이 눈에 띈다. 그래도 할 수 없다. 지금이라도 이렇게 깨달아서 괜찮다고 생각한다.
혼신을 다하면 왜 안 되는 건가?
노력의 강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결과가 나쁘다면 비난의 화살이 서로에게 향한다. 그러니 대화가 잘 안 통하고, 쉬운 말도 어렵게 하게 된다. 서로 생각이 다른 것 같다면서 틀어지게 되고. 안 되면 안 되는 거다, 안 되더라도 한번 해보자 하고 최선을 다하고. 이런 식으로 접근해야 의외의 상황이 펼쳐진다. 감독과 배우가 사전에 꼼꼼하게, 완벽하게 준비를 했는데, 현장에서 상황이 다르면 어떻게 할 건가? 현장에서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의외의 결과물이 나오면 좋은 거다. 잘 안 되면 서로 탓하지 말고 한 번 더 해보고.
여유와 유연함이 필요하다는 뜻인가?
그렇다. 그래서 요즘에는 감독님에게 말한다. 안 되는 거 다 해볼 테니, 안 돼도 욕하지 말라고.(웃음) 그럼 감독님도 편안하게 진행할 수 있다. 서로 편안하게 촬영하다가 무언가를 찾아내야 하는 상황이라면 진지하게 의견을 주고받고. 물론 내가 말하는 열심히 하지 말자는 나태해지자는 뜻은 아니다. ‘답정너’가 되지 말고 유연해지자는 뜻이다.
작품은 제작 과정이 즐거워야 결과도 잘 나오는 것 같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겉으로는 즐거운 척했고, 홀로 고민이란 고민은 다 짊어지고 있었다.
이런 깨달음은 어떻게 얻었나?
무수한 시행착오가 있었지.
지난해 촬영한 영화 <힘을 내요, 미스터 리>는 휴먼 코미디다. 오랜만에 코미디에 출연한 것이 반갑다. 과거 차승원의 초기작들 중에는 꽤 재미있는 코미디가 많았다.
오늘이 스승의 날인데, TV에서 <선생 김봉두>를 재상영한다고 하더라. 그거 촬영할 때 참 즐거웠다. 당시에는 정말 김봉두처럼 살았다. 내 몸과 마음을 김봉두에 완벽하게 맞췄었다. 평소에도 김봉두 말투를 쓰고, 옷도 그렇게 입고 다니고, 메소드 연기를 했다. 요즘은 다시 그런 연기가 하고 싶어졌다.
유쾌한 연기를 하면 기분도 더 좋아지지 않을까?
그렇다. 모든 영화에 유머가 있으면 한다. 나는 유머가 잘 맞는 것 같다.
영화도 그렇지만 인생도 재미있어야 한다.
인생은 재미있어야 한다. 일도 재미있게 하면 더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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