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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에 가야 하는 이유

UpdatedOn May 30, 2019

몇 년 전 성수동은 오래된 공장을 흥미로운 방식으로 재탄생시키며 국내 공업단지계의 핫 플레이스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투어를 하듯 성수동을 탐험하던 사람들은 망원동과 을지로로 떠났다. 그렇게 잠시 끓다 식을 것 같던 성수동이 다시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올 초 서점, 크래프트 맥주 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등이 입점한 성수연방이 등장한 것. 이를 기점으로 사람들은 다시 성수동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있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성수동은 이제 진짜 서울의 브루클린이 될까?

CONTRIBUTING EDITOR 강예솔

이 동네는 아직도

성수동에 처음 가본 것은 8년 전쯤이었다. 당시, 나는 ‘대림창고’에서 열리는 모 브랜드의 행사를 취재하려던 참이었다. 사무실 앞에서 잡아탄 택시의 내비게이션에 의지해 도착한 대림창고는 겉과 속이 모두 낡아 있었다.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과거 건물의 자재와 외벽 덕택에 이 자리에서 프레젠테이션이라는 새로운 공표가 열린다는 것이 아주 대조적인 기분이 들기도 했다. 지난 세월, 공장 돌아가는 소리가 자욱하던 이 동네는 거꾸러진 제조업 때문에 한동안 쓸쓸한 부지로 남아 있었다. 별다른 일이 없을 것 같던 성수동에 생기를 불어넣은 것이 바로 대림창고다. 비어버린 공장들 사이에 우두커니 서서 화려한 사건을 벌이는 이 공간 때문에 동네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상수동이나 문래동, 우사단길을 옮겨 다니면서 작업 공간을 마련하던 젊은 아티스트들이 젠트리피케이션의 이동에 따라 이 동네에 온 것도 시류의 전환에 몫을 더했다. 이어서 2014년, SNS 피드에 줄곧 오르던 ‘자그마치’라는 카페의 오픈이 성수동에 좀 더 확연한 한 방을 먹였다. 디자인 컨설팅 브랜드 ZGMC에서 문을 연 이곳은 빛과 꽃이 비정형적으로 나열되어 있다. 

그리고 카페 ‘오르에르’, 리빙 편집숍 ‘WxDxH’, 수집품 숍 ‘오르에르 아카이브’, 문구점 ‘포인트오브뷰’까지. ZGMC에서 연이어 만든 유니크한 공간은 남다른 취향을 동경하는 이들을 이 동네로 유인할 만한 포인트가 돼주었다. 또 다른 공간을 빠르게 찾는 사람들의 기운에 화답하듯, 성수동이 지난 세월을 겪어오는 동안 새로이 지거나 떠오른 동네도 있었다. 성수동과 경쟁하듯 브루클린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던 문래동은 희미하게 저물었고, 익선동은 세대별로 생경한 경험과 추억할 수 있는 과거를 안겨주며 떠올랐다. 성수동 역시 주춤했던 시간이 분명 있었다. 주기적으로 핫 스폿을 공격하는 지역적 이해관계와 함께 젊은 세대들의 나만 가는 동네에 대한 발굴 욕구가 중점적인 이유다. 하지만 이 동네는 시대별로 떠오르던 몇몇 동네가 한계점을 맞이한 것과 다르게, 지지 않고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든다. 최근 오픈한 복합 문화 공간인 성수연방이 그러하다. 

이곳 역시 1970년대의 화학 공장을 개조했다는데, 공장을 개조한 여타 공간의 분위기에 비해 차분한 기분이 감돈다. 다를 바 없는 다양한 상점의 조합으로 볼 수도 있지만, 중고 서적을 현장 매입하는 아크앤북의 슬로건이나 1층의 레스토랑을 위해 식재료를 생산하는 팜프레시 팩토리의 디테일을 알고 나면 공간적 유기성에 놀라울 따름이다. 여름이 오기 전, 글로벌 커피 브랜드 블루보틀이 한국에도 상륙한다. 아마 오픈 이후부터 더 많은 사람이 성수동에 몰려들 거다. 확실히 성수동의 초반을 이끌던 공장 부지를 거의 그대로 사용해서 오픈한 카페나 숍이 많아졌다. 심지어 설계 자체를 공장 콘셉트로 하는 공간도 생겼을 정도니 더 이상 특별한 요소는 아니다. 하지만 어제가 무색하리만치 사람들이 발길을 끊는 동네에 반해, 성수동은 자기 재생이라는 움직임을 보인다. 지역적 위기에 주춤하지 않고 시대가 원하는 변화를 해석하고 움직이기에 이 동네에는 오늘이 있다.


WORDS 김지영(프리랜스 에디터)

나의 성수는 그들의 성수와 다르면서도 같다

보통 성수를 ‘서울의 브루클린’이라고 말하곤 한다. 아마 공장 지대를 재생해 겉은 허름하지만 안은 멋진 장소로 변모하는 현상을 정의하려는 미디어적 발상의 일부일지도 모르지만, 또 저렇게 성수동의 특색을 단도직입적으로 표현하는 말을 쉬이 찾긴 힘들지도 모른다. 지금 현재 성수동이 해외 사례를 가져오지 않는 한 정의 내릴 수 없는 신기한 모습을 띠고 있는 건 분명하니까. 사실 운때가 잘 맞았다. 예전 같으면 여지없이 밀어버렸을 준공업 지역의 개발 논리가 도시 재생과 결합해 성수의 허름한 분위기가 크게 훼손되지 않았다. 경리단길을 위시한 여러 동네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유발한 참혹한 결과가 언론을 뒤엎을 때, 지자체는 조례 지정을 통해 대형 프랜차이즈의 공습과 소상공인의 증발에 대응하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무엇보다 지리적 위치를 무시할 수 없다. 압구정 중심과 이어진 성수대교, 청담동 명품 거리와 연결된 영동대교가 모두 성수에 뿌리를 박고 있다. 

실제 강남에서 평생을 산 지인은 유일하게 강남 밖에서 노는 장소가 홍대였는데, 지금은 놀이터가 성수로 바뀌었다. 언젠가 한 동료가 지하철 입구 앞에서 받은 커피 쿠폰을 건넨 적이 있다. 우리는 이 공짜 커피를 마시기 위해 ‘여행’을 떠났는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획득하고 공간을 쭉 돌아보면서 한마디 했다. “여기 뭔가 돈 냄새가 나는데요. 말로만 듣던 ‘핫플’일까?” 얼마 후 그 장소는 인스타그램에서 난리가 났다. 바로 성수연방이었다. 이 에피소드는 현재의 성수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정보다. 작년부터 성수에 거대한 지식정보센터들이 계속 문을 열었다. 용적률을 꽉 채운 것이 분명해 보이는 거대한 빌딩에는 수많은 스타트업이 입주했다. 비록 적더라도 소득이 분명 존재하며, 취향에 민감한 20~30대 남녀가 매일 아침 성수역 출구에서 탈출 전쟁을 벌인다. 그들이 평일에 돈을 쓰는 장소가 어디겠는가? 회사가 있는 성수다. 

이전에 생긴 성수의 핫 플레이스가 새로운 냄새를 맡은 사람들과 그들이 퍼뜨린 정보를 따라 주말마다 부유하는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했다면, 지금은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 평일 낮이나 밤이나 20~30대 유동 인구의 절대량이 존재한다. 이들을 공략하면 평일 장사를 무사히 마칠 수 있고, 이들이 소셜 미디어에 남긴 흔적을 보고 주말에는 타지 사람들이 놀러 온다. 나만 해도 빵 먹고 싶을 때는 어니언을 간다. 커피 마실 땐 카페 포제를 간다. 이유는 똑같다. 가까우니까. 편하니까. 성수 대부분은 준공업 지역이라 용적률이 높아 개발이 용이하다. 게다가 서울 동부의 최대 상권인 건대입구역이 지척이다. 나는 아침마다 13층 높이의 창을 통해 건대입구역과 성수역 사이를 조망한다. 여기가 어떻게 개발되고 확장되고, 끝내 서로 이어질 수 있을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이제 매일 성수 부근이 삶의 본거지가 되어버린 내 입장에서 성수는 다른 이들의 성수와 분명 다르지만, 어느 한편으론 동일해졌다. 지금 성수가 겪는 상황이 특별하게 와닿는 이유다. 


WORDS 전종현(디자인, 건축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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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CONTRIBUTING EDITOR 강예솔
WORDS 김지영(프리랜스 에디터), 전종현(디자인, 건축 저널리스트)

2019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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