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천 조각 하나가 화이트 큐브에 덩그러니 걸려 있다. 영국 지도를 닮은 그 천 조각은 밑으로 갈수록 형체를 잃고 기운 없이 축 늘어져 볼품없고 외로워 보인다. 영국의 아티스트 수잔 스톡웰(Susan Stockwell)의 작품 ‘Jerusalem-Br-Exit’으로 유럽연합과 마주하고 있는 영국의 모습, 브렉시트 이후의 좌절과 디플레이션을 시각화한 것이다. 이처럼 런던의 패트릭 하이데 컨템퍼러리 아트 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 <Should I Stay or Should I Go>에서는 브렉시트 이후의 혼돈을 표현한 작품들이 가득하다. 지금의 절망적이고 혼란스러운 분위기, 브렉시트라는 초현실적인 시나리오가 점차 현실이 되어가는 과정 속 개인, 단체, 기업 그리고 영국이라는 국가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영국 언론 <데일리 미러>는 지금 영국의 상태를 이렇게 요약했다. ‘대책 없고 희망도 없고 단서도 없으며 자신감도 없다(No Deal, No Hope, No Clue, No Confidence).’ 본래 3월 29일이었던 브렉시트 발효일이 4월 12일로, 그리고 다시금 10월 31일로 연기됐다. 하드, 소프트, 노딜 브렉시트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될지, 유럽연합에 잔류하게 될지, 확실한 것이 하나도 없다. 전시는 이 격변의 원인 그리고 전례 없는 사건으로 야기될 수만 가지 문제들을 은유적이고 보다 거시적인 시선으로 다루려고 시도한다.
이번 전시에 다양한 배경과 국적의 아티스트가 참여한 것도 그 때문이다. 전시의 제목을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한 작품은 폴란드 아티스트 미하우 이바노스키(Michał Iwanowski)의 ‘Go Home, Polish’일 것이다. 작가는 브리스톨에서 고국인 폴란드로 걸어가는 여정 자체를 이미지로 담아냈다. 아름다운 전원 풍경이지만 그 속에 드문드문 등장하는 하얀 깃발과 경계선 등이 어딘지 쓸쓸하게 느껴진다. 그런가 하면 데이비드 코넌(David Connearn)의 ‘Calais Flags’는 난민 문제를 꼬집었다. 칼레의 난민 수용소 깃발에서 영감받은 색들로 촘촘하게 채운 캔버스, 그 사이를 불안정하게 가로지르는 하얀색 선은 현재 칼레 아동 난민들의 상태와 처우를 상징한다.
그 외에도 지도를 재료로 삼아 실제적 지형과 심리적 거리감을 표현한 스위스의 소피 부비에르 아우스랜더(Sophie Bouvier Auslander), 인쇄 매체를 사용해 그 내용을 파괴하거나 반대 의견을 붙여놓는 식으로 현재의 사회 정치적 상황을 비평한 독일의 마이크 마이어 등 다양한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사실 런던은 세상에서 가장 다인종적이고 다문화적인 도시다. 브렉시트 전에도 런던은 물론 유럽 전체, 특히 외국인 거주 지역 내에서 소속감과 정체성, 포용과 배제, 책임과 참여 등은 뿌리 깊은 이슈 중 하나였다. 때문에 이 전시는 브렉시트, 지금의 정치적인 현실을 논평하는 것을 넘어 오히려 현 상황을 초래한 근본적인 이유를 묻는 것에 가깝다. 머물러야 할까? 아니면 떠나야 할까? 결국 이건 브렉시트 이후의 이야기이자 브렉시트 이전의 이야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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