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조우진의 연기에 빠진 사람들은 말한다. 그는 지독하게 악한 사람처럼 보이다가도 한없이 선량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권력자일 때도 서민일 때도 보는 사람들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연기를 한다고. 일상 속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일 때도, 일상 속 어디서도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일 때도 조우진은 조우진으로서 설득력을 가진다. 그는 여러 해 동안 누구보다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면서 내공을 쌓아왔다. 그럼에도 지금 그가 가장 원하는 것은 더 다양한 모습이라 말한다.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때도, 지금도 여전히 뜨겁게 갈망하는 배우 조우진의 이야기를 들었다.
촬영 시작할 때 스스로 ‘포즈치’라고 말한 것치고는 카메라 앞에서 굉장히 자유로워 보였어요. ‘내 얼굴이 못나 보이지는 않을까?’ 신경 쓰느라 포즈에 제약이 있지도 않았고요.
촬영 전에는 엄청 고민을 해요. 그런데 작업하는 순간에는 자연스러워야 하는 것 같아요. 찍으면 찍을수록 그런 생각이 들어요. 물론 연기도 마찬가지예요.
덕분에 배우 조우진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연기를 할 때도 여전히 새로운 모습을 갈망하나요? 몇 년 전 한 인터뷰에서 다양한 작품에 대한 동경이 연기의 동력이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지금은 그 갈망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을 것 같기도 한데요.
그렇지 않아요. 계속 갈망해야 해요. 그게 동력이잖아요. 단 한 작품의 작은 캐릭터도 소중한 시간이 있었거든요. 무엇이든 끊임없이 갈구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당시 저를 생각한다면 그 동력을 잃어선 안 될 것 같아요.
연기하면서 새롭게 발견한 자신의 모습이 있나요?
악함 혹은 독함. 영화 <마약왕>과 <국가부도의 날>을 연기하면서 ‘나한테 저런 얼굴이 있었나’라고 느낀 적이 있어요.
최근 개봉한 영화 <돈>의 조일현에게서는 또 어떤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사냥개라는 수식어만 봐도 센 인물이라는 감이 오는데요.
저도 처음에는 사냥개라는 별명이 굉장히 세게 다가왔어요. ‘보통 캐릭터는 아니겠구나’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정작 연기를 할 때 세게 하려는 노력은 안 했어요. 남이 뭐라든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밀어붙이는 인물로 해석했거든요. 일에 대한 추진력이 이 인물을 정의할 수 있는 키워드예요. 그래서 대본에 없던 설정도 하나 추가했어요. 이혼남이면 어떨까 생각했거든요. 가정을 살피지 못할 정도로 일에만 매달리는 사람이라는 배경이 있어야 그가 쫓는 범죄가 더 무섭고, 중대해 보일 것 같았어요.
범죄를 쫓지만 마냥 정의롭고 선한 캐릭터로 볼 수는 없겠네요.
네. 악의 대척점에 있는 캐릭터는 아니에요. 정의를 위해 일하지만 어떨 때는 시스템을 무시하고 무모하게 달려들기도 하거든요.
영화 제목이 굉장히 직관적인데요, 이를 설명할 수 있는 부제를 붙여본다면요?
돈-그 밑에 있는 사람들. 문득 떠오른 말이에요.
사람들이 배우 조우진을 알아보기 시작한 두 작품이 있어요. 영화 <내부자들>과 드라마 <도깨비>. 배우로서 확신을 가진 작품이기도 한가요?
확신을 가진 작품은 없어요. 다만 제 속에 있는 것을 100% 꺼내서 연기한 몇 장면이 있을 뿐이에요. 영화 <내부자들>의 경우, 안상구(이병헌 분)의 손을 자르라면서 “여기 썰고, 저기 썰고”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제가 연기를 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연기했어요. <도깨비>에서는 마지막 회에 덕화에게 어서 어른이 되는 방법을 깨우치라고 말할 때가 그랬고요. 그런 몇몇 순간들이 있어요.
누군가가 대표작에 관해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하나요?
제 작품을 객관화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에요. 그래서 대표작에 대해 말하는 건 아직 이르다고 생각해요. 조금 더 연기를 해보고, 제 연기에 확신이 드는 작품을 만났을 때 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자신의 연기에 대해 너무 가혹하게 검열하는 건 아닐까요? 천재적인 배우라는 소리도 듣고, 같이 연기한 배우들이 입을 모아 칭찬한 적도 있잖아요.
자기 검열이 심하다는 말, 적잖이 들어왔어요. 그런데 그냥 이렇게 돼먹은 놈인 것 같아요. 저도 어쩔 수 없어요. 언제나 많이 묻고 의심하거든요.
그럼 반대로 극찬을 해주고 싶은 배우는 누구인가요? 최근에 가장 큰 자극을 받은 배우가 있다면요.
너무 많은데요. 최근에는 영화 <돈>과 <전투>를 같이 찍은 준열 씨를 보면서 제가 저 나이 때 저런 연기를 할 수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름의 집요함과 집중력이 있으면서, 그 와중에 현장에서 겪는 상황에도 꽤 유연하게 대처해요. 또 유지태 형에게서도 많은 자극을 받았어요. 제가 최근에 생각하는 삶의 화두가 어른인데요.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까? 그러려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라고 생각했을 때, 거울 삼고 싶은 사람이에요.
이미 어른이 되었음에도 삶의 화두를 ‘어른’으로 두는 이유가 있나요?
마흔이 넘으니까 현장에 가면 선배보다 후배가 더 많더라고요. 작년에는 가정을 꾸리기도 했고요. 그러다 보니 어제오늘만 생각했던 제가 어느덧 내일도 고민해보고, 계획도 세워야 하는 시기가 왔어요. 예전에는 무조건 연기 잘해야지, 예쁘게 보여야지, 돈 많이 벌어야지 같은 생각만 했다면 지금은 가정과 동료들을 위해서 어떤 태도로 임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 그런 생각을 할 때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어른이더라고요. 몇 년간 끊임없이 작품을 하다가 최근 두 달 동안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요즘 가장 많이 고민하는 문제예요.
삶에 대한 고민 외에 일상을 어떻게 보내고 있나요?
체력적으로 에너지 충전도 하고, 다음 작품의 감정 소모를 위해서 정서적 함양도 하고 있어요. 제가 넋 놓고 쉬는 것을 잘 못해요. 3일이 한계예요. 3일이 지나면 어떻게라도 움직이고, 뭐라도 보려고 해요.
정서적 함양은 어떤 식으로 하나요?
닥치는 대로 보고 듣는 편이에요. 책도 영화도 음악도요. 다큐멘터리도 즐겨 보는데, 요즘은 참신하고 재미있는 유튜브 영상이 많더라고요. 거기서 영감이나 자극을 받기도 해요. 어떤 건 뉴스나 영화보다 재미있어요.
최근에 재미있게 본 영상 하나를 추천해준다면요?
어떤 댄스 스쿨에서 만든 춤 영상인데요. 보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생기더라고요. 여러 번 보면서 다른 부분을 발견하는 것도 재미있고요. 처음에는 춤을 추는 것 자체를 보고, 그다음에는 몸의 움직임을 보려고 하다가, 나중에는 제 시선이 사람들 눈으로 향하더라고요.
혹시 따라서 춘 적은 없나요?
없어요. 제가 춤을 어떻게.(웃음)
일과 일상을 최대한 분리하려고 하는 편인가요? 일이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분리하려고 하죠. 제가 역할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주변 분들이 더 힘들어지거든요. 감정을 최대한 컨트롤하려고 해요.
자유로운 삶보다는 절제하는 삶에 가깝다고 봐도 될까요?
절제하는 삶 속에서 끊임없이 자유로운 삶을 갈구하는 상태. 그게 하지 않아도 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의 차이인 것 같아요. 제 삶이 그 두 가지 사이에 있는 것 같아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고 해요. 한쪽으로 기울면 저만 불편한 게 아니라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안 좋을 것 같아요.
주위 사람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시네요.
저 혼자만 행복하자고 이 일을 시작한 건 아니니까요.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고, 제가 그런 영향력을 발휘하면 좋겠어요. 그래서 주위 사람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어요. 어른이라면 그래야 할 것 같아요.
어른이 되셨네요.
(웃음) 아직 실천하고자 애를 쓰는 질풍노도의 시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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