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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는 한국 영화 '인싸템'?

UpdatedOn March 28, 2019

한국 영화를 ‘충무로’라 지칭하던 시절, 코미디는 메인스트림 장르였다. 강우석 감독으로부터 시작된 <투캅스> 시리즈 등이 박스오피스를 좌지우지하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코미디는 언젠가부터 사장된 장르 중 하나였다. 누아르가 대세가 되고, 범죄물, 블록버스터 등에 서브 장르로서 살짝 가미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완벽한 타인>의 흥행이 있었고, 대놓고 웃기기로 작정한 <극한직업>이 폭풍 같은 흥행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지금 코미디 장르에 관심을 보이는가? 아니 코미디는 다시 과거의 영예를 회복할 수 있을까?

EDITOR 이주영

풍자와 해학보다는 핵인싸와 이생망

결국 1천만을 넘기고야 말았다. 새해 벽두부터 그야말로 웃기고 자빠진 코미디 퍼레이드는 1월 9일 개봉한 <내 안의 그놈>부터였다. 이 영화는 개봉 12일 만에 2019년 첫 손익분기점(1백50만 관객) 돌파라는 타이틀을 챙겼다. 그 기운을 제대로 이어받은 <극한직업>이 1천만 영화 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설 연휴 기간 중 개봉 15일 만의 일이었다.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를 주워섬겨 웃음보를 터뜨린 류승룡은 공교롭게도 이전까지 유일한 1천만 코미디였던 <7번방의 선물>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2~3월에도 코믹 레이스는 이어진다. ‘채식하는 좀비, 물리면 회춘’이라는 발상 전환의 시골풍 좀비물 <기묘한 가족>, ‘부모의 등쌀, 결혼하는 척만’으로 웃기려 덤벼드는 요즘 것들 풍자물 <어쩌다, 결혼>, ‘아빠의 여사친, 가족 평화 수호 대작전’이 펼쳐지는 신개념 연애물 <썬키스 패밀리> 등이 그 주인공. 후반 작업이 한창인 코미디들도 적지 않다.

최근 선보이고 있는 코미디 영화들의 명백한 특질은 ‘병맛’ 코드다. 맥락도 없고 어이도 없고 뜬금도 없이 유발하는 웃음. 논리적일 필요도 합리적일 필요도 없다. 최소한 ‘실소’라도 끌어내면 성공이라고 작정한 듯하다. 기대하지 못한 데서 훅 들어오는 웃음의 카타르시스, 그 정도면 됐다고 보는 것이다. 더 이상은 괄시받지 않는 (도리어 메인스트림을 유의미하게 위협하는) B급 정서와 덕후 공감대의 대중적 확산. 주류가 정해둔 규범과 그 사회적 단속을 향한 전복이다. ‘난 그냥 이게 좋아’ ‘닥치고 꺼져줄래?’ 같은 태도와도 잘 통한다.

이처럼 내면화한 신자유주의적 사고는 각종 SNS를 통해 확산되고 강화된 지 오래다. 나만 즐겁다면 조악해도 괜찮고, 그렇게 익숙해졌으니 영화 한 편은 그저 가볍기만 하다. 처음부터 신속하고 정확하게 웃겨야 한다는 의도가, 처음부터 신속하고 정확하게 웃고 싶다는 의욕과 제대로 상호작용했기 때문이다. 분석하고 판단하는 수고로움보다는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웃음거리에 가치를 더 두고 있는 세태는 장기화하고 있는 경제 침체와도 무관하지 않다. 웃음에서만큼은 쪼들리고 싶지 않다는 간단한 심리, 복잡한 건 사양하고 싶다는 편리한 결정. 이는 지상파와 케이블은 물론, 온라인과 모바일을 막론하고 지천으로 깔린 ‘병맛으로 웃겨주는’ 예능, 오락, 버라이어티들의 실검 순위에도 잘 반영된다.

조급해진 웃음 템포는 격식과 체면의 해체와 적절히 부합하는데, 이제는 ‘세공 잘된 미소’보다는 ‘도발 가득한 폭소’에 더 치우친 콘텐츠 인프라가 형성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개웃김” “처웃다 복근 생김” 같은 소셜 라이프에도 썩 유용할 텍스트를 최근 코미디가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영화들이 박스오피스의 주류가 돼도 괜찮나 하는 의구심조차 고리타분해 보이는 현실. 이미 관객은 ‘조심스럽지 않게’ 코미디를 접하고 있고, ‘풍자와 해학’보다는 ‘핵인싸와 이생망’에 더 격렬히 반응하고 있다. 최소한 지금은 ‘코미디의 품위’를 운운할 만큼 진지하고 싶지 않은 거다. 이게 나쁜가? 아니, 별로!

WORDS 송지환(영화 칼럼니스트)

트렌드의 반영이자 욕망의 충족

최근 몇 년간 한국 영화 보고 웃을 일이 없었다. 이른바 한국 코미디 영화가 극장가에서 자취를 감춘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비수기’라는 약점을 딛고 개봉한 <완벽한 타인>이 5백만 관객을 돌파했고, 지난 1월 설 연휴를 바라보며 개봉한 <극한직업>은 올해 첫 1천만 영화가 됐다. <7번방의 선물>(2013) 이후 6년 만에 천만 코미디 영화가 나온 셈인데, 공교롭게도 두 영화 모두 류승룡이 주인공으로 똑같이 1월 23일에 개봉했다. 지난해 <인랑>을 비롯해 추석 연휴부터 연말 극장가에 이르기까지 1백억원 이상 제작비를 들인 한국 영화들이 만족할 만한 결과를 거두지 못한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일이다.

2000년대 이후 한국 코미디 영화의 최고 전성기는 바로, 김상진 감독의 <신라의 달밤>과 곽재용 감독의 <엽기적인 그녀>가 여름에 한 달 차이로 개봉하고, 그로부터 얼마 뒤 조진규 감독의 <조폭마누라>가 추석을 휩쓸었던 2001년이었다. 이후 ‘청춘 코미디’와 ‘조폭 코미디’ 영화는 한동안 충무로를 지배했다. <엽기적인 그녀>와 PC 통신 소설이라는 출신 성분을 공유하는 김하늘, 권상우의 <동갑내기 과외하기>(2003)를 비롯해 문근영의 <어린 신부>(2004), 김재원의 <내 사랑 싸가지>(2004) 등으로 번져갔고, <조폭마누라>는 <가문의 영광> <달마야 놀자> <두사부일체> 시리즈로 이어졌다.

결국 중요한 것은 관객의 공감을 끌어내는 트렌드의 반영이자 욕망의 충족이다. 최근 수많은 웹툰 작품들이 영화화되는 것처럼 <엽기적인 그녀>가 당시 유행하던 PC 통신 소설의 영화화였다면, 조폭 코미디 또한 조폭을 통해 상위 집단을 징벌하는 쾌감을 줬다. 코미디 영화는 아니지만 <내부자들>(2015)의 조폭 안상구(이병헌)는 정치인(이경영)과 언론인(백윤식)을 징벌하는 우리의 대리자였던 것이다. <극한직업>도 뜻하지 않게 대박 치킨집 사장이 된 고반장(류승룡)이 ‘소상공인의 고충’을 이야기할 때 그 웃음은 배가된다. 작년 개봉작 중 사실상 코미디 영화로 분류해도 무방한 <신과 함께-인과 연>에서도 성주신(마동석)이 “차라리 비트코인을 살 걸 그랬어”라며 가상화폐, 펀드, 주식 등을 언급하며 한국 사회를 향한 비판적인 대사를 할 때 극장 안의 웃음이 가장 컸다.

그처럼 특정한 장르가 일정한 주기로 성공과 쇠락을 보여준다면, 지금의 한국 영화는 작품성에 대한 논의를 별개로 하고 적극적으로 대중과 호흡하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섣불리 몇 편의 성공으로 ‘대세’라 부를 수는 없겠지만, 중요한 것은 ‘마요미’ 마동석이 주춤하는 사이 류승룡이 <염력>(2018)의 처참한 실패를 딛고 재기했다는 것이다. 박중훈, 송강호, 차승원, 유해진, 마동석에 이어 웃음에 관해서만큼은 믿고 보는 배우가 한 명 더 가세했다는 점은 한국 코미디 영화의 부활을 조심스레 점쳐볼 만하다. 타 장르와 비교해 코미디는 전적으로 배우에게 의존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얼굴만 봐도 웃긴’ 배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렇게 한국 관객은 극장에서 한동안 더 웃음을 찾을 것이다.

WORDS 주성철(<씨네21>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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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이주영
WORDS 송지환(영화 칼럼니스트), 주성철(〈씨네21〉 편집장)

2019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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