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 이주영
비자발적 싱어송라이터의 시대, 성공한 싱어송라이터라는 장르
1990년대 말부터 2000년 초만 해도 싱어송라이터는 음악 평론가가 즐겨 쓰던 단어였다. 당시 음악 평론가는 싱어송라이터를 ‘진정성’과 동의어로 썼다. 회사에서 기획하고 만든 주류 음악 산업의 ‘꼭두각시’와는 다른,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진심을 노래하는 음악가. 미디어는 대결 구도의 프레임을 먹고 자란다. 음악 평론가와 일부 미디어는 이들을 주류 음악의 대척점에 세웠다. 시스템과 개인. 꼭두각시와 진정성. 자본과 예술. 그들이 내세운 대척의 개념은 ‘인디’였고 싱어송라이터라는 존재는 방패이자 창이었다.
지금은 경우가 다르다. 세계에서 가장 큰 디지털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인 스포티파이는 2018년 12월 31일을 마지막으로 ‘K-Indie Picks’ 플레이리스트의 정기 업데이트를 중단했다. 여기에는 주로 혼자, 또는 인디 레이블로 분류되는 곳에서 음원을 발매한 곡이 실렸다. 대신 해외 사용자가 만든 ‘K-Indie’는 여전히 활발히 업데이트되고 있다. 여기에는 비와이, 허각 같은 이가 포함된다. 아이유나 자이언티가 들어가기도 한다.
이들에게 ‘K-Indie’란 그저 아이돌 그룹이 아닌 한국 음악인 셈이다. 비단 외부의 시선으로 보지 않아도 스트리밍 시대에 ‘인디’란 음악적인 무언가도, 지형적인 신도 설명하기 모호한 이름이 됐다. 현재 실용음악과의 입시 경쟁률은 최고 621대1에 달한다. 공급 과다다. 높은 경쟁률을 뚫은 이들이 졸업하고 나면 뭘 할 수 있을까? 프로듀서 혼자 고음질의 샘플과 신시사이저로 작업하는 세상에 세션의 필요성도 줄었다. 실용음악과 졸업생이 할 수 있는 건 줄이 닿아 기능적인 일을 하든가, 레슨을 통해 자신과 같은 처지가 될 이를 재생산하든가, 비자발적 싱어송라이터가 되는 수밖에 없다. 또는 세 가지를 모두 하며 ‘존버’하던가.
마침 싱어송라이터에게 지금처럼 좋은 시대는 없다. DAW, SNS, 디지털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등 만들고 유통하고 홍보까지, 모두 스스로 할 수 있다. 일부는 이를 이용해 기획사의 도움 없이 아이돌로는 채울 수 없는 틈새시장을 만들었다. 여기에 싱어송라이터의 ‘진심’이 있었는지, 음악가의 치밀한 기획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그냥 그들이 만든 음악이 대중의 취향과 일부 맞아떨어지고 전보다 만날 수 있는 접점이 늘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순간 그 음악가는 싱어송라이터라 불린다. 스트리밍 차트 1위를 차지한 음악가를 ‘인디’라 부르는 건 이상하니까. 여전히 출생 성분을 들먹이며 ‘인디 가요’라 비아냥대는 인디 ‘진정성러’도 존재하지만, 원조집 옆에는 유사한 집이 생기기 마련이다. 싱어송라이터도 마찬가지다. 매년 생겨나는 비자발적 싱어송라이터가 직업인이 되는 가장 빠른 방법으로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하는 것만큼 좋은 게 또 있을까? 대중은 성공한 ‘싱어송라이터’와 이를 롤모델 삼아 조금씩 이름을 드러내는 음악가를 하나의 카테고리로 구분한다. 그렇게 싱어송라이터는 외국인이 생각하는 ‘K-Indie’처럼 장르 없는 시대의 장르가 됐다.
WORDS 하박국(영기획 ‘YOUNG,GIFTED&WACK’ 대표)
시대의 부름, 싱어송라이터
그야말로 싱어송라이터의 시대다. 뜨겁게 떠오르는 음악가들은 앞다투어 자신을 ‘싱어송라이터’라 소개하고, SNS에는 ‘싱송라’라는 아스트랄한 울림의 줄임말이 떠다닌다. 전국에 분포된 예술고등학교와 대학교에 ‘싱어송라이터과’가 줄줄이 개설되는 현실은 또 어떤가. 소리만 나지 않을 뿐 시대는 이미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다. 싱어송라이터는 사실 대중음악 역사 안에서 오랫동안 추앙받아온 존재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작사, 작곡, 편곡, 프로듀싱에서 가창까지. 때에 따라서는 수십 명이 달려들어 작업해도 썩 마음에 드는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인 이 분야에서 혼자 북 치고 장구 쳐 마스터피스를 만들어내는 이들에 대한 열망과 찬양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꽤나 뿌리 깊은 역사를 이어왔다. 이 뿌리의 바탕에 쓰고 부르는 행위의 일치에서 오는 ‘음악적 진정성’에 대한 굳은 믿음이 자리하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 믿음은 한국 대중음악계와도 여지없이 끈끈한 연을 이었다. 특히 ‘한국 대중음악의 황금기’라 불리는 1990년대가 유효했다. 서태지, 윤상, 신해철, 이상은, 이적 등 장르를 불문하고 당대를 대표하는 싱어송라이터들의 뛰어난 활약을 바탕으로 90년대 중반 홍대를 중심으로 인디 음악의 물결까지 더해졌다. 곡을 쓰고 직접 부르는 것이 음악성은 물론 음악가로서의 자격을 담보하는 필수 요소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곡을 쓰지 못하는 싱어와 노래하지 못하는 송라이터는 결과물의 완성도와 상관없이 싱어송라이터보다 한 단계 아래로 언급되는 일이 흔했다. 인디는 물론 메이저, 하다못해 K-팝 아이돌에 이르기까지 목을 매는 ‘싱어송라이터 신화’는 이렇듯 자연스레 탄생했다.
왜곡된 신화는 그대로 시대의 목소리에 호응했다. 아이돌과 비아이돌로 변이를 마친 음악 생태계 속에서 인디와 메이저의 경계는 흐려졌고 악기보다 컴퓨터가 익숙한 세대는 물리적, 정서적으로 유지하기 어려운 밴드 대신 솔로 형태를 택했다. 창작, 공연 또는 오디션을 통해 기획사에 캐스팅된 뒤 정식 활동으로 이어지는 정해진 데뷔 수순도 크게 바뀌었다. 사운드클라우드와 유튜브를 통해 발표한 음원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이용해 입소문을 타고 음원 차트에 오르거나 기획사의 러브콜을 받는 경우가 흔해졌다. 음악계 안팎으로 싱어송라이터가 주목받기 좋은 환경이 자연스레 조성된 셈이다. 토양도 준비되었고, 바람의 방향도 바뀌었다. 우리는 앞으로 더 많은 싱어송라이터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하이브리드의 하이브리드가 반복되다 못해 타고난 무늬마저 희미해진 음악 장르의 다변화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모던-포크-소울-덥-사이키델릭이 가능한, 오로지 ‘나’로 구성한 장르가 가능한 세계의 도래. 틀을 깨고자 하는 몸부림에서 태어난 음악가들에게 ‘싱어송라이터’란 어쩌면 기본을 보장하면서도 어떠한 한계도 없는 안락한 둥지일지도 모른다. 역시, 우리는 당분간 더 많은 싱어송라이터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WORDS 김윤하(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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