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현진을 만나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지난가을, 그가 속한 밴드 방백의 공연 <10월 중의 10월> 때문이었다. 더 정확하게는, 라이브 음원 때문이었다. 방백은 공연 실황을 녹음해 이메일로 라이브 음원을 보내주겠다고 관객에게 약속했다. 11월 즈음이었나, 백현진에게 이메일이 왔다. 늦어도 11월 중순에는 전송해주겠노라고. 하지만 해가 바뀌고 2월이 되어도 두 번째 이메일은 오지 않았다. 그래서 언젠가 그를 만나면 꼭 그 질문부터 해야지, 생각했다. 2월 중순부터 3월 말까지, PKM 갤러리에서 <노동요: 흙과 매트리스와 물결 Work Song: Soil, Mattress and Waves> 전시를 한다는 그를 붙잡고 “왜 음원을 안 보내시는 거예요?” 물었다.
사실 엄청난 대답을 기대한 건 아니었다. 아마도 바빠서겠지. 전시 준비도 하고 또 드라마 <붉은 달 푸른 해>에 출연해 연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현대인은 다 바쁘니까.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가 무심하고 대수롭지 않게 대꾸할 거라고 예상하고 그냥 던진 질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백현진은 몹시 미안한 얼굴로 길게 대답을 이어 나갔다. “그 음원은 이미 작업이 끝나서 제가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원래는 약속한 날짜에 보내드릴 수 있었거든요. 어떤 분들이 SNS 통해서도 물어보셔서 구정 전에는 보내드리겠다고 답했는데, 아직도 못 보냈죠. 아마, 제가 그 작업이 별로 성에 안 차나 봐요. 함께 공연한 멤버들은 아마 제가 보낸 줄 알 거예요. 근데 그냥 쥐고 있어요. 괜히 뜸 들이고 있네요.”
전송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되는데 누르지 못하는 그 마음이 또 궁금했다. “하기 싫은 일은 정말 안 하거든요. 지금 딱 그 상태예요. 해야 될 일인데, 그리고 하게 될 일이고. 그런데 미루고 미루면서 혼자 이러고 있는 거예요.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너무 죄송해요. 이미 완성된 데이터를 보내는 걸, 바빠서 못 보냈다는 건 말이 안 되죠. 역시 말은 안 되지만 지금 뭔가 내키지 않아요. ‘큰아버지 댁에 봉투 갖다 드려’ 이런 심부름 같은 거예요. 당연히 갖다 드려야 하는데 여기 갔다 저기 갔다 어디 앉아 있다 낮잠도 잤다가. 뭐 이러고 있는 중이에요. 근데 갖다 드려야죠.(웃음)”
미안함과 함께 도무지 전송 버튼을 누를 수 없는 마음을 이토록 친절하게 설명하는 그를 보고 있자니 괜한 얘길 꺼냈나 싶었다. 라이브 음원을 갖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그날 방백의 공연이 참 좋았기 때문이다. 무대 위 백현진이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조차 관객은 숨을 죽여야만 했다. 혹시나 내 숨소리가 무대에 전달돼 그의 몰입을 방해할까 봐서. 노래하는 백현진의 압도적인 몰입감이 그림을 그릴 때도 그대로 적용될까? 그가 그림 그리는 장면을 라이브로 본다면 어떤 느낌일까? 이 또한 문득 던진 질문이었다. 그런데 또 정성스레 답을 내놓는다.
“보통 그림 작업할 때나 노래할 때나 쉬운 표현으로는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진행돼요. 그림 그릴 때 아주 드물게 동네 친구가 놀러 오기도 해요. 구남과여스텔라의 조웅, 웅이가 가끔씩 그림 보러 놀러 와요. 그러면 또 웅이랑 얘기하면서 그려요. 지금 두 가지 상황을 얘기했잖아요. 너무 몰입해서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진행하는 경우도 있고, 엄청 산만한 상태에서 친구와 얘기하면서 그림 그리는 경우. 이 두 가지 방법을 다 운용하는데 그렇게 큰 무리는 없어요.” 그럼 이런 뻔한 질문은 어떨까? 전시 제목이 왜 <노동요: 흙과 매트리스와 물결 Work Song: Soil, Mattress and Waves>인지.
“운 좋게 멋대로 일하면서 작업도 하고 생활도 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더 멋대로 하고 싶어요. 근데 지금 얘기하는 ‘멋대로’는 작업 얘기예요.”
근데 또 이런다. “전시를 봄에 하기 때문인지 아지랑이 이미지가 계속 떠올랐어요. 그런데 ‘ 아지랑이가 전시 제목이랑 무슨 관계가 있으려나?’ 생각했지요. 그러다가 어떤 신(scene)이 보였어요. 가사를 쓸 때도 머릿속에 이미지가 떠오르면 그걸 대개 언어로 표현해요. 그때 보인 영상은 봄에 흙먼지가 부는데 아지랑이가 아른아른 피어오르고 버려진 매트리스 위에 흙도 좀 있었어요. 이런 것들이 구체적으로 느껴지고 보이면서 전시 제목이 되려나 했어요. 그런 식으로 산만하게 떠돌던 이미지나 낱말들이 어느 날 좋아졌어요.”
짐작을 벗어난 친절한 답변이 계속 이어졌다. 그는 자신이 두서없이 말을 해 혹시나 언어가 잘못 전달될까 염려하는 것 같았다. 되도록 이런저런 비유를 들어가며 할 수 있는 한 자신의 언어를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이건 무슨 의미인가요?” 물으면 “그냥 느끼는 대로 느끼세요” 정도로 대답할 거라는 예상은 순전히 내 오만이었다. “언젠가 인터뷰할 때, ‘저는 그냥 막 하는 게 재미있어요’라고 얘기한 적이 있는데, 나중에 오해를 사게 되더라고요. 가끔 홍대 앞에서 ‘작가님, 저도 막 하는 걸 좋아합니다’ 하면서 그림 보여주고 노래 들려주는데 할 말이 없는 경우가 있지요. 그런 오해가 있을까 봐
‘나는 이런 성향이다, 이런 기질이다’ 더 설명을 하려고 해요. 모두가 다르게 일을 보겠지요. 다 다른데, 또 각자 자기만큼 무언가를 하는 거 같아요. 저처럼 그림을 열어놓고 뭐가 기록될지 끝날 때까지는 알 수 없게 그리는 사람도 있고, 정해진 대로 꼼꼼하게 설계 도면대로 일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고요. 어떤 작업이 자기에게 맞고 또 재미있는지는 알 수 없죠. 홍상수 감독처럼 오전에 시나리오 써서 오후에 영화를 찍는다고 결과물이 다 좋은 건 아니잖아요. 그런 걸 말하려다 보니 얘기가 길어졌어요.” 일을 집어던지고 드러눕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자꾸 예상을 빗나가는 백현진은 아마도 살면서 “왜 그러시는 거예요?”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들어봤을 것 같다.
그는 씩 웃으면서 “그렇게 하는 게 그냥 좋아요. 좋아서 그러는 거예요”라고 답할 뿐이지만. “저는 정해진 걸 힘들어하고 못해요. 그렇게 형성되어서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강서구에서 뻔하게, 평범한 시절을 보냈지만요. 20대 때부터는 진짜 멋대로 살았는데, 멋대로 산다는 게 남의 말을 잘 안 듣는다는 거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저는 이런 게 편해요. 운 좋게 멋대로 일하면서 작업도 하고 생활도 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더 멋대로 하고 싶어요. 근데 지금 얘기하는 ‘멋대로’는 작업 얘기예요. 일상에서 누가 맘에 안 든다고 면전에서 ‘야, 이 씨발놈아’ 이러겠다는 뜻은 전혀 아니고요. 일은 가능한 한 진짜 계속 멋대로 하려고요. 제가 지향하는 맥락에서 얼마만큼 다른 일을 할 수 있을까 궁금해서요.”
‘제멋대로’는 연기를 하는 백현진에게도 적용된다. 우연히 TV 앞을 지나다가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서 들여다보니 백현진이었다. 배우 오광록에게 “나 아저씨랑 협상하러 온 거예요. 근데 왜 일을 다 망쳐서! 내가 아저씨 죽여야 돼요?” 대충 이런 대사를 하고 있었는데 온몸으로 짜증과 신경질이 묻어났다. 아마 결국 죽였을 텐데, 그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악인을 백현진이 연기하고 있었다.
“일부러 뻔한 것을 피해서 연기하려고 했어요. 그때 맡은 역할은 연봉이 높은 회사원이었는데 어쩌다 사람을 죽이게 됐어요. 그런 사람을 천하의 악당처럼 연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요. 요번에 드라마 <붉은 달 푸른 해>는 제가 아예 캐릭터를 잡아서 연기했어요. 중간에 한 번 체크를 받았는데 그렇게 해도 된다고 하셔서 마음이 편했어요. 처음부터 자수했거든요. ‘나는 스크립트 그대로는 못한다. 많이 열어줘야지 할 수 있다’고요. 그래서 그렇게 했어요.”
얼마 전 그가 페이스북에 그림 두 점을 올렸다. 아버지 댁에 갔다 1993년도에 그렸던 그림 두 점을 발견했다고 했다. 하나는 안경을 끼고 미간에 신경질이 묻어 있는 그의 자화상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세상에 되게 불만이 많아 보이는 어떤 형상을 그린 것이었다. 20대 초반의 백현진과 지금의 백현진은 뭐가 달라졌을까? “음, 일단은 시간이 흘렀으니까 모습은 기본적으로 달라졌지요. 인상을 보니 딱 느껴지더라고요. 그때 되게 신경질적이었거든요. 화가 많고 진짜 ‘다 좃까라’ 쪽이었거든요. 그나마 정신은 있어서 ‘나 포함해 다 좃까라’였어요. ‘나 빼고 다 좃까라’라고 생각했으면 지금보다 더 상태가 나빴을 텐데.(웃음) 나 포함해 다 후져, 막 이랬죠. 그림을 보니까 미간이랑 얼굴에서 그때 생각이 느껴져서 희한했어요. 그 당시에 쓴 글이나 사진도 있지만, 그림이랑은 또 달라요. 그림은 당시 내가 어땠는지 더 잘 전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할까요. 그림은 그래서 재미있는 거 같아요.”
모습이나 인상 말고, 또 변한 건 없을까? 이를테면 나이를 먹으면서 날카로웠던 면이 무뎌진다든가 하는. “저도 그 점에 대해서 잘 체크하면서 살고 싶어요.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는 식으로 두루뭉술 넘어가는 것은 여전히 재미가 없거든요. 확실히 저를 오래 본 사람들이 많이 바뀌었다고 얘기하는 부분 중에서 뭘 얘기할 수 있을까요. 음, 음악 공연을 보셨다니까 이 점을 얘기해볼게요. 가사가 굉장히 많이 바뀌었어요. 어어부 때는 되게 독하고 냉소적인 가사도 꽤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내 작업에 냉소적인 무엇을 넣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그렇다고 해서 그 냉소를 분노라고 치면, 예전에 비해 ‘내가 살아봤더니 그럴 일이 아니다’ 혹은 ‘살아봤더니 이해되더라’ 하는 생각은 아니에요. 예전에는 일종의 분노를 여기저기 막 뿌렸던 거 같아요. 근데 지금은 약간 운용되는 거 같아요. 화가 많이 풀리기도 했을 테지만 막 산발적으로 흩뿌리던 것들이 더 구체적으로 됐다고 할까요. 그렇게 치면 예전보다 훨씬 분노가 강해졌어요. 근데 제 생활에서 찾아보면 여기저기 싸우고 다니거나, 술자리에서 말로 사람들과 붙거나 이러는 건 굉장히 줄어들었죠. 대신 시스템을 작동하는 사람들, 예를 들면 정치하는 사람들에 대해선 예전보다 훨씬 분노가 심해졌어요. 그래도 예전처럼 막 죽겠지는 않아요.”
그림을 잘 모르지만 확실히 지난번에 했던 전시와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2016년에 페인팅만으로 개인전을 열었어요. 그 쇼를 본 사람들이면 좋고 나쁘고를 떠나 되게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할 거 같은데요? ‘기대해주세요’라고 얘기는 못하겠지만 훨씬 달라졌을 거예요, 그림 표면에 기록된 것들이.” 어떤 종류의 재미인지 설명하긴 어렵지만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았다. 백현진이 너무 재미있어 하는 게 느껴져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랬으면 좋겠어요. 일단 그림 설치는 다 끝났는데 아직 오프닝 날 초대를 못했어요. 내일부터 많이 초대하려고요. 약간 재미있을 것 같아서. 아, 바로 이런 거예요. 제가 지금 음원을 못 보내고 있잖아요. 그런데 이 전시는 초대를 쫙 뿌려야겠다는 마음인 거예요. 결국 한 바퀴 돌아서 그 얘긴데.(웃음) 지금 그림 설치 작업 끝났을 때 느낌으로 음원 작업이 끝났으면 바로 이메일 보내고, 그냥 여기저기 막 뿌리고 사운드 클라우드에도 올리고 그랬을 거예요. 그렇습니다.”
여전히 미안함과 겸연쩍음을 섞은 채, 인터뷰를 마치고 저녁에라도 이메일을 보내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오지 않았다. 그런데 앞으로 그 문제를 다시는 입 밖에 올리지 않을 거다. 바빠서 혹은 반대로 게을러서, 아니면 그 일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었으니까. 내키지 않는 그 마음을 충분히 알기에 방백 라이브 음원을 기다리는 대신 그의 전시를 보러 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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