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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래머블한 공간의 유행, 그다음은?

UpdatedOn February 26, 2019

멋진 곳이 생겼다는 이야기에 찾아가 보면 김이 샌다. 유행하는 ‘힙’ 요소를 모아 두루뭉술하게 버무린 인테리어 디자인, 옆 동네의 어느 공간을 복사해 붙여다놓은 듯한 감성, 카페이지만 커피 맛에는 관심 없는 듯 예쁘게만 꾸며놓은 메뉴, 기본 룰조차 알 수 없는 운영 방식….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공간들도 인스타그램 피드에 전시되기만 하면, 엄청난 집객이 이루어진다. 공간이 지닌 진짜 분위기는 거세된 채 납작하게 편집되어 피드를 수놓기 때문이다. 이른바 ‘인스타그래머블한’ ‘핫 플레이스’의 유행. 인스타그래머블한 공간을 열렬히 찾아다니며 주말을 보내던 이들은 정말 그 공간에서 자신의 기대를 충분히 채웠을까? 온라인 플랫폼인 인스타그램에 오프라인 공간들의 편집된 이미지가 오르는 일은 오프라인 공간들을 온라인에, 인스타그램적인 이미지에 종속시키는 것만 같다. 인스타그래머블한 공간의 유행은 얼마나 지속될까? 그다음은 없는 걸까?

EDITOR 이경진

후각과 공간감을 기반으로 한 공간의 가능성

동시대 공간 디자인은 특정 문법에 갇혀 있다. 파스텔 톤 인테리어, 로즈 골드색으로 반짝이는 기물, 다채로운 무지개색 오브제, 초록 기운을 풍기는 식물들, 흰 대리석 상판의 테이블, 타일로 마감한 바닥, 네온사인을 활용한 사이니지, 폐목재의 활용, 인더스트리얼 계열의 조명… 그 중심에 인스타그램이 존재한다. 인스타그램에서 눈길을 끌 수 있는 공간 문법을 통해 기존의 공간은 편집되고 새로운 공간이 탄생한다. ‘인스타그램적 공간(Instagrammable Space)’이 일상을 지배하는 것이다. 도시의 모든 공간이 인스타그램에 매달리는 현 상황은 얼마나 지속 가능성이 있을까. 이미 인스타그램이 초거대 플랫폼으로 자리 잡아 그 구심력에서 자유로워지기는 힘들겠지만 이것만은 확실하다. 인류 역사상 유례 없이 전 세계 공간이 일원화되면서 런던, 뉴욕, LA, 홍콩, 도쿄 등 주요 도시의 풍경이 어마어마하게 납작해졌다. 한 공간이 가진 섬세하고 고유한 맥락에서 향유할 수 있는 깊이는 사라지고 길어야 1분이면 끝나는 ‘인스타그램 제의(사진 찍기-해시태그 입력-포스팅-좋아요 누르기-댓글 달기)’를 위한 연료로 휘발되고 있다. 시각적인 피로가 심화되면서 인스타그램적 공간에 대한 구토감이 생기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인스타그램적 공간이 유행하는 시대. 그다음은 무엇이 펼쳐질까? 이 질문에 답하자면, 인스타그램의 본질에 다가서 보아야 한다. 인스타그램의 핵심 요소는 사진을 기반으로 한 이미지다. 3차원 공간을 2차원 평면에 구겨 넣고 필터로 톤을 조절하며 현실에 존재하는 풍경을 비현실적 환상의 찰나로 구현하는 비주얼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플랫폼이 인스타그램이다. 인간의 기본 감각 중 시각을 지배하며 경험에 의거해 촉각(재료), 미각(음식)을 상기시키고, 동영상 서비스로 청각까지 아우른다. 공간이 지닌 특징 중 인스타그램에서 아직 자유로운 감각은 후각과 공간감 정도다. 일방향은 언제나 정점을 찍고 분화된다. 인스타그래머블한 공간의 대유행도 이러한 수순을 밟을 것이다. 지금의 일률적인 공간 문법에서 탈피하기 위해 창작자가 도입 가능한 건 결국 디지털로 포획할 수 없는 기체일 테다. 실제 방문자만이 느낄 수 있는 공기의 향은 시그너처 신트(Signature Scent)로, 공기의 온도는 사람의 기분을 물리적으로 좌우하는 분위기로, 공기의 흐름은 층고를 통한 개방감과 확장감의 조절로 귀결된다. 디지털카메라가 명확히 포착할 수 없는 빛의 세밀한 표현도 필수다. 인스타그램의 부흥에 가려 상대적으로 관심에서 멀어진 공간 건축의 가장 기본적인 기술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공간이 주목받게 될 것이다. 선형 시간의 특징을 염두에 둔 사용자 경험 디자인, 휴먼 스케일의 변형이 만드는 보편성과 이질성의 조절 등이 대표적인 예다. 탈-인스타그램적 노력은 SNS 시대의 공간에 요구되는 ‘새로운 기능성’을 염두에 두며 상호 보완할 필요가 있다. 현실감을 잃지 않는 영민한 공간 편집이 필요한 때다.

WORDS 전종현(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

갈라파고스 신드롬적 공간이라는 대안

서울의 수많은 공간이 이미지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아니 ‘좋아요’를 위해 힘쓰고 있다. 그 결과 서울의 거리에는 비슷한 공간, 비슷한 결, 비슷한 맛, 비슷한 이야기들만 진열되고 있다. 작은 상점들과 카페들은 토지 자본, 물질 자본과 관계없이 늘어나는 팔로어 수로 공간의 가치를 대변할 수 있게 되었다. 핵심은 부재 중이고 이미지에 급급한 생산성의 가치는 점점 떨어지고 있다.
상점들은 싸이월드가 왜 페이스북에 압사당했는지 되새김질해볼 필요가 있다. 결국 수명은 존재한다. 트위터는 정치 토론의 광장이 되었고, 페이스북은 수많은 연결 계정과 무분별한 미디어 발신으로 성가셔졌다. 그나마 특유의 감성을 유지해온 인스타그램 역시 반은 관종이고, 반은 광고판이 되어가고 있으니까.

오프라인 공간은 말 그대로 오프라인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정보망을 통해 수집된 이미지의 집착에서 벗어나 보다 근원적인 접근을 통해 변화해야 한다. 서교동의 앤트러사이트는 커피와 시음의 감각을 위하여 백색 소음을 지향한다. 카페에서 정말 필요한 것만 남겨놓음으로써 마치 갈라파고스에 온 것만 같은 기분이다. 결국 오프라인은 온라인과 달리 이미지 그 이상의 만족을 위한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카카오 프렌즈와 라인의 캐릭터들이 O2O 개념을 통해 오프라인으로 옮겨온 것도 이 때문이다. ‘갈라파고스 신드롬’이라는 용어가 있다. 2000년대 초반 일본이 휴대전화와 같은 전자기기를 비롯해 이메일 서비스, 3G 네트워크, 음원 다운로드, 전자결제 등을 선보이며 시대를 앞서갔지만, 다양한 기능의 전자제품들과 정보 기술들을 구축했음에도 내수 시장에 만족하고, 국제 표준을 소홀히 하며 세계시장과 거리가 멀어진 것이 마치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다윈이 발견했던 고유 동식물과 비슷하다는 의미에서 생긴 신조어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일본에 대한 평가는 우물 안 개구리나 독불장군에 비유되는 부정적인 단어로 형용되었으나 지금은 어떠한가? 과거에 아시아가 서양을 보고 배웠다지만 오늘날 미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과 애플을 비롯한 브랜드들은 이런 일본을 존중하고 반대로 배워나가고 있다. 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가 자서전에서 “갈라파고스에는 동물들이 온순하고, 식생이 거의 ‘화성처럼’ 기이하다”라고 언급한 것처럼 일본은 그들에겐 화성과도 같은 곳이다. 여기에 19개의 크고 작은 섬마다 나름의 생태에 맞게 서로 같지만 조금씩 다른 생물들이 존재하는 갈라파고스처럼 일본의 상점들과 브랜드들은 같은 장르일지라도 저마다 다른 개성들로 이루어졌다. 오리지널에서 변태된 오리지널이다. 여기에 세계적으로 형성된 스마트폰과 SNS를 비롯한 정보의 유동성과 재화 공급의 폭발로 이들이 가진 콘텐츠의 다양성이 더욱 활기차게 유통되고 있다. 다음은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가 ‘2050년을 위해 인류가 준비해야 될 것’이라는 글의 첫 명제다. “오직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만 유효하다. 항상 변화한다는 사실만 변하지 않을 뿐이다.”

WORDS 김한규(에이치콤마, 르시뜨피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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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이경진
WORDS 전종현(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 김한규(에이치콤마, 르시뜨피존 대표)

2019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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