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무리조의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세 번의 순간을 나열해야 한다. 먼저 2012년 뉴욕 인디펜던트 아트 페어. 영국왕립예술학교에 다니던 그는 이 페어에 독특한 회화 작품을 출품한다. 미국 플로리다의 호텔 사업가이자 루벨 패밀리 컬렉션으로 잘 알려진 거장 컬렉터 돈 루벨이 무리조의 작품을 곧장 구매하려 했지만, 이미 작품은 부스에 걸리기도 전에 팔린 상태. 돈 루벨은 당시 무리조에게서 장 미셸 바스키아의 에너지가 떠오른다고 했다. 이듬해인 2013년의 필립스 경매. 오스카 무리조의 그림은 40만1천 달러(약 4억5천만원)에 낙찰된다.
낙찰자는 배우 리어나르도 디캐프리오. 낙찰가는 예상가의 10배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마지막으로 2016년 3월. 비교적 짧은 시간에 기록적인 스타덤에 오른 이 예술가는 시드니행 비행기에 오른다. 시드니 비엔날레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콜롬비아 태생의, 영국 국적인 무리조는 그 비행기 안에서 자신의 영국 여권을 찢어 변기에 버린다. 진정한 자유에 대한 질문이자, 서구 시민으로서 세상을 넘나드는 특권을 가진 상황에 도전하는 행위였다. 그는 시드니에 이틀간 구금된 후 추방된다. 오스카 무리조는 단지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재료로 쓰며 탐구한다.
지난 6년간의 활동으로 전 세계 컬렉터들을 사로잡은 오스카 무리조의 개인전이 한국에서 열린다. 전시 제목은 ‘Catalyst’ 즉 ‘촉매’다. 촉매는 무리조의 작업을 물리적인 관점에서 표현하는 말이다. “나와 회화작의 관계는 단순히 작가와 작품 간의 관계가 아닙니다. 나의 회화는 내가 가진 모든 물리적인 에너지를 쏟아내고 표출한 결과물이죠. 앞으로도 드로잉을 통해 예술가로서의 나를 그리고자 합니다.” 전시 제목을 연작 이름이기도 한 ‘Catalyst’로 정한 이유도 그래서다. 무리조는 자신의 에너지를 포착하고 생명성을 드러내는 관점에서 이 전시를 표현한다.
“이 전시로 무형의, 무한한 평행선을 구축하고 싶었습니다. 나의 마크 메이킹(선, 패턴, 질감을 비롯한 흔적을 만드는 행위) 드로잉은 내 에너지를 담는 무한한 존재예요. 내 몸은 유한이며, 언젠가 사라지고 썩겠지만 말입니다.”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는 ‘Catalyst’ 연작은 그의 역동적인 마크 메이킹 드로잉으로 채워진 거대한 회화작이다. 어떤 존재가 지닌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수평성과 타자성 그리고 화해. 내가 지속적으로 탐구하는 주제입니다.” 이민자라는 태생, 미술계의 적극적인 조명 아래 전 세계를 유랑하며 활동하는 작가라는 정체성, 소셜 미디어를 통해 사회 정치적 분쟁이 순환되어 무감각해지는 상태를 경험하는 세대라는 배경은 곧 그의 작품 세계와 이어진다. “과거에는 글로벌 남쪽이라는 표현이 있었습니다. 서방 세계의 역사에서 사용했죠. 적도라는 수평선을 기준으로 세계가 북과 남으로 갈렸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이 수평선은 더 이상 정치·문화적인 의미를 지니지 않아요. 나는 문화적인 정체성에 귀결되거나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가고 싶은 곳으로 이동하고 싶습니다. 수평성에 관한 탐구는 이런 나의 소망을 이룰 수 있는 수단이에요.”
무리조는 작품의 제작 장소를 스튜디오로 국한하지 않는다.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접한 환경에서 수집한 파편들을 모으며 작업을 이어간다. 지역을 초월하여 이동하면서 세계에 포진한 다양성을 물리적인 요소와 상관없이 연결할 수 있을지 탐구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열리는 그의 첫 개인전 <Catalyst>는 그 결과물이다. 전시는 2019년 1월 6일까지. 국제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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