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멋있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시대의 별들이 있다. <아레나>가 마련한 12월 5일의 2018 에이어워즈에서도 그 별은 빛났다. 카리스마 부문 수상자로 나선 송승헌이 그 주인공이다. 그에게 주어진 참석자들의 우아한 눈빛을 바라보며, ‘역시 송승헌’이란 감흥이 절로 일었다. 1천여 명에 가까운 에이어워즈 참석자들 속의 송승헌을 눈망울에 깊이 각인한 지 닷새 후, 나는 시대의 별 중 하나인 송승헌과 만나기 위해 삼성동 소재 호텔 스위트룸으로 향하는 승강기에 탑승했다. 29층에서 멈춘 엘리베이터에서 곧장 그가 있는 2950호로 향했다. 이미 촬영이 한창이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와 엠포리오 아르마니 의상을 휘감은 그를 보며 다시 한번 속으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역시 송승헌’!
에디터가 근래 그를 만난 때는 <인간중독> 개봉 직전이었다. 2014년 봄이었으니, 이후로 벌써 4년 이상이 훌쩍 지나간 셈이다. 당시 카메라 앞에 있던 송승헌이 환골탈태를 눈앞에 두고 나비에 대한 꿈을 꾸던 모습이었다면, 지금 카메라 앞의 그는 이미 나비가 된, 날갯짓 속에 여유를 잔뜩 품은 진짜 배우의 모습이었다.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한 드라마 <플레이어>는 나쁜 놈들에게 사기치는 일당의 이야기를 다룬 범죄물이다. 그 속에서 송승헌은 ‘강하리’라는 인물을 연기했다. 신선했다. 그냥 겉멋 가득한 송승헌이 아닌 좌충우돌, 오두방정을 떨면서도 아픔 있는 내면을 꽤나 잘 표현해냈기 때문이다. 아니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그렇다고 한다. 2018년의 송승헌에게 <플레이어>는 상당히 의미 있는 작품이 되었다.
“내내 즐겁게 촬영한 작품입니다. 내게서 그간 보지 못했던 모습을 찾았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해주신 분이 많았어요.” 그랬을 법도 하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송승헌은 여전히 1세대 한류 주역이었던 작품 <가을동화> 속 그였고, <여름향기> 중 그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틀에 박힌, 정형화된 모습으로서의 이미지가 컸던 것 같아요. 대본의 힘도 컸고, 아주 오랫동안 알고 지낸 고재현 감독님과 호흡도 좋았던 덕이죠. 막 해보자고 했어요. 꾸미지도 말고, 친구들과 있을 때의 장난스러운 송승헌을 표현해보라고 하셨죠. 그래서 강하리가 됐어요.” 맞는 말이다. 사실 송승헌의 이런 변화는 김대우 감독의 영화 <인간중독> 즈음부터 감지되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줄곧 ‘잘나가던’ 송승헌이 왜 이런 변화를 시도했고, 노력했을지 궁금했다.
“사실 20~30대 시절은 저 스스로도 재미가 없었어요. 아시다시피 저는 배우의 꿈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거든요. 갑자기 데뷔하고, 환호를 받은 거죠. 자고 일어났더니 다른 세상에 있는 느낌이었어요. 그렇게 20대를 보냈고, 30대도 마찬가지였어요. 솔직히 연기라는 게 재미가 없었거든요. 준비도 안 된 상태였고, 남들은 스타라고 하는데 현장에서는 연기 못한다고 욕먹고. 촬영날 아침에 눈을 뜨면 스튜디오에 불이라도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니까요.” 그냥 그렇게 스타로서의 시간을 보냈고, 그냥 연기는 의식주를 해결해주는 돈 버는 수단 정도였다고 했다. 하지만 한 통의 팬레터가 계기가 되었다.
“서른넷, 다섯쯤 됐을 때인 것 같아요. 팬레터 하나를 읽는데 창피한 거예요.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 직업을 가진 당신 스스로에게 감사하며 사세요’라는 글이 적혀 있었어요. 곱씹어보니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어야 했던 거예요. 일하며 감동을 주는 것. 아무나 할 수 없잖아요. 할 거면 제대로 하고, 아니면 관둬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 포인트가 <인간중독>의 송승헌을 만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던 같다. 아마 서른아홉의 송승헌을 에디터가 만난 것도 이 작품 때문이었으니까. 당시 인터뷰 중 가장 각인되었던 그의 답변은 “스타 송승헌이 아닌 배우 송승헌이 되고 싶어요”라는 것이었다.
이후 그는 다양한 변화를 꾀했다. ‘숯 검댕이’ 눈썹을 가진 미남 스타가 아닌, 배우 송승헌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말이다. “여전히 부족하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인간중독>도 선택했고, <대장 김창수>에서는 악역도 마다하지 않았죠. 드라마 <블랙>을 통해서는 귀신도 되어보았고요. 하하.” 그는 “내가 너무 다양한 걸 해보지 않았더군요.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목숨 바치는 순애보적인 멜로가 주종이었어요. 창피하지만 최근 2~3년 사이에 장르물을 하면서 너무 재미있는 거에요. 그 덕에 연기자로서 욕심도 더 생겼죠. 부끄럽게도 지금이라도 제대로 해보고자 하는 욕심이 생겼다고 할까요?”라고 쑥스러운 듯 속내를 토로한다.
서른아홉에 만난 송승헌은 이제 불혹을 훌쩍 넘긴 중년이 되었다. 물론 그의 외모는 과거와 다를 바 없이 여전히 빛나지만 생물학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다. 지금의 나이는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마흔이 딱 되었을 때는 적잖이 충격이었어요. 그런데 한 몇 년 지나니 그마저 덤덤해지네요. 하지만 분명 달라진 건 있어요. 어린 시절의 저는 모든 게 일일 뿐이었고, 또 재미가 없으니 예민하고 날카로웠어요. 조금만 예정되지 않은 일이 닥치면 굉장히 날 선 채 대응했거든요. 싸가지 없다는 오해도 많이 받았죠. 지금 같으면 그냥 웃고 넘겨도 될 상황이거든요. 여유를 가지고, 배우로서 욕심을 좀 내다 보니 연기가 재미있어졌어요. 이게 마흔이 넘어서며 체득한 다행스러운 점이 아닐까 싶어요.”
한류의 별로 엄청나게 잘나가던 시절보다 지금의 자신이 더 좋냐고 물었다. “맞아요. 그때는 배우로서, 인간으로서 그렇게 즐겁지 않았어요. 힘을 빼고 연기하라는 선배들의 조언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지금이 훨씬 행복합니다”라 답한다. 이리 말하는 그의 입가에는 엷은 미소가 번져 있었다. 지금의 자신을 진짜 행복하다고 믿는 미소 말이다. 그와 대화를 나눈 후로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룸에는 에디터와 송승헌만이 남아 있었다. 인터뷰를 끝내고 그와 함께 지하 주차장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가정을 꾸리고 싶지 않냐고 넌지시 말을 건넸다.
어떤 의도가 내포된 질문은 결코 아니었다. 웃으며 말하길 “제가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지금까지도 즐겁게 잘 지내요. 이 녀석들은 전부 다 아빠고, 가장이 됐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 저도 그래야겠다는 생각이 들긴 해요. 뭐 다 때가 되면 하겠죠?”란다. 대체 송승헌을 닮은 아기는 어떤 외모로 세상에 나올지 궁금해 죽겠다. 각설하고, 그를 보내야만 했다. 연말에는 푹 쉴 거라고 했다. 2019년 초에는 막 끝낸 드라마가 새로운 시즌을 시작할 수도, 또 다른 작품으로 그를 만날 수도 있을 거다. 물론 그때는 지금보다 더 진화한 ‘배우’ 송승헌의 모습일 테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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