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y 김보하 Editor 이지영
인생 자체를 아주 빠른 속도로 달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쏜살 같은 속도로 인생을 사는 사람은 보여줄 것이 많고, 그런 만큼 화려하다. 반대로 느릿느릿 인생을 밟아 가는 사람에게는 그다지 화려한 포트폴리오가 없다. 그들은 그저 살아가는 과정 자체를 한 편의 모노드라마로 가꿀 뿐이다. 배우 정진영은 완벽한 후자다. 연극배우로 활동하다 서른이 넘어서야 영화 <초록 물고기>의 연출부에 들어갔지만 특별히 감독이 되겠다는 야심은 없었다. <약속>의 엄기탁 역으로 알려지게 된 건 그의 나이 서른다섯의 일이다.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 영화배우가 되었을 뿐, 배우로서 남다른 꿈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리고 이제 그의 나이 사십대 중반. 정진영은 <왕의 남자>로 온 세상이 얼굴을 알아보는 국민 배우가 되었지만, 여전히 서두를 생각이 추호도 없다. 이 남자, 느려도 너무 느리다.
인생 자체는 엄청나게 느린 그가, 약속 장소에는 한참이나 일찍 나와 있었다. “술 냄새 나지 않나요?” 정진영은 밤샘 촬영 후 아침까지 술 한잔 걸쳤노라 말했다. 술 좋아한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다고 했더니, 사람 좋은 그가 허허 하고 웃는다. “인생이라는 게 참 이상해요. 돌이켜보면 어떤 플롯이 있겠지만, 그게 지금의 나니까 설명이 가능한 부분이라는 거죠.” 정진영은 인터뷰 내내 ‘이상하다’는 표현을 자주 썼다. 국민 배우가 되겠다는 야심 따윈 없었는데, 어찌하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고 그 과정 자체가 우연 같다고 했다.
하지만 운명은 본인이 만들어가는 거라는 그의 말대로, 정진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튼튼한 사람이었다. 시나리오 공부를 열심히 하기로 소문이 자자하다는 것, 영화 한 편 촬영에 들어가면 그 안에 처박혀 나올 생각조차 않는다는 얘기들은 모두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글쎄요, 얼마나 남았을까요?” 배우로서 한창인 지금, 어느 정도 온 것 같냐는 질문에, 오히려 그가 되물었다. “절반은 더 남은 것 같은데요.” 에디터 역시 빠른 보폭으로 걷는 사람은 아닌지라, 배우로서 그의 삶이 아직 한참이나 더 남은 것 같다고 대답했다. 성실은 타고난 능력을 따라잡는다. 정진영은 광대의 피를 타고난 사람은 아니지만 앞으로도 엄청난 내공을 보여줄 것임에 틀림없다. 장거리 레이스 경기는 그처럼 성실한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종목이다. 그러니 정진영은 지금보다 빠른 걸음으로 걸을 필요가 없다.
그저 지금의 보폭만으로 충분하다.
<날아라 허동구> 얘기부터 하자. 그간 <달마야 놀자>, <황산벌>, <왕의 남자> 등 늘 평범치 않은 역할을 맡았는데 이번엔 의외다. 아버지 역할, 그리고 한없이 따뜻한 영화를 골랐다.
얼레벌레 영화한 지 10년이 됐는데 이런 영화에 출연할 기회가 없었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는 출연하려고 본 건 아니었고 그냥 이러이러한 이야기가 있구나 하는 정도였다. 그리고 사실 원래 시나리오는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의 이야기였다. 제작사 대표와 워낙 친한 사이다보니까 “어머니 얘기는 그간 있었지 않았나? 아빠라면 이야기가 괜찮을 것 같은데” 했더니, “아버지로 바꾸면 할 거요?” 해서 하게 됐다.(웃음)
영화를 찍으면서 부정(父情)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을 것 같다.
영화 안에서만 보자면 일단 어머니가 없는 상황이라, 나는 모성까지 함께 지녀야 하는 캐릭터였다. 게다가 아들인 동구 자체가 발달 장애라는 조금은 특수한 상황이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 마냥 밝은 인물로 연기하지는 않겠다는 결론을 냈다. 아마, 그러지는 않을 것 같다. 오히려 어렵고 힘든 것들을 고스란히 느끼고 보여주는 것이 더 현실에 가까운 것 아니겠나. 그리고 또 하나. 나는 이 영화를 찍으면서 어쩌면 자식이라는 존재가 나를 보호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아버지라는 사람 자체가 세상을 그리 명민하게만 살아가는 인물은 아니다. 이미 자기 혼자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것. 돌봐야 할 누군가가 있다는 것에 커다란 의미를 두면서 살아가는 게 우리네 아버지다.
실제로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이 있다. 배우가 아닌, 아버지 정진영으로 가장 힘든 건 무엇인가?
사실 우리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은 좋은 아빠는 못 된다. 집에 제대로 못 들어가니, 불규칙적이다. 때문에 육아의 많은 부분을 아내에게 맡기고 산다. 촬영 기간 중의 부재에 대해서는 이제 집에서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대신 시간이 나는 대로 놀아주려고 한다. 또 그게 필요한 거고. 아내하고 역할 분담을 했다. ‘엄모자부’ 하기로. 엄마가 엄하고, 아빠가 계속 풀어주는 거다.(웃음)
아빠가 되기 전과 후의 달라진 것들이 분명히 있을 것 같다.
아무래도 결혼 전에는 나 혼자 살면 되니까 돈 없이도 잘 살았다. 그런데 결혼하고 아기를 낳으면서 정신이 바짝 들더라. 어떻게든 내가 세상에서 지켜줘야 하는 존재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던 것 같다. 영화배우를 한 것도 그런 이유가 있었다.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는 절실한 필요 때문이었다. 우리 식구들의 생존이 지금 내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에 큰 이유가 되는 거다. 그러나 그것이 버겁다거나 귀찮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어떤 사람에게든 이유가 있는 것은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그들이 큰 이유가 된다.
연극을 했기 때문에, 계속 영화배우로 남을까 하는 의구심이 자꾸 든다. ‘내가 영화 배우구나’라고 느낀 건 언제쯤이었나.
한참 동안을 ‘이 작품이 나의 마지막 작품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게 어떤 절실함일 수도 있고, 최선을 다하자는 일종의 강박일 수도 있는데 <왕의 남자> 끝나고, <날아라 허동구>도 그렇고 그런 강박이 사라지는 것 같다. 이제는 마지막 작품이라는 생각보다는, 이게 나의 첫 작품이라는 생각을 한다.
영화배우라는 일 자체가 바람처럼 흘러들어왔다.
내가 영화배우로 산다, 살 것이다 하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원래 나는 연극을 했고, 영화 연출부를 하다 간간히 비상업 영화지만 단편 영화나 상업 영화의 단역을 했다. 하지만 그건 모두 내가 영화배우가 되어야겠다는 의지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저 내가 그 당시에 할 수 있는 일 중에 하나였던 것 같다. 운이 좋았고 잘 풀린 것 같다.
그건 일종의 운명이었을까.
세상일이라는 게 참 묘하다. 인생에는 여러 플롯이 있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사는 게 아니라 과거 때문에 현재를 살고, 현재 때문에 또 미래를 살게 되는 것 같다. 돌이켜보면 영화배우가 된 것이 그럴 듯하게도 보인다. 연극도 하고, 이것저것 연출부도 했으니까. 하지만 맨 처음 20대 초반 때를 떠올려보면, 지금이 되려고 했던 건 아닌 것 같다. 나는 그런 목표, 목적의식을 두지 않고 산다. 그저 산만큼 살게 되는 것 같다. 지난날 산만큼 오늘 살고, 오늘 산만큼 내일 살고 그렇게 되는 것 같다. 다만, 배우라는 직업을 갖게 된 것은 무척 힘들지만 멋진 일이라는 생각은 한다. 도전이다. 잘하고 싶은.
무엇이 그리 멋진가? 영화배우라는 직업, 어떤 의미를 두면서 일하고 있나.
의미? 그런 건 없다. 나는 사람들이 자기 일에 굳이 의미를 둬야 하는지 모르겠다. 의미는 어느 곳에든 다 있을 수도 있고 아무 데도 없을 수도 있다. 의미부터 찾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아무 데도 의미가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의미를 두면 안 된다. 거기서 출발하면 안 된다. 배우는 사적인 인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배우가 하는 영화 행위가 사회적인 의미망 속에 들어가 있는 거지만. 그런 의미 때문에 어떤 일을 한다는 것이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을 한다.
요즘도 매니저나 코디 없이 지내나. 훨씬 더 자유로울 것 같기도 하고, “웬만하면 매니저 둬라”는 얘기를 들을 법하기도 하다.
편하다. 일단 일이 그렇게 많지도 않고.(웃음) 영화 하나 찍는 데 뭐가 그리 복잡하겠나. 이렇게 홍보하고 그럴 때 조금 복잡할 뿐,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는다.
온 세상이 얼굴을 다 알아보는 배우가 됐다. 그것도 꽤나 늦은 나이에. 음지에서 양지로 나와보니, 어떤가. 딱딱한 의자에 앉은 것처럼 불편한가, 아니면 엘리베이터를 탄 것처럼 편안한가.
편안하다. 사람들이 나를 알아봐서 느끼는 불편은 당연히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다. 안 그럼 안 해야지. 하면서 어떻게 좋은 것만 빼먹나? 이 세상에 그런 일은 없다. 뭐가 있으면 반대급부가 있는 거지. 그런 걸 바랄 만큼 내가 어린 철부지는 아니고. 40대 중반인데. 뭐 그냥 살아가는 거다.
서른다섯이라는 나이에 영화배우가 됐다는 걸 알고 당신에게 무언의 동질감을 느낀 적이 있다. 나는 당신처럼 천천히 살아가는 사람이 좋다. 조바심 없는.
세상에 조바심 내서 될 일 하나도 없다. 그렇게 살면 안 된다. 자기를 바라보면서 세상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을 바라보면서 살면 인생이 무척 괴로워진다. 특히 남과 나를 비교하면 참 괴롭다. 자기를 바라보고 살아야지. 어떤 일이든지. 사람들이 누가 억지로 밀고 떠밀고 이리로 가라 해서 가는 것처럼 느끼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다. 떠밀어도 안 가는 사람이 있고 떠밀려 가는 사람이 있고 결국은 모든 게 다 자기 선택이다. 그게 자기 운명이고. 결국 자기 성격이 무엇을 선택하게 만들고 그것이 자기의 운명이 된다. 즉 자기 운명은 자기로 인해 생긴 거다. 그러면 누구랑 비교할 필요가 없다. 내가 선택한 건데, 이 길인데 하는 거다.
연기가, 쉽지 않다고 느낀 적이 있나.
만날 생각한다. 밤낮으로. 연기 좀 할 만하다? 그런 날이 올 것 같지 않다. 연기는 매번 어렵다.
연극을 한 사람에게서는 회귀 본능이 느껴진다. 연극판은 시장인데, 영화판은 백화점 같다고 느끼는 이도 여럿 봤다.
다시 연극하고 싶다는 생각, 안 하나?
거의 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하겠지만 지금은 모르겠다. 연극과 영화의 차이는 어차피 매체의 차이니까 연극이 상업적일 수는 없다. 상업적인 게 싫다면 저예산 영화, 인권 영화 그런 거 하면 된다.
꽤 오랜 시간 조연 배우로 이름을 올리다 어느 순간 주연 배우가 되었다. 주연 배우라는 크레딧, 당신에게 어떤 느낌을 주나.
그 뭐, 잘 모르겠다. 어떤 때는 인터뷰하면 “이번 영화로 첫 주연이시죠?”라고 묻는다. 그게 뭐 의미 있는 형용은 아닌 것 같고, 배우는 배우인 거지 뭐. 다른 게 있겠나.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나.
다 똑같다. 영화는 일종의 여행이다. 촬영 기간 내내 여행이다. 나는 늘 똑같은 역할을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매번 여행이 다르다. 여행은 나름대로 사연이 있다. 그러니까 어느 여행은 가지 말았어야 했다는 그런 생각은 없는 거다. 갔으니까, 그것도 내 인생 아니겠나. 한 작품을 한다는 건 다시는 못 갈 여행을 하는 건데 그런 여행을 했다는 게 참 좋다. 그리고 뭐 인생이라는 게 계획한 대로 그렇게 안 살아지더라. 아쉬운 작품이 있을 수는 있지만 어쨌든 다 내 손가락이다. 짧든 길든, 상처가 있든 없든 간에 경중이 따로 있지는 않다. 그리고 한 작품에 들어가면 전 작품에 대한 기억은 모두 잊는다. 이건 마치 야멸친 연애 같은 건데 지나간 작품은 옛 사랑일 수밖에 없다. 항상 기억에 남는 건 바로 전 작품일 뿐, 지나간 여행은 여행기만 남는다.
당신은 인생의 속도로 치자면 빠른 템포로 걷는 사람은 아니다.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배우가 되었고, 어느덧 사십대 중반이다. 배우로서, 지금 어느 정도의 위치에 왔다고 생각하나.
글쎄…. 그저 ‘어?’ 하다 어느덧 10년째 영화 일을 하지만 언제까지 할지는 모르겠다. 이건 뭐 내 의지로 되는 일은 아닌 거니까. 다만 좋은 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한다. 오래도록 남는 영화를 하고 싶다. 사회적인 의미까지는 아니고, 영화적 의미가 있는 영화를 하고 싶다.
워낙 인생이 남달라서, 학교 다닐 때 친구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일 것 같다. 지금 당신 나이의 친구들은 뭐 하면서 사나.
평범하게 잘 산다. 회사를 다니든, 선생님을 하든 다 잘 산다. 나도 평범한 거다. 다른 거 없다. 평범한 배우인 거다. 평범한 배우, 평범한 회사원, 평범한 선생님. 우린 다 평범하다.
‘저 길을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하지 않을 것 같다.
안 한다. 안 간 길은 갈 수 없는 길인 거다. 갈 수 있는데 안 간 게 아니라 갈 수 없으니까 안 간 거다. 무엇이든, 자기가 선택해서 여기까지 온 거다. 누구나 다.
<그것이 알고 싶다>를 3년 9개월 진행했다. 시작하는 것만큼이나 그만두는 일 역시 쉽지 않았을 텐데.
얼결에 하게 됐는데 하다보니 오래 했다. 배우로서 그 프로를 진행하게 된 건데 어느 순간 배우로서의 나보다 진행자로서의 내가 더 커지는 것 같아 그만뒀다. 또 하나 겁났던 거는, 그 일을 하다보면 시간이 참 잘 간다.(웃음) 다른 거 안 하고 일주일에 그것만 해도 시간이 간다. 매주 개런티도 나오고.(웃음) 그렇게 안정되다보니, 겁이 나기 시작하더라. 40대 중반이 많은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거기서 인생이 규정되어버리면 재미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바뀌어야 할 것 아닌가. 더 개발하고, 변화하고, 도전해야 할 것 같은데 따뜻해서 그걸로 관에 들어갈 것 같은 두려움이 들더라. 내가 그 프로를 할 수 있었던 건 아마 살아온 경험들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바닥이 났다. 에너지는 소진되는 거니까.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를 사는데 다 소진되면 새로운 과거를 또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바닥난 거 계속 우려먹고 살면 재미없다.(웃음)
조금 고루한 말이지만, 서울대 출신 배우라는 선입견이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 것 같다. 그것이 좋은 방향이든, 아니든 간에.
서울대 출신? 그건 재미없는 말이다. 하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선입견은 내가 들인 게 아니니까. 그걸 내가 일일이 해명할 수 없다. 나는 공식 프로필이나 홈페이지 그런 게 없다. 그래서 나에 대한 잘못된 정보도 나돌지만, 그걸 어떻게 하겠나. 나는 프로필로 먹고사는 사람이 아니고 작품에 참여하는 일로 먹고사는 사람이니 신경 쓰지 않는다.
연출부 시절을 경험했기 때문에, 감독이 되겠다는 욕심이 있을 것 같은데. 이것 역시 선입견인가.
연출? 능력이 안 돼서 못한다.(웃음) 그저 나는 연출부 생활을 했을 뿐이다. 계속 배우로 나이 들어가고 싶지만, 그 역시 모르는 일이고. 글쎄, 배우 일이 지겹다거나 그만두겠다거나 하는 생각은 현재로서는 없고 다만 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한다.
어떻게 나이 들어가고 싶나.
배우는 나이 먹으면 안 된다.(웃음) 자연인으로서는 나이 먹으면서 좀 넓어지고 싶은데 배우라는 직업이 자학적인 부분이 꽤 있다. 연기라는 게 어느 하나의 감정을 꼭 끄집어내서 극대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신 건강에 별로 안 좋은 직업이다. 배우들이 예민하거나 별나거나 하는 게 나는 이해가 된다. 나이 들면서 넓은 인간이 되어야겠다는 자연인으로서의 과제와, 그와는 상반되게 ‘모’를 내야만 하는 배우라는 직업과 잘 조화시켜야 할 텐데. 아무래도 더 늙어봐야 알 것 같다.(웃음)
언제나 스크린 쿼터 반대 시위에 앞장선다. 얼마 전 한미 FTA 협상이 타결됐다. 결과가 뻔히 보이는 게임에도 승부수를 던지나.
물론이다. 그것 역시 결과로 가는 과정 중 하나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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