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ther’s Ruin’, 번역하자면 ‘모성의 파멸’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나? 진의 또 다른 이름이다. 알고 보면 진은 런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1689년, 네덜란드의 지지를 받아 왕위에 오른 윌리엄 3세는 그 답례로 프랑스산 와인과 브랜디에 높은 세금을 부과하는 식으로 네덜란드 특산품인 진을 영국 내에 널리 보급했다. 저렴한 가격과 높은 도수 덕에 영국 전체가 진에 중독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시 풍경을 묘사한 화가 윌리엄 호가스의 ‘Gin Lane’을 보면 진을 사기 위해 아이를 방치한 어머니와 가족을 버리는 아버지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이런 사회 문제 때문에 각종 오명을 얻고 국민 술의 자리를 맥주에게 내어줬던 진이 다시금 뜨겁다. 과거로 회귀하고자 하는 힙스터들의 경향에 힘입어 멋들어진 올드 스쿨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지금 런더너들 사이에서 진의 수식어는 ‘Mother’s Ruin’이 아니라 ‘패셔너블’일 정도다. 여느 펍이나 바를 찾아도 맥주의 수만큼 다양한 진을 구비하고 있는 풍경을 목격할 수 있지만, 진짜 힙스터들의 진은 뻔한 헨드릭스나 봄베이 종류가 아니다. 바로 소규모 증류소에서 생산한 크래프트 진이다.
2013년만 해도 1백52개였던 런던의 증류소가 올해 3백15개로 늘어났는데 이런 자료보다도 실제 런던의 바를 돌아다녀보면 저절로 그 인기를 실감하게 된다. 사우스뱅크에서 만든 ‘사우스뱅크 런던 드라이 진’, 해크니 다운 지역의 ‘피프티 에이트’, 캠던의 ‘하프 히치 진’ 등 런던 곳곳에 지역 특색을 살린 크래프트 진들이 가득하고, 또 그 지역 바에서 진토닉을 주문하면 특별히 지목하지 않는 이상 자연스럽게 로컬 크래프트 진을 준다. 이런 크래프트 진 바뿐 아니라 증류소와 바를 돌아다니며 진 테이스팅을 테마로 하는 투어 프로그램도 넘쳐난다.
그중 하나인 ‘진 저니(www.ginjourney.com)’의 운영자이자 ‘진 보스’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한 바텐더 레온 댈러웨이는 이렇게 말했다. “예전처럼 진은 더 이상 값싸고 독한 술이 아니에요.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진인 ‘십스미스’ ‘마틴 밀러’ 같은 프리미엄 크래프트 진과 함께 팝업 스토어나 푸드 페어링 이벤트가 런던 곳곳에서 열리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어요.” 런던의 진 사랑은 단순히 음미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세계 최초로 진을 테마로 오픈한 호텔 ‘디스틸러리(The Distillery)’에 있는 소규모 증류소 ‘진스티튜트(Ginstitute)’에서 나만의 진을 제작하는 일 또한 가능하다. 매력적인 진을 만드는 데 실패했다면 무려 진을 1백여 가지 갖춘 바에서 칵테일을 즐겨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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