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을 정해인처럼만 보냈으면 참 좋았겠다 싶다. 깎아놓은 밤톨처럼 단정한 미남 배우의 비상은 놀라웠다. 올 한 해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가 불러온 엄청난 현상은 정해인이라는 배우의 가치를 드높였다. ‘자고 일어나 보니 스타가 된 기분’이었을 것 같지만 사실 그는 준비된 배우였다. 아주 작은 역할부터 차근차근 시작한, 요즘 보기 드문 ‘연기의 정석’ 코스를 밟았다. 서두르지도 않았다. 무르익고 터뜨릴 수 있을 때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했다. 킴 존스가 디올의 첫 컬렉션을 선보이던 날, 정해인은 프런트 로에 앉아 쇼를 지켜봤다. 컬렉션이 끝나자마자 그 옷들을 가장 먼저 입는 행운도 그의 차지였다. 해가 바뀌기 직전, 정해인을 만나 2018년을 돌아봤다.
이번에 디올과 함께 파리에서 보낸 시간들은 어떻게 기억되나? 당시 서울은 엄청 더운 여름이었는데, 파리의 분위기는 또 달랐을 거 같다.
나에게는 파리 방문도, 컬렉션 참석도 처음이라 설레었다. 짧은 일정이라 아쉬웠지만 날씨도 정말 멋졌고, 모든 것이 새롭고 좋았다. 화보 촬영도 재미있었는데 특히 좋은 사람들과 함께해 더욱 값진 경험이었다.
직접 바뀐 디올을 만나게 됐을 텐데, 어떻던가?
킴 존스의 디올 첫 컬렉션은 브랜드 특유의 강인함과 부드러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옷뿐만 아니라 생화로 뒤덮인 거대한 카우스의 작품, 커다란 원형 런웨이 등 모든 것이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인상 깊고 즐거웠다. 킴 존스의 첫 컬렉션을 실제로 본 것만으로도 좋았는데 쇼가 끝나고 난 뒤 맨 처음으로 그 옷들을 직접 입어볼 수 있었던 것도 뜻깊었다.
2018년은 정해인이라는 배우에게 엄청난 의미가 있었을 것 같다. 올해를 딱 한 단어로 정의한다면?
‘집중.’ 2018년은 매일매일 바쁜 하루였다. 그 하루를 값지고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서 가장 필요했던 게 집중이었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를 통해 ‘연하남 신드롬’을 일으킨 주인공이 됐다. 드라마 방영 이후 엄청난 주목과 인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
많은 분들이 재밌게 봐주셨기 때문에 드라마가 주목과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또 작품을 재미있게 만들어주신 감독님과 작가님, 함께 연기한 배우 분들께도 감사드린다. 뻔한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나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극 중 ‘서준희’는 세상에 없을 것 같지만 있다고 믿고 싶어지는 단단한 사랑을 보여준 인물이었다. 드라마를 마치고 난 뒤 ‘이런 사랑이 정말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던가?
연기하는 내내 ‘서준희의 사랑’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지금 얘기한 ‘단단한 사랑’이란 표현이 정말 잘 어울린다. 나도 처음에는 ‘이런 사랑이 있을까?’ 싶었는데, 서준희의 감정을 연기하다 보니 현실에서 충분히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언뜻 드라마 한 편으로 스타덤에 오른 것 같지만, 사실 꽤 긴 시간 다양한 작품에서 다채로운 역할을 맡아 연기해왔다. 말 그대로 ‘차근차근’ 성장했다. 눈에 띄는 역할로 금방 주목받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마치 수련하듯 짧지 않은 시간을 차근차근 연기해온 이유를 물어봐도 되나?
사실 한 번도 주목받으려고 연기한 적은 없었다. 서두르지 않고 연기할 수 있었던 이유가 딱히 있는 건 아니다. 다만 나는 쉬지 않고 연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어떤 작품이든 묵묵하고 차분하게 연기를 해왔고, 앞으로도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다.
주말 가족 드라마, 사극, 독립 영화까지 여러 분야를 섭렵하면서 그만큼 주저 없이 다양한 역할도 맡았다. 어느 인터뷰에서 ‘스스로 두려워하고 어려워하고 못하는 것들이 뭔지 알고 싶어서 더 다양한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했는데, 지금 이 시점에서 그 답을 찾은 것 같나?
‘답은 없다’는 답을 찾았다.(웃음) 여러 작품을 하면서도 느꼈지만 지금까지 맡은 배역 중에서 쉬운 연기는 한 번도 없었다. 매 순간이 두려웠고, 도전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한 작품, 한 작품 끝날 때마다 뿌듯했다.
연기를 진짜 좋아하는 것 같다. 우연히 길거리 캐스팅이 되면서 연기 전공으로 대학을 진학했다고 들었는데, 연기를 업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한 때는 언제였나?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여기까지 온 건가?
수능이 끝나고 길거리 캐스팅되면서 대학 진학 때 연기 전공을 선택하고, 시작한 건 맞다. 그런데 그렇게 물 흐르듯이 연기에 몰두하게 된 것은 아니다. 군대에서 연기를 끝까지 한 번 해보자고 다짐했고, 연기를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직업 의식이 생겼다. 결국 연기를 더 좋아하게 됐지.
많은 사람들이 정해인을 바르고, 겸손하고, 진중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우리가 맞게 보고 있는 건가?
방금 이야기한 표현들이 대체로 맞다. 진지하고 신중한 편인데, 말하고 보니까 누군가에게는 재미없는 사람일 수도 있을 것 같네.(웃음)
반면, 정말 친해져야만 알 수 있는 정해인의 모습도 있나?
낯을 조금 가려서 그렇지 나도 친해지면 장난도 많이 치고 개구진 모습이 있다. 편한 사람들과 있으면 많이 웃는다.
차기작인 영화 <유열의 음악 앨범>도 굉장히 궁금하더라.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노래처럼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이 오랜 시간 엇갈리고 마주하길 반복하며 서로의 주파수를 맞추어 나가는 과정을 그린 감성 멜로 영화’라는 것 외에 알려진 바가 거의 없어서 더 그렇다. 어떤 인물을 연기하나?
아직 알려진 바가 많이 없어서 언급하기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 12월까지 촬영이라 요즘 집중해서 찍고 있는데, 우리 영화만의 서정적인 분위기와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것 정도만 말씀드리겠다. 촬영하면 할수록 또 한 번 어려운 도전임을 깨닫고 있다.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한다고? 요즘 정해인의 플레이리스트는 무엇으로 채웠나?
드라마 촬영 당시에는 OST를 많이 들었다. 작품에 더 몰입할 수도 있고 그래서. 요즘은 재즈를 많이 듣고 있다. 연말에는 캐럴이 다시 듣고 싶어질 것 같은데, 너무 뻔한가?(웃음)
2018년 마지막 날, 정해인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스케줄이 없다면 집에서 가족과 새해 카운트다운을 할 것 같다.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뻔한 질문으로 마무리해보겠다. 2019년에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물론 내년에도 계속 바쁘겠지만.
여행을 좋아하는 편인데 드라마, 영화 촬영 등으로 통 여행을 못 갔다. 2019년에는 여행을 떠나서 푹 쉬고 싶다. 아직은 어디로 갈지 정하지는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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