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화의 문구류 시리즈 ‘Basalt; Stationery Series’
만지지 마시오. 작가의 작품에 으레 붙는 당연한 으름장이 서정화의 일물에는 무의미하다. 오히려 그는 촉각적 욕구를 자극하는 사물을 궁리한다. 이 문구류 시리즈는 서정화가 디자인하고, 제주도의 현무암 조각을 현지 석공 장인들이 가공하여 제작한다. 오름, 주상절리, 정낭 형태를 응용한 이 일물을 쓰다듬으면 표면은 거칠거칠한데 왠지 모를 온기가 느껴진다. 현무암이 이런 돌이었나? 서정화가 만든 사물을 살피는 일은 물질 자체가 주는 강렬한 충격과 마주하는 일이다. 누구나 잘 알지만, 그런 식으로는 사용하지 않았던 소재들을 발견하게 된다. 지구상의 모든 물성에 대한 존중이, 형태와 맞물려 빛난다.
이광호의 옷걸이 ‘The Moment of Eclipse Series – Hook’
전선, 고무 호스, 지푸라기부터 적동, 돌, 옻칠까지 이광호가 탐구하는 소재는 종잡을 수 없다. 또한 이광호의 손을 거치면 비범하고 모호한 일물이 된다. 그렇게 예술과 일상의 경계에 턱 하니 놓여 익숙하고도 낯설게 읽힌다. 이 차갑고 단단한 것은 옷걸이다. 이광호가 2014년부터 만들어온 ‘모먼트 오브 이클립스 시리즈’의 연작이다. 검붉은빛의 적동, 놋쇠, 알루미늄 3가지 금속으로 만드는데, 금속 재료가 품은 성질을 조금이라도 닦아낸 흔적이 없다. 묵직하고 견고하며 자연스럽게 빛나고, 쓰다듬으면 경쾌한 감촉이 느껴진다. 적동과 놋쇠에는 멋스러운 얼룩도 흐른다.
최정유의 선반 ‘In Between – Circle’
최정유의 작업에서는 틈새마다 일상의 소소하고 익숙한 움직임이 보인다. 좁은 현관 벽에 걸어 외출할 때 덥석 챙길 수 있는 작은 것들을 둔다거나, 테이블 위에 두고 자주 쓰는 펜, 향이 나는 종이, 좋아하는 돌 등을 하나씩 올리는 즐거운 순간들. 철판을 절곡해 ㄷ자 모양으로 접은 큰 원과 그 틈에 직각으로 끼어 있는 작은 원. 간결한 요소로 완성한 최정유의 선반은 벽면에 부착해서도, 테이블 위에 겹겹이 쌓아서도 쓴다. 물건은 쓰여야 한다. 최정유의 일물에서는 이 당연한 문장이 칸칸이 배어난다.
김진식의 우편함 ‘The Mail Box’
김진식의 일물에는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호기심이 녹아 있다. 우편물은 왜 앞쪽으로만 꽂아 보관할까. 서류를 보관하는 가구나 도구는 왜 공간에서 툭 불거져 나와 있어야 할까. 그렇다면 이우편함은 어떻게 쓰면 좋을까? 직관적인 감을 따르면 된다. 벽에 부착한다. 그럼 마치 처음부터 벽과 하나였던 것처럼, 처음부터 그 공간에 붙박인 것과 같은 모습의 우편 보관함이 된다. 우편물과 각종 고지서와 서류들은 옆쪽으로 꽂는다. 필요할 때만 드러나도록. 형태가 기능을 완벽히 포용하는 것이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형태, 작고 명확한 기능. 김진식의 디자인에서는 그 자신이 골몰하는 주제가 간명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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