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

LIFE MORE+

The World News

도쿄 슬로

도심 한가운데에서 조용히 역사와 전통을 전하며 상생하는 자전거 가게가 있다.

UpdatedOn November 30, 2018

3 / 10
/upload/arena/article/201811/thumb/40530-342872-sample.jpg

 

교통의 요지로 많은 관광객이 오고가는 우에노역. 역 앞에 펼쳐진 우에노 공원을 지나 야나카(谷中) 지역에 들어서면, 그 많던 아시아인들은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작은 카메라를 들고 감탄사를 연발하며 골목골목 탐방하는 서구권에서 온 여행자들이 보인다. 이곳에는 오래된 목조 건물과 신사, 절들이 조용한 주택가 사이사이에 자리해 있다. 오손도손 산책하는 일본 할머니들과 키 큰 백인 관광객이 섞여 걷는 여유로운 거리다. 흔히 떠올리는 일본의 전통적인 풍경과는 또 다른, 예스러운 정취를 도쿄 한가운데에서 느낄 수 있다. 

야나카에서 가장 먼저 들러봐야 할 곳은 ‘도쿄바이크 렌털스 야나카(Tokyobike Rentals Yanaka)’다. 3백 년 전통의 유명한 주류점 ‘이세고’ 본점이 있던 자리에 2017년 봄, 일본의 자전거 브랜드 ‘도쿄바이크’의 렌털 및 라이프스타일 스토어로 문을 열었다. 90년 정도 된 목조 건물에 당시 주류점의 간판과 소품을 곳곳에 남겨두었다. 그러면서도 모던하고 트렌디한 공간을 완성했다. 입구에 매달린 스기다마(전나무 가지로 만든 공 모양 장식), 커다란 태엽식 시계, 앞으로도 백 년은 거뜬할 것 같은 튼튼한 대들보 아래에 전체적인 톤을 고려해 제작한 선반에는 자전거용품 및 잡화들이 놓여 있다. 가게 앞에 진열된 자전거는 1시간 단위부터 대여할 수 있다. 스태프들이 친절하게 근처의 가볼 만한 곳을 추천해주니 목적지 설정도 문제없다. 바 스타일 카페에서는 커피를 비롯해 크래프트 맥주, 그리고 몇 가지 니혼슈를 즐길 수 있다. 원래 있던 주류점은 도보 10분 거리에서 지금도 영업을 하고 있다. 그곳에서 각각 다른 스타일의 니혼슈를 선정해 저렴한 가격으로 선보인다. 단지 인테리어 요소만을 남겨둔 것이 아니라 그곳의 술을 취급함으로써 장소 자체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커피는 전 지점의 스태프들이 정기적으로 연수를 받아, 늘 퀄리티가 동일한 맛있는 커피를 만들어낸다. 자전거 이외의 모든 것은 도쿄바이크가 일본 각지에서 엄선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저 판매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도쿄와 야나카의 모든 것을 홍보한다. 이웃의 숍, 브랜드, 도쿄 명소, 그리고 단골손님까지도 소개해줄 정도다. 팝업 스토어, 전시, 라이브, 토크 등 다양한 이벤트를 열면서도 특유의 정돈된 분위기는 흐트러지는 법이 없다. 도쿄바이크는 도쿄 내 세 군데를 비롯해 일본 국내외에 스토어를 다수 운영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이곳이 그들의 신념과 고집과 애정을 가장 소중히 담고 있는 공간이 아닐까 싶다. 매일 아침 스태프들이 한편에 모셔둔 작은 신단을 향해 기도를 올린 다음 문을 연다. 그들은 늘 웃는 얼굴로 안부를 물어온다. 외국인에게 이번 여행은 어땠는지, 이 근처 어떤 곳에 가면 좋을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도쿄바이크 사장님이 손님들 틈에 섞여 단골손님 분위기를 풍기며 커피 마시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바에 앉은 손님들은 어느새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어쩌면 이 가게의 진짜 목적은 자전거 대여가 아닐지도 모른다. 일본의 과거와 현재, 지역과 세계,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힘이 이 공간 안에 가득 차 있다.
주소 4-2-39 Ynaka, Taito-ku, Tokyo
웹사이트 tokyobikerentals.com

3 / 10
/upload/arena/article/201811/thumb/40530-342877-sample.jpg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

CREDIT INFO

EDITOR 서동현
WORDS & PHOTOGRAPHY 유소라(아티스트)

2018년 11월호

MOST POPULAR

  • 1
    OFF-DUTY TIE
  • 2
    TRANS FORMS
  • 3
    전설의 시계
  • 4
    기념하고 싶었어
  • 5
    핵주먹 버번

RELATED STORIES

  • LIFE

    HAND IN HAND

    새카만 밤, 그의 곁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물건 둘.

  • INTERVIEW

    스튜디오 픽트는 호기심을 만든다

    스튜디오 픽트에겐 호기심이 주된 재료다. 할머니댁에서 보던 자개장, 이미 현대 생활과 멀어진 바로 그 ‘자개’를 해체해 현대적인 아름다움을 더했다. 공예를 탐구하고 실험적인 과정을 거쳐 현대적인 오브제를 만들고자 하는 두 작가의 호기심이 그 시작이었다.

  • INTERVIEW

    윤라희는 경계를 넘는다

    색색의 아크릴로 만든, 용도를 알지 못할 물건들. 윤라희는 조각도 설치도 도자도 그 무엇도 아닌 것들을 공예의 범주 밖에 있는 산업적인 재료로 완성한다.

  • FASHION

    EARLY SPRING

    어쩌다 하루는 벌써 봄 같기도 해서, 조금 이르게 봄옷을 꺼냈다.

  • INTERVIEW

    윤상혁은 충돌을 빚는다

    투박한 듯하지만 섬세하고, 무심한 듯하지만 정교하다. 손이 가는 대로 흙을 빚는 것 같지만 어디서 멈춰야 할지 세심하게 고민한 결과물이다. 상반된 두 가지 심성이 충돌해 윤상혁의 작품이 된다.

MORE FROM ARENA

  • LIFE

    미식의 장

    구찌의 컨템퍼러리 레스토랑 ‘구찌 오스테리아’가 서울에 상륙했다.

  • FASHION

    Memorial Ceremony 3

    할리우드 고전 영화에서 최고의 남자로 손꼽히는 배우, 클라크 게이블. 1930년대를 화려하게 수놓으며 ‘할리우드의 왕’이란 별명을 얻은 그에게서 요즘 남자들에게는 없는 농염함을 배운다.

  • REPORTS

    네온사인에 부쳐

    서울 도처에서 이런 네온사인 글귀를 발견했다. 다시 말해 서울 도처에는 이런 낭만이 반짝거린다.

  • FILM

    갓세븐 뱀뱀의 머릿속을 샅샅이 들여다보자

  • FILM

    월클돌 '매드몬스터'의 모든 것!

FAMILY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