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EMPORIO ARMANI
공항은 어딘가로 떠나는 자유와 모험의 공간이기도 하고, 돌아오는 자를 반기는 장소이기도 하다. 공항의 매력적인 장면은 엠포리오 아르마니의 2019년 봄·여름 컬렉션의 배경이 됐다. 이탈리아 밀라노 리나테 공항의 격납고에서 펼쳐진 브랜드의 첫 번째 남녀 통합 쇼. 외부 세계와 무한한 개방을 상징하는 장소에서 새로운 변화를 맞은 브랜드의 당찬 포부가 느껴진다. 선보인 룩 역시 맥락을 같이했다. 아노락과 레인코트 등 모험심 가득한 아이템과 비닐 버뮤다팬츠 등 도전적인 소재의 활용은 안정적이고 보수적으로 여겼던 엠포리오 아르마니를 다시 돌아보게 만들었다.
2 SALVATORE FERRAGAMO
힘을 뺀 모델들의 몸집에서 편안함이 느껴진다. 자극적인 스트리트 패션과 화려한 장식이 난무하는 트렌드 속에 잠시 숨을 고르게 하는 안정감. 카리브해 블루, 양피지색 등 자연에 가까운 컬러 팔레트가 주는 시각적인 효과도 그렇고. 소재 역시 부드럽게 가공한 가죽, 리넨, 오간자 등을 사용해 몸을 가뿐하게 했다. 브랜드의 수장 폴 앤드루와 기욤 메이앙은 브랜드 아카이브의 식물 프린트를 활용해 여유로운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브랜드의 근간이자 시작점인 신발 중 부츠는 3백여 미터에 달하는 나파 가죽을 사용하고, 장인이 장장 16시간을 매달려 완성해 묵직한 존재감을 내뿜었다. 이 모든 건 살바토레 페라가모라는 하우스가 지닌 이점을 영민하게 활용했기에 가능했던 결과다.
3 CALVIN KLEIN 205W39NYC
새빨간 런웨이와 깊고 짙은 바다를 배경으로 모델들이 걸어나왔다. 스쿠버 팬츠에 오버사이즈 트위드 재킷을 걸치고 학사모까지. 다소 당황스러운 조합이지만 심미적으로 거부할 수 없는 아름다움은 어디서 온 걸까? 이토록 매력적인 룩들은 의외의 요소들의 결합으로 탄생한 결정체다. 라프 시몬스는 이번 컬렉션의 힌트를 미국을 대표하는 영화 <죠스>와 <졸업>에서 얻었다. 그 안에서도 세대 간의 복장 규정, 문화적인 유니폼에서 특별한 매력을 느꼈다고. 이를테면 미국 남학생이 즐겨 입는 블레이저, 상류층의 턱시도 재킷, 대중적인 청바지 같은 것들이다. 다소 불규칙한 요소들의 정렬이지만 대번에 설득당할 수밖에 없는 라프 시몬스의 마력이 또 한 번 취향을 관통했다.
4 GUCCI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촉은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로 향했다. 당시 음악적, 문화적으로 성행한 파리의 테아트르 르 팔라스를 무대로 선택한 것은 영감을 극대화하기 위함이고. 쇼가 시작하자 히피들의 나팔바지와 여피족(Young Urban Professional과 Hippie의 합성어)의 파워 숄더 재킷, 시퀸으로 물든 글램 룩까지 화려함의 방점을 찍은 룩들이 퍼레이드처럼 쏟아졌다. 이제는 구찌 옷장에서 남자 옷과 여자 옷, 이분법적인 성별조차 무의미한 시점. 남자에게 화려한 프린트의 실크 원피스를 입히고, 정조대를 연상시키는 오브제와 패치를 하의로 매치하는 등 성별을 넘어 온전히 하나로 결합된 쇼를 선보였다. 매번 놀랍도록 생경하지만 선명하고 일관된 구찌를 만날 수 있다는 게 재미있을 따름.
5 CELINE
점 하나의 차이는 컸다. 브랜드 로고의 악센트를 제거하고, 리브랜딩을 단행한 에디 슬리먼. 그의 귀환을 알리는 마칭 밴드의 인트로를 시작으로 런웨이를 처음 밟아본 신인 모델들이 당차게 걸어나왔다. 보머 재킷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바지를 추켜올려 입거나, 백발에 선글라스까지 쓴 남자 모델은 앤디 워홀을 떠오르게 했다. 특별히 현대 미술가인 크리스찬 마클레이와 협업하기도 했는데, 그의 작품에서 영감받은 테디 재킷은 눈부심 그 자체였다. 만화책 속 의성어를 시각화해 100% 핸드메이드 스팽글 장식으로 완성한 것. 메종 장인의 손길은 여전하고 스타일은 극명하게 바뀐 셀린느의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결정적인 아이템이었다. 결과와 반응을 떠나, 여전히 유효한 에디 슬리먼식 로큰롤은 셀린느 남성상의 밑그림이 됐다.
6 BURBERRY
그래픽 디자이너 피터 사빌이 디자인한 버버리의 새로운 로고와 모노그램 패턴이 런던과 뉴욕을 시작으로 전 세계를 뒤덮었다. 이를 담은 사진이 SNS 피드를 도배하면서 리카르도 티시의 버버리에 대한 기대감은 한껏 고조된 상태. 그는 데뷔 무대를 ‘킹덤’이라 칭하며 브랜드의 골조인 가장 영국적인 것들을 런웨이로 끌어올렸다. 날렵한 재단의 잉글리시 핏 수트와 어깨에 멘 체인 장식 우산이 돋보였던 리파인드 파트가 그것. 뒤이어 브랜드를 상징하는 체크무늬를 줄무늬로 풀어 대담하게 활용하고, 넉넉한 실루엣의 옷을 소개한 릴랙스드 파트, 차르르 흐르는 여성 블랙 이브닝드레스를 선보인 이브닝 웨어 파트는 가장 리카르도 티시다운 룩들을 담았다. 빈틈없이 안정적으로 펼쳐졌던 데뷔전은 다음 시즌을 더욱 기대하게 만들었다.
7 GIVENCHY
컬렉션은 거울에 대한 관념에서 시작했다. 대상을 투영하고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거울의 물성을 ‘I’m Your Mirror’라는 주제로 활용했다. 남녀 통합 쇼의 강점을 살려 서로의 이점을 공유하고, 아이템을 뒤섞은 룩이 공개됐다. 과장된 볼륨의 하이 웨이스트 팬츠는 누구에게나 절묘하게 잘 어울렸고, 군복에서 착안한 셔츠와 벨트, 재킷 등은 성별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여성의 상징으로 여겼던 꽃무늬의 극적인 변화도 눈에 띄었다. 마치 거울에 비친 것처럼 대칭을 이루고, 남성 셔츠 위에 산란한 꽃무늬는 컬렉션의 주제를 한층 더 힘 있게 완성했다. 이번 2019년 봄·여름 컬렉션을 통해 비로소 클레어 웨이트 켈러의 지방시를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었다.
8 BALENCIAGA
‘디지털’은 패션 신에서 줄곧 활용되는 주제다. 쇼장 안을 영상 아티스트 존 래프맨의 디지털 터널로 장식했을 때 예상 가능한 범위에서 전개될 거라 생각했다. 이를테면 디지털을 활용한 패턴이나 퍼포먼스 같은 것들. 하지만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뎀나 바잘리아는 측면에서 볼 때 알파벳 ‘C’자 형태를 띤 프로파일 실루엣의 새로운 형태를 제시하거나, 혁신적인 재단 방법을 매개로 우리를 디지털 세계로 안내했다. 스마트 패턴이라 부르는 첨단 3D 몰딩으로 완성한 재킷과 코트, 드라마틱한 스탠드업 칼라 셔츠 등 디지털 기술로 완성한 결정체들이 이날의 주인공. 그 속에서도 메종이 품은 고상함과 우아함은 온전했기에 뎀나 바잘리아의 능력은 명백히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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