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이 가장 빠른 패션 전달 매체가 된 이 순간에,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패션 브랜드와 디자이너의 ‘메시지’를 받게 된다. CSM(Central Saint Martin) 출신으로 동명의 패션 브랜드와 매킨토시 0001의 디렉터를 맡고 있는 키코 코스타디노브(Kiko Kostadinov)가 얼마 전 한국을 방문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그가 얻은 영감에 대해 몇 가지 ‘시그널’을 보냈다. 인스타그램에 한국 아저씨들을 찍은 사진을 3장 업로드해 동묘를 세상에서 가장 트렌디한 공간으로 만든 것이다. 진짜와 가짜, 옛것과 새것이 오묘하게 뒤덮인 곳을 바라보며 그가 무엇을 느꼈을까?
매킨토시의 ‘신동’, CSM의 지원 프로그램인 ‘NEWGEN’으로 뽑힌 디자이너, 스투시의 러브콜을 2번이나 받은 디자이너, 옷 잘 입는 천재 디자이너 등 각종 수식어와 찬사를 달고 다니는 그는 불가리아에서 태어났다. 실제로 불가리아에서 딱히 느끼고 배운 것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방인의 입장에서 패션 중심부인 런던의 DNA를 흡수하는 것은 그의 패션 유전자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16세에 가족과 함께 런던으로 넘어온 그는 아버지를 도와 건축 현장에서 일했다. 공사장의 날것들, 건축 인부의 도구들, 산업 현장의 유니폼 등과 마주쳤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의 컬렉션을 관통하는 철학은 작업 현장에서 나오는 ‘실용성’과 산업적인 이미지였다. 그는 세계적인 패션 플랫폼 ‘SSENSE’와의 인터뷰에서 매킨토시 0001&0002 컬렉션의 시작이 이탈리아 실용주의 양식인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에서 기인했다고 언급했다. 이처럼 그의 컬렉션의 핵심은 기존 관습에서 벗어나 옷의 새로운 구조와 그만의 산업 디자인 프로세스를 가미하는 것이었다. 꾸미되 넘치지 않게, 옷 자체의 모습을 드러내되 강조할 수 있게 만드는 것. 실용주의를 주장하는 옷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그가 독보적인 아이덴티티를 형성할 수 있는 행보였다.
석사(MA) 컬렉션 당시 이를 관통한 철학도 실용성과 그에 따른 독특한 패턴 커팅이었다. 해당 컬렉션은 일본식 워크웨어와 불가리아 군용 의복을 구성하는 패브릭 등의 재료를 사용했고, 그만의 독특한 구조주의 패션 철학을 내비쳤다. 탄탄한 철학과 자신이 받은 영감을 적재적소에 결합해 과하지 않은 컬렉션을 창조해내는 것. 일찍이 꼼데가르송이 그를 주시한 이유이며, 매킨토시가 어린 디자이너를 브랜드의 메인 디렉터로 삼은 이유였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그가 동묘를 방문한 이유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본다. 키코의 인스타그램에는 청소부나 노동자들의 매우 일상적인 순간에서 패션을 포착한 사진이 종종 올라왔다. 그가 가장 즐겨 신는 신발 또한 아웃도어 트레일화 ‘호카원원(Hoka One One)’이었다. 컬래버레이션 중에서도 가히 특이하고 비조합적인 ‘아재’ 모습을 담아 만들어냈던 아식스와의 컬래버레이션 ‘젤 버즈(Gel-Burz)’의 룩북 또한 이와 맥락을 같이 했다.
일상의 모습을 조합해서, 자연스러운 멋 속에 하나하나 퍼즐을 맞춰보는 것. 그가 가장 잘하는 일이다. 그런 관점에서, 그에게 동묘는 무척 매력적인 공간이었을 것이라 추측해본다. 현 시점, 고프코어 트렌드에서 가장 정점에 있는 패션 피플은 동묘를 거니는 아저씨들이다. 무심하게 떨어지는 핏의 팬츠, ‘살로몬(Salomon)’ 트레킹화, 그리고 한때 시대를 풍미했던 브랜드들의 빈티지 의상을 매치하며 진짜이건 가짜이건 가리지 않고 거의 모든 옷을 입는 그들의 무심한 모험심. 키코에게 동묘는 그렇게 비쳤을 것이다.
패션의 자연스러움과 전방위적 조합을 고까운 눈빛으로 쳐다보지 않고 받아들이기 시작한 ‘놈코어’ 트렌드의 시작으로부터, 가장 일상적인 모습에서 받은 영감은 디자이너에게 자양분이 된다. 많은 이들이 그의 동묘 방문에 대해 의아해했다. 하지만 그의 행보를 지켜봤던 이들은 안다. 어떤 형태로든 동묘에서 한 경험이 키코에게 디자인적 자양분이 되리란 것을 말이다.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