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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이성민

늘 존재감이 넘치는 배우 이성민이 가장 평범한 남자를 연기했다. 무서운 장면을 보지도 못하는 배우 이성민이 모두를 서늘하게 할 스릴러에 출연했다.

UpdatedOn August 09,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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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색 셔츠는 비비안 웨스트우드, 회색 팬츠는 맨온더분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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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지막 장면에서도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그게 바로 이 영화의 매력적인 지점이다.”

지난 5월 <공작>의 주연 배우로 칸 영화제에 다녀왔다. 지금 홍보하는 영화 <목격자>도 필름 마켓 스크리닝에서 반응이 좋았다고?
일단 <공작>은 많이 팔렸다. 하하. 칸 영화제 가면 데일리 매거진이 나오는데, 누가 <공작>을 표지로 실은 잡지를 보여주더라고. 영어로 적혀 있어서 후르륵 넘기다, <목격자>가 나온 페이지를 봤다. 따로 시간을 내서 배급사 뉴(NEW)의 부스에 가봤다. 판권도 꽤 많이 팔리고, 리메이크 문의도 많았다더라고.

영화는 ‘우리 집 앞에서 살인을 목격했다. 그런데 살인범이 나를 목격했다’는 내용이다. 이 설정이 국경을 초월해 많은 공감을 얻은 모양이다.
<목격자>가 기존 스릴러와 다른 지점이 바로 그것이다. 살인 사건이 일어날 만한 특수한 상황, 특수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굉장히 평범한 사람의 일상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점. 무엇보다 이야기 구조가 촘촘하고 명확했다. 잘 만들면 해외 영화제에서도 주목할 만한 영화가 아닐까, 기대도 했고.

보통 스릴러 영화에 이성민이 출연한다고 하면 범인 잡는 형사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이번엔 대출받아 아파트를 마련한 평범한 회사원이자 가장을 연기했다. 센 연기를 많이 하다 보니 오히려 이런 캐스팅이 더 재밌게 느껴졌을 거 같은데?
맞다. 바로 그 ‘평범함’에 끌렸다. 사실 심리적으로 압박을 느끼는 스릴러를 잘 못 보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이런 장르에 도전한 적이 거의 없다. 시나리오 읽으면서도 지극히 극적이지 않은 연기를 한다는 점이 매력으로 다가왔다.

예고편이 꽤 무섭게 나왔다.
영화 예고편이 나왔을 때도 난 워낙 스릴러에 대한 감이 없어 아내에게 보여줬다. 아내는 평소에 스릴러나 공포 영화를 즐겨 보거든. 직접 보여준 것도 아니고 내 방에서 거실에 있는 아내한테 문자로 예고편을 전송했다. 하하. 보자마자 “오, 무서운데?”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다음 날 딸한테 보여줬다. “에이, 안 무서운데?”라고 하더라고. 우리 딸이 고등학생인데 영화 예고편 보고 무섭다고 말하는 걸 자존심 상해하는 것 같았다. 하하. 두 번 정도 더 물어보니까 그제야 “살인범이 아파트 불빛을 보고 층을 세어보는 게 무섭다”고 답하더라. 거기서 약간 자신감이 생겼다.

무서운 걸 진짜 못 보나 보다.
극 중에서 고양이 사체를 발견하는 장면이 있다. 나는 그런 것을 정말 못 본다. 진짜 끔찍했다. 원래는 놀라서 주저앉는 정도로 돼 있었는데, 저절로 구르게 되더라고. 하하. 또 한 가지, 극 중에서 가족을 노리는 범인과 대치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 배우로서 굉장히 특이한 경험을 했다. 정말로 숨이 안 쉬어지더라고.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고 나서도 꼼짝을 못하겠더라. 얼어붙은 것처럼.

이쯤 되면 스릴러에 도전한 것 자체가 모험인데?
촬영하면서 감독한테 그랬다. “감독님, 스릴러는 음악이야. 음악 묘하게 깔아주고 그러면 다 되는 거지 뭐”(웃음) 그렇게 생각했는데 다르더라. 사실 이 장르에 문외한이다 보니 관객 반응에 대해 감을 못 잡겠다. 그래서 계속 완성본을 본 사람들에게 물어본다. 무섭냐고. 그럼 다들 팝콘 먹을 새도 없이 숨죽이고 봤다기에 완성도는 괜찮나 보다 생각하고 있다.

끔찍한 살인 사건을 목격했는데, 나에게 피해가 올까 봐 외면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영화의 일반적인 설정이 아닌 것 같다. 보통 주인공은 용감한 편이니까.
그래서 더 관객이 몰입할 수 있을 거다. 나라면, 내가 저 상황이라면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도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그게 바로 이 영화의 매력적인 지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신고 정신이 투철해질까?
스릴러 영화에서 굳이 메시지를 찾는다면 ‘이기적으로 행동하지 말고 신고하자’ 정도일 거다. 누가 그러더라고. 골목에서 “살려주세요!” 하면 아무도 불을 켜지 않는데, 대신에 “불이야!”라고 하면 모두가 불을 켠다고.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피해가 오면 사건에 참여를 한다는 거다. 이 이야기가 영화의 메시지를 상징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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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넨 베이지 수트는 에르메네질도 제냐, 리넨 흰색 셔츠는 CK 캘빈 클라인, 검은색 스터드 슬리퍼는 파르팔라 by 유니페어 제품.


정의로운 행동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최근에 했던 가장 정의로운 행동은?
갑자기?(웃음) 어, 나 그런 거 없는데. 정의라기보다 양심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한 가지 있다. 담배꽁초를 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여기 이렇게, 담뱃갑에 꽁초를 모아놓는다. 남이 보건 보지 않건 하는 행동이다. 정의로운 행동은 딱히 생각나지 않는다. 없나 보다. 하하.

오늘만 하더라도 이 영화를 홍보하려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인터뷰를 한다. 책임감이 막중한 만큼 작품 선택에 대한 고민도 깊겠지?
그런데 생각보다 간단하다. 내가 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생각하면 선택은 쉬워진다. 영화가 아무리 좋아도 그 캐릭터를 연기해낼 자신이 없으면 못한다. 실제로 그런 적 많다. 그 영화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을 때는 과감히 포기한다. 얘기한 것처럼 고민이 깊어지다 보니 자신도 없어지고, 뭐 그렇다.

최근 인터뷰들을 찾아보니까 연기를 대하는 태도나 생각에 큰 변화가 있는 게 느껴진다. 무슨 일 있었나?
아마 대부분 <공작> 때문에 칸 영화제에서 했던 인터뷰일 거다. 모든 작품이 다 힘들지만, <공작>은 특히나 힘들었다. 다른 영화보다 배우가 해내야 하는 몫이 컸다. 각 신의 톤, 분위기, 긴장감을 모두 배우들이 만들어내야 했으니까. 나만 힘든 줄 알았는데 (조)진웅이나 (황)정민이도 힘들었다고 하더라고. 하하. 고민할 게 많았고 혼란스러워서 ‘스스로 연기에 바닥을 쳤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작품을 마치고 나서 피폐해 있을 때 <목격자>를 만났다. 이 영화는 스토리가 워낙 탄탄해서 배우의 힘보다는 이야기와 상황이 주는 힘을 따라가면 될 것 같았다. 그것이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근데 <공작> 때 너무 힘들다는 얘기를 많이 해서 이번에 <목격자>는 안 힘들었냐고 물을까 봐 걱정되긴 한다.(웃음)

<공작>이랑 <목격자>가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다.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해야 할 텐데.
사실 <목격자>가 이렇게 빨리 개봉할 줄은 몰랐다. <공작>이랑 같이 개봉하게 될 줄은 더더욱 몰랐고. 대중이 보기에 “이성민은 뭐 저렇게 영화를 많이 찍었냐”고 할 텐데, 사실 촬영 시기는 텀이 길었다. 공교롭게 나란히 개봉하는 것뿐이다. 원래는 올여름 <마약왕>이 개봉하고 가을쯤 <목격자>가 개봉할 거라 생각해서 여유 있었는데, 지금 정신이 없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게 어디 있냐고들 하지만, 있더라. 나한테 첫째 손가락은 튼튼하고 건강한 아이다. 둘째 손가락은 약간 몸이 허약한 아이 같다. 하하. 누가 첫째고 누가 둘째인지 말 안 해도 알겠지?

뭐니 뭐니 해도 배우에게 스릴은 개봉을 기다리는 시간일 것 같다.
시험 보고 성적표 기다리는 우리 딸의 기분이랑 똑같을 거다. 모든 영화는 다 잘될 거라 생각하고 찍는다. 완성된 영화 보고 나서 자신과 확신이 좀 들다가도 개봉 즈음 되면 모든 배우들은 ‘손익분기점만 넘자’고 간절히 바란다. 하하. 최악은 영화 평도 안 좋고 관객도 들지 않는 것. 최고는 영화 평도 좋고 관객도 엄청 드는 거겠지. 영화 평이 안 좋더라도 관객이 들면 중간은 가는 거고. 하하.

아까 잠깐 <공작>이랑 <목격자> 바꿔서 말한 것 같은데, 흥보할 때 괜찮겠나?
<공작>은 낮에 보고 <목격자>는 밤에 보면 된다. 밤에 스산한 영화 한 편 보고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하고 집까지 올라가는 시간이 엄청 스릴 있을 거다. 영화 끝나고도 느껴지는 스릴, 얼마나 재미있는 체험이 되겠나. 이 정도면 홍보 잘한 거 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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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WORD

CREDIT INFO

EDITOR 서동현
PHOTOGRAPHY 이정규
STYLIST 최혜진
HAIR 임진옥(스타일플로어)
MAKE-UP 테미(스타일플로어)

2018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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