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OOO길의 원조, 경리단길은 요즘 원래의 평화로운 동네로 돌아왔다. 요즘 힙은 을지로가 담당한다. 이전에 익선동과 성수동이, 우사단로와 망원동, 연남동, 상수동, 서교동이 돌려 누렸던 호황이다. 동네가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뜨고 지는 동안에 그 많은 사장님들은 다 어떻게 됐을까? 그리고 지금 을지로 사장님들은 내년에 어떻게 되어 있을까?
우리는 동네가, 그 안의 식당과 카페, 술집이 차고 이지러지는 일에 대해 말할 때 젠트리피케이션과 건물주 횡포, 기획 부동산, 임대차보호법, 최저임금 인상, 청년 실업, 정년 파괴 등 거시적이고 전 사회적인 문제로 이야기를 확대하곤 한다. 문제를 평면화하는 것이다. 근원적이고, 실체적인 불편한 문제는 드러내지 않고 봉합하는 것이 대체로 낫다. 특히나 그것이 망한 사장님 이야기일 때는.
일자리가 부족해서 자영업으로 떠밀린 불쌍한 사람들, 인건비 부담이 늘고 건물주가 임대료를 인상해서 결국 버티지 못한 선의의 피해자들로 이제껏 감싸고 넘어가곤 했다. 이 성실한 희생자들 사이에 숨어 있는 ‘망할 만했던’ 사장님들을 누구도 끌어내어 혼내지 않았다. 덕분에 계속 새로운 ‘초보 사장님’들이 순정한 꿈에 취해 #인스타그래머블 한 #인스타맛집을 적당히 차리고 자꾸 망한다. 간판집과 인테리어 목수, 이케아나 신날 일이었다. 그런데 그 힘든 일을 백종원이 해냈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인스타그램 맛집을 야단쳤다. 해방촌과 뚝섬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모두 보았을 것이다. 맛이 없다고, 위험하고 불결하다고, 공부가 부족하고 성의가 없다고, 접객이 엉망이라고, 당신들은 아마추어라고, 진심으로 분노했다. 심지어 ‘뚝섬 편’에선 “답이 없다” “죄인 맞아” 같은 극단의 비난도 쏟아냈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혼내고 야단치는 피로한 방송이 될 줄은 백종원 씨도, 제작진도 몰랐을 것이다. 그들이 기대한 것은 <인생극장>이나 <다큐3일>에 <생활의 달인> 같은 미담이었을 테다. 상권이 축소된 골목에서 살아날 방법을 찾지 못하는 성실한 사장님들에게 ‘외식업 제왕’이 노하우를 전수하고, 방송의 화제성을 통해 골목을 부활시키고, 궁극적으로는 그렇게 부활한 생명을 장수시키는 것이 프로그램에서 바란 ‘예쁜 그림’이었을 테다. 그런데 낚싯줄에 미담 대신 대형 폐기물이 걸려 올라왔다. 태워버려야 할 그 쓰레기의 이름은 ‘우리 카페나 할까?’와 ‘할 거 없으면 밥 장사나 해야지’다.
#인스타맛집이라는 일확천금을 망상하는 초보 사장님들은 사진이 잘 나오는 세팅을 만드는 기술자만 되고 만다. “예뻐서 찍는 줄 알아요. 맛있는 게 예뻐서 찍는 건데”라는 말을 누군가가 했는데,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고발한 초보 사장님들의 대표적인 착각이다. 보기 좋은 음식은 외식업이 갖춰야 할 덕목 중 매우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백종원의 솔루션은 샐러드의 플레이팅을 바꾸는 것이었지만 손님의 감각과 심리를 총공세한 작전이었고, 실험군에선 성공했다.
인스타맛집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상에 쉬운 일이 없다는 걸 우린 모두 겪어서 알고 있다. 회사나 취업이나 다 힘든 일이다. 그런데 똑같이 ‘일’인데, 왜 카페만, 술집만, 밥 장사만 쉽게 생각할까. 인생은 실전이고, 외식업은 기술이다. 누구보다도 많이 알아야 하고, 경험해봤어야 한다. 백종원은 그래서 한 사장님을 법성포까지 태워다 생선 경매장 공부를 시켰다. 나보다 많이 먹어본 사람도 맛있게 느껴야 하고, 좋은 서비스를 나보다 많이 받아본 사람도 편안해야 하고, 나보다 좋은 곳을 많이 다녀본 사람도 좋게 느껴야 안 망한다. 게다가 요즘은 경쟁도 치열하다. “밥 장사는 망하지 않는다”는 건 식당 수가 지금보다 훨씬 적었을 때 얘기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연 식당은 망한다. 잘 모른다는 이유로 프랜차이즈를 선택하거나 외식 컨설턴트에게 의존하는 것 역시 악수다. 망한다. <백종원의 골목식당> ‘뚝섬 편’이 유독 고난의 행군이 된 것은 총체적 문제를 가진 사장님들이 ‘뜨는 상권’만 보고 모여 예쁜 음식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요즘같이 모두 자영업자가 되어야 하는 때엔 경쟁도 극심해서 더욱 힘들다.
백종원이 천재이거나 단지 유리한 환경에서 시작해 지금의 성공을 누리는 것이 아니다. 혹독하게 실패해보고, 치열하게 공부한 과정이 방송의 행간에 다 드러난다. ‘이대 편’에서 일본 라멘집을 위해 그가 뚝딱 내놓은 도움이 오사카의 라멘집 리스트와 라멘 관련 책들이었다. 이미 라멘을 충분히 공부하며 모아둔 자료 중 필요한 것을 바로 꺼내준 것이었다. <집밥 백선생>의 각종 ‘만능’ 양념들 역시 그가 레시피를 개발하는 동안에 이미 만들어둔 것들 중에서 대중적으로 유용할 ‘치트키’들만 골라 딱 꺼내놓은 것이었다. 백종원은 다 해봤기에, 지금 마치 쉽게 성공한 것처럼 보일 수 있는 것이다.
백종원이 얼굴이 벌게지도록 화를 낸 역린이다. 떠도는 이야기에 의하면, 백종원은 TV에 출연하고 유명해지기 전, 자신의 사업이 성공한 후부터 예비 사장님들에게 장사 특강을 했다고 한다. 그것도 무료로. <백종원의 골목식당>도 그 마음에서 성립할 수 있었던 프로그램일 것이다. 그는 골목식당의 사장님들을 ‘후배’라고 부른다. 실패해본 선배로서 타인의 실패를 다시 보고 싶지 않아 화가 나는 것일 테다. 다큐멘터리가 아닌 예능 프로그램으로서 화목한 그림을 위해 별 수 없이 모두를 보듬고 가야 하겠지만, 내게는 여전히 뒷맛이 씁쓸하다. 예쁘게 봉합해도 그 안에는 불편한 진실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공덕동 소담길과 해방촌 신흥시장을 걸어봤다. 애초에 대중교통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소담길은 덜했지만, 신흥시장엔 그래도 열띤 활기가 있었다. 방송에 나왔던 식당들 앞에 긴 줄이 있었고, 어느 곳은 대기표마저 마감됐다. 방송에 나왔던 사람들이 음식을 만들고, 줄을 정리하고, 음식을 날랐다. 대단할 것이 없었다. ‘그저 이만큼이나마’ 할 수 있게 하려고 백종원은 봄 내내 그리도 화냈던가. 프로그램의 순정한 바람대로, 폐허에 가까웠던 골목은 각각의 속도로 재건되고 있었다. 방송이 잊힐 때쯤까지 이들의 생명이 지속될지는 알 수 없다. 그 골목을 유지시킬 힘은 결국 백종원도, 방송도 아닌 골목식당의 사장님들로부터 나와야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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