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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운 센 천하장사

2006년 판 `한국 국민에게 고함`. 제발 작은 차 좀 타세요.

UpdatedOn February 19, 2006

 대한 남아는 점점 말라가는데, 자동차는 점점 비대해지고 있다. 언제까지 큰 차만 고집할 것인가? 자기 의식 강하고 무엇 하나든 남다른 걸 찾는 <아레나>의 블랙칼라 워커라면 작은 차 역시 아름답고 당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마땅하다. 작은 차의 가장 큰 매력은 합리성이다. 우리보다 머리 하나, 팔다리 관절 반 토막은 더 긴 유럽의 블랙칼라 워커가 소형 해치백을 즐겨 타는 이유도 한 번쯤 곱씹어볼 일이다. 경제성·기동성·편의성 등 작은 차를 타서 좋을 합리적 이유야 수십 가지도 더 되겠지만 그 또한 ‘작은 차를 타야 하는’ 절대적 이유는 못 된다. 그러나 작은 차도 작은 차 나름이다. 이 세상에 ‘작다’는 이유로 ‘콤팩트(compact)’라는 단어를 달고 사는 차가 얼마나 많은지 한 번쯤은 헤아려보기 바란다. 볼보 S40은 콤팩트한 세단이다. S40은 센터페시아는 편의 장비를 담아둔 모둠 상자라는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부순, 이 시대 가장 돋보이는 인테리어 ‘센터스택’을 지녔다. 저압 터보 220마력 엔진의 위풍당당한 퍼포먼스는 중대형 스포츠 세단이 부럽지 않다. 밤톨만 한 미니 쿠퍼는 어떠한가. 네 바퀴를 차체 모서리에 바싹 붙인 이 차는 납작 엎드린 자세로 도로 위를 롤러코스터 레일인 양 달려댄다. 와인딩 로드에서라면, 미니 쿠퍼가 지존이다. SUV의 세계로 눈을 돌리면 혼다 CR-V나 랜드로버 프리랜더 같은 기동성 만점의 콤팩트 SUV가 있고, 마쓰다 MX-5와 폰티악 솔스티스는 싼값으로 럭셔리 GT 못지않은 궁극의 운전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 콤팩트 로드스터다. 이들은 하나같이 체구는 볼품없어도 속속들이 알찬, 어디를 가더라도 자존심 구길 일 없이 당당한 ‘작지만 큰 자동차’들이다.

자동차는 단순한 사물을 넘어 친구와도 같은 존재다. 크기가 작고, 가진 것보다 없는 게 더 많은 소형차보다는 편의 장비가 풍성하고 공간도 넓고 안락한 고급 대형차가 편안하고 더 잘 달려주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크기가 커질수록 자동차와 내가 우정을 쌓을 수 있는 기회는 줄어든다. 성능 좋은 서스펜션을 통해 도로 위에서 벌어지는 많은 정보가 걸러지고, 배기량 큰 V6 엔진은 액셀 페달에 올린 내 오른발이 원한 것 이상의 가속력을 드러낸다. 내가 차를 다루는 게 아니라 자동차가 나를 조종한다는 이질감이 있다.

작은 차는 내 손발과 같다. 운전대에 맞춰 방향을 바꾸는 앞바퀴의 움직임이 생생하고 뒷바퀴는 내 엉덩이의 일부인 양 경쾌하게 따라다닌다.

타코미터 바늘이 어느 시점에서 얼만큼의 힘을 끌어내는지 뻔히 알고 다룰 수 있다.

한계가 뻔한 자동차를 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마음대로 가지고 노는 기분은, 5천만원은 족히 넘는 무겁고 큰 고급차로는 만끽하기 힘든 작은 차만의 즐거움이다. 작은 차가 내뱉는 작은 탄식과 진동, 움직임에 집중하다 보면 내 몸의 내면 어딘가에 감추어진 ‘식스 센스’까지 깨어나는 기분이다.

작은 차는 작은 행복을 늘 곁에 두고 살 수 있는, 결과적으로 넉넉하고 지혜로운 차다.

대형의 고급 차가 안겨주는 갖추어진 상태의 아늑함은,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이를 먹고 나서 누려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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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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