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y 이영석 Editor 성범수
난 핀란드 얼음 호수에서 운전하는 3일 동안 총 아홉 번의 구조 신호를 보내야 했다. 핀란드의 빙판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마른 땅에서만 운전하고 눈 오는 날엔 거의 대중교통을 선호했던, 그렇지 않으면 속도를 최저점에 두는 데 충실했던 내겐 더욱 그랬다. 영하 25℃를 가리키는 온도계는 핀란드 땅에서 운전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을 거란 은근한 상징처럼 내 마음을 압박했다.
인천을 출발해 2월 19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북쪽으로 약 900km 떨어진 키틸라 공항에 도착했다. 한기라고 표현하기엔 무언가 부족한 극도의 냉기가 내 몸을 휘감았고, 동시에 난 꽁꽁 얼어버렸다. 얼어버린 호수에서 운전을 해야 한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키틸라 공항에서 출발해 1시간 남짓 왕복 2차선 도로를 달려가는 버스 안에서 난 새하얀 눈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수동 운전이 익숙지 않은 내게 아름다운 눈 천지 세상은 다시 한번 말하지만 결코 반갑지 않았다. 내 마음속에서 양산되는 건 당시엔 우려밖에는 없었으니까.
내가 핀란드에 간 건 아우디 콰트로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Audi quattro Driving Experience, 이하 qDE)를 몸소 체험하기 위해서였다. qDE는 주행의 즐거움을 극한의 상황에서 즐길 수 있도록 한 아우디만의 체험 프로그램을 말한다. 아우디는 역사상 처음으로 풀타임 4륜구동 콰트로를 개발해 1980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첫선을 보였다. 그 후 고객들의 체험을 위해 1981년부터 아우디 qDE를 진행해왔다고 한다. 첫해 여덟 차례의 qDE가 열린 것을 시작으로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8백여 회의 아우디 qDE가 열리고 있다. 참가 인원도 1만4천5백여 명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아우디 qDE는 독일, 오스트리아를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여름과 겨울에 실시되고 있으며, 특히 내가 참가한 핀란드 qDE는 겨울 세션을 위한 최고의 장소라고 한다. 아우디 qDE는 미끄러지는 얼음 호수와 모래바람을 맞으며 황량한 사막에 끝없이 펼쳐진 도로를 달리거나 레이싱 트랙을 고속으로 달리는 등 쉽게 만날 수 없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qDE의 원초적 목표는 난폭 운전을 위한 기술 연마가 아닌 안전 운전에 있다. 운전의 참맛을 느끼기 위해서는 안전이 가장 먼저 확보되어야 하니까. 잘 알고 있었겠지만 우리나라에서도 2005년부터 아우디 qDE가 열리고 있다.
어쨌든 난 1만4천5백여 명 중 한 명으로 핀란드에서 S-라인 패키지로 감싼 A4 2.0TFSI에 시동을 걸었다. 얼음 호수는 방마다 사우나 시설이 찬란한 우리의 숙소 라플란드 올로스 호텔에서 불과 10분 거리에 있었다. 1시간의 실내 이론 교육에 이어 실전 배치에 앞서 인스트럭터의 시범 운전이 있었다. 눈발을 날리며 코너링을 하는 그는 파워슬라이드, 즉 드리프트를 손쉽게 선보이는 운전 솜씨를 자랑했다. 보무도 당당했던 그는 장애물을 피할 때나 갑작스럽게 핸들을 조작할 때, 그리고 미끄러지기 쉬운 노면에 진입할 때 필요한 안전장치인 ESP(전자식 주행 안전 시스템)를 꺼야 한다고 했다. 사고로 연결되는 위험한 상황을 자동으로 감지해 회피책을 강구하는 똑똑한 친구를, 나는 내쳐야만 했다. ESP를 끈 상태에서 드라이빙의 조력자는 눈길에서 뛰어난 면모를 보이는 스파이크 타이어와 아우디의 콰트로 시스템뿐이었다. 아우디의 상시 4륜 구동 시스템 콰트로는 자동차의 모든 바퀴에 동력을 배분해 전달하기에, 4개의 바퀴가 각각 가장 적절한 양의 동력을 배분받아 구동되므로 차의 접지력과 구동력을 극대화하는 특징이 있다. 어쨌든 특별한 눈길용 타이어, 아우디 콰트로, 불확실한 운전을 하는 내가 조합을 이뤄 교육을 시작해야 했다. 처음은 어렵지 않았다. 그냥 깊숙한 코너를 두 번 돌아 원점으로 돌아오는 거였으니까. 하지만 인스트럭터는 좀 더 빠른 속도를 원했다. 미끄러운 코너에 진입할 땐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곤 한다. 만약 오버스티어(운전자가 의도한 목표 라인보다 안쪽으로 도는 것, 뒷바퀴가 바깥쪽으로 미끄러져 나가 접지력을 잃는 현상)가 나게 되면, 그땐 카운터스티어(차의 뒷부분이 원심력으로 미끄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커브를 돌 때 진행 방향과 반대로 핸들을 꺾는 테크닉)로 차의 중심을 잡고, 어느 정도 안정된 상태에서 가속페달을 강하게 밟아 빠져나가야 한다. 차의 뒷부분이 돌아가면 핸들을 반대로 돌려줘야 하는데 겁 많은 내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선 브레이크를 밟아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숙한 운전 실력으로 핸들을 반대로 꺾지 않으면, 비행접시처럼 차가 회전할 수 있다. 이 말을 듣고 떨고 있던 난 브레이크를 계속 밟아댔고, 눈발을 휘날리며 곡선 주로를 빠져나오는 강렬한 드리프트를 선보이지 못했다. 매번 코너를 돌 때마다 무전기에선 인스트럭터의 수정 보완 작업이 있었다. 문제는, 이론은 알겠는데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거였다. 난 얌전한 아줌마 드라이버의 모습으로 그 자리에서 도드라졌다. 두 명이 자동차 한 대에 나눠 타야 했기 때문에 우리는 수시로 교대해야 했다. 차라리 운전석 옆자리에 있는 게 마음이 더 편했다.
이미 말했듯이 그곳은 얼음 호수였고, 그 위에 쌓인 눈을 이용해 드라이빙 코스를 만들었다. 운전을 하다 보면 눈으로 만든 장벽에 차가 올라가기도 한다고 했다. 눈에 걸려 움직일 수 없을 땐 무전기로 구조 신호를 보내면, 산 같은 눈도 타고 넘어갈 수 있는 트랙터가 달려오곤 했다. 하지만 실제로 운전을 해보니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것 같았다. 난 언제나 엉덩이를 뒤로 빼고 달리는 안전 운전자였으니까.
첫 번째 코스를 마무리하고, 두 번째 코스로 차를 이동했다. 스키를 타듯 ‘꼬깔콘’ 모양의 기문을 통과하는 것으로, 속도를 일시적으로 올렸다가 핸들을 완전히 꺾어 빠져나가는 눈발 날리는 운전 기술을 배우는 코스였다. 어렵진 않았지만, 핸들을 꺾어야 하는 정확한 타이밍을 잡는 게 쉽지 않았다. 여러 번 차를 360도로 회전시키고 나서야 어느 정도 감을 잡게 됐다. 기본 교육이 끝나고, 우린 진짜 트랙에 입성했다. 트랙의 난이도는 생각보다 높지 않아 보였다. 구절양장이긴 했지만, 그리고 빙판이었지만, 물론 눈 벽에 여러 번 부딪히기도 했지만, 눈 턱에 빠져 트랙터를 부를 필요는 없었다.
한국에서 온 나를 포함한 기자 2명과 자원한 일반인 10명, 총 12명이 3일 동안 받게 되는 qDE 교육에선 몇 번의 테스트를 거쳐 점수를 합산하고 순위를 정한다. 트랙터에게 구조 신호를 보낼 때마다 2점을 잃게 되고, 두 번의 랩타임을 측정, 합산해 순위를 정하는 방식이다. 개인 부분과 팀 부분으로 나뉘어 경쟁을 통해 우승자를 뽑는 거였다. 상을 목표로 하진 않았지만, 꼴찌를 할 순 없었다. 문제는 나를 제외한 참가자 11명 모두가 만만해 보이지 않았다는 거다. 안전 운전을 하면, 눈 턱에 박혀 2실점을 할 일이 없을 테니, 그건 문제가 되진 않을 거라 생각했다. 문제는 랩타임이었다. 어쨌든 충실하게 수업을 실천한 학생이 우수한 성적을 거둔다는 진리를 되뇌며, 최대한 인스트럭터의 지시를 구현하는 운전을 하려 했다. 난 첫째 날 트랙터를 한 번 불렀다. 눈길에선 자동차가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아 오버스티어가 나기도 하고 언더스티어(운전자가 의도한 목표 라인보다 자동차가 바깥쪽으로 벗어나는 것)가 나기도 한다. 통제 불능의 상황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안전 운전을 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다. 하지만 돌발적인 상황은 언제나 있는 법. 핀란드 qDE에 온 이유가 그런 상황에서 확률 높은 생존율을 얻기 위해서다. 눈길 운전에 있어선 난 이론으로는 석사급이었지만, 실전은 초등학생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언더스티어가 난 상황에서 브레이크를 밟는 게 매번 늦었다. 난 눈 턱을 타고 그대로 올라가버렸다. 바퀴는 겉돌았고, 트랙터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둘째 날, 난 드리프트를 완성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속도를 냈다. 사실 드리프트는 속도의 문제가 아니다. 곡선 주로에 접어 들어갈 땐 브레이크를 밟아 속도를 줄여야 한다. 난 가속페달에서 발만 떼었을 뿐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다. 전날과는 다른 트랙에서 운전을 했다고는 하지만 그날 네 번이나
눈 턱에 올라갔다. 하루 만에 가장 많은 횟수를 기록하며, 트랙터 기사도 내 얼굴을 알아볼 정도였다.
춥고 눈이 많이 쌓인 곳에서는 브레이크를 자주 밟아주는 게 좋다고 한다. 브레이크도 열을 받지 않으면 얼어버리고, 그런 상태에선 브레이크를 밟아도 제때 멈추지 못한다. 브레이크를 계속 간헐적으로 밟아야 브레이크 디스크를 덮고 있는 눈도 녹일 수 있다. 난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고 운전을 했던 거다. 이날 최고의 백미는 내 차가 눈 턱에 하도 많이 부딪히는 바람에 휠에서 타이어가 빠져나온 거였다. 이런 일은 qDE를 진행한 이후 역사상 처음이라고 했다. 아아, 이날 우리는 랩타임을 쟀다. 난 12명 중 12등을 기록했다.
셋째 날, 우리는 마지막 트랙으로 나섰다. 마지막 트랙은 좀 더 긴 느낌이었다. 이날도 난 네 번이나 트랙터를 불러야 했다. 한번은 인스트럭터를 태운 상황에서 눈 턱에 빠져 그를 당황하게 했다. 꼴찌를 기록한 것도 그렇고, 트랙터를 부른 횟수도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에 난 계속 위축됐다. 내 요청을 받고 긴급 투입된 인스트럭터는 나와 함께 트랙을 세 바퀴 돌며 문제점을 꼼꼼히 지적해줬다. 선생님의 칭찬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번 기회에 확실히 알았다면, 우스운가? 난 그의 지도와 칭찬을 받고 나서 일취월장했다. 그날 밤에 있을 나이트 랠리에서 우승은 아니더라도 꼴찌는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이트 랠리는 깜깜한 밤에 코스 1번, 2번, 3번을 모두 연결해 시간을 계측하는 마지막 시험대다. 그곳은 호수고, 가로등 같은 건 없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트랙을 돌아야 했다.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트랙터의 부재였다. 속도 측정을 하는 것이니 질주는 해야겠는데, 눈을 타고 차가 올라가버리면, 누구도 우리를 구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지면, 비상등을 켜고 모든 사람들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한국에서 온 12명만 코스 기록을 재는 거였다면 문제가 아니지만, 거기에는 일본에서 온 팀도 있었다. 족히 한 시간은 깜깜한 어둠 속에서 버텨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건, 내 파트너가 운전도 잘하고 길눈이 굉장히 밝다는 거였다. 난 그의 지시에 따라 속도를 줄였다가, 내달리기를 반복했다. 나이트 랠리의 승패는 낮에 코스를 둘러볼 때 적어놓은 코스 지도를 얼마나 정확하게 적어놓았나 하는 거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우리 팀은 그런 작업을 생략했다. 그냥 감에 맡기기로 한 거였다. 결국 난 파트너의 도움으로 아무 사고 없이 도착점을 안전하게 통과했다. 난 나이트 랠리에서 전체 12명 중 4등을 기록했다. 내 파트너는 1등을 차지했지만. 총점에서 난 부끄럽게도 트랙터에 9번 끌려 나왔다는 이유로 개인 부문에서 꼴찌를 기록했다. 내 파트너는 개인부분에서도 1등을 했다. 하지만 나는 나이트 랠리의 팀 부문에서 당당히 1등을 기록했다. 파트너 잘 만난 덕분이었지만 서울에 돌아가도 고개는 들 수 있었다. 내가 좀 더 일찍 인스트럭터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면 어땠을까, 조금 후회되기는 했다. 적극적으로 매번 물어보던 내 파트너가 우승을 한 걸 보면 말이다.
이번 핀란드 qDE는 단순히 트랙 운전만 하는 건 아니었다. 눈에서 즐길 수 있는 현존하는 모든 이동 수단을 접했기 때문이다. 얼음 호수 위를 날아 트랙 전경을 둘러볼 수 있는 헬기를 탔고, 눈길에서 달리는 스노 스쿠터로 설원의 사파리를 즐겼다. 숲 속을 달릴 땐 야생순록이 우리의 행렬을 목격하고 달아나기도 했다. 또 눈 위에선 드리프트의 참맛을 느끼게 해주는 카트를 타기도 했다. 그리고 아우디 Q7을 타고 산길을 달렸다. 그곳은 오프로드를 인위적으로 디자인해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험로였다. 왼쪽 앞바퀴와 오른쪽 뒷바퀴가 동시에 하늘 위에 떠 있어도 아우디 Q7은 무리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콰트로의 능력을 자랑하려는 의도에 심드렁할 만도 했지만, 신기에 가까운 묘기에 입이 ‘쩍’ 벌어졌다.
한국에 봄이 왔다는 게 반갑지 않은 건 나뿐인 것 같다. qDE에서 배운 운전 실력을 선보일 수 있는 장(場)이 사라졌다는 게 조금은 아쉽다. 아니다. qDE에서 배운 건 남에게 자랑하기 위한 운전 실력이 아니라 운전 중 마주칠 수 있는 긴급 상황에서 즉각적이고 안전하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거였다. 어쨌든 난 눈이 더 이상 두렵지 않은 운전자가 됐다. 아니, 눈길의 돌발 상황에도 강건한 운전자가 된 거다. 합격증도 받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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