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은 1968년에 어떤 미래를 꿈꾸며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만들어냈을까? 아마도 그에게 미래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암흑 속 우주를 유영하는 어떤 이미지의 단초 하나에서 시작된 그의 감각적인 영화는 마치 21세기 들어 크리스토퍼 놀런이 그려낸 <인터스텔라>의 그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다. 현실을 뛰어넘어 미래적인 세계로 진입하지만 결국 돌아오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 그것을 구축한 과거에 대한 성찰과 통찰을 위한 장치일 뿐이었으니까.
큐브릭의 상상력에서 50년이 지난 지금, 에르메스의 남성 유니버스 아티스트 디렉터 베로니크 니샤니앙이 꿈꾼 브랜드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시선 역시 마찬가지였을지도 모른다. 지난 4월 19일, 상하이 황푸 지구 CSSC 파빌리온에 재현된 스페이스 십 ‘에르메스호’는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위용과 감탄을 자아냈다. 그녀는 외관에서부터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중국 조선업체의 건물 CSSC 파빌리온을 에르메스 우주선으로 이미지화했을 테다. 그녀는 “우주선이 이착륙하는 이미지를 상상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파빌리온에 들어서는 순간, 육각형의 형광 터널이 현재의 인간을 맞이했고, 그 터널을 통과하는 순간 현재는 미래화되어버렸다. 그렇게 입장객은 중력이 사라진 선내를 유영하는 듯한 착각을 하며, 에르메스 선내를 자유롭게 부유했다.
에르메스가 마련한 우주 체험은 마치 성큼 다가와버린 미래를 환영하는 듯한 런웨이 쇼로부터 시작됐다. ‘패스트 포워드 맨(Fast Forward Men)’이라는 키워드 아래 에르메스의 2018 S/S 컬렉션을 보여주는,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우주선 복도에서의 런웨이 쇼. 이 룩을 착용한 전문 모델들은 마치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우주인처럼 복도를 자유롭게 오갔다. 이와 반대로 중간중간 그들과 함께한 셰프, 아티스트, 인플루언서 등으로 이루어진 일반인 모델들은 무중력 상태의 어색함을 애써 숨긴 채, 태연한 척 복도를 걸었다. 이 조화는 마치 우주 여행의 첫 설렘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그래서 우리보다 먼저 우주선에 탑승한 이들에 대한 경외감으로 이어졌다. 쇼의 말미에 베로니크 니샤니앙은 현재와 미래의 성공적 도킹을 환호하는 듯 경쾌한 발걸음으로 탑승한 이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환영 인사 이후부터는 자유롭게 에르메스호를 탐험할 차례니 말이다. 실험실로 명명된 공간에선 시계, 넥타이, 가죽 재킷을 만드는 장인의 몸짓을 관찰할 수 있었고, 넓은 무대에선 선내 중력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인간 오뚜기 2개가 평범한 인간 대신 우주 유영에 대한 동경을 전해주었다. 그렇게 선내를 거닐다 보면 우주선 밖 우주를 체감하기 위한 우주인의 필수품을 만나게 된다. 에르메스는 이 우주인 룩에 신경을 쓰기로 했나 보다. 어떤 스카프와 가방이 우주복과 잘 어울릴지를 고민하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이야말로 에르메스만의 위트이며 재치가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오래도록 그 공간을 되새기게 된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에르메스호는 다양한 공간으로 세분화된 선실을 마련해두었고, 각 선실에는 에르메스가 걸어온 역사적 행보와 그들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꿈을 다양한 전시와 즐길 거리로 체험하게 준비했다. 이는 주입식 교육이기보다는 자유롭게 떠돌며 흥미 있는 지점에서 걸음을 멈추게 만드는 매력적인 공간 배치였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대단한 미래적 발상이 아닐까?
이런 체험의 시간이 흐른 뒤, 에르메스 선내는 현재와 미래의 성공적 도킹을 축하하는 듯한 연회장으로 변신했다. 이곳저곳에는 구미를 당기는 산해진미가 가득했고, 그에 어울리는 다양한 종류의 음료들로 넘쳐났다. 마치 (에르메스의 동반자인) 페가수스의 날갯짓을 경축하는, 그래서 고대 그리스인의 축제에서 느낄 법한 시끌벅적하고 생동감 있는 파티로 이어졌다. 음식과 술이 있는 연회에서 음악이 빠져서는 안 되는 법. 에르메스는 영국 출신 밴드 ‘파크 호텔(Park Hotel)’을 무대 위로 올렸다. 우주에서 즐기는 로큰롤. 그렇게 우주에서 펼쳐진 에르메스의 밤은 끝없이 이어졌다. 그러나 에르메스가 준비한 우주에서의 하룻밤은 큐브릭이나 놀런이 상상한 것과 약간 차이는 있었다. 그들의 미래관이 우울의 서정이었던 반면, 베로니크 니샤니앙의 가치는 미래로 나아갈 ‘현재’를 더욱 음미하고 즐기자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상하이의 하룻밤 꿈은 황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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