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y 김지태 Editor 성범수
오해는 마시라. 난 외국인보다는 한국인이지만 생활방식은 외국인 같은 교포의 느낌이 좋을 뿐이니까. 어눌한 한국말을 구사하는 그녀들은 너무 귀여워 보인다. 내가 원하는 모든 걸 들어줄 것 같은 그 애교 있는 말투 말이다. 미국에 갔을 때 난 재미 교포 여자와 섹스를 해야겠다는 목적을 숨기고 교포 사회의 일원이 되기에 적잖이 노력했다. 교회에 나가면 쉬울 것을, 난 불교 신자다. 섹스를 위해 종교까지 바꾸고 싶진 않았다. 내가 뼛속까지 섹스에 탐닉하는 남자가 아니라는 증거 아니겠나. 어쨌든 내가 1년 동안 머물던 버지니아에서 꿈꾸고 그리던 교포와의 섹스를 완성할 수 있었다. 물론 첫경험이자 교포와의 마지막 섹스였지만. 사실 특별한 감정은 없었다. 어학연수로 간 대학에서 만난 친구의 교포 친척이라는 것이 우리가 만나게 된 배경이었다. 술자리의 반복이 즐거운 건 서로 쉽게 친해질 수 있다는 만고불변의 법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취한 몸을 내게 기댄 그녀였기에 난 용기를 낼 수 있었고, 결국 그녀의 집에 같이 가게 됐다. 그녀의 집으로 간 건 술자리가 다섯 번 정도 이루어지고 난 후로 기억한다. 그녀는 예쁘진 않았지만, 내가 원하던 교포 특유의 분위기가 있었다. 떨렸다. 하지만 그 기분이 오래 지속되진 않았다. 그녀가 너무나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내가 없는 것처럼 그녀는 옷을 다 벗어버렸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빨리 옷을 벗으라고. 씻지도 않고 이 짓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엉덩이를 뒤로 잡아뺐지만,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단박에 팬츠를 벗어내렸다. 그녀가 정말 너무 사랑스러우면서도 겁이 났던 건 음모를 단정하게 손질했다는 거다. 성인물에서만 봤던 단정한 모습에 ‘환장’할 만큼 흥분했지만, 내 머리를 스친 건 그녀가 그곳을 정성스럽게 면도하는 장면이었다. 분명 상대 남자를 배려하기 위한 프로적인 몸부림이 내게 약간의 거부감을 던져줬다. 마음을 다잡는 수밖에 없었다. 순간의 상념은 멀리 던져버렸다. 리드당하던 전반전은 고루한 대한민국 남자에겐 수치와도 같은 것이었다. 난 내 일천한 경험과 포르노에서 배운 고난도 기술을 구사하고 싶었다. 다리를 활짝 벌리는 데 부끄러움을 모르던 그녀였지만, 내가 하려던 것들을 모두 거부했다. 단지 정상위와 후배위만 허락했을 뿐이다. 섹스를 끝내고 그녀가 한 말은 내게 평생 잊혀지지 않을 걸작이었다. “다른 체위들은 불편해서 하기 싫더라고”라는 그녀의 말은 이미 여러 차례 경험을 했다는 증거를 담보하는 말이었다. 갑자기 정이 뚝 떨어졌다. 그리고 새벽녘 스컹크의 방귀 냄새가 짙은 거리를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달, 나는 그 말보다 더 놀라운 소식을 접했다. 교포 사회뿐만 아니라 어학연수 온 친구들 사이에 그녀와 잤다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다. 자랑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을 거다. 그냥 너무나 자연스럽게 얘기를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도대체 이유를 모르겠다. 지금 만나면 물어보고 싶다. 왜 소문을 냈느냐고 말이다. 아니다. 괜스레 물었다가 더 충격적인 답을 들을지도 모르겠다. 그녀 역시 한국에서 온 순진한 남자와 자보고 싶은 동경이 있었기에 그냥 편안하게 자신의 업적을 얘기했을지도 모른다. 그녀와 섹스를 하고
난 후 바로 서울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자랑한 나처럼 말이다. 내가 한국에 돌아갔을 때 교포 여자와 섹스를 했다는 소문이 친구들 사이에서 영웅담처럼 회자된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김상준(가명, 레스토랑 경영)
미국인이었던 그녀는 캘리포니아 출신이었다. 구체적인 동네는 얘기해본 적 없다. 그냥 따뜻한 곳에서 왔기 때문에 한국의 겨울 날씨를 무척 힘들어했다. 난 그녀를 한국에서 만났다. 친구의 부모님이 지방으로 내려가는 바람에 친구는 큰 집에서 혼자 살아야 했다. 그는 영어를 배워보려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외국인 강사에게 싼값에 방을 내줬다. 둘은 친구가 됐고, 공간의 여유가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친구의 집에는 매일 밤 외국인이 몰려왔다. 나도 어느 순간 그들의 일원이 됐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외국인이 몰려들었다. 무리 중엔 소주병을 들고 들어오는 새하얀 금발 머리 여자가 있었다. 내 눈에 그녀만 보였다. 맘을 들키지 않으려 그녀를 피하다가도 누군가가 그녀에게 추파를 던지는 걸 목격하면 바로 달려가 어설픈 영어로 말을 걸었다. 결국 우린 친구가 됐다. 그녀의 얼굴이 며칠 동안 머릿속을 복잡하게 했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그녀에게 한 번 만나자는 말을 전해달라고 했다. 내 부탁을 들어준 친구는 정확히 10분 뒤 내게 다시 전화를 했다. 그녀가 짜증을 냈단다. 용건 있는 사람이 직접 말하라는 그녀의 하명이었다. 짧지만 용감한 영어 구사력을 바탕으로 그녀와 개인적인 대면식을 치르자는 약속을 얻어냈다.
우리는 영화도 보고 밥도 먹고 종로 일대를 돌아다녔다. 수서쯤 되는 어느 곳에 그녀의 집이 있었다. 섹스할 맘은 없었지만, 작별 인사를 키스로 대신하는 그녀에게 난 두 손으로 화답했다. 그녀의 바지 속에 손을 넣어 엉덩이를 만진 거다. 그녀의 대답은 ‘Too early’였다. 그날은 그렇게 이성으로 욕정을 이겨내야만 했다. 다음 날 또 그녀를 만나기로 했다. 그녀의 가슴과 얼굴은 정말 완벽했다. 하지만 그녀에겐 문제가 하나 있었다. 하체가 지나치게 뚱뚱하다는 거였다. 물론 알고는 있었지만, 엉덩이에 손을 넣었을 때 그 끝을 알 수 없는 너비를 확인한 나는 약간 주저하는 마음이 생겼다. 어쨌든 그것만 빼면 그녀가 너무 좋았다. 그녀의 하체를 보면 당신도 절대 나와 다른 생각을 할 순 없을거다. 어쨌든 두 번째 만나기로 한 날에는 그녀의 집으로 바로 직행했다. 밥을 먹고, 술을 좀 마시다 어제의 미완성을 오늘의 완성으로 만들기 위해 조심스러운 과정을 밟아나갔다. 난 어느 정도 마른 체형이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그녀의 팬츠와 언더웨어를 벗겼을 땐 발기가 될지, 내 자신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내 발기에 힘이 돼준 건 원래 알고 있던 그녀의 얼굴과 가슴 그리고 언더웨어를 내리기 전까진 모르고 있었던 그녀의 음모가 금발이었다는 것 정도였다. 그녀는 글로는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내 뇌수가 다 빠져나올 만큼, 열과 성의를 다해 오럴섹스를 했다. 그리고 자기 것에도 키스를 해달라고 했다. 내가 걱정한 건, 그녀의 하체를 바라봤을 때 발기된 물건이 금방 식어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거였다. 허벅지의 거대함에 놀라버린 내 앙가슴이 바로 내 물건에 영향을 줄지도 모르니까. 하여튼 난 눈을 감았다. 원래 오럴섹스를 해주면서 여자의 표정을 살피는 걸 좋아하는 나였지만,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삽입의 과정이 이어졌다. 그녀는 최대한 다리를 벌려 내 삽입을 도왔지만, 내 몸은 굉장히 불편했다. 다리로 날 꽉 조이는 것 같은 답답한 피스톤 운동을 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잡생각이 지배하는 내 머릿속 때문에 사정의 길은 멀고도 험난하기만 했다. 겨우 마무리는 했지만, 힘들었다. 그래선지 그녀에게 느껴지는 특별한 건 없었다. 살결이 부드러운 것 같기는 했지만, 온몸에 돋은 털이 굉장히 억셌다. 그리고 미안한 얘기지만, 약간 암내도 났다. 그런 그녀가 집에 가겠다는 내 팔을 잡았다. 오늘 밤 같이 있고 싶다는 거였다. 또 하자는 말이었다. 남자에게 이 대사가 ‘약발’을 미치는 건 섹스를 하기 전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일을 끝냈다. 더 이상 내가 원하는 건 없었다. 난 호가타 아줌마의 거대한 허벅지와 암내 그리고 억센 털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그녀는 날 계속 잡아끌었지만, 난 그녀를 뿌리쳤다. 내가 집에 가는 길에 문자가 하나 왔다. 섹스를 나눈 그녀였다.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자신이 너무 섹스를 좋아하는 것 같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한 통의 문자가 더 왔다. 다시 돌아오면 안 되느냐는, 섹스를 갈구하는 욕정이 가득한 메시지였다. 난 그냥 휴대폰을 꺼버렸다. 윤병호(가명, 무직)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늦은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 여자가 커다란 여행 가방을 들고 이 사람 저 사람을 붙들고 무언가를 물어보고 있었다. 몸매나 스타일이 객관적으로 미인은 아니었지만, 딱 내 스타일(키 크고 어깨와 골반 넓고 상대적으로 가슴은 작고, 전체적으로 퇴폐적인 이미지)이었다. 내게도 어설픈 한국말로 말을 걸었다. 이야기를 나눠본 결과 일본인이었다. 좀 더 확실하게는 그녀는 재일 교포 2세였다. 할아버지와 친척들을 방문하러 왔는데, 며칠 동안 관광하고 싶어 혼자 돌아다니고 있다는 거다. 아무튼 가까운 힐튼 호텔을 알려주고 가려는데,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고 어쩌다 보니 난 그녀와 한 방에 들어가게 됐다. 그 여자는 수영선수였다. 그래선지 허벅지가 고등어 내지는 꽁치처럼 탱탱했다. 사들고 간 맥주 몇 잔을 마시고, 그녀는 자신이 중고등학교 때 아르바이트로 찍었다는 세미누드부터 하드코어 포르노 잡지까지 보여줬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겠지? 우리는 애무를 하고 섹스를 했다. 고등학교 1학년생인 내겐 더 이상 다른 것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을 해주었다. 발가락 끝부터 눈알까지 핥아주었고, 내 몸의 모든 구멍은 그녀의 침으로 범벅이었으니까. 사실, 지금 생각해도 야릇한 기분이 들 정도로 그녀는 자신의 오르가슴보다는 내가 놀라고 만족하는 모습에 더욱 흥분했던 것 같다.
그 뒤 난 잠시 영국에서 생활했다. 일본 여자와 사귄 적도 있고, 학교 앞 놀이터에서 만난 일본 여자 몇 명과 자보기도 하고, 그녀들이 고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같이 살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내가 경험한 일본 여자들은 우리나라 여자들과 비교할 때 적극적이고 즐기는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서양 여자들과는 전혀 달랐다. 상대방의 쾌감을 우선으로 생각하며 즐기는 일본 여자들은 남자에겐 매우 좋은 섹스 상대라고 할 수 있다. 김우석(가명, 화가)
여행 중이었다. 이걸 잡지에서 밝혀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여행 중 만난 그녀는 18세도 안 되어 보였다. 나도 당시 비슷한 나이였으니, 도덕성 문제는 이 글을 읽은 뒤에 판단하시라. 길에서 만난 그녀는 창녀였다. 나이는 주민등록증 같은 걸 보여줄 리 만무하니 알 수 없었고, 내가 묵은 호텔에서 이틀 동안 같이 지냈다는 것밖에, 그녀에 대해 특별히 아는 게 없었다. 그냥 늘씬하고 적극적이었다. 내가 재정적 지출을 불사하면서까지 이틀 동안 호텔에서 그녀와 함께했던 건 그녀의 몸매 때문이기도 했지만,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녀를 데리고 방에 들어갔을 때 같이 목욕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욕조에 물을 받았다. 물이 적당히 차길 기다리며 우리는 영어로 어렵게 대화를 나눴다. 그러다 술 생각이 났다. 그녀는 직업여성이다. 그녀에게 돈을 주고 술을 사오라고 할 수도 없고, 그녀를 남겨두고 혼자 나가기엔 가방에 든 물건이 걱정스러웠다. 욕조에 물을 받고 있다는 건 그때 이미 머릿속에서 지워져 있었다. 난 그녀와 함께 술을 사러 나갔다. 어디서 술을 사야 할지 몰라 그냥 호텔에 있는 바로 갔다. 그리고 우리는 맥주 두 병을 각자 마시고는 방으로 향했다. 그때 갑자기 욕조에 물을 틀어놓고 나온 것이 생각났다. 우리는 방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물은 이미 넘쳐 복도까지 흘러나왔다. 방은 온통 물바다가 됐다. 로비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결국 새벽까지 걸레로 물을 모두 닦아내야 했다. 그 후 호텔 직원과 스쳐지날 때마다 좋은 낯빛을 기대하긴 어려웠다. 어쨌든 그녀와의 첫 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여전히 눅눅했지만, 섹스를 방해할 정도는 아니었다. 여행에 방해가 될 것 같아 빨리 섹스를 해야겠다고 결단을 내렸다. 18세도 되지 않을 것 같은 그녀의 몸은 슈퍼모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도대체 어찌 이런 몸매의 아가씨가 돈을 받고 섹스를 해야 하는지, 안타까웠다. 동정심은 뒤로하고 난 정상위로 섹스를 시작했다. 창녀의 그곳에 내 입을 가져다 대고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렇게 반복 운동을 하고 있는데, 그녀가 나를 살짝 밀치고 일어나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나를 눕힌 그녀는 위에서 내 얼굴을 보며 승마 자세를 취하다가 다시 뒤로 돌아 새로운 자세로 말을 탔다. 그리고 나를 일으켜세우고 한쪽 다리를 볼쇼이 발레리나처럼 높이 쳐들더니 삽입하라고 했다. 또다시 뒤로 돌아 후배위 자세를 취하게 했다. 우연이었겠지만, 사정의 압박을 느낄 때마다 그녀는 내 성기를 빼고 자세를 바꿨다. 아아, 그녀는 그런 자세 바꿈의 순간마다 오럴섹스를 해줬다. 난 완전히 그녀의 플레이에 놀아났다. 그녀는 사실 어떤 쾌감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옅은 미소만 보여주는 그녀는 말 그대로 섹스 선생이었다. 그녀가 선보인 기술은 현재 나의 성생활에서 영양가 높은 자양분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직업여성이었기 때문에 러시아 여자들을 평가하는 객관적 기준은 되지 못한다는 건 알고 있다. 유민성(가명, 회사원)
그녀들은 모두 스튜어디스였다. 우리가 재수생일 때 남산에 있는 클럽에서 세 명의 여자들을 만났다. 한국 여자인 줄 알았는데, 말레이시아에 사는 화교였다. 우린 술을 같이 마셨고, 그녀들의 숙소에 가서 놀았다. 한국 항공사의 외국 승무원인 관계로 그녀들은 자주 한국에 왔고, 그때마다 한국에 오면 우리에게 전화를 했다. 어떤 과정이 오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 무리 중 한 명과 내 친구는 섹스를 하게 됐다. 대학교 1학년이었던 우리는 순진했고, 아무 생각 없이 친구와 섹스를 했던 그녀에 대한 배려 없이 모든 걸 알고 있다는 걸 은근슬쩍 드러냈다. 창피했는지, 아니면 ‘빈정’이 상했는지 그녀들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 후 우리와 연락을 끊었고, 더 이상 그녀들을 볼 수 없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 내 휴대폰에 전화가 걸려왔다. 내가 세 명 중 가장 좋아했던 귀여운 여자였다. 그녀는 스튜어디스를 그만뒀다고 말하고는 만나자고 했다. 2년 전 내 친구와 섹스를 했던 여자는 다른 항공사의 스튜어디스로 계속 근무 중이었고, 내 친구와 친구의 과거 파트너도 우리가 만나는 장소에 같이 나왔다. 거의 2년 만의 해후에도 어색하진 않았다. 술을 마시다 친구와 그의 파트너는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귀엽던 그녀가, 아니 여전히 귀여운 그녀가 내게 말했다. 그때 나를 좋아했었다고 말이다. 기분은 좋았지만, 섹스를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녀는 호텔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데려달라는 거다. 같이 호텔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잠시 방에 올라가서 차를 마시자고 했다. 그때부터 용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나를 좋아했고, 지금도 그런 것 같고, 방에는 우리 둘만 있게 된 거다. 용기가 솟았다. 우리는 서로의 옷을 벗겼고, 섹스를 했다. 사실 재밌는 얘기를 해주고 싶지만, 섹스에 있어서 특별한 건 없었다. 단지 그녀가 예뻤다는 것과 얼굴과는 달리 경험이 많아 보였다는 것 정도였다. 좀 더 덧붙이자면, 굉장히 유연했다는 거다. 박자감도 남달라서 내가 치고 들어가면 받아주고 뒤로 빠지면 같이 뒤로 물러났다. 경험 많은 여자라 남자의 기분을 좋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인종과는 별개의 문제로, 개인의 장기일 뿐이지만. 우린 그렇게 2년 만에 만나 처음 섹스를 나눴다. 나중에 내 친구에게 들은 얘긴데, 그녀는 우리와 연락을 끊은 후 결혼을 했다고 한다. 경험이 많다고 느낀 게 당연했다. 외국유부녀와 섹스를 한 것이다. 말레이시아에는 간통죄가 없겠지? 어쨌든 난 몰랐으니까 유죄는 아니다.
석지훈(가명, 뱅커)
호주에서 유학할 때였는데, 씁쓸한 얘기지만 호주 여자들은 유학 온 한국 남자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어울린다는 건 섹스를 말하는 거지만. 난 조금 운이 좋은 편이었던 것 같다. 키가 크고 덩치가 컸으며, 얼굴이 검은 편이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녀가 동양인을 좋아했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수업을 같이 듣던 그녀는 자주 내게 말을 건넸다. 사냥감이 들어오면 놓치지 않았던 나였지만, 호주 여자였기에 자신이 별로 없었다. 우리는 사귀지는 않았다. 그때는 머릿속에 그런 개념은 없었지만, 그녀와의 관계는 섹스 파트너의 그것이었다. 수업이 끝나면 만나지도 않다가 어느 날이 되면 그녀의 집에 가서 섹스를 했다. 난 그녀 덕분에 여자가 원하는 섹스를 알게 된 남자로 자랄 수 있었다. 큰 물건에 대한 자부심으로 여자들이 내 것만 보면 쓰러질 거라는 생각에 강한 삽입과 노출증에 가까울 정도로 여자들에게 성기를 자랑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던 내게 그녀는 경고의 의미를 내비친 첫 번째 여자였다. 그녀와 첫 섹스를 할 때, 난 호주 땅에 태극기를 꽂는다는 애국애족 정신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한국 남자들이 어떤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려 했다. 성심성의껏 애무를 하고 삽입했다. 난 여자가 아니라 잘 모르겠지만, 삽입했을 때 어떤 느낌이 나는지 궁금하다. 무언가가 꽉 찬 느낌이 난다는 여자도 있지만, 내가 만난 그녀는 내가 천천히 삽입을 끝내고 천천히 운동을 하고 있을 때 이런 말을 했다. “뭐야, 손가락 아냐?”라고 말하며 웃어버린 거다. 난 기분이 상해 그만둬버렸다. 미안했는지 그녀는 내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 호주 남자들의 성기가 큰 편이라며 날 달래줬다. 그 후 자존심을 죽이고 성에 대해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그녀는 대화가 중요하다고 말하며, 그녀가 좋아하는 체위와 어떤 식으로 하는 게 최고의 만족을 주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 후 이어진 우리의 섹스는 모든 게 완벽하게 맞물려 진행됐다. 최근 만나는 한국 여자친구에게도 그녀에게 받은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지만, 완벽하진 않다.
섹스에 대해 대화를 나누지만, 주로 내 위주로 진행된다는 게 문제다. 그녀는 좀처럼 어떻게 해줘야 기분이 좋은지 쉽게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호주에 있는 과거의 파트너에게 경의를 표한다. 내가 작위를 줄 수 있다면, 내 섹스라이프에 업적을 남긴 것을 인정해 백작의 지위를 주고 싶을 만큼.
빅성호(가명, 학원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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