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도 잘하는 농장
엔씽
맷 데이먼이 화성에서 고독하게 농사지으며 구황 작물을 재배하던 영화 <마션>을 현실로 만드는 사람들. 엔씽은 스스로 작물이 자라는 ‘스마트 팜’을 지향하는 동시에 ‘인도어 팜(Indoor Farm)’에 집중한다. 날씨와 습도, 온도, 빛 등을 수치화해 스마트폰으로 생육을 관리한다. 계절에 구애받지 않음은 물론, 병충해로부터 자유롭고, 미세 먼지 걱정 없이 건강한 작물을 재배할 수 있다. 엔씽의 이름을 알린 것은 ‘플랜티’라는 스마트 화분. 센서를 부착한 화분을 클라우드 서버와 연결해 화분 속 토양 데이터를 수집하고, 스마트폰으로 식물 재배를 관리할 수 있다. 혹자는 ‘다마고치’를 키우는 심정으로 게임처럼 재미있게 식물을 키울 수 있다고 말한다. 화분 속에 작은 물탱크가 있어 수분이 부족하다 싶은 순간에 스마트폰으로 버튼만 누르면 알아서 수분이 공급된다. 후속으로 ‘플랜티 스퀘어’도 개발했다. 가로 16cm, 세로 15cm 되는 화분을 네 구역으로 나눠 아주 협소한 공간에서도 식물을 키울 수 있다. 캡슐 커피처럼 엔씽의 기술이 집약된 캡슐 식물을 작은 화분에 심어두기만 하면 바질 같은 허브가 활짝 피어난다. 새로운 캡슐로 대체해 계속 키울 수도 있다. 원하는 개수만큼 블록을 연결하면 나만의 작은 농장이 완성된다. 엔씽의 김혜연 대표는 ‘누구나 쉽게 농사를 지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농부의 경험에 의존하거나 날씨의 영향을 받았던 전통 농업 방식보다 훨씬 스마트하게, 농작물 재배에 필요한 모든 조건을 데이터화해 손쉽게 농사를 지을 수 있다. 사물인터넷(IoT) 기반의 텃밭을 구축한 아이디어는 획기적이고 신선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도 소프트웨어가 농장을 운영하고 수십여 종의 식물을 직접 키운다. 스마트 화분 ‘플랜티’는 지난 2015년 미국의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킥스타터’에서 10만 달러의 선주문을 달성했고, 이듬해 일본의 로컬 크라우드 펀딩도 성공적으로 마쳤다. 지금까지 설명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신기한데, 엔씽의 컨테이너 농장 ‘인도어 팜’은 더 신기한 풍경이다. 무균실 같은 공간에는 혼자서 무럭무럭 자라는 적상추와 로메인이 가득하다. 김혜연 대표는 이곳을 ‘플랜티 큐브’라고 불렀다. 수직으로 칸칸이 채운 상추를 바라보는 눈길에서 사랑이 엿보인다. 요즘처럼 미세 먼지로 골치 아픈 때, 에어 샤워를 해야 들어갈 수 있는 인도어 팜의 재배 방식은 더욱 환영받을 만하다. “마켓 중심의 농업을 지향한다. 농업과 유통, 마켓이 서로 연결되지 않는 지점들이 있다. 이를테면 샐러드 가게에서 바질을 쓰고 싶은데 키우는 곳이 없어 해외에서 직접 사다 냉동 보관해 사용하는 식이다. 또 농가에서 팔리지 않는 작물을 재배해 골머리를 앓기도 한다. 이런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실제로 한 태국 음식점에서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타이 바질을 의뢰해 엔씽에서 직접 재배하고 있다. 엔씽에 필요한 작물을 미리 주문하면 재배한다. 김혜연 대표는 가장 똑똑하고 집약적인 방식으로 농장을 도시 안에 가져왔다. 싱싱하고 푸른 로메인 상추를 보다 보니 화성에서 엔씽 농장을 짓고 싶다던 그의 말이 괜한 말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꿀벌과 커피 한 잔
어반비즈서울과 아뻬서울
도시 양봉가 그룹 어반비즈서울은 사라져가는 벌을 지키고, 꿀벌의 가치를 알리며, 새로운 도시 문화를 조성하는 활동을 한다. 어반비즈서울의 박진 대표는 “도시 양봉을 통해 꽃 발화가 20% 증가하고 곤충이 증가하고, 작은 새가 유입돼 궁극적으로 도시 생태계가 복원되는 것이 목표다”라고 했다. 도시 양봉을 하고 싶지만 공간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도시 양봉장 공유 서비스를 전개하고, 시간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위탁 양봉 서비스를 제공한다. 꿀벌처럼 열심히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어반비즈서울이 최근 국내 첫 도시 양봉 문화 카페이자 플래그십 스토어 ‘아뻬 서울(Ape Seoul)’을 오픈했다. ‘아뻬’는 이탈리아어로 ‘꿀벌’이란 뜻. 도시 양봉가이자 바리스타인 이재훈 대표가 꿀벌들이 오랜 시간 숙성시켜 만든 꿀을 채집해 서울 허니 카페라테, 천연 벌집 꿀 아포카토 등 ‘꿀맛’ 같은 마실 거리를 만들어준다. 당연히 오랜 시간 숙성시켜 만든 꿀도 판매하고 밀랍초, 오가닉 비누 등의 양봉 부산물 활용 제품 그리고 꿀벌과 서울을 테마로 디자인한 제품도 만날 수 있다. 한마디로 서울의 ‘꿀벌 기지’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우주복 같은 점프수트를 입은 양봉가들이 카페에 상주해 벌집에서 꿀을 채집하는 모습과 함께 엄청난 날갯짓을 하는 꿀벌도 곧 볼 수 있다고. 달콤한 서울을
만들기 위한 도시 양봉가들의 힘찬 날갯짓이 시작됐다.
‘농사돌’을 찾습니다
파릇한 절믄이
보통 토요일 오전 10시는 평일 새벽 6시 정도의 느낌이다. 대개 오전 없이 ‘오후부터 시작하는 토요일’이 많은데, 이런 이른 시간에 마포구 한 옥상에는 젊은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공동 경작 공동체 ‘파릇한 절믄이’ 회원은 옥상 텃밭을 가꾸기 위해 매주 토요일 이른 아침에 모여 함께 일을 한다. 모든 것은 2013년 도심 옥상에서 작은 텃밭을 가꾸는 것에서 출발했다. 서울의 독거 청년들이 땀 흘려 일군 경작물로 음식을 만들어 나눠 먹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문화이자 놀이가 된 것이다. 비영리 단체인 파릇한 절믄이의 경작인들은 대부분 회원이자 후원인이다. 하지만 한 달에 세 번 꾸준히 출석해 밭을 가꾸면, 회비를 내지 않더라도 함께 경작을 하는 ‘파머스 크루’가 될 수 있다. 마포구 도화동의 옥상 두 곳이 파릇한 절믄이의 터전이다. 한 곳에선 공동 경작을, 또 한 곳에선 개인에게 분양해 혼자 농사를 지을 수 있게끔 구분했다. 외부 강사를 초빙해 농사에 관한 특강을 하는 스쿨 프로그램, 홈쿠킹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김나희 대표는 “궁극적으로 도시 옥상이 생산적인 공간이 됐으면 한다. 그 가능성을 ‘파릇한 절믄이’가 예시로 계속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파릇한 절믄이는 파릇하고 건강한 서울을 만들기 위해 삽과 쟁기를 들고 쿨하게 일하는 ‘농사돌’ 시대를 활짝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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