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윤기는 임효준을 ‘애물단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남은 경기 일정이 다 끝나고 나면 ‘효준이랑 드라이브를 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일곱 살 어린 후배 효준이에 대한 애정이 뚝뚝 묻어난다. 어지간한 모델보다 포즈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끼 많은 곽윤기와 수줍은 듯 보이지만 할 거 다 하는 임효준은 꽤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쇼트트랙 국가대표팀의 형으로서 후배들을 이끌어온 곽윤기와 대한민국에 첫 금메달을 안겨준 임효준에게는 생애 첫 ‘동반 화보 촬영’이 꽤 즐거워 보였다. 올림픽이라는 큰 대회가 끝났으니 이제 빙판은 그만 쳐다봐도 될 거 같은데, 이들에게는 또다시 새로운 목표가 줄줄이 눈앞에 있다. 세계선수권대회와 국가대표 선발전이 이어지는 가혹한 스케줄 때문에 두 사람은 평창 선수촌에서 나와 곧장 태릉선수촌으로 옮겨갔다. 간만에 대한민국을 하나로 만들어준 두 사람은 지난 4년의 시간을 곱씹는 대신, 앞으로 4년을 다시 준비 중이다. 실력과 열정, 거기에 멋까지 겸비한 두 청년은 또 한 편의 ‘빙상 청춘 영화’를 찍기 위해 몸을 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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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이라는 어마어마한 목표를 마무리했다. 어디서 잘 쉬고 있을 줄 알았는데, 바로 훈련에 복귀했다고?
아직 세계 대회가 하나 남아 있고, 국가대표 선발전도 기다리고 있다. 우리 선수들은 2, 3, 4월이 항상 바쁘다. 계속해서 중요한 시합들이 있으니까 올림픽 스케줄의 연장인 셈이지.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마친 소감이 궁금하다.
동계 종목 선수라면 이번 평창 올림픽은 모두가 소원하는 대회였을 거다. 모든 선수가 원하는 그 자리를 국가대표로 참여한다는 것에 엄청난 책임감을 느꼈다. 마무리는 좀 아쉬웠다. 하지만 우리 후배들이 지난 소치 올림픽의 부진을 설욕하겠다는 약속을 지켜줘서 뿌듯하고 기특하기도 했다. 이렇게 든든한 후배들이 있어서 ‘내가 좀 더 버텨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또 한편으로 ‘이제는 경쟁자가 더 늘었구나’라는 생각도 들고.(웃음)
올림픽 같은 큰 대회일수록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것 같다. 컨디션 관리도 중요하지만 결국 ‘멘털 관리’가 관건이기도 하고. 4년간 땀 흘려 준비한 시합에서 원하건, 원치 않건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제일 어렵지 않나?
아무래도 시합을 많이 하다 보면 나만의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사실 정말 어려운 문제다. 계속 풀어야 하는 숙제다. 내 몸은 계속 변하고 경기의 트렌드도 변한다. 그 흐름을 잘 따라가는 게 중요하다. 무엇보다 어떤 피드백이건 받아들일 준비, 귀 기울여 들을 준비가 되어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세월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 선수가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사람들 기억 속에 남는 선수가 되려면 ‘올림픽 다관왕’, 금메달을 많이 따는 게 가장 빠른 길이겠지? 나는 올림픽 때 목표를 다 이룬 것이 아니라 아직도 계속 진행 중이다. 대표팀에 잔류해 잘 버티고, 올 한 해도 끊임없이 노력하다 보면 이런 나의 모습을 알아줄 거라고 믿는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꾸준한 내 노력을 인정받을 날이 올 거다.
지금부터 다시 또, 앞으로 4년 후를 준비하고 있다. 4년이란 시간, 긴 것 같지만 막상 준비하려면 짧지 않나?
짧지. 이제 내가 해야 하는 건 적절한 휴식과 컨디션 조절이다. 지금보다 더 몸 상태가 좋아질 순 없을 것 같고, 다만 이 기량을 얼마나 유지하느냐가 관건이다. 일단 부상이 없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지. 2010 밴쿠버 올림픽을 마치고 소치 올림픽까지 4년을 끊임없이 달렸다. 그러다 보니 정작 소치 올림픽 때는 지쳤다. 그래서 이번엔 잘 쉬고, 내 몸의 바이오리듬을 잘 맞춰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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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같이 촬영한 임효준 선수를 비롯해 여러 후배들과 올림픽을 치렀다. 후배들과 되게 편하게 잘 지내던데?
선후배를 떠나서 같은 선수 입장으로서 위나 아래는 없다고 생각한다. 각자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서슴없이 경기 내용을 피드백하려면 그런 벽이 없어야 한다. 선배가 어렵고 후배가 불편하고 그래서 소통을 놓친다면 좋은 팀을 만드는 데 방해가 된다. 그래서 선후배를 떠나, 친구 같은 관계가 가장 좋다. 내가 막내일 때 형들이 잘해줘서 그 습관이 남아 있는 덕분이기도 하다. 잔소리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직접 느끼기 전까진 아무리 말해도 모르기 때문이다. 스스로 느낄 때까지 기다려주려고 한다.
시합 전에 음악 듣는 선수들도 많이 보인다. 실제로 긴장을 줄이는 데 음악이 도움되던가?
나도 예전엔 음악을 많이 들었는데 언젠가부터 듣지 않았다. 이제는 긴장이 잘 되지 않는다. 떨리다가도 막상 얼음판에 들어가면 괜찮아진다. 시합 장비 챙기기도 힘든데, 헤드폰도 짐이더라.(웃음) 좀 더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경기에 임하는 편이다.
얼음판이 편하게 느껴진 건 언제부터였나?
잘하든 못하든 순위에 집착하지 않으면 된다. 물론 욕심은 있어야 하지만 지나친 집착은 해롭다. ‘나 오늘 몇 등 해야 돼’라는 생각만 없으면 긴장이 덜 된다.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잖아.
그치. 그런데 하다 보면 된다. 보통 은퇴를 앞두고 이런 편안한 기분을 느낀다던데… 하하.
아직 은퇴하려면 멀었는데? 나이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나 보다?
세계 대회 나가면 나보다 나이 많은 선수들이 진짜 많다. 그래서 걱정을 별로 하지 않았다.
아, 물론 가끔 어려지고 싶다는 생각은 하는데. 하하. 그래도 지금이 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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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보니까 프로필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더라. ‘의심하지 마라.’
‘나 자신을 의심하지 말라’는 뜻이다. 시합 전에 ‘내가 상대 선수를 이길 수 있을까?’라거나, ‘ 내가 이 운동량을 소화할 수 있을까?’ 의심을 할 때가 많다. 근데 의심이 일단 시작되면 한도 끝도 없다. 시합과 훈련에 임할 때는 무조건 나를 믿어야 한다. 그래서 그 말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그렇게 의심하지 않아서인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처음에 1등으로 결승선을 통과할 때도 실감이 나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땠나?
꿈인가 생시인가 했다. 마지막 한 바퀴 돌고 골인하는 순간 ‘내가 1등이구나’ 생각하고 죽기 살기로 탔다. 더 빨리 가야 된다는 생각밖에 없었고, 그래서 이를 악물고 달렸다.
확실히 올림픽이 주는 중압감이 있지?
엄청 심했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선배들이 늘 올림픽 얘기를 했다. 난 그게 뭔지 잘 몰랐다. 직접 시합을 뛰고 경험을 해보니까 그때 왜 선배님들이 올림픽이라는 목표를 늘 언급했는지 알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올림픽은 그냥 국제 대회일 수 있다. 그런데 확실히 무게감이 다르다. 흔히 ‘하늘이 도와줘야 금메달을 딴다’고 하던데, 실력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결과가 절대 아니다. 올림픽은 나가본 사람만 아는 게 있다.
꿈이 뭔가?
평창 동계올림픽 금메달. 그 꿈이 너무 컸기 때문에 ‘올림픽에서 떨어지면 그만둘 거야’ 이런 생각으로 시합에 임했다. 진짜로 떨어졌으면 힘들었을 거다.(웃음) 운 좋게 국가대표가 됐고, 또 하늘이 많이 도와줬고, 그래서 금메달을 딸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7번이나 수술하면서 재활 치료를 잘 버틴 결과이기에 더 뿌듯할 거 같다. 근데 정말 운동선수들 독하다.
독하지 않고서는 금메달 못 딴다. 나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는 정말 훌륭한 선수들이 많다. 근데 실력과 별개로 운이 없어 대표팀에서 탈락하고, 넘어지고 등 변수가 많아서 힘들다.
쇼트트랙 경기 전에 각 선수들이 현재 랭킹 몇 위인지를 알려준다. 그런데 그 순위가 별 의미 없는 게, 변수가 참 많아서다.
그래서 결승에 진출한 선수는 모두 금메달을 딸 능력이 있다. 랭킹은 중요하지 않다. 아무리 세계 랭킹 1위를 했더라도 올림픽에서 1등을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 랭킹 1위부터 20위까지는 전부 금메달을 딸 실력이 있는 선수이기 때문에 운, 실력, 경험, 게임 운영 등 여러 가지가 잘 어우러져야 메달 색깔이 정해지는 거다. 그렇기에 나 역시 감사하게 생각한다. 평창 동계올림픽 금메달이라는 목표를 이룬 셈이니까. 얼마 전에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지금까지 쇼트트랙 종목에서 연속 3회 올림픽 메달을 딴 선수는 없었다. 다음 베이징 올림픽, 또 그다음 올림픽까지 메달을 목에 거는 것이 목표다. 포기하지 않고 노력할 거다. 힘든 순간이 분명 오겠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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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 선수촌에서는 재밌는 일 많았나?
개막 다음 날부터 거의 끝날 때까지 시합이 계속 있어서 구경도 못 다니고, 개막식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시합 끝나고 이틀 정도 돌아다녔는데 되게 재미있더라고. 올림픽은 전 세계가 하나 되어 다 함께 어울리고 시합하고, 그 모든 경쟁이 끝나면 파티가 열린다. 그 자체가 나에게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모든 순간이 기억에 남겠지만 인상적이었던 것은?
최고와 최악의 순간을 모두 맛봤다. 최고의 순간만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일단 금메달을 딴 것이 베스트였고, 워스트는 역시 마지막 단체전에서의 실수였다. 단체전만큼은 금메달을 가져오고 싶었다. 근데 내 실수로 인해 마지막에 결과가 아쉬웠는데, 정말 동료들에게 미안하더라고. 너무 미안해서 형들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괜찮다고 말해주는 동료들이 있어서 나는 더 큰 힘을 얻었고, 마음을 단단히 먹을 수 있었다.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게끔 더 노력할 거다. 내가 더 배울 수 있는 경험이 되었다. 만약 베이징 올림픽을 나간다면 그때는 금메달 몇 개 더 욕심내려고 한다. 모두 많이 응원해주셨으면 좋겠다.
한창 재밌는 거 하고 지낼 때다. 쇼트트랙 말고 관심사는?
자동차와 패션? 현재의 드림카는 포르쉐다. 성능도 성능이지만 디자인을 많이 보는데, 포르쉐는 사소한 거 하나하나 옵션이 있어서 원하는 스타일로 꾸밀 수 있을 거 같다. 옷이랑 똑같이 내가 원하는 스타일로 차를 만들 수 있으니까.
서킷도 가봤나?
못 가봤다. 근데 내 직업이 트랙을 도는 일이라 레이싱도 잘할 것 같다.(웃음) 나중에 카레이서를 해보고 싶다. 레이싱 학원이 있다고 해서 이 다음에 운동을 그만두면 배워볼까 한다.
그런데 또 시합이 있다고?
지금 힘들긴 한데 다음 주에 캐나다에서 시합이 있다. 재미있게, 욕심 부리지 않고, 위험하지 않은 선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그 시합 끝나면 쉴 수는 있나?
2개월 정도 쉴 수 있을 거 같다. 그때는 여행도 다니고, 하고 싶었던 일도, 배우고 싶었던 것도 하나씩 해나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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