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향 후 4년이 가장 힘들었다. 그렇게 힘든 적이 없었다. ‘성적도 잘 안 나올 텐데 뭐하러 전향하냐’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는데 그래서 더 잘하고 싶었다. 엄청 잘하고 싶었는데 마음만큼 잘되지는 않았다. 물론 도전한다는 것 자체로 큰일을 이룬 것이라 말해주는 사람들도 많았다.”
지난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동메달리스트, 2010 쇼트트랙 세계선수권 챔피언,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여자 쇼트트랙 2관왕. 모두 박승희의 기록이다. 박승희는 대한민국 선수 중 동계올림픽에서 가장 많은 메달을 획득한 선수이기도 하다. 소치 동계올림픽 쇼트트랙에서 금메달 2개와 동메달 1개를 딴 박승희는 이번 올림픽으로 또 하나의 기록을 세웠다. 대한민국 빙상 역사상 올림픽에서 쇼트트랙과 스피드 스케이팅 두 종목에 모두 출전한 최초의 선수. 지난 4년 동안 박승희는 누구도 가지 않았던, 누군가는 지탄하기도 했던 길을 저벅저벅 걸어왔다. 평창 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1000m에 출전한 박승희는 16위를 기록했다. 쇼트트랙 경기용 헬멧 대신, 클랩 스케이트를 신고 스피드 스케이팅 1000m 경기의 출발선에 섰던 박승희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강인하고 우아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은 박승희의 마지막 올림픽이자, 스케이트 선수로서의 마지막 대회였다.
“만약 밴쿠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땄다면, 그때 은퇴했을 거다.빨리 성공해서 박수 칠 때 떠나고 싶었거든.”
자국에서 열리는 올림픽 경기에 출전하는 건 선수들에게도 아주 특별한 경험이겠지?
그래서 올림픽이 끝난 뒤 조금 아쉬웠다. 한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에서 메달을 땄다면 훨씬 좋았을 테니까. 쇼트트랙에 출전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짐작 못했다. 그런 생각을 했을 줄은.
스피드 스케이팅보다는 성적이 좋았을 거라는 것은 확실하다. 이런 응원 속에 내가 좋은 성적으로 메달을 받았다면 더 기뻤을 테니까. 쇼트트랙 경기에 나갔다면 메달을 목에 걸 수도 있었을지 몰라, 그런 생각.
선수 생활을 마감하는 마지막 올림픽에서 출전 종목을 바꾸어 도전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대단한 일이다. 전향할 생각은 언제 처음 했나?
여러 순간이 있었다. 일단 소치 올림픽 때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막연히 부러운 점이 하나 있었다. 스피드 스케이팅은 한 부문당 경기를 한 차례만 치른다는 것. 쇼트트랙은 개막식 직후부터 폐막식 직전까지 계속 뛰어야 하는데.
(웃음) 엄청나게 단순한 이유네.
하하. 출전 종목에서 한 번 열심히 달리고 나면 마음 편히 올림픽을 즐길 수 있다는 게 정말 부러웠다. 소치 올림픽이 끝난 뒤, 은퇴할 마음이었다. 운동을 꽤 오래 쉬었다. 5~6개월간 안 했으니까. 스피드 스케이팅은 쇼트트랙과 달리 클랩 스케이트라는, 스케이트 날이 신발에서 떨어지는 스케이트를 신는다. 어느 날 그걸 다시 신어보고 싶더라. 어릴 때, 처음 스케이트를 시작했을 때는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였거든. 그때가 소치 올림픽이 끝난 해 8월이었고 스피드 스케이팅 팀의 전지 훈련이 9월, 선발전이 10월에 있었다. 결국 전지훈련에 따라가고 선발전을 치렀는데 통과한 거다. 이건 지금 생각해도 너무 신기한 일이다. 훈련법이 아예 다른 운동을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 4년 만에 올림픽이라는 국제 대회에 출전한다는 거, 쉽지 않은 일이라고들 말하는데. 스스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 같다. 도전하는 일에 용감한 편이다.
좋은 성적 거두기도 어려운 스피드 스케이팅을 왜 하냐는 둥 말도 많았는데.
정말 많았다. 그런 말 들으면 그냥 별 대꾸 안 했다. ‘멘털’이 정말 강한 편이라 자부하는데, 전향 후 평창 올림픽을 준비한 4년 동안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물론 주변 사람들은 그 정도면 흔들린 것도 아니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나름대로는 꽤 힘들었다. 정신적으로 힘들면 운동 역시 생각만큼 잘되기 어렵다. 그때 참 어려웠다.
선수 생활하면서 가장 힘든 시기 중 하나였겠다.
전향 후 4년이 가장 힘들었다. 그렇게 힘든 적이 없었다. ‘성적도 잘 안 나올 텐데 뭐하러 전향하냐’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는데, 그래서 더 잘하고 싶었다. 엄청 잘하고 싶었는데 마음만큼 잘되지는 않았다. 물론 도전한다는 것 자체로 큰일을 이룬 것이라 말해주는 사람들, 응원을 보내주는 이들도 많았다.
결국 평창 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1000m 경기를 치른 직후에 눈물을 보였다.
그러니까. 나 스스로도 울 줄 몰랐다. 복합적인 감정이었다. 평창 올림픽을 한 달 앞뒀을 때, 훈련 중에 다쳤다. 다친 부위가 결국 경기 때도 말썽이었다. 다치기 전에 컨디션과 성적이 한창 좋았거든. 1000m 경기에서 생각한 것보다 기록이 안 나와 짜증이 났다. 개의치 않고 관중석에서 응원해주던 분들에게는 감사했고, 엄마를 보면 미안했다. 한국에서 열린 올림픽이라 가족이 처음으로 모든 경기를 다 보러 왔다. 이렇게 가족이 동석한 대회에서 더 나은 성적을 올렸다면, 혹 메달이라도 땄다면 현장에서 함께 큰 기쁨을 나눌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나 자신에게 짜증나고 속상하고, 고맙고 미안해서 울었던 것 같다. 이제 정말 끝났다는 생각이 들어 홀가분하기도 했다. 복잡했다. 그리고 (노)진규 생각이 나서 많이 울었다.
고 노진규 선수와 각별히 친했던 것으로 안다.
전향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진규와 연락을 했었다. 진규는 정말 장난기가 많은 친구거든. 늘 티격태격하며 장난치곤 했는데, 그날도 ‘왜 전향하냐’는 말로 장난을 치다가 갑자기 굉장히 진지하게 ‘너는 정말 잘할 거다’라는 말을 해주더라. 진규의 그 말이 경기 끝난 순간에 생각나 더 울었다. 전향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진규가 세상을 떠났다. 그때부터 내 목표는 ‘메달을 따야겠다. 따고 나서 진규 이야기를 꼭 해야겠다’는 것이었다. 좋은 성적을 얻고 나서 진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 때문에라도 좀 더 잘했어야 했다.
소치 올림픽 이후로 정말 은퇴했다면, 그때가 마지막이었다면 어땠을 거 같나?
한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남았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면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전향한 것이, 그렇게라도 올림픽에 나선 것이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그때의 나에게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었거든. 스피드 스케이팅을 할 것인가, 은퇴를 할 것인가. 쇼트트랙은 정말 하기 싫었다.
그 이유로 “팀 동료 간에도 한 경기에서 부딪히며 경쟁하는 것이 싫다”는 이야길 했다.
그게 가장 컸다. 한국이 쇼트트랙 강국이라, 결승에 오르면 자국 선수들을 앞뒤에 둔 채 함께 달린다. 금메달 따고 싶으면 앞 선수를 제치고 나가야 한다. 그때만큼은 앞뒤 가리지 않고 치고 나가야 하는데, 그럴 때마다 이기려는 감정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평소엔 잘 지내다가 시합 때엔 사활을 걸고 견제해야 한다는 종목의 특성이 힘들었다.
그런 걸 아무렇지 않게 잘해낼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나 보다.
할 수는 있었고, 하고 있었다. 그런데 소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나니 그만하고 싶더라. 이왕 시작했으니 올림픽 금메달은 목에 걸고 싶었고, 이뤘으니 여한이 없었다. 만약 밴쿠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면, 그때 은퇴했을 거다. 빨리 성공해서 박수 칠 때 떠나고 싶었거든.
밴쿠버 올림픽이라면 고작 열아홉이었는데 은퇴라니. 너무 이른 것 아닌가?
일찍 은퇴하고 싶었다. 쇼트트랙 선수가 평생 직업은 절대 될 수 없다는 걸 어릴 때부터 알았다. 은퇴를 너무 늦은 나이에 하면 코치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아홉 살 때 처음 스케이트를 탔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
어릴 땐 그냥 놀면서 탔다. 국가대표나 올림픽 경기 같은 것도 몰랐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하나 둘 목표가 생기더라. 일단 눈앞에 있는, 하고 싶은 걸 하나 이뤄내고, 또 이뤄내다 올림픽을 알게 됐다. 그럼 올림픽 금메달은 따봐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된 거다. 밴쿠버 올림픽에 출전했는데 금메달을 못 땄고, 단지 그 이유로 더 열심히 준비해 소치 올림픽에 나섰다. 내가 원래 좀 단순하다.
그런 성격이 선수 생활에 도움됐겠다. 한계에 부딪히는 수많은 순간을 지나며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길이니까.
워낙 단순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할 때에는 별 걱정을 안 하는 편이다. ‘안 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도 안 한다. 될지 안 될지는 해봐야 아는 거고, 대체로 그냥 다 잘될 거라고 생각해버린다. 성격이 이래서 (정신적인) 슬럼프도 없었다. 그런데 누군가 슬럼프가 있었냐고 묻기에 없었다고 했더니, 이런 말을 하더라. 슬럼프를 겪었는데 본인이 인식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그랬을 것 같기도 하다.
평창 올림픽이 ‘정말’ 마지막 올림픽이었다. 끝나고 나니 어떤가?
쇼트트랙만 하다가 선수 생활을 마쳤다면, 나는 메달권 선수로서의 위치만 경험해봤을 거다. 그런데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전향하며 메달권에서 먼 선수로도 살아본 거다. 삶이란 건 어차피 늘 위쪽에만 있지 않잖아. 내려가보기도 해야 다시 올라가는 법을 알 테니까. 언젠가는 운동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해야 한다. 바닥부터 시작하는 경험을 해본 사람과 그런 걸 모르는 사람은 천지 차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어떤 일을 하며 살고 싶은가?
선수 생활 이후에 하고 싶은 일이 분명했다. 어릴 때부터 패션 쪽에 관심이 많아, 은퇴 후엔 패션 분야의 일을 하고 싶었다. 오래 꿈꿔온 일이다. 궁극적으로는 내 브랜드를 만들고 싶은데 아직은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다. 지난 4년 동안 그 꿈에 관한 계획을 일단 미뤄뒀거든.
이제 다시 시작이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잘되기 힘들 거라고 생각한다.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전향했을 때보다 더 힘들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나는 좋아하는 일의 어려움은 별로 느끼지 못하는 편이다. 재미있을 것 같다. 설렌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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