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진부한 표현이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2018년이 지나가고 있다. 정말 눈을 깜빡하기만 해도 시간이 훅훅 지나간다. 계속해서 다음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면서 정신없이 보내고 있다. 어느 날 탈고를 하고 텅 빈 마음으로 카페에 멍하니 앉아서 작년 한 해를 돌아봤다. 모든 것들이 다 좋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홍콩에서 보낸 며칠이 생각났다. 영화 <청년경찰>의 홍콩 개봉을 위한 프레스 투어 일정이었다. 아마 르네상스 호텔에 머물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주최 측에서 글쎄, 나에게 스위트룸을 제공해줬다. 너무나도 넓고 멋진 방이었다. ‘내게 이런 방을 주다니’ 하고 혼자 감격하고 있었는데 이튿날 내 방은 기자들과의 인터뷰 룸이 됐다. 어쨌든 하루 종일 숙소에 갇혀 인터뷰를 하는데 배가 고파졌다. 그래서 중간에 딤섬과 볶음밥을 배달시켜 먹었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맛있었다. 특히 볶음밥이 엄청 맛있었다. 돼지고기와 함께 볶은 안남미를 퍼먹으면서 나는 홍콩의 거리를 느꼈고, 홍콩 누아르의 주인공이 됐다. 호텔 방에서 홍콩의 진한 향기, 강호의 의리가 땅바닥에 떨어졌던 그 시절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프레스 투어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는데 가끔 그 맛이 그리웠다. 그러던 와중에 여자친구와 ‘청키면가’를 찾았다. ‘청키면가’는 홍콩의 완탕면 명가가 한국에 진출한 음식점인데 음식이 제대로다. 따뜻한 국물에 꼬들꼬들한 계란면을 후루룩 넘기는 완탕면이 맛있다고 하는데 사실 나는 그곳에서 볶음밥만 먹는다. 그곳 볶음밥을 퍼먹으면 다시 한번 홍콩 거리를 느끼고, 홍콩 누아르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맛도 맛이지만 가게 분위기 자체가 홍콩을 뚝 떼어다 서울 한복판에 옮겨놓은 것 같다. 일단 입구 간판의 빨간색 한자 네 글자부터 홍콩 누아르 느낌이 물씬 난다. <영웅본색> <첩혈쌍웅> 뭐 이런 영화들도 전부 다 네 글자니까. 좀 더 분위기를 파악하려면 가게 구석구석을 잘 살펴봐야 한다. 오픈 키친에서 흘러나오는, 홍콩에서 온 주방장들의 대화가 압권이다. 특히 주방 구석진 곳에 앉아 있는 대머리 아저씨는 가만히만 있어도 카리스마가 폭발한다. 보고 있으면 <무간도>의 한 장면 같다. 그리고 채소를 다듬는 깡마른 아저씨가 있는데 이분이 미장센을 완성한다. 눈 감은 채 채소를 엄청 빨리 썰고 칼은 나무 도마 위에 던져 메다꽂을 것만 같다. 우리가 홍콩 영화에서 보고 느꼈던 특유의 바이브가 넘쳐흐르는 공간이다.
그렇기에 ‘청키면가’에서 밥을 먹으면 미식뿐 아니라 홍콩의 공기까지 느낄 수 있다. 홍콩에서 공수해오는(사실 확실하지는 않다만) 라조장은 정말 일품이다. 볶음밥에 살살 발라서 비벼 먹으면 이국적인 얼큰함을 느낄 수 있다. 다시 한번 말한다. 정말 최고다. 계산대에서 작은 병을 5천원에 팔길래 순간 살까 고민도 했는데 왠지 이 소스는 안남미가 아니면 어울리지 않을 거 같아서 참았다. 이천 쌀밥에는 그 소스가 안 맞을 것 같다. 그래서 홍콩을 느끼고 싶은데 돈도 없고 시간도 없다면 ‘청키면가’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아이 러브 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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