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ustration 장재훈 Editor 이지영
도대체 채널을 어디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 우리는 드라마 춘추전국시대에 살고 있다. 몇 억 규모라는 말은, 비단 영화만의 얘기가 아니다. 요즘 드라마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수십억씩 들어간다. 이유는 간단하다. 배우들의 몸값이 금은보화보다 비싸졌기 때문이다. 동시에 시청자들의 안목 역시 예전의 그것은 아니다. 요즘 시청자들은 ‘쪽대본’으로 만들어진 드라마보다 미리미리 정성 들여 만든 사전 제작 드라마를 원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드라마 한 편 만들고 나면 2억은 손해 본다’는 말이 나오게 됐다.
방송사도, 외주 제작사도 피해자이긴 매한가지다. PPL과 해외 판권, CF만으로는 도저히 제작비 충당이 안 된다는 얘기다. 좋은 드라마에 대한 경쟁은 치열해졌고, 해결 방안은 아직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드라마는 너무 재미있다. 최근 <하얀거탑>과 <주몽>이 화제를 뿌리며 종영을 했고, 매일 저녁이면 <거침없이 하이킥> 볼 생각에 퇴근길 발걸음이 가볍다. 드라마만 있으면, 애인도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최근 김종학프로덕션, 초록뱀미디어, 그룹 에이트, 올리브 나인, 윤스칼라, 이관희프로덕션, 삼화프로덕션, 로고스필럼, 팬엔터테인먼트 등 국내의 대표적인 드라마 제작사 31곳이 모여 ‘한국 드라마 제작사협회’를 발족했다. 본격적으로 드라마 제작 현실 개선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대체 해결 방안이 있기는 한 걸까. 드라마 제작사 두 곳을 찾아 그들의 심정을 물었다. “요즘 드라마 만들기 어떠십니까?”
올리브 나인
<황진이>, <주몽>, <프라하의 연인>,
<불량주부> 등 제작
수없이 많은 시놉시스가 들어올 것 같다. 올리브 나인에서 제작하는 드라마, 선택의 기준이 있나.
일단 두 가지 면을 본다. 첫째는 부가 산업을 용이하게 할 수 있겠는가를 본다. 그래야만 콘텐츠의 권한이 올리브 나인으로 가기 때문이다. 권한이 있는 상태에서 부가산업을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건 큰 차이가 있다. 돈을 버는 차원에서의 선택인 셈이다. 둘째는 제작을 했을 때 시청자들이 관심을 갖겠다 싶은 소재를 택한다. 아무래도 시청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마왕>, <헬로우 애기씨> 등 벌써부터 잡혀 있는 드라마가 줄을 잇는다. 다행히 올리브 나인은 편성권 따내기 경쟁에서 꽤 성과를 거둔 것 같다.
그동안 많은 외주 제작사들이 생겼고, 편성권을 따내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진 건 사실이다. 다행히 올리브 나인은 그동안 우리가 만들었던 드라마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했다는 점 덕분에 올 하반기만 해도 편성이 확정된 것만 다섯 편 정도 되고, 편성 예정 작품이 세 편이나 된다.
제작사들은 우후죽순 격으로 늘고 있지만, 방송사들이 좋아할 만한 감독이나 작가는 흔치 않기에 집중화 현상이 나타나게 된 거다. 늘 ‘올리브 나인’ ‘삼화프로덕션’ ‘김종학프로덕션’ 이 세 곳에서 만든 드라마가 편성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형국이다.
<주몽>의 정형수 작가, <환상의 커플>의 홍자매 작가 등 소속 작가만 해도 엄청난 걸로 알고 있다. 작가들도 몸값이 엄청 올랐을 텐데.
현재 소속 작가만 해도 40여 명인데, 작가들의 몸값은 3년 전에 비해 두 배 이상 올랐다고 보면 된다. 제작사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배우들 몸값만 뛴 게 아닌 셈이다. 그렇게 되니 제작비가 또 턱도 없이 모자라게 되는데, 그걸 해외 판권이나 PPL로 채우기 힘들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부가산업을 하는 거다.
최근 제작한 <주몽>, <황진이> 등의 반응이 좋았다. 수익은 좀 있었나.
두 편 다 엄청난 시청률과는 달리 처음부터 고민이 많았던 작품이다. 일단 <주몽>만 해도 60부작인 데다 편당 제작비는 엄청났다. 게다가 사극이기 때문에 PPL 자체가 불가능한 드라마였다. 회사에서 <주몽> 관련 부가상품을 80가지 이상 마련한 데는 이유가 있었던 거다. <황진이> 역시 마찬가지로 PPL이 전혀 안 되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관련 상품이 45가지나 나왔다. 다행히 그런 것들이 시장에서 좋은 반향을 일으키면서 흑자를 만들어내고 있다. 부가산업을 하면서 손해가 나는 부분을 메워야 하는 게 현실이다.
해외 판권 수익은 어떤가. 기존에 비해 한국 드라마에 대한 평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한국 드라마가 신데렐라 스토리를 지닌 트렌디 드라마이기 때문에 다들 식상해하는 것 같다. <주몽>과 <황진이>가 역대 드라마 수출가를 깬 이유는 아마도 ‘퓨전 사극’이라는 장르 덕분이었을 거다. <주몽>은 벌써 8개 국가에 계약이 됐고, 수입을 검토하고 있는 국가 역시 10곳이나 된다.
해외 판권이나 부가산업이 있어야만 겨우 적자를 면하는 상황이다. 방송사와 외주 제작사와의 관계,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 법도 한데.
민감한 부분이다. 방송사 입장에서는 시청률이 올라야 광고를 할 수 있으니까 톱 배우를 원할 수밖에 없고, 반면 우리는 그럴수록 배우들의 몸값만 높아지고 제작 환경은 안 좋아진다는 입장이다. 방송사가 무리한 요구를 한다고는 생각지 않지만 이를 조금 더 슬기롭게 얘기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었으면 한다.
얼마 전 올리브 나인은 KT에 인수됐다. 제작 환경이 훨씬 더 자유로워졌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자금이 안정되어 예전보다 큰 기획을 할 수 있게 됐다. 자금의 구애를 덜 받으면서 일할 수 있으니 좀 더 창조적인 작업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올리브 나인에서 보는 한국 드라마의 미래는 어떠한가.
앞으로 3년 후면 TV를 보는 시대가 끝난다는 거다. 그 시대가 오면 시청자들이 보고 싶은 부분만 파일 형태로 골라 보게 될 거라는 게 우리와 KT와 공통된 생각이다. 그때가 되면 마치 홈쇼핑채널에서처럼 TV를 보다가 마음에 드는 제품을 바로 그 자리에서 구매할 수 있게 될 것이고, 이는 엄청난 시장을 형성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시청자들이 지금의 TV를 보지 않게 될 확률이 99.9%는 될 것이다. 결국 CF라는 부분이 사라지게 되고, 기업 입장에서는 PPL을 통한 판매로 승부수를 던져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되는 거다. 드라마 자체가 광고가 되는 거고, 콘텐츠가 유통이 되고, 유통 자체가 광고가 되는 그런 상황이 연출될 거라는 게 향후 한국 드라마의 전망이다.
정부승(올리브 나인 마케팅본부 부장)
김종학 프로덕션
<하얀거탑>, <달자의 봄>, <넌 어느 별에서 왔니>, <풀하우스>, <모래시계>, <여명의 눈동자> 등 제작
다른 제작사들과 차별화되는, 김종학프로덕션만의 색깔이 있을 것 같다.
일단 작가와 감독의 색이 짙다. 아무래도 김종학 감독이나 송지나 작가의 경우 메시지를 던지는 드라마를 만들려 하는 편이고, <대장금>을 만든 이병훈 감독은 늘 역사에 대한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이재규 감독이나 윤철용 감독은 선이 굵은 느낌이고, 표민수 감독은 여성스러우면서 아기자기한 부분이 있다. 이번에 <하얀거탑>을 만든 안판석 감독은 정통 드라마를 만드는 데 강하다.
오랜 역사와 입지가 있기 때문에 편성권을 따내기가 다른 제작사에 비해 어렵지는 않을 것 같다. 지금 김종학프로덕션의 고민은 무엇인가.
아무래도 편성권 따내는 걱정은 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방송사에서 우리 감독이나 작가를 원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걱정은 없이 간다. 단지 우리를 늘 괴롭히는 고민은 더 잘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이다. 이제는 아시아를 넘어 미주까지 봐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스갯소리로 김종학프로덕션은 연출자가 사장이기 때문에 일단 작품에 돈이 많이 들어간다. 일단 작품 퀄리티에 욕심이 많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질 못하는 거다. 보통 현대물 드라마 한 편 하면 2억이 손해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그동안 제작비는 어느 정도 비대해졌나.
방송사에서 받는 제작비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2000년을 기준으로 본다면 오히려 기획 작품의 제작비는 그때가 더 많았다. 다만 하루가 다르게 배우의 몸값이 치솟고 있기 때문에 딱 그만큼의 제작비가 더 드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방송사한테만 뭐라 할 수도 없는 게, 몇 개의 CF만으로는 제작비 충당이 안 된다는 거다. 그러니까 결국 이런 부분은 정책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얘기밖에 안 나온다. 한류, 한류 하면서 그걸 만든 사람들에게 투자가 안 이루어지고 있지 않나.
제작비를 충당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PPL과 해외 판권 정도인가.
PPL의 시대는 이미 월드컵 때 지나갔다. 그건 이제 돈으로 얘기하기 미미한 수준이다. 제작비가 현실화되어야 하는 방법밖에 없다. 또 한편으로는 기업에서 드라마를 한류 마케팅의 일환으로 삼았으면 한다. 해외에서 우리 드라마가 잘되면, 동시에 기업의 가치 또한 올라간다. 그건 당연한 거다. 게다가 중국 같은 경우는 가상 광고에 대한 규제가 없기 때문에 PPL로 기업을 알릴 수 있는 범주가 엄청나다. 하지만 우리는 당장 이게 뭔가. 드라마 한 편 만들려면 기업에 가서 돈 달라고 해야 하니 말이다. 가상 광고, 간접 광고 규제가 과연 바람직한가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한다.
가상 광고란 뭔가.
이를테면 다 만들어진 드라마에 CG로 제품을 넣는 거다. 국내 방송용이야 어쩔 수 없다 치고, 당장 해외로 수출하는 드라마에 가상 광고를 넣는다고 생각해봐라. 수익이 엄청날 것이다. 기업에서 그만한 광고 효과가 어디 또 있겠나.
이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어디에서 찾고 싶나.
이를테면 정책적으로 방송사의 고급 인력을 외주로 돌린다든가 하는 시스템적인 부분이 필요하다. 1995년에만 해도 방송사가 90%를 자체 제작했다. 하지만 지금은 50, 60%를 외주에서 제작하는데 그때 그 인원은 고스란히 방송국에 남아 있다. 밥줄을 자르라는 게 아니다. 시장 논리에 맞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거다.
김종학 프로덕션의 장단기 계획을 말해달라.
고현정 , 하정우 주연의 <히트>가 다음 주 방송 예정이고, 배용준 주연의 <태왕사신기>가 있다. <정조대왕>, <목포의 눈물> 역시 계획되어 있다. <풀하우스 2>도 내년으로 넘어갈 즈음 시작될 것 같다.
박창식(김종학프로덕션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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