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유불급(過猶不及). 알다시피 ‘정도를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는 뜻. 공자가 〈논어〉에 쓴 아포리즘이다. 때 아닌 공자 왈 맹자 왈은 이른바 ‘설 영화’에 대한 유감 때문이다. 그 영화들이 나서서 결정적으로 입증하고야 만 최근의 ‘어떤 현상’ 탓도 있다. 차차 풀어볼까. 1월 말, 2월 초에 시작되는 이 시즌은 설 연휴에 대한 고려는 물론, 짧게는 밸런타인데이와 길게는 공휴일인 삼일절, 화이트데이 특수까지를 겨냥한 중장기 레이스가 펼쳐지는 시장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이라는 국가적으로도 이슈가 적잖은 기간 동안 많은 이들을 TV에 묶어두겠으나, 어쨌든 졸업/입학 시즌임도 분명해서, 이래저래 ‘잘 팔릴 영화들’이 앞다퉈 극장을 선점하려 애쓰는 연례적 각축장이기도 하다.
〈염력〉이 그 시장에 먼저 뛰어들었다. 기대에는 못 미쳤다. 개봉과 동시에 진지한 혹평으로 삼삼오오 환담했다. 어쭙잖게 얻은 초능력, 회복해야 할 부성애, 안타까운 철거민, 사악한 자본과 그에 봉사하는 공권력, 특히 이 모든 걸 한 스크린에 구현하기 위해 끌어들인 ‘용산 참사’라는 메시지 매개의 자가당착이 유독 눈에 밟혔다. 〈조선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이 뒤어어 심판대에 올랐다. ‘사라진 추리의 묘미’ ‘시리즈의 고려장’ ‘웃다가 한숨 나오는 새로운 장르’ 등의 부정적 반응은 조악하고 타성에 젖어 그저 웃기는 장면에만 골몰한 듯 보이는 제작진의 개그 욕심을 꼬집는 온당한 지적이었다. ‘광장의 촛불’을 떠오르게 하려는 의도가 분명한 풍등 장면의 배치, 웃음기 싹 거두고 ‘진정으로 만들고 싶었던 세상’을 읊조리는 감성적 언밸런스에선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흥부: 글로 세상을 바꾼 자>는 최소화한 코믹 코드와 시종일관 진진한 전개로 자승자박했다. ‘포악한 권력자 형과 명망 좋은 민란군 동생’을 모델로 쓴 〈흥부전〉이 역모의 단초가 된다는 상상력까지는 무난하다. 하지만 “꿈을 꾸는 것도 죄야” “백성이 먼저인 선군이 되어주시옵소서” “이 나라의 주인은 우리 백성이오” 등 정치성 단골 대사를 무던히도 나열하니, 제작진이 원했던 메시지는 도리어 강렬히 도달하지 못한다. 〈1987〉 출연을 자청해 ‘의로운 배우’로 어필한 강동원의 〈골든슬럼버〉 역시 ‘어떤 현상’에 묵직히 가담하고 있다. 영화는 가해자 국가 권력과 피해자 소시민을 대놓고 맞붙인다. 이들의 충돌을 말하기 위해 사제 폭탄과 차량 테러와 총기 난사와 둔기 살해 같은 충격 요법을 제작진은 연쇄적으로 사용한다. 국정원을 비롯한 국가 장치가 정보와 미디어를 장악하고 조작을 통한 대국민 착시 효과로 극단적 음모론을 치밀히 수행한다. ‘권력의 빅픽처’를 선명히 보여주는 전개 방식이고, 그 그림은 “국가가 하는 일에 왜 나서?”라는 화룡점정 대사로 상징화한다.
자, 이제 ‘어떤 현상’의 핵심에 들어섰다. 비교적 최근 (그러니까 아마 정권 교체 전후의 근거리 역사) 관객과 만나는 상업 영화들의 태도엔 신기하다 싶을 정도로 우연의 일치가 감지된다. 이를 ‘메시지 강박증’이라고 일단 해두겠다. 대놓고 어필하든 은근히 심어두든, 관객에게 ‘뭔가 의미 있는 걸 던지고 싶은(던져야겠다는)’ 제작진의 설익은 집착이 어렵지 않게 드러난다. ‘과할 정도’라고 하면, 과한 걸까? 메시지 자체가 화근은 아니다. 국가와 사회와 개인을 각성시켜 보다 민주적이고 보다 공화적이며 보다 미래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데 기여할 메시지는 많을수록, 잦을수록 좋다. 문제는 자연스럽지 못한 억지, 면피용 구색 갖추기, 요령 부득한 투박함, 그리고 심지어는 대중 정서에 영합해 상업적 성취만 노린 게 확실한 오염된 메시지의 남발이다. 그럴수록 쓰임새는 어설프고 허술하며 무분별하다. 그런 (무)의식적 의무감에서 착상한 메시지는 캐릭터 정의와 상황 설정과 대사의 발화 모두에서 불편하게 관객에게 주입된다. ‘피로감’은 그런 데서 온다. 심각하고 진중하며 사려 깊은 ‘척하는’ 태도로는 현실을 통찰할 수 없고, 그런 영화로는 공명도 통섭도 불가하다.
뇌리를 스치든 폐부를 찌르든, 멋들어져 보이는 대사도 한두 마디면 족하다. 로맨스라면 애틋하게, 액션이라면 짜릿하게, 코미디라면 웃기게, 공포라면 무섭게, 드라마라면 절절하게, 스릴러라면 쭈뼛하게, 각각의 장르에 충실한 게 먼저다. 장르 구현에 실패하는데 메시지 전달에서 성공할 리 없다. 개인과 사회를 움직일 수 없고, 그렇다면 기능적으로도 실격이다. 두 마리 토끼, 그거 다 잡기 어렵다. 한 마리 놓치는 건 다반사고 두 마리 다 놓치는 사례도 허다하다. 이도저도 못하고 우왕좌왕 헤매다 흐지부지 끝나는 함량 미달 영화가 많은 이유다. 반면 구호로서의 ‘웰메이드’는 이제 평범한 속임수가 됐다. 국가의 오작동과 사회의 부당함과 개인의 비정상에 대한 시스템적 각성이 필요한 요소는 대한민국 곳곳에 숱하게 잔존한다. 영특한 메타포에 붙여둔 절제된 메시지가 필요하다. 그걸 ‘즐기는’ 관객이 있고, 그로써 ‘깨우치는’ 이들이 있고, 그로부터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으로 됐다. 강요된 메시지는 적당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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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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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예르모 델 토로적 영화 세계의 중심에는 언제나 판타지가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이 영화는 초창기 기예르모 세계관에 더 부합하는 작품일 수도 있다. 아카데미 시즌의 최대 화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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