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서스 LS500h 키를 받아 들었다. 웅장하면서도 날카로운 외관이 타기 전에 발을 멈췄다. 문을 열기 전에 탑돌이 하듯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이제는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스핀들 그릴이 먼저 시선을 사로잡았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했나. 렉서스는 신차를 통해 꾸준히 스핀들 그릴을 ‘주장’했다. 조롱부터 걱정까지 숱한 말이 되받아쳤다. 이러다 말겠지, 하며 그 시도만 인정하기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렉서스는 꾸준히 한 목소리를 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목소리엔 힘이 실렸다. 꾸준히 얘기하면 언젠가 진심이 통한다는 듯이.
이제 누구도 숱한 말을 꺼내지 않는다. 렉서스 LS500h의 스핀들 그릴을 보면 더. 단지 이렇게 반응한다. 강렬하다. 혹은 이렇게도 감탄한다. 아름답다. LS500h의 스핀들 그릴은 그동안 선보인 걸 집대성한 느낌이다. 스핀들 그릴 속에 렉서스를 상징하는 알파벳 ‘L’이 모여 있다. 무려 5천 개나. 각기 다른 각이 그릴을 하나의 작품처럼 느끼게 한다. 렉서스의 자랑, ‘타쿠미’의 솜씨다. 렉서스에는 여러 공정에 타쿠미로 불리는 장인 같은 존재가 있다. 특별한 기술과 경험이 있는 숙련된 자만이 그 호칭을 얻는다. 전설 같은 얘기도 들린다. 잘 안 쓰는 손만으로 90초 안에 종이로 고양이를 접어야 스티치 타쿠미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타쿠미가 되는 것도 아닌 교육받을 자격 시험이란 얘기다. 렉서스 타쿠미는 촉각으로 0.1mm 단차를 구별하는 숙련공을 길러낸다. 집요할 정도로 꼼꼼하다. 그런 마음으로 각 공정을 대한다. 집요함이 구현한 만듦새가 기본에 깔렸다. LS500h 스핀들 그릴이 작품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스핀들 그릴만 강렬하진 않다. 워낙 강렬해 제일 먼저 눈에 띌 뿐이다. 그릴 옆으로 전조등 모양 또한 화살촉처럼 날카롭다. 범퍼 양쪽 공기흡입구 생김새와 대칭 구조로 속도감을 자아낸다. 서 있어도 전면 렉서스 로고를 중심으로 시공간이 빨려드는 인상이다. 예전에는 스핀들 그릴만 눈에 보였다. 이젠 스핀들 그릴 포함해 전면 전체가 시선을 훔친다. 옆면 또한 밋밋하지 않다. 날카로운 홈이 하단을 가른다. 예리한 조각도로 깊게 파낸 듯 힘이 느껴진다. 기함을 이 정도로 과격하게 빚은 브랜드가 있었나? 호불호를 떠나 렉서스는 확실히 선을 그었다. 중후함이 덕목으로 꼽히는 기함의 선입견을 뒤집었다. 타쿠미의 만듦새를 기반으로 역동적 기운을 내세웠다. 장인이라는 오래된 가치를 담은 채 젊고 역동적인 형태로 빚은 거다.
시동을 걸었다. 디스플레이가 켜진 걸 봐야 시동이 걸렸는지 알 수 있었다. LS500h는 하이브리드 자동차니까. 오래된 가치와 새로운 가치는 파워 트레인에서도 접점을 찾을 수 있다. 소리 없이 거대한 차체가 미끄러져 움직였다. 저속에선 전기 모드로 달리는 만큼 숨 막히는 정적을 음미할 수 있다. 커다랗고 육중한 기계가 고요하게 움직일 때 묘한 기분이 든다. 이미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익숙한 시대인데도. 물론 이내 엔진이 개입해 내연기관 자동차다운 거동을 보인다. 그럼에도 둘이 교차하는 걸 보면 앞서 언급한 접점이 다시금 떠오른다. 렉서스는 LS500h를 출시하며 ‘장인’을 내세웠다. 그 역시 신구 가치의 접점으로 읽힌다. 렉서스가 젊은 장인을 조명하는 ‘크리에이티브 마스터즈 컬렉션’도 같은 맥락일 테다.
이번 여정의 목적지를 사기막골 도예촌으로 정했다. 도자기 장인들이 모여 흙을 빚는 곳. 렉서스 LS500h를 타고 장인의 거리로 향하는 거다. 어떤 순례 같은 행위로 다가온다. 오래된 가치를 이어온다는 점에서, 그곳에 가면 LS500h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듯했다. 때로는 특정한 장소에서만 발현하는 감각이 있지 않을까? LS500h가 내세우는 장인의 가치에 공조하길 바라면서 목적지를 정했다. 음, 그냥 이천 쌀밥이 먹고 싶었는지도.
가는 길은 국도를 택했다. 국도는 도로 상황이 다채롭다. 가다 서다 반복하고, 과속방지턱은 허들처럼 촘촘하다. 편안하지 않은 길을 얼마나 편안하게 달릴까? 기함으로서 LS500h에 내준 첫 번째 문제다. 본격적으로 주행하기 위해 두툼한 스티어링 휠을 고쳐 잡았다. 위아래로 우드 트림이 고풍스럽다. 반면 쥐는 감각은 역동적인 자동차 같았다. 스티어링 휠 하나에도 두 가지 성질을 섞었다. 운전하다 보니 스티어링 휠이 따뜻했다. 실내 온도도 쾌적했다. 전에 탄 사람이 잘 맞춰놨나 생각했다. 사람이 아닌 LS500h가 조절한 거다. 적외선으로 승객의 체온을 감지해 실내 냉·난방을 조절한다. 에어컨, 열선 시트, 통풍 시트, 스티어링 휠 열선 기능을 통합해 제어한다. 버튼 하나 누르지 않고 쾌적하게 운전에 집중했다. 렉서스가 내세우는 ‘오모테나시(환대)’를 알게 모르게 느낀 셈이다. 출발하기 전에 뒷문을 열었을 때가 떠올랐다. 뒷좌석이 절로 뒤로 움직였다. 편하게 타라는 배려다. 이것 또한 그런 환대의 일환이리라.
도로 상태가 매끄럽지 못한 구간이 나타났다. LS500h 서스펜션이 열심히 일하는 게 느껴졌다. 불쾌한 진동을 허리까지 닿지 못하게 잘 걸러냈다. 그러면서 그리 물렁물렁하다는 느낌도 적었다. 6백50단계로 감쇄력을 조절하는 전자 제어 에어 서스펜션 덕분이었다. 과거 렉서스 LS는 부드러움에 집중했다. 안락함은 부드러움에서도 나오지만, 탄탄함에서 완성된다. 쓸데없는 움직임이 없을 때 그 공간은 안락해진다. LS500h는 전 세대보다 서스펜션을 조였지만, 동작은 더욱 간결해졌다. 요즘 전 세계 세단의 공통적인 서스펜션 세팅이기도 하다.
실내 몇몇 지점이 눈에 띄었다. 렉서스가 자랑하는 장인의 솜씨였다. 대시보드엔 여섯 가닥 선이 가로질렀다. 일본 전통 현악기 ‘고토’에서 영감받은 형태라고 한다. 밖으로 갈수록 간격이 좁아지는 선은 날카로우면서 유려했다. 동승석 앞에는 독특한 패턴 장식이 있었다. 일본 유리공예 ‘기리코’에서 영감받은 패턴이라고 한다. 도어 트림에는 결을 잘 살린 우드 트림도 붙어 있었다. LS500h의 실내는 전체적으로 디자인이 과감하다. 튀어나오고 들어가고 꺾이고 덧댔다. 스핀들 그릴처럼 선과 각을 강렬하게 쓴 실내이기에 장인의 장식이 숨을 가라앉힌다. 박력 있는 젊음 사이에서 긴장을 풀어준달까. 일상의 번잡함에서 예술 작품을 보며 숨 돌리듯이.
사기막골 도예촌
이천에 있는 도자기 거리다. 이천은 도자기 원료인 고령토가 풍부해 예로부터 도자기로 유명했다. 현재 수백 개가 넘는 요장이 모여 있다. 사기막골 도예촌에는 도예 공방 40여 곳이 모여 있다. 전통 도자기는 물론 젊은 도예가의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작품을 감상할 때 좋은 음악이 빠질 수 없다. 아이크 퀘벡의 <Bossa Nova Soul Samba>를 재생했다. 야외 나들이하듯 운전할 때 듣기 좋아서. 대체로 나긋나긋, 때론 경쾌한 연주가 한결 운전을 즐겁게 한다. LS500h에는 마크 레빈스 오디오 시스템이 장착됐다. 스피커 23개가 깊고 깔끔한 소리를 채운다. 실내에는 전에는 들어본 적 없는 ‘Blue Samba’가 흘러나왔다. 소리가 확실히 달랐다. 풍성한 소리와 함께 감상하는 장인의 작품이라니.
금세 사기막골 도예촌에 도착했다. 이천은 도자기로 유명하다. 청동기 시대부터 토기를 제작했다니 어련할까. 조선 시대 말 관요가 생겨 퇴색했지만 1960년부터 이천에 다시 가마 연기가 피어올랐다. 도자기 가마 옆에 LS500h를 세웠다. 날카롭게 치장한 LS500h가 투박한 가마와 꽤 잘 어울렸다. 사기막골 도예촌은 전승 도예는 물론, 개성 드러낸 젊은 도예가의 작품도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전통을 잇는 작품과 새롭게 해석한 작품이 혼재된 곳이다. LS500h처럼 오래된 가치와 새로운 가치가 담겼다. 고풍스러우면서도 신선한 감각. 사기막골 도예촌에서 LS500h를 바라보니 더욱 명징해졌다. 렉서스가 LS500h로 보여주고 싶은 것도 비슷하지 않을까.
이천에 왔으니 이천 쌀로 지은 한정식은 맛봐야 한다. 사기막골 도예촌 근처 거궁이란 식당을 찾았다. 주변에 투박한 가게도 많았지만 보다 세련된 곳을 찾고 싶었다. LS500h도 장인을 내세우지만 감각적으로 빚었으니까. 상차림을 보니 먹지도 않았는데 흐뭇했다. 알록달록한 갖가지 찬과 요리에 눈이 즐거웠다. LS500h의 실내도 그랬다. 미래적인 감각은 좀 떨어져도 갖가지 요소가 눈을 즐겁게 했다. 이런 화려함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테다. 대접받는 느낌은 사람마다 체감하는 지점이 다르니까.
돌아오는 길은 고속도로를 택했다. LS500h의 주행 모드를 바꿔가며 달렸다. LS500h는 CVT와 4단 자동변속기를 조합해 출력을 끌어낸다. CVT의 무딘 감각을 4단 변속기로 쪼개 총 10단 변속기 효과를 낸다. 확실히 덜 심심했다. 사운드 제너레이터에서 조율하는 소리도 제법 카랑카랑했다. 스포츠 플러스 모드도 꽤 활달하게 차를 밀어붙였다. 하지만 이내 컴포트 모드로 돌리고 느긋하게 가속페달을 밟았다. 여전히 실내엔 아이크 퀘벡의 연주가 흘러나왔으니까. LS500h는 느긋하게 운전할 때 더 만족감이 높은 차니까. 실내 장식도 흘깃 보면서 그 리듬대로 부드럽게 주행했다. 그럴 때마다 LS500h는 기함으로서 가치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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