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4년, 85세를 일기로 타계한 초정 김상옥 선생은 본디 시인이었지만 조선 백자 애호가로도 유명했다. 선생은 문단에 등장한 1938년 시조 ‘백자부’를 발표했는데, 거기에 백자의 빛깔을 말하는, 그것의 본질을 오롯이 담아낸 표현이 있다. ‘불 속에 구워 내도 얼음같이 하얀 살결!’ 승용차 뒷좌석엔 언제나 달항아리를 넘치도록 가득 실은 채 살아가며, 이윽고 아자방(亞字房)이라는 상호로 고미술 가게를 차린 인물이 바로 김상옥이다.
1978년, 인사동 거리에 아직 문인이며 화가들이 쏘다니던 낭만이 있던 시절에 문을 연 가게가 있다. 아자방처럼 고미술을 취급했는데, 상호는 ‘고미술 장생호’였다. 고미술 장생호는 태생부터 남달랐다. 십장생이 그려진 항아리를 의미하는 상호 ‘장생호’를 불세출의 고미술 애호가 김상옥 선생이 직접 지었기 때문이다. 이름의 힘 때문인 지 몰라도, 고미술 장생호는 세월을 이겨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40년 넘도록 운영되고 있다.
3호선 안국역 6번 출구로 빠져나와 쌈지길 방향으로 걷다 보면 얼마 안 돼 고미술 장생호에 닿게 된다. 그리고 고미술 장생호에서 조금 더 걷다 하나화랑을 만나 왼쪽으로 꺾으면 ‘공예 장생호’가 드러난다. 작년 초여름 문을 연 공간은, 상호에서 알 수 있듯 고미술 장생호 박영숙 대표의 자녀 정현주가 운영하는 곳이다.
안경 낀 선비가 걸어나와 손님을 맞으리라는 것이 고미술 장생호에 대한 인상이라면, 공예 장생호는 현대 미술관 같은 엄정한 공간이라고 해야 할까? 실제로 공예 장생호는 파리 한 마리조차 머물 것 같지 않은 하얀 벽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이처럼 백자같이 흰 공간에선 젊은 공예가들의 그릇이며 컵을 판다. 다만 여전히 등잔에 기름을 부어 공간을 밝힐 것 같은 공예품점의 ‘흔한 인상’에서 저만치 벗어나 책상 위에 루이스 폴센에서 만든 산뜻한 풀잎색 조명을 올렸다. 북유럽에서 넘어온 이 조명 옆에 잘생긴 고족 접시가 바투 붙어 있는 풍경이 공간의 정체성을 적확하게 드러낸달까?
나물이나 장아찌 따위를 척척 올려 내고 싶은 김상인의 다다미 접시부터 고운 붓질로 화장한 이재원의 분청 물병, 눈으로 쓰다듬다 기어코 손 위에 올려놓고 볼 수밖에 없는 김동준의 ‘살맛’ 느껴지는 주전자…. 조선 시대 찬탁 위로 좌르르 진열된 물건을 눈으로 훑다 보면, 쉽게 까닭을 알 순 없지만 ‘눈이 씻기는’ 경험을 하게 된다.
백자에서 피어오르는 명상적인 조용한 빛깔 때문인지, 가슴이 후련해지는 달항아리의 둥근 형태를 보았기 때문인지 모를 노릇이지만 그저 ‘신식’에 멀미 났던 심사가 공예품 특유의 맑고 찬 기운 덕분에 스르르 풀리는 것 같기도 하고. 우윳빛을 머금은 아스티에 드 빌라트의 접시, 아무리 못생긴 손으로 쥐어도 고상해 보이는 포르나세티의 잔이 좋지 않을 리 없지만 종종 백자 면기에 파스타를 담고 작은 합에서 럼이나 위스키가 든 초콜릿 따위를 꺼내 먹는 것이 좀 더 ‘현대 생활’답다고 느껴지는 때가 있다. 그리고 그럴 때엔 인사동으로 향한다.
혜곡 최순우가 말했듯 공예 장생호에선 ‘잘생긴 며느리 같은’ 백자 항아리를 안아 오고, 더 부지런히 걸어 장지방에 들러선 지장 장용훈 선생의 종이, 민예사랑에서는 부엌 세간, 구하산방에서는 연적이나 문진 같은 문방구를 고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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