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

INTERVIEW MORE+

2월, 인사동의 낮

아직 겨울, 인사동을 서성이다 새롭게 문을 연 ‘공예 장생호’로 발걸음을 옮긴다.

UpdatedOn February 23, 2018

3 / 10
/upload/arena/article/201802/thumb/37633-282957-sample.jpg

공예 장생호에서는 수시로 젊은 공예가들의 개인전이 열린다. 2월에 가면 김상인의 백자를 여럿 구경할 수 있다.

공예 장생호에서는 수시로 젊은 공예가들의 개인전이 열린다. 2월에 가면 김상인의 백자를 여럿 구경할 수 있다.

김상인의 3첩 반상기.

김상인의 3첩 반상기.

김상인의 3첩 반상기.

면기와 소반 접시. 접시의 굽 부분에는  구름 모양을 투각했다. 접시 위로는 고물이 잔뜩 묻은 인절미나 경단을 올린다.

면기와 소반 접시. 접시의 굽 부분에는 구름 모양을 투각했다. 접시 위로는 고물이 잔뜩 묻은 인절미나 경단을 올린다.

면기와 소반 접시. 접시의 굽 부분에는 구름 모양을 투각했다. 접시 위로는 고물이 잔뜩 묻은 인절미나 경단을 올린다.

 

  • 공예 장생호
    주소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10길 23-4
    문의 02-739-5575

 

백자 합과 노란 산수유를 꽂은 백자 화병.

백자 합과 노란 산수유를 꽂은 백자 화병.

백자 합과 노란 산수유를 꽂은 백자 화병.

지난 2004년, 85세를 일기로 타계한 초정 김상옥 선생은 본디 시인이었지만 조선 백자 애호가로도 유명했다. 선생은 문단에 등장한 1938년 시조 ‘백자부’를 발표했는데, 거기에 백자의 빛깔을 말하는, 그것의 본질을 오롯이 담아낸 표현이 있다. ‘불 속에 구워 내도 얼음같이 하얀 살결!’ 승용차 뒷좌석엔 언제나 달항아리를 넘치도록 가득 실은 채 살아가며, 이윽고 아자방(亞字房)이라는 상호로 고미술 가게를 차린 인물이 바로 김상옥이다.

1978년, 인사동 거리에 아직 문인이며 화가들이 쏘다니던 낭만이 있던 시절에 문을 연 가게가 있다. 아자방처럼 고미술을 취급했는데, 상호는 ‘고미술 장생호’였다. 고미술 장생호는 태생부터 남달랐다. 십장생이 그려진 항아리를 의미하는 상호 ‘장생호’를 불세출의 고미술 애호가 김상옥 선생이 직접 지었기 때문이다. 이름의 힘 때문인 지 몰라도, 고미술 장생호는 세월을 이겨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40년 넘도록 운영되고 있다.

3호선 안국역 6번 출구로 빠져나와 쌈지길 방향으로 걷다 보면 얼마 안 돼 고미술 장생호에 닿게 된다. 그리고 고미술 장생호에서 조금 더 걷다 하나화랑을 만나 왼쪽으로 꺾으면 ‘공예 장생호’가 드러난다. 작년 초여름 문을 연 공간은, 상호에서 알 수 있듯 고미술 장생호 박영숙 대표의 자녀 정현주가 운영하는 곳이다.

안경 낀 선비가 걸어나와 손님을 맞으리라는 것이 고미술 장생호에 대한 인상이라면, 공예 장생호는 현대 미술관 같은 엄정한 공간이라고 해야 할까? 실제로 공예 장생호는 파리 한 마리조차 머물 것 같지 않은 하얀 벽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이처럼 백자같이 흰 공간에선 젊은 공예가들의 그릇이며 컵을 판다. 다만 여전히 등잔에 기름을 부어 공간을 밝힐 것 같은 공예품점의 ‘흔한 인상’에서 저만치 벗어나 책상 위에 루이스 폴센에서 만든 산뜻한 풀잎색 조명을 올렸다. 북유럽에서 넘어온 이 조명 옆에 잘생긴 고족 접시가 바투 붙어 있는 풍경이 공간의 정체성을 적확하게 드러낸달까?

손에 ‘착’ 하고 감기는 안경집.

손에 ‘착’ 하고 감기는 안경집.

손에 ‘착’ 하고 감기는 안경집.

나물이나 장아찌 따위를 척척 올려 내고 싶은 김상인의 다다미 접시부터 고운 붓질로 화장한 이재원의 분청 물병, 눈으로 쓰다듬다 기어코 손 위에 올려놓고 볼 수밖에 없는 김동준의 ‘살맛’ 느껴지는 주전자…. 조선 시대 찬탁 위로 좌르르 진열된 물건을 눈으로 훑다 보면, 쉽게 까닭을 알 순 없지만 ‘눈이 씻기는’ 경험을 하게 된다.

백자에서 피어오르는 명상적인 조용한 빛깔 때문인지, 가슴이 후련해지는 달항아리의 둥근 형태를 보았기 때문인지 모를 노릇이지만 그저 ‘신식’에 멀미 났던 심사가 공예품 특유의 맑고 찬 기운 덕분에 스르르 풀리는 것 같기도 하고. 우윳빛을 머금은 아스티에 드 빌라트의 접시, 아무리 못생긴 손으로 쥐어도 고상해 보이는 포르나세티의 잔이 좋지 않을 리 없지만 종종 백자 면기에 파스타를 담고 작은 합에서 럼이나 위스키가 든 초콜릿 따위를 꺼내 먹는 것이 좀 더 ‘현대 생활’답다고 느껴지는 때가 있다. 그리고 그럴 때엔 인사동으로 향한다.

혜곡 최순우가 말했듯 공예 장생호에선 ‘잘생긴 며느리 같은’ 백자 항아리를 안아 오고, 더 부지런히 걸어 장지방에 들러선 지장 장용훈 선생의 종이, 민예사랑에서는 부엌 세간, 구하산방에서는 연적이나 문진 같은 문방구를 고른다.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

CREDIT INFO

GUEST EDITOR 전여울
PHOTOGRAPHY 이수강

2018년 02월호

MOST POPULAR

  • 1
    시그니처가 뭐길래
  • 2
    영화관에 대한 단상
  • 3
    무적의 부츠
  • 4
    LOVE IN EVERY NOTE
  • 5
    OFF-DUTY TIE

RELATED STORIES

  • INTERVIEW

    <아레나> 12월호 커버를 장식한 세븐틴 조슈아

    캐시미어 브랜드 배리와 함께한 조슈아의 <아레나> 12월호 커버 공개!

  • INTERVIEW

    장 줄리앙과 장 줄리앙들

    프랑스 낭트 해변가에서 물감을 가지고 놀던 소년은 오늘날 세계에서 유명한 화가 중 한 명이 됐다. 100만 명 넘는 팔로워가 주목하는 작가, 장 줄리앙이다. 선선한 공기가 내려앉은 초가을. 장 줄리앙이 퍼블릭 가산에서 열리는 새로운 전시 <장 줄리앙의 종이 세상>을 위해 서울을 다시 찾았다. 전시 개막 첫날 저녁, 우리는 장 줄리앙을 스튜디오로 초대했다. 새하얀 벽 앞에 선 그는 어김없이 붓을 들었고 자신이 그린 또 다른 장 줄리앙과 함께 카메라 앞에 섰다. 이어지는 대화는 장 줄리앙이 보여주고 들려준 그림 이야기다.

  • INTERVIEW

    무한한 이태구

    배우 이태구가 <끝내주는 해결사>에서 미워할 수 없는 미소를 지었을 때,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에서 비밀을 숨긴 채 정의로운 척 굴던 때도, 이태구의 모든 얼굴이 좋았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이 좋아하는 얼굴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말한다. 아직 우리가 보지 못한 그의 모습이 무궁무진하다.

  • INTERVIEW

    오늘을 사는 김정현

    촬영이 있어도 아침 운동은 꼭 하려고 한다. 여전히 촬영장엔 대본을 가져가지 않는다 . 상대 배역을 잘 뒷받침하는 연기를 지향한다. 숲보다 나무 하나하나에 집중한다. 대본을 더욱 날카롭게 해석하고 싶다 . 그리고 이 순간을 감사하게 여긴다. 배우 김정현의 지금이다.

  • INTERVIEW

    김원중의 쓰임새

    모델왕이라 불리는 남자. 15년 차 베테랑 모델 김원중이 신인 배우로 카메라 앞에 섰다. 모니터 속 김원중은 프로 중의 프로였지만, 그는 여전히 현장에서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 공개를 앞두고 배우 김원중이 들려준 이야기.

MORE FROM ARENA

  • FASHION

    BOSS'S HOLIDAY

    잠들지 않는 도시, 특별한 주인공과 위트로 가득 찬 보스의 홀리데이 컬렉션.

  • CAR

    The Line

    차의 뒤 라인을 따라 이야기를 모았다. 라인에도 여러 이야기가 들어 있다.

  • LIFE

    오늘의 인천

    스멀스멀 로컬 문화가 태동하는, 생기 넘치는 오늘의 인천.​

  • LIFE

    Destination 2023 #1

    코로나19가 퍼졌을 때 가장 크게 피해를 본 업계는 여행업이었다. 반대로 위드 코로나가 오면서 사람들이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여행이다. 출장으로, 신혼여행으로, 모험으로, 이제 사람들이 다시 떠나고 있다. 2023년 한국 사람들은 어디로 어떻게 떠나고 싶어 할까. 어떤 마음으로 떠나는 게 좋을까. 여행업계의 맨 앞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대답을 추렸다.

  • INTERVIEW

    엉뚱한 유준상

    유준상의 엉뚱함은 어디서 기원했을까. 힘든 여행을 자처해서? 호기심 갖기를 두려워하지 않아서? 자유로워지는 법에 익숙해졌기 때문일까? 남다른 관점으로 영화와 음악, 글과 그림을 창작하는 유준상과 한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다.

FAMILY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