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녹색 수트는 유돈초이, 흰색 셔츠는 듀이듀이, 구두는 레페토 제품.
“드라마를 촬영하면서는 감정적인 아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낯설었을 것 같다. 〈란제리 소녀시대〉는 1979년 대구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로 당신이 태어나기 한참 전의 시대다.
처음 시놉시스를 읽고 꼭 하고 싶었다. 나는 대구 출신인데, 대구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가 흔치 않아서 좋았다. 또 이정희라는 캐릭터를 맡았는데, 어머니 이름도 정희다. 1979년에 어머니는 18세로 이정희와 같은 나이셨다. 당시 어머니와 동갑으로 동명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좋았다. 어머니의 어린 시절을 연기하는 기분이었으니까. 내게 친오빠가 있는데, 이정희도 쌍둥이 친오빠가 있다. 비슷한 점이 많다.
대구 사투리를 구사하는 것은 문제없었겠다.
본래 쓰던 말이니까 어렵지는 않았다. 그런데 배경이 1970년대라서 지금과는 다른 단어들을 사용하더라. 몇몇 단어들을 대구 출신 감독님과 부모님께 여쭤보니 예전에는 자주 쓰는 말이었다고 하시더라.
고증에 충실했다는 건가?
그렇다.
1979년의 이정희가 되기 위해 무엇을 준비했나?
지금 내가 23세다. 사랑의 감정을 모르는 나이는 아니지만 이정희는 18세로 첫사랑을 경험하는 캐릭터다. 첫사랑의 감정을 느끼려고 노력했다. 사실 나는 첫사랑을 경험한 적이 없다. 정희 덕분에 느껴봤다.
좋아하는 사람을 쫓아다닌 적이 없나? 조금 많이 부럽다.
〈란제리 소녀시대〉에서 이정희는 짝사랑하는 오빠를 쫓아다닌다. 나는 그런 적이 없는데, 연기로나마 해보니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나는 이정희보다 어린 나이에 연습생을 시작했다. 그래서 친구와의 슬픈 이별이나 첫사랑의 애틋함 등을 경험하기 어려웠다.
전국의 여러 세트장을 돌아다녔다고 들었다.
오늘은 군산에서 촬영하고 내일은 대구에서 촬영하는 식이었다. 매일 잠자리가 달라지니까 적응하기 힘들었다. 사실은 이동 시간이 오래 걸려서 잘 시간이 많지도 않았다.
8부작이라 전개가 빠르고, 또 너무 빨리 끝났다.
배우들도 엄청 아쉬워했다. 12부작이었으면 어땠을까? 만약 16부작이었으면…. 그렇게 하기에는 조금 힘들었을 거다. 스케줄이 너무 빠듯했거든. 하루에 많이 자면 두 시간, 밤샘은 기본이었다. 촬영은 두 달 동안 진행했는데, 마지막 촬영 때는 거의 이틀 밤을 새운 것 같다.
드라마 촬영은 대부분 그런 식인 것 같다. 언제나 스케줄이 빠듯하다.
주연이라 촬영 분량이 많았다. 긴장을 해서 그런지 강행군이었음에도 몸이 아프지는 않았다.
연기는 무대에서 공연할 때와는 다른 매력이 있을 것 같다.
정말 많이 다르다. 음반 활동은 일정 기간 동안 노래와 춤을 완벽하게 익힐 때까지 반복 연습한 뒤 무대에 오르는데, 드라마는 매번 다른 신에서 다른 감정을 보여야 한다. 그 점이 많이 다르다. 무대는 완벽하게 세팅되어 있다. 언제 어떤 표정을 지을 것인지 정교하게 연습하고 그대로 재현하면 되는 것이다. 연기는 다르다. 신 하나를 깊이 이해해야 하고, 빠져들어야 한다. 내 의지도 중요하지만 대본에 있는 대사를 이해하고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 정희라는 캐릭터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아이라서 촬영 중에는 음악 방송을 안 봤다.
왜 안 봤나? 연기할 때는 우주소녀 보나가 아니라서?
아이돌인 나를 잊으려고 노력했다. 내 사진을 찾아보지 않았고, 다른 아이돌들의 모습도 안 봤다. 무대에서는 끼를 보이는 것이 중요한데, 정희는 눈빛에서 끼가 드러나면 안 되는 아이였다. 처음 이정희를 대본으로 접했을 때는 걱정이 많았다. 나와는 달리 정희는 귀여운 아이니까.
본인도 귀여운 매력이 있지 않나?
하하. 나는 귀여움과는 거리가 멀다.
우주소녀가 아닌, 이정희도 아닌 진짜 보나는 어떤 모습인가?
이정희는 연습생이 되기 전 대구 시절의 나와 비슷하다. 대구에서의 나를 잊고 살았는데 사투리를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때의 감정이 드러났다. 서울에 와서는 연습생을 하다 보니 감정 표현을 안 하게 됐다. 기쁘거나 슬프거나 표현을 자제하며 살았다. 그런데 이정희를 연기하면서 많은 스태프들 앞에서 울었다. 내가 사람들 앞에서 운다는 것은 상상도 못한 일이다.
서울에서 잃어버린 본래 성격을 되찾은 것인가?
혼자 서울에 살면서 연습생 생활을 하다 보니 힘들어하고, 슬퍼하는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감정 표현을 자제하게 됐다. 그런데 첫 촬영부터 많은 제작진들 앞에서 크게 울고 나니까 마음이 편해지더라. 그때 깨달았다. 감정을 표현하는 게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니라고.
“이정희는 연습생이 되기 전 대구 시절의 나와 비슷하다. 대구에서의 나를 잊고 살았는데 사투리를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때의 감정이 드러났다. 서울에 와서는 연습생을 하다 보니 감정 표현을 안 하게 됐다. 기쁘거나 슬프거나 표현을 자제하며 살았다.”
사투리 연기가 감정 표현의 기폭제 역할을 한 것인가?
신기했다. 평소에 굉장히 이성적인 아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고,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드라마를 촬영하면서는 감정적인 아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어린 나이에 혼자 낯선 곳에서 경쟁하다 보니 마음이 닫힌 것 같다.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 힘들었던 것은 아니다. 혼자 이겨내자는 마음이 컸다. 슬프거나 힘들거나 스스로 알아서 하자는 생각이었다.
다른 연습생도 그렇게 생각하나?
거의 그렇다. 연기 레슨을 받을 때 소리 내 울어보기가 있었다. 통곡해야 하는데 도저히 못 하겠더라. 선생님이 소리 지르면서 울어본 적 없느냐고 묻는데 정말 없더라. 선생님이 가수 준비하는 연습생은 거의 다 소리 내서 울지 않는다고 하더라. 내가 그동안 감정 표현을 너무 안 하고 살았다.
자극받는 것도 있나?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다. 항상 무언가를 해야 한다. 그게 나를 자극하는 것이겠지.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으면 불안하다. 드라마를 보든지 운동을 하든지 해야만 한다. 완벽주의자 성향이 있어서 연습도 많이 한다. 연습 안 하면 불안했다. 그렇게 살아와서 이제는 자유로워지려고 노력 중인데, 그래도 일단은 무언가 해야 한다.
무엇이 그렇게 불안한가?
5년 동안 연습생을 했다. 그때 생긴 버릇이다. 연습생은 연습밖에 할 게 없다. 내가 연습을 안 할 때 누군가는 연습을 할 것이다. 그래서 휴가 때가 아니고는 편하게 쉴 수가 없다. 가만히 있으면 불안한 생각이 내 안으로 파고든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해야만 한다. 차라리 잠을 자면 괜찮다.
시험 기간에 느껴지는 불안함 같다. 공부를 해야 하는데, 내가 쉬는 동안 남들은 공부할 것 같고, 차라리 잠을 자면 머리가 맑아지니 일찍 자는 것도 괜찮을 것 같고. 그런 강박 같다.
맞다. 주위 친구들도 다 그렇다. 나는 조금 단순한 편이라 한 가지를 하면 다른 생각을 못한다. 그래서 활동 기간에는 정신이 맑다. 바쁘면 잡생각을 할 시간이 없어서 오히려 편안하다. 피곤하고 졸리니 다른 생각을 못하거든. 지금도 계속 시간이 간다. 그것도 불안하다.
불안하게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많은 것을 했다. 데뷔했고, 음악 방송에 출연했으며, 공중파 드라마 주연도 했다. 그럼에도 조급하다면 욕심이 많아서일까?
그럴 수 있다. 이대로 생각 없이 바쁘게 스케줄을 소화하다 보면 7년이 지나갈 것 같다.
그래 봤자 서른인데. 취미 생활은 있나?
쇼핑 좋아해서 잡지를 즐겨 본다. 잡지 사서 혼자 카페에서 읽고 가끔은 혼자 카페에서 시간을 때울 때도 있다. 모자 눌러쓰고 마스크를 하고 있으면 아무도 모른다. 멍하니 걸을 때도 있고.
무슨 고민을 하고 있나?
이번 주부터 녹음을 시작해서 멤버들과 컴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다음 앨범의 목표는 뭘까?
음악 방송 1위다. 기회가 된다면 ‘로코물’에도 출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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