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색 터틀넥 슬리브리스 톱과 검은색 재킷은 모두 YCH, 분홍색 실크 블라우스는 뮤제 제품.
“원래 사석에서는 누굴 웃기고 재미있게 해주려는 사람이 아닌데, 예능에서는 뭐라도 해야겠더라고. 그때부터 웃기려는 욕심이 조금 생긴 것 같다.”
원래 시트콤을 좋아했나?
데뷔를 시트콤으로 했다. 〈레인보우 로망스〉. 연기가 처음이었고, 당연히 시트콤도 처음이어서 잘하지 못했다. 해보니 참 재미있었는데, 내가 너무 부족했다는 생각이 오래 남았다. 언젠가 꼭 다시 시트콤을 하고 싶었다. 그때와는 다르게, 잘해보고 싶은데 시트콤이 점차 없어지는 추세더라. 기약 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김병욱 감독의 새 시트콤 〈너의 등짝에 스매싱〉 소식이 무척 반가웠겠네.
무조건 미팅이라도 해보고 싶었다. 시트콤은 배우 본연의 성격이 가장 잘 반영되는 장르인 것 같다. 가장 내 모습에 가까운 연기를 할 수 있는 극이 시트콤이다. 정말 내가 되어서 연기했을 때는 어떤지, 어떤 식으로 보여줄 수 있는지 궁금했다.
작품 들어가기 전에 김병욱 감독의 전작들을 한 번 훑기도 했나?
찾아 보려고 했는데, 어느 날 TV를 틀었더니 〈거침없이 하이킥〉 전 편을 쭉 재방송해주더라. 그 길로 눌러앉아서 계속 봤다. 보고 있는데, 행복하더라.
김병욱 감독 특유의 코미디 코드를 좋아하나?
감독님께서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부분이 호흡이다. 호흡 한 끗 차이로 재미가 생기거나 없어진다고 하신다. 미리 대본을 쓰시고, 작가님들과 함께 호흡을 맞춰보면서 어떤 호흡이 재미있는지 고르신다더라. 대본이 정말 완벽하다. 애드리브가 필요치 않다.
함께 작업하기 전, 시청자로 볼 땐 어땠나?
역시 재미있는 호흡이 많이 보였다. ‘아’나 ‘에휴’ 같은 대사조차 호흡과 타이밍이 절묘했는데, 나는 그게 다 배우들의 ‘애드리브’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모두 감독님이 생각한 대로 배우들이 연기한 거다. 박영규 선생님도 말씀하셨다. 김병욱 감독님 작품 안에서는 한 번도 ‘애드리브’를 쳐본 적이 없다고.
연기하는 입장에선 불쑥 ‘애드리브’가 튀어나올 수도 있을 텐데, 욕심이 생겨서.
참 신기한데, 그런 마음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대본이 완벽하다. 주어진 대로 연기하고 나면, 남는 것 없이 말끔하다. 〈너의 등짝에 스매싱〉 촬영은 정말 즐겁다. 박영규 선배님과 박해미 선배님이 완전 ‘하드캐리’다. 두 분은 주어진 대사를 마치 ‘애드리브’처럼 친다.
아버지 역할의 박영규와 붙는 신이 많을 것 같다. 박영규야말로 김병욱 사단의 진정한 병기 아닌가?
뭔가 헷갈려서 헤매고 있으면 선생님이 딱 짚어서 말해주신다. 그 말대로 하면 안 되던 부분이 거짓말처럼 싹 풀린다. 어느 날은 세 줄 정도 되는, 조금 긴 대사를 쳐야 했다. 호흡을 넣으면서 하다 보니 재미없이 늘어지는 거다. 그때 선생님이 그렇게 치면 재미없다고, 호흡을 연결해서 하라며 시범을 보여주셨다. 그랬더니 오케이. 늘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하면 바로 오케이다.
누굴 웃기고, 재미있게 해주는 걸 좋아하나?
딱히 누군가를 웃기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시트콤 연기를 하다 보면 없던 개그 욕심도 생길 것 같다. 아닌가? 오히려 스트레스일까?
개그 욕심을 말할 것 같으면 〈해피투게더〉 이야길 먼저 해야 한다. 원래 사석에서는 누굴 웃기고 재미있게 해주려는 사람이 아닌데, 예능에서는 뭐라도 해야겠더라고. 내가 그 자리에 앉게 되었으니, 보답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때부터 웃기려는 욕심이 조금 생긴 것 같다.
〈너의 등짝에 스매싱〉에서 맡은 캐릭터는 좀 웃긴가? 본인이 생각하기에 어떤가?
너무 재미있다. 굉장히 긍정적인 여자다. 언제나 극도로 긍정적이다. 밝고, 에너제틱하다. 에너지가 과하다. 입은 늘 웃고 있고. 슛 들어가면 자동으로 ‘웃는 입’을 장착해야 한다. 배우들이 연기하다 보면 캐릭터를 따라가게 되지 않나. 요즘 나도 어딜 가든 밝다는 이야길 많이 듣는다.
그 캐릭터가 보여주는 긍정의 끝은 뭔가?
심지어 법정에서 재판을 받으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 판사 앞에서도 여유 있는 웃음을 보인다. 내기하길 좋아해서, 판사에게도 이렇게 말한다. “내기할래?”
배역에 대해서 감독이나 작가의 디렉션 외에 본인이 구체화한 부분도 있나?
첫 촬영 때 감독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냥 미팅 때 했던 것처럼 하면 좋겠다고. 미팅 때와 촬영 때가 어떻게 달랐나 생각해봤더니, 내가 생각이라는 걸 했더라고! 이 캐릭터는 연구하면 할수록 망가지는 것 같다. 그냥 순간에 반응하고,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캐릭터다. 무슨 일이 생기면, ‘어? 생겼네’ 하고 뭔가 지나가면 아무 생각이 없이 해야 한다.
“데뷔를 시트콤으로 했다. 〈레인보우 로망스〉. 연기가 처음이었고 당연히 시트콤도 처음이어서 잘하지 못했다. 해보니 참 재미있었는데 내가 너무 부족했다는 생각이 오래 남았다. 언젠가 꼭 다시 시트콤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시트콤이 점차 없어지는 추세라, 기약 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퍼프 오프숄더 톱은 듀이듀이, 이어링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20대 초반에 여기저기 오디션은 보러 다녔는데 잘 안 됐다. 너무 하고 싶은데 안 되니까, 힘들었다. 문득 다 내려놓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4년의 공백기를 가졌다.”
김병욱 감독은 어떤 이유로 당신이 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글쎄… 한 가지는 안다. 말이 빨라서다. 평소에도 말을 빨리 하거든. 다른 드라마 할 때는 말 빠른 것 때문에 고생을 좀 했다. 늘 ‘천천히 해야지, 호흡하면서 해야지’ 하면서 컨트롤하는 게 일이었다. 김병욱 감독님과 미팅할 때, 본래 내 호흡대로 빠르게 대사를 쳤다. 아차 싶었던 순간, 감독님께서 대사를 이렇게 빨리 친 사람이 없다고 하면서 좋아하셨다.
엄현경도 순간에 반응하고 아이처럼 천진한가?
오히려 어렸을 땐 생각이 많았다. 고민도 많고 욕심도 많았다. 그땐 자꾸만 더 많은 걸 원했다.
그게 언제쯤인가?
20대 초반에서 중반, 그때까지는 그랬다. 여기저기 오디션은 보러 다니는데 잘 안 되니까. 너무 하고 싶은데 안 되니까. 욕심 때문에 오는 상처, 자괴감 같은 것들에 힘들었다. 그러다 문득 다 내려놓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내 것이 아닌가 보다. 그래, 받아들이자. 그래서 4년의 공백기를 가졌다.
4년 동안 뭘 하며 지냈나?
뭘 배우거나 그러진 않았다. 세상 밖에 나가서 이것저것 더 보고 어울리려고 했다. 여행도 많이 다니고, 친구들과도 자주 어울리고, 남자친구도 많이 만나보고. 그땐 연기를 아예 안 할 생각이었다.
좋았겠네.
처음 2년 동안은 좋았다. 사실 자의로 쉰 건 2년이거든. 나머지 2년은 타의로 쉬었다. 원래 했던 잡지 모델 일을 다시 하면서 지내다, 어떤 드라마를 보았다. 무슨 드라마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쾌활한 캐릭터였다. 연기하고 싶다는 마음이 툭 올라오더라. 그때부터 다시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역시 잘 안 됐고, 그렇게 2년을 보냈다. 무척 힘들었다. 쉬고 싶지 않은데 쉬어야 했으니까. 지나고 보면 다 운명인 것 같다. 마음 편하게 먹고, 버텨내는 게 중요하더라.
과거 〈X맨 일요일이 좋다〉에 출연했을 땐 유재석이 당신을 ‘긴장소녀’라고 부르지 않았나. <해피투게더>에서 엄현경은 의연하게 좌중을 웃긴다. 그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어려서부터 엄청 낯을 가렸다. 모르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는 자리엔 안 갔다. 수줍고 불편해서. 친한 친구들하고만 어울렸다. 그러다 보니 내가 너무 동굴 안에 있는 것 같더라고. 어느 날 친구가 낯선 사람과 있다기에 나가봐야겠다는 마음을 불쑥 먹었다. 가서 앉아 있어봤다. 불편했지. 그래도 버텼다. 그렇게 조금씩 하다 보니 괜찮아지더라. 내가 낯선 사람한테 먼저 말을 건 게 3년도 채 안 된다. 참 많이 변했다. 요즘은 내가 너무 털털하게 굴어서, 주변에서 자제하라고들 한다.
〈해피투게더〉에서도 그런가? 더 웃기고 싶은데 자제하나?
뭔가 더 터뜨리고 싶은데 잘 안 될 때는 많다. 좀 속상하기도 했는데, 하다 보니 나에겐 그곳이 너무 큰 그릇이더라. 재미있는 분들이 정말 많이 나온다. MC부터 패널, 게스트까지 다들 엄청나다. 나 아니어도 지금 그 자리에 올 사람이 많다는 생각을 늘 한다.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하고 있다.
그래서 되려 내려놓았다는 건가? 개그 욕심 말이다.
아니, 절대 놓지 않지. 하하. 아직 가지고 있다. 그건 꼭 붙들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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