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친구들의 ‘케미’보다 선배님과 나의 케미가 훨씬 더 짠한 무언가가 있다. 사실 그동안 한국 영화에서 나이 좀 지긋한 캐릭터들 간의 케미가 별로 없었거든. 아마 〈노병은 죽지 않는다〉 이후로는 거의 못 봤을 텐데, 바로 그 점이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다.”
그러고 보니 백윤식과 성동일은 같은 영화에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수십 편의 한국 영화에서 수십 가지 캐릭터를 연기했을 텐데 단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다니, 참 신기한 일이다. 11월에 개봉하는 영화 〈반드시 잡는다〉를 통해 드디어 두 ‘선수’의 연기를 함께 감상할 수 있게 됐다. 인기 웹툰 〈아리동 라스트 카우보이〉가 원작인 이 영화는 동네의 연쇄 살인마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두 노인의 추격전을 다룬 스릴러다. 거의 모든 한국 영화에서 ‘포스’ 있는 역할로 무게중심을 꽉 잡아주던 백윤식이 월세 받으러 다니는 동네 노인으로, 국가대표급 애드리브를 선보이던 성동일이 ‘검버섯 특수 분장’을 하고 미스터리한 전직 형사 출신 노인으로 분한다. 두 사람 모두 ‘한국 영화상 전무후무한 캐릭터를 보게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흐트러짐 없는 꼿꼿한 자세로 풍성한 머리칼을 넘기며 매니지먼트 이사와 대화를 나누는 백윤식은 〈타짜〉의 ‘평경장’ 같기도 하고, 〈내부자들〉의 ‘이강희’ 같기도 했다. 슈프림 후드 티셔츠에 깡총한 반바지를 입고 나타난 성동일도 마찬가지. 바로 눈앞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두 사람이 TV 같고 영화 같아서 좀 신기했다. 만담에 가까운 대화를 나누고 나니, 상반기 〈청년경찰〉에서 박서준과 강하늘이 보여준 ‘케미’보다 30년 정도 숙성한 진득한 ‘사골 케미’를 볼 수 있을 거라는 두 배우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영화를 아직 못 봐서, 질문이 좀 뻔할 수 있으니 양해 바란다.
성동일 이거 사실 국정원 영화라서 미리 함부로 볼 수 없었을 거다. 하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관계자들을 수소문해봤더니 비를 맞으면서 싸우는 장면 등 액션 신이 굉장히 많다고 하더라.
백윤식 성동일은 시종일관 액션을 한다. 이분이 아주 전무후무한 캐릭터로 나온다. 영화를 보면 종전의 성동일 캐릭터가 전혀 아니라니까. 〈반드시 잡는다〉 개봉 선포 영상을 보면 ‘기존의 캐릭터는 하나도 없다’라는 멘트가 나오는데, 사실이다. 성동일이 얘기해야 하는데 내가 대신 얘기한 거 같네.
성동일 백윤식 선배님과 항상 같은 장소에서 사건에 휘말리기 때문에 우리 둘 다 액션 신이 많았다. 똑같이 비 맞고, 진흙탕에 구르고…. 열심히 했지, 뭐.
웹툰을 정말 재밌게 봤다. 아무래도 나처럼 웹툰을 먼저 본 사람은 원작과 비교하면서 영화를 감상할 수밖에 없을텐데?
백윤식 원작과 이질감이 클 것 같진 않다. 워낙 원작의 이야기가 탄탄하고 좋아서 감독과 제작자가 판을 깐 거니까. 근데 확실히 좀 더 흥미진진하게 사건이 전개된다.
성동일 웹툰의 특성상 컷과 컷 사이에 독자의 상상력이 들어갈 여지가 많다. 우리는 영화니까 장면과 장면 사이에 훨씬 더 치밀하게 긴장감을 불어넣을 수 있었다.
백윤식 그러니까 원작에 극적인 재미를 더했다고 보면 돼. 원작 팬들은 섭섭해할 거 하나 없어.(웃음)
영화 캐스팅을 보고, 원작과 연령대가 조금 달라지지 않았나 싶었다. 〈아리동 라스트 카우보이〉에서는 주인공 둘의 나이대가 비슷한 노인이니까.
성동일 영화 속 설정도 똑같다. 내가 특수 분장을 해서 검버섯을 그려 넣어 선배님과 연령대를 맞췄다. 근데 분장을 하지 않아도 선배님과 또래로 보던데? 하하.
백윤식 늘 현장에 성동일이 먼저 나와서 한 시간 정도 특수 분장을 했다. 근데 나도 이렇게 보니까 분장 안 받아도 되겠더라고.(웃음) 배우들끼리는 자연스럽게 연기를 주고받고 호흡하다 보니 나이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는데, 연출자 입장에서는 좀 다른가 봐.
성동일 ‘분장이 뭐 얼마나 차이 나겠어’ 했는데 화면을 보고 깜짝 놀랐다. 확실히 차이가 나더라고. 내가 영화, 드라마 메이크업 안 하기로 유명한데 이번엔 어쩔 수 없이 했다. 선배님과 거의 동년배로 나온다.
‘전무후무한 캐릭터’란 기존에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없는 캐릭터라는 의미인가?
백윤식 일단 소재부터 종래 영화계에는 없었고, 접근하지 않았던 거다. 노인 두 명의 버디 무비, 그것도 연쇄 살인마를 추격하고 반드시 잡겠다는 지독함이 있다.
성동일 또 백윤식 선배님이 그간 했던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중 가장 평범한 노인 역할을 연기한다.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인의 모습을 특이하고 재미있게, 그것도 사투리를 써가면서 연기하셨다. 관객도 아마 처음 볼걸? 늘 묵직하고 포스 있는 역할을 하셨는데, 우리 영화에선, 이런 얘기를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정말 지질한 모습까지 다 보여준다.
보통 ‘버디 무비’, 그것도 어떤 사건을 추적하는 영화는 대부분 상반된 캐릭터 둘을 붙여놓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신참과 베테랑 형사 같은 식으로. 그런데 백윤식과 성동일은 둘 다 참 세다. 캐릭터 간의 균형은 어떻게 조율했나?
성동일 선배님이 내게 많이 맞춰주셨다.
백윤식 그게 참 저절로 되는 거 같더라고. 그치? 캐릭터를 소화하면서 상대방과 무리 없이 호흡을 맞춰간다는 거 자체가 고수인 거지.
그런데 정말 이번 작품에서 처음 만났나? 그 수많은 작품들 속에서 한 번도 스친 적이 없다니, 되게 신기하다.
백윤식 성동일은 워낙 자기만의 존재감이 있는 배우니까, 만나기 쉽지 않았다.
성동일 선배님이 ‘저놈이랑 찍으면 영화가 좀 이상해진다’고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영화의 질을 위해서 나를 피하신 거지. 하하. 예전에 사적인 자리에서 뵙고 약주도 한잔하고 그랬는데, 협연을 한 건 처음이다. 백윤식 선배님이 출연하신다기에 나는 무조건 하겠다고 했다. 함께 연기해보고 싶더라고, 너무.
촬영 끝나고 나서 부쩍 친해졌나?
성동일 선배님이 워낙 금연, 금주를 하시고 몸 관리에 철저하다. 현장에서도 나보다 체력이 좋으셔서 부끄러울 정도였다. 영화 특성상 날도 많이 샜는데 티가 안 날 정도였으니까.
술자리를 많이 못 가졌다는 얘기네?
성동일 연출을 맡은 김홍선 감독이 원체 능력이 좋아서 하루가 멀다 하고 날을 샜기 때문에 사실 시간이 없었다.
백윤식 또 성동일이 워낙 바쁜 배우 아닌가? 촬영장 여기저기 다니면서 쏘고, 빠지고 하면서 전국을 돌더라고. 그래도 다 같이 두어 번 술자리를 가졌다. 우리 영화에 천호진도 나오는데, 호진이랑 마실 때도 발동 딱 걸리려고 했지만 각자 일을 위해 찢어졌다. 스태프들하고도 목포에서 전체 회식을 한 적이 있었다. 다음 날이 휴무라서 다 같이 젖어들어 회포를 풀었지.
성동일 선배님이 제일 어르신이니까 중간에서 늘 조율을 잘하신다. 내가 어느 현장을 가도 막내 소리를 듣는 법이 없는데 이 영화에선 ‘막둥이’였다.
대표적인 뻔한 질문 중에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가 있을 텐데, 많은 배우들이 ‘나여야만 하는 이유’를 찾았기에 작품을 선택하는 것 같더라고.
백윤식 나는 그런 이유로 작품을 선택하진 않는다. 제작자나 연출자가 내가 필요하다고 말하면 나는 ‘안 하겠다’고 말하는 식이지 대체로. 요 정도까지만 얘기하겠다. 반대로 말하면 ‘나를 필요로 하는 작품이었다’는 소리겠지.(웃음)
성동일 나는 출연 제안이 들어오는 대로 다 무는 편이다.(웃음)
백윤식 이번 작품은 투톱 배우가 호흡을 맞추어야 했는데, 상대가 성동일이라고 하니까 ‘참 연기하기에 맛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처음엔 안 하겠다고 했다. 하하.
“협연을 한 건 처음이다. 백윤식 선배님이 출연하신다기에 나는 무조건 하겠다고 했다. 함께 연기해보고 싶더라고, 너무.”
지금 현장에 갑자기 김홍선 감독이 찾아왔다. 어떤 사람인가? 일단 헤어스타일이랑 옷차림이 되게 특이해 보이는데.
성동일 웃음소리부터 벌써 특이한데, 어떨 때는 조리원 동기처럼 오래 알고 지낸 사이 같다. 그리고 상대방을 참 잘 읽는다. 내가 정말 화가 났다 싶으면 슬쩍 빠지고, 좀 괜찮다 싶으면 막 밀어붙이고 그런다. 영화 욕심이 되게 많아서 배우를 굉장히 괴롭힌다. 끝나고는 항상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것도 잊지 않는 편이다.
백윤식 성동일은 김 감독이 차기작 준비하면 꼭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투자팀들과 저녁을 먹는 자리가 있었는데 거기서 그렇게 얘기를 하더라고.
성동일 선배님은 같이 안 하실 건가?
백윤식 나는 그 질문 받고서 생각 좀 해보겠다고 했지. 하하. 이 친구는 무조건 참여하겠다고, 고난의 길을 또 걷겠다기에 속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성동일 내가 골고다를 좋아한다. 사실 아직도 사고 싶고, 갖고 싶은 게 많아서 그 정도는 이겨내야 되지 않나 싶다.
조금 전에 영화 예고편이 떴는데, 혹시 봤나?
백윤식 난 그거 보고 놀랐다. 너무 잘 나왔더라고. 감독한테 “이거 좀 사기 치는 거 아냐?” 할 정도로 실감 안 나게 잘 뽑았더라. 근데 김 감독이 본 작품은 더 좋다고 막 그러대. 내가 봐도 기대되더라고.
성동일 본편에 비하면 예고편은 하찮은 수준이다. 사실 예고편은 일식집의 스키다시만도 못한 거 아닌가. 본 음식은 아직 나오지도 않았다. 내가 〈청년경찰〉도 찍어봤지만 젊은 친구들의 ‘케미’보다 선배님과 나의 케미가 훨씬 더 짠한 무언가가 있다. 사실 그동안 한국 영화에서 나이 좀 지긋한 캐릭터들 간의 케미가 별로 없었거든. 아마 〈노병은 죽지 않는다〉 이후로는 거의 못 봤을 텐데, 바로 그 점이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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