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수를 주고받았다. 주춤거림이 없었다. 억지로 웃거나 강한 척 표정을 굳히지 않았다. 편안한 표정이었다. 그저 할 일을 할 뿐이라는 ‘쿨’함이 느껴졌다. 그의 첫인상이다. 인터뷰가 시작되자 그는 곧 이런 말을 꺼냈다. “남의 눈치 안 봐요. 남들이 별로라고 해도 내가 멋있다고 생각하면 해요.” ‘트렌드’는 식케이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그래서 ‘트렌디’함과 남 시선을 눈치 안 보는 건 상충되는 게 아니냐고 물었더니 “트렌드도 내가 하고 싶은 것 중 하나예요.” 이 대답을 듣고 사실 모든 의문의 퍼즐 조각들이 하나의 이미지로 확연해져서 그만 인터뷰를 마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는 인터뷰 내내 ‘계획’이란 단어를 꺼냈다. 식케이는 〈쇼미더머니〉 시즌 2와 4에 출연했다. 당시 영상을 찾아보면 지금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랩 스타일도 마찬가지다. 차근차근 변하는 모습이 뚜렷하다. 그 변화가 마치 계획과 실행으로 얻은 성장처럼 보인다. 그렇게 크러쉬, 로꼬, 그레이, 개코 등과 함께 꾸준히 작업하며 그는 올해, 힙합 신의 대표적 ‘허슬러’인 박재범이 대표로 있는 ‘하이어 뮤직’에 속하게 됐다. 때문에 남의 시선보다는 자신의 ‘바이브’를 지킬 줄 아는 낙천적이지만 멍청하지 않은 사람처럼 보였다. 간혹 소소한 이슈에 휩싸이는 게 이런 성격에서 비롯된 오해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그는 예민함이 아닌 예리함을 키우는 사람이다. 쉽게 굽힐 줄 모른다. 그가 말하는 ‘섹시함’이란 바로 이런 ‘힘’일 거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기 전 다시 악수를 주고받았다. 단단함이 느껴졌다.
작업실에서 매일 산다는 얘기를 들었다.
집이 작업실이다. 방이 세 개인데 제일 큰 방에 방음 부스를 설치해 작업실로 쓴다. 작업은 매일 한다. 일이지만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뭐랄까. 음악으로 돈을 벌고 있으니 일이 맞는데, 좋아하니까 하고자 하는 욕구와 추진력이 계속 따라오는 것 같다.
작년 7월부터 이번 〈BOYCOLD〉 앨범까지 약 1년 동안 3장의 EP를 발매했다. EP 앨범이지만 트랙 수가 정규 앨범에 버금간다. 〈프로듀스 101〉 출신 정세운의 곡 피처링과 〈쇼미더머니6〉 조우찬 무대 피처링까지 했다. 말이 안 되는 작업량 아닌가?
주변에서 나를 두고 ‘작업충’이라 한다. 하하. 피처링 포함해서 올해 발표한 곡만 35곡 정도 된다. 작년까지 합하면 50곡 정도 되려나? 그냥 하는 거다. 발표할 곡이 더 있으니까.
힙합 신에서는 작업량이 월등히 많은 사람을 ‘허슬러’라고 하지. 힙합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인 하이어뮤직 대표 박재범은 이미 소문난 ‘허슬러’고. 바통을 이어받은 것 같다. 대표 박재범의 작업량을 보며 무언의 압박 같은 걸 느끼나?
그런 건 아니다. 하하. 작년에 지누야 감독과 함께 뮤직비디오를 찍었는데 당시 이런 말을 하더라. ‘허슬 앞에 장사 없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하자는 거다. 작년에는 혼자 독립적으로 움직여서 곡 발표하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었는데, 회사에 소속된 이후로는 앨범 발매 순서를 지켜야 한다. 이제는 나 혼자가 아닌 다른 멤버도 있으니까. 내 마음대로 곡을 발표할 수 없다. 현재도 내 순서를 기다리는 중이다.
계속 작업만 하다 보면 지치지 않나?
작업실이 집이라 좋은 점은 바로 잘 수 있다는 건데, 안 좋은 점은 언제든 쉴 수 있으니까 쉬지 않고 끝까지 작업하는 거다. 습관적으로 최대한 덜 쉬고 작업을 이어가는 편이다. 잠을 거의 안 자고 작업만 하다 보면 몸이 망가지는 것 같다. 그래서 요즘 운동을 꾸준히 한다. 그리고 계획 세우는 걸 좋아한다. 어릴 적부터 비즈니스를 하는 아버지를 보며 받은 영향이 크다. 무엇이든 준비하고 철저히 하려는 모습을 말이다.
원동력이 뭔가?
스트레스가 ‘인풋’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일하는 걸 즐기거든. 앨범을 내면 항상 기대에 못 미친다고 느끼는데, 그럼 또 작업하는 거다. 그리고 계획을 세울 때 내가 얻을 것을 미리 예상한다. 실제로 성취하면 큰 기쁨을 느끼고. 그게 내 원동력이다. 계획, 실행, 성취감, 스트레스 ‘인풋’ 다시 계획. 이 사이클로 움직인다.
스트레스를 즐기다니, 변태 아닌가?
맞다. 하하. 보통 다른 뮤지션을 보면 앨범 발매일이나 행사 뛴 날에는 아무것도 안 하고 쉬던데, 이해가 안 되더라. 나는 그때가 시작이거든.
새로운 걸 계속 탐내다니, 야망이 큰 사람이네.
면도처럼 야망의 냄새를 맡은 거다. 하하. 요즘 들어 기분 좋은 일이 있다. 올해 4월에 회사를 시작할 때 입고 싶은 브랜드가 있었다. 당시 그 브랜드 입장에서는 내 체격이 브랜드 콘셉트와 맞지 않아 촬영 지원이 불가능했는데, 6개월 정도 지난 지금은 많은 부분 가능해졌다. 그 덕에 스타일리스트 누나도 좋아한다. 이런 게 성취감이다. 또 재범이 형은 다 가졌는데도, 더 할 수 있는 게 없어 보이는데도 계속 찾아서 해낸다. 주변 사람까지 챙기면서 말이다. 나도 그렇게 하고 싶다. 나이가 들면 주변 사람도 챙기고 신에 등장하는 지금 내 나이대의 어린 친구들에게 도움도 주고.
〈BOYCOLD〉 앨범을 발매했다. 어떤가? 성취감이 드나?
개인적인 기준에서 봤을 때 미흡한 부분이 있는데 어디까지나 내가 더 성장해야 해소할 수 있는 문제다. 음악 자체는 좋다. 발매 전 계획한 것들도 이뤄지고 있고. 사실 〈BOYCOLD〉는 프로모션을 프로듀서인 보이콜드한테 맞춘 앨범이다. 예전부터 알고 지내면서 엄청 잘하는 프로듀서라 생각했거든. 확신과 믿음이 있었다. 근데 씨잼과 비와이의 ‘퍼즐’ 이후 뜸한 것 같더라. 그를 알리고 싶었다. 잘하니까. 앨범명을 〈BOYCOLD〉라고 하고 곡 제목에 전부 ‘Prod. BOYCOLD’를 붙인 것도 그를 알리고 싶어서고. 동시에 소년과 차가움이란 단어의 질감이 수록곡 전체와 연관되는 지점도 있고. 막상 보이콜드는 본인 이름을 걸고 내는 앨범이기에 부담이 크다고 했지만, 솔직히 음악을 비롯해 다 좋다.
마지막 곡 ‘하이어 갱’ 이외에는 전부 사랑 노래고 가사에 ‘너’가 등장한다. 심지어 곡 ‘내일 모레’에는 ‘난 너를 위해 돈을 쓸어 담을 거야’라는 가사가 있다. 일단 ‘너’는 누군가?
다 같은 ‘너’는 아니다. 곡마다 생각한 인물이 다르다. ‘EX’는 자꾸 전 남자친구를 생각하는 내 여자친구에게 말하는 곡이고, ‘너의 밤’은 언뜻 사랑스러워 보이지만 너의 밤을 원한다는 내용이거든. ‘내일 모레’는 사랑하는 상대를 위해, 사랑을 위해 뭐든 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곡이고. ‘너’가 누군지 굳이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
〈BOYCOLD〉가 〈FLIP〉과 〈H.A.L.F〉의 EP 앨범 3부작 시리즈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게 있었나?
섹시함이다. 센 랩을 해도, 센 척을 해도 섹시한 어떤 것. 3부작 앨범을 순서대로 들어보면 음악이 점점 차가워지는데 그것 또한 섹시지. 물론 해외 진출까지 계획해 한국 정서에 맞지 않는 곡을 넣기도 했지만.
글로벌 계획?
완벽하게 영어 가사로만 이뤄진 앨범을 작업 중이다. 그리고 또 12월에 두 앨범을 발매할 예정이었다. 하나는 한국, 나머지 하나는 외국 버전. 가사뿐만 아니라 해외 아티스트와의 작업물을 담은 앨범인데 아마 내년에 낼 것 같다. 그중 해외 프로듀서와 작업한 곡 하나는 올해 안에 낼 거다. ‘락 네이션’과 계약한 재범이 형도 엄청난 걸 준비 중이다. 깜짝 놀랄 준비하라.
정규 앨범 계획은?
여태 여러 EP와 곡을 낸 건 프로듀서가 나한테 원하는 것, 대중이 나에게 원하는 것, 그리고 스스로 보기에 나에게 잘 어울리는 것을 찾기 위한 노력이었을지도 모른다.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한 거다. 작업량이 많았던 이유도 그렇다. 정규 앨범도 비슷한 맥락이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해야 할 게 명확해지면 EDM이든 록이든 할 거다. 다만, 좀 더 완성된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다. 내년 여름쯤에 발매할 예정이다. 재범이 형 정규 앨범에 수록곡이 19개였으니까 나도 그 정도는 되지 않을까?
이달의 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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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 크룰 〈OOZ〉
현재 한국 ‘힙스터’들의 북극성이라 할 수 있다. 아니다, 세계가 주목하는 초신성쯤 되려나? 이전 앨범들보다 재즈와 블루스 색채가 강해졌다. 중저음의 바리톤 목소리까지 더하며 화자와 사운드가 하나의 음악으로 완성된다. 술에 취한 새벽, 밤새 말없이 담배 피우며 듣고 싶은 앨범이다. 말이 필요 없다. 진지하게 ‘미친 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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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베이 〈Ash〉
기존 장르의 형식을 밑바탕으로 삼되 본인의 정체성까지 담은 새로운 사운드에 차별과 평등, 인권 등 사회적 메시지를 실은 앨범이 현재 세계에 몇이나 있을까? 블러드 오렌지의 최근 앨범이 그랬던 것 같다. 쿠바 출신 프랑스인 쌍둥이 자매 듀오 이베이의 〈ash〉도 그렇다. 앞서 말한 요소에 영적인 이야기까지 더한 앨범이다.
카사미 워싱턴 〈Harmony of Difference〉 EP
재즈계에 살아 있는 전설 웨인 쇼터, 허비 행콕은 물론 힙합 신의 전설 나스, 스눕독, 켄드릭 라마와 협연해온 카사미 워싱턴의 새로운 EP 앨범. 쉽게 말해, 그의 재즈 음악은 현대적이기보다 1970년대의 직관적이고 ‘솔풀’한 모습을 닮았다. 재즈에 익숙하지 않은 대중도 쉽게 따라가며 들을 수 있다. 현란한 기교보다는 직관적인 음색으로 가득한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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