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는 젠하이저, 목걸이와 시계는 모두 에디터 소장품.
“요즘 들어 랩은 그냥 에너지를 전달하는 도구가 된 것 같아요. ‘힙합 정신’을 고수하며 살아간다기보다는, 젊은 사람들이 힙합도 좋아하고 다른 여러 문화도 좋아하면서 동시에 자기를 표현하는 도구로 랩을 사용한다는 느낌을 받아요.”
여섯 번째 <쇼미더머니> 시즌이 끝났다. 이명박 시대에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이제 박근혜를 거쳐 문재인 시대에 와 있다. 올해도 <쇼미더머니>는 여전히 위력을 드러냈다. <쇼미더머니>를 통해 발표된 노래는 바로 음원 차트 1위에 올랐고, 이 프로그램에서 두각을 나타낸 래퍼의 인스타그램 팔로어는 몇 주간 몇십만 명이 늘었다. 이제 곧 래퍼들이 회사와 계약했다는 소식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본다면 조금 달라진다. 올해 <쇼미더머니>는 작년보다 화제성이 적었다는 말이 곳곳에서 들린다. 더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2.4%라는 시청률도 작년 최고 시청률(3.5%)에 미치지 못했다. 물론 이 사실이 <쇼미더머니>의 쇠락을 의미하진 않는다. 하지만 프로그램의 지속 여부에 대해 장기적인 고민을 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 이야기는 그만하자. 나는 제작진도 아니고 역술가도 아니니까. 미래는 신의 뜻이다. 사실 올해 <쇼미더머니>를 지켜보며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생각을 했다. <쇼미더머니>의 콘텐츠 자체 때문이기도 했지만 <쇼미더머니>가 여섯 번 진행되는 동안 극적으로 변화해온 한국 힙합의 양상 때문이기도 했다. 물론 한국 힙합의 변화가 모두 <쇼미더머니> 때문은 아니다. 그러나 <쇼미더머니> 없이 한국 힙합의 변화를 논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사실 역시 분명하다. 예를 들어 <쇼미더머니>는 래퍼들을 먹여 살렸다. <쇼미더머니>가 ‘판돈’을 키운 덕분에 많은 래퍼가 처음으로 큰돈을 벌었고 성공의 단맛을 봤다. 24세의 래퍼는 마세라티를 ‘뽑았다’고 SNS에 올렸다. 많은 래퍼의 노래 주제로 돈과 성공이 등장했다. 비난과 우려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돈 자랑보다 더 가치 있는 이야기를 하라는 성토가 이어졌고 래퍼들의 노래는 물질만능주의의 틀로 재단됐다.
하지만 그들은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노래보다 개인의 성공을 뽐내는 노래가 누군가에게 더 큰 영감과 동기 부여를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또 래퍼가 돈과 성공에 대해 더 ‘신선하게’ 말하기 위해 새로운 개념과 비유를 계속 발굴한다는 사실은 그들의 관심 밖이다. 무엇보다, 래퍼들이 노래에서 말하는 이야기는 자기 삶에서 실제로 느끼는 진짜 기분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자기의 ‘진짜’ 이야기를 솔직하게 뱉어내는 것이 힙합의 정수라면 래퍼들은 장르의 최대 가치 중 하나를 충실하게 실현하는 것일 뿐이다.
무조건적인 옹호가 아니다. 나는 이 모든 것이 그저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쇼미더머니> 초기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여섯 번째 시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눈에 잡힌다. 지난 몇 년간, 한국 힙합은 ‘돈’과 ‘성공’으로 상징되는 ‘한 시대’를 지나왔다는 사실이 말이다. 그것을 가리켜 시대정신이라고 부르기 찝찝하다면 ‘한 시대를 뒤덮었던 기운’ 정도로 해두자. 옳든 그르든, 우리는 이 시대의 도래를 막을 수 없었고, 이미 이 시대를 겪는 중이다. 어떠한 개인도 시대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이것은 마치 한국 힙합의 운명처럼 느껴진다.
한국 힙합의 변화와 관련해 또 하나 중요한 지점이 있다. 힙합을 향유하는 세대가 바뀌고 또 새로 유입되면서 힙합(랩)을 대하는 태도에도 변화가 생겼다. 이에 관해서는 팔로알토의 말로 대신하려고 한다. 얼마 전 그와 대화를 나눴는데 그의 생각이 정확히 나의 생각과 같았기 때문이다. 팔로알토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가 요즘 느끼는 랩이란, 그냥 젊은 사람들이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인 것 같아요. 그동안 저는 자신의 삶의 태도와 철학을 전달하는 것이 랩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요즘 들어 랩은 그냥 에너지를 전달하는 도구가 된 것 같아요. ‘힙합 정신’을 고수하며 살아간다기보다는, 젊은 사람들이 힙합도 좋아하고 다른 여러 문화도 좋아하면서 동시에 자기를 표현하는 도구로 랩을 사용한다는 느낌을 받아요. 말 그대로 랩을 통해 젊음을 표출한다고 할까. 가사를 통해 사람들에게 뭘 알려준다든지 하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고 에너지를 표출하는 데 중점을 둔다는 느낌을 받아요.”
이것은 한국 힙합만의 특수성은 아니다. 미국에서는 요즘 ‘멈블 랩(Mumble Rap)’이 비판받는다. 웅얼거리며 랩을 하기 때문에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위 멈블 랩을 구사하는 젊은 래퍼들의 인기는 지금 엄청나다. 그렇다면 젊은이는 왜 멈블 래퍼에 열광하는 걸까. 가사를 알아들을 수도 없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에게 가사는 별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에게는 에너지와 기운, 분위기가 중요하다. 그리고 이것은 한국에서 힙합이 각광받는 이유, <쇼미더머니>가 성공한 이유(중 하나)와 다시 연결된다. 문득 이런 의문이 스친다. 랩에서 가사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가사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됐을 때 랩의 존재 의의는 어떻게 달라질까. 또 힙합 팬과 ‘힙한 것’의 팬은 서로 얼마나 겹치고 또 구별될까. 더 나아가 <쇼미더머니>의 성공은 정말로 힙합의 성공일까. 그리고 이 버블 시대가 지나가면 한국 힙합은 어떻게 될까.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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