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넥 가르델리 2012
메다나는 슬로베니아 와인 역사에서 가장 첫 번째로 언급되는 지역이다. 고대 와인 양조법의 온상으로 불리는 메다나에서 1918년 설립해 현재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와이너리가 바로 클리넥. 이곳의 와인 중 특히 2012년 빈티지는 기분 좋은 산미가 느껴지고, 자몽 과실의 풍미가 슬쩍 스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덕분에 육류, 해산물을 가리지 않고 어떤 음식과도 좋은 매칭을 보여준다.
볏짚, 오렌지 껍질, 잘 구운 단호박이 이런 색일까? 늦은 오후의 가을볕은 또 어떻고. 사실 투명한 유리잔에 오렌지 와인을 따라놓고 그 고운 '때깔'만 논하기에도 시간은 부족하다. 하지만 새로 떠오르는 이 와인 주변으로 유독 수수께끼가 무수하다. 편견과 오보가 와인을 칭칭 동여매고 있다. 미리 말해두자면, 오렌지 와인은 오렌지로 만들지 않는다. 화이트 포도 품종으로 생산하지만, 레드 와인의 생산 절차를 따른다. 별명은 제4의 와인, 한편 풍미를 둘러싸고는 정초의 널뛰기마냥 호불호가 들쑥날쑥 갈린다. 와인잔 주위로 코를 킁킁대며 "이것은 위스키의 풍미"라고 말하는 이도 더러 있을 정도다. 와인이라는 장르는 언제나 지구 반대편처럼 아득하고 멀지만, 유독 오렌지 와인 앞에서 더욱 초라해진다. 고운 때깔만이 이 와인을 알아챌 수 있는 유일한 표지. 그리하여 와인 수입사 '네이처 와인'의 대표 한건섭에게 오렌지 와인에 대한 사소한 물음 6가지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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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렌지 와인은 화이트 와인일까, 레드 와인일까?
범주를 딱 잘라 정하자면 화이트 와인. 오렌지 와인은 화이트 포도 품종으로 생산한 와인에 국한한다. 다만 레드 와인의 생산 절차를 따를 뿐이다. 오렌지 와인은 일반적인 레드 와인의 양조와 마찬가지로 포도 과육과 껍질을 접촉시키는 '침용' 과정을 거친다(화이트 와인 양조에는 이 침용 과정이 없다). 침용을 통해 색소와 타닌이 우러나고, 여기에 자연적인 미세 산화까지 더해 오렌지 와인 고유의 노란 빛깔이 완성된다. 그런데 오렌지 와인에는 화이트 와인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산화로 인한 복합적 풍미, 혀를 깨우는 단단한 산미, 촘촘하게 느껴지는 타닌감 등. 레드, 화이트, 로제에 이은 '제4의 와인'이란 별명도 이 때문에 획득했다. 화이트 와인이지만, 레드 와인처럼 상온이나 약간 서늘한 온도에 둔 뒤 음용하는 지점 역시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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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고대 와인의 환생?
오래전 슬로베니아 수도승들은 미사주로 사용할 와인을 운송하기 위해 특별히 산화 방지에 주의했다고 한다. 성직자 마티야가 1844년 기록한 와인 양조에 관한 책자를 살펴보면 화이트 와인의 산화를 방지하기 위해 포도 과육, 껍질, 씨를 함께 발효한 후 오랜 시간 침용을 시도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일반적인 와인에서는 발견되지 않은 페놀 화합물, 안토시아닌, 타닌 같은 성분이 추출되었을 테고. 그 결과 오렌지에 가까운 색상, 독특한 풍미, 타닌을 갖추게 됐을 거다. 그러니까 오늘날 우리가 오렌지 와인이라 간편하게 명명한 와인은 사실 고대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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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오렌지 와인은 더 맛있을까?
적어도 부드럽거나 둥근 느낌과는 거리가 멀다. 견과류, 꿀, 농익은 사과 향이 감돌고, 무엇보다 한 모금 머금었을 때 산미와 타닌감이 훅 올라온다. 이 독특한 풍미 덕에 와인 애호가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편이다. 다만 오렌지 와인 역시 품종에 따라 다양한 스타일을 보여준다. 뚜렷한 오렌지색과 타닌을 갖춘 시비 피노 품종이 있는가 하면, 묵직한 보디감을 보여주는 레불라, 균형감 있는 산미와 풍미를 갖춘 리슬링도 있다. 결국 취향의 문제다. 여러 품종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이 병, 저 병을 쟁여 많이 마셔보는 것만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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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오렌지 와인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음식?
입에 착착 붙는 산미로 해산물과 쿵짝이 잘 맞는다. 달달 끓인 샥스핀 수프나 살짝 구운 해산물, 바지락 술찜 같은 요리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어쩐지 '만능키' 같은 느낌이지만, 단단한 타닌감 덕에 육류와도 곧잘 어우러진다. 기름기 있는 장어구이, 미디엄이나 레어로 구운 스테이크로 한 상 차리면 오렌지 와인 한 병쯤이야 금세 해치울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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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오렌지 와인은 내추럴 와인일까?
앞서 말한 고대 슬로베니아 수도승들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당시 비파바 지방의 많은 오렌지 와인 생산지는 고지대나 계곡 사이에 위치했다고 한다. 제초제나 살충제 같은 약품이 개발되기 이전이었기에 자연에서 얻은 퇴비로 포도밭을 관리할 수밖에 없기도 했지만, 거센 바람이 휘몰아치는 지역적 특성 덕에 해충과 균을 비교적 쉽게 예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오늘날 역시 오렌지 와인 생산의 기본은 건강한 포도다. 껍질과 씨를 함께 넣어 발효하는 만큼 건강한 포도를 수확하기 위해 특별한 포도밭 관리가 요구된다. 포도 수확뿐 아니라 고대의 전통에 따른 양조 과정 역시 내추럴 와인의 그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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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렇다면 어느 와이너리에 주목해야 할까?
지금 미쉐린 레스토랑을 중심으로 심심찮게 출몰하고 있는 클리넥 와이너리의 와인. 옛 수도승의 와인 창고를 그대로 유지해오며 와인을 생산하고 있는 바틱 와이너리 또한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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