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일에 감사하고 행복해하는 습관을 가지려고 한다.
행복도 자꾸 연습을 해야 하거든.”
대한민국에는 엄연히 ‘임창정’이라는 장르가 존재한다. ‘임창정표 영화’는 역시 코미디다. 사회적 비주류라 할 수 있는 허점 많은 남자의 웃기고도 짠한 이야기를 임창정만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배우는 없다. ‘임창정표’ 발라드는 또 어떻고. 적극적으로 사랑을 쟁취하려는 투지 대신 먼발치에서 바라보다, 그럼에도 잊지 못해 ‘여보세요, 나야, 거기 잘 지내니’라는 안부를 전할 뿐이다. 지난해, ‘생목’으로 고음을 내지르는 노래 ‘내가 저지른 사랑’으로 노래방에서 여럿 고생시킨 그는 요즘 무척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소주 한잔’이라는 공전의 히트곡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동명의 술집이 프랜차이즈가 됐고, 영화 <로마의 휴일>도 개봉을 앞두고 있다. 제주도로 이사를 간 그는 거기서 소주도 마시고, 골프도 치고 족발집 프랜차이즈를 준비하는 한편 1년짜리 영화 프로젝트를 구상 중이다. 또 하반기에는 새 앨범을 낼 계획이라고 했다. 그가 휴대폰을 내밀며 뭔가를 보여줬다. 하나는 아이들이 수영장에서 놀고 있는 영상이었고, 또 하나는 연말 특급 프로젝트라는 남자 아이돌 가수와의 듀엣 곡 음원이었다. 삶도, 일도 모두 만족스러워 보여 마음이 놓였다. 창정이 형한테는 이렇게 마음이 가고 그런다, 괜히.
영화 <창수>의 이덕희 감독 차기작에 출연한다기에 좀 놀랐다. 혹시 의리로 출연한 건가?
맞다. 그렇다. 때마침 내가 영화도 없었고. 하하.
그럼 공형진, 정상훈도 임창정에 대한 의리 때문에 이 영화를 선택한 건가?
아니다. 시나리오가 두 배우에게 갔고, 자연스럽게 같이 하게 된 거다. 중간에 확인은 서로 했지. “형, <로마의 휴일> 한다며? 나도 해.” 뭐, 이 정도다.
시사회 리뷰를 보니, 앞부분은 웃기고 뒷부분에선 눈물이 난다던데. 맞나?
맞다. 사실 나도 그런 거 싫어한다. 한국 코미디 영화 보면 처음에 자유분방하게 막 웃기다 나중에 휴머니즘을 부각하면서 감동 코드 넣는 거 있잖나. 그래서 관객이 억지 감동을 끼워 넣는다는 비판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안다. 그 감동 코드를 세련되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뭘까, 나도 고민했다. 답은 진정성이었다. 내가 이 영화를 봤는데, 적어도 짜치지는 않는다. 사실,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싶을 때 보면 되는 영화다. 우리도 아무 생각 없이 찍었거든. 하하.
임창정에게서 관객은 ‘짠 내 나고 지질하지만 정이 가는’ 캐릭터를 기대한다. 이건 배우로서 시그너처인가, 아니면 넘어야 할 벽인가?
내가 학생이라고 치자. 국영수 중에 수학만 잘하거나 영어만 잘하는 친구가 있듯, 나는 코미디라는 과목을 잘하는 학생인 것 같다. 한 과목을 월등히 잘하는 거지. 그래서 자꾸 이런 영화를 하게 되는 거다. 내가 좋은 대학에 가려면 여러 과목을 두루두루 잘해야겠지. 그건 내가 앞으로 더 공부해야 할 숙제다. 유난히 코미디를 넘치게 잘하는 거 같긴 하다. 하하.
과장해서 말하자면 ‘임창정’이라는 장르의 연기를 개척한 선구자인 셈이다. 배우로서 더 파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특정 장르나 캐릭터보다 내 이름을 건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다. 그래서 어떤 프로그램의 판권을 사서 각색하고 있다. 내년에 내가 연출할 거다. 대작은 아닌데 제주의 사계를 담기 위해 1년 정도 시간을 두고 천천히 찍으려고 한다. 완성되면 영화제에 출품하고 싶다. 감독, 각색, 주연, 영화음악, 제작 전부 다 내가 한다. 제주도에 있는 50대 아저씨가 베트남 아내를 맞이하고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제목이 <띠엔>이다.
듣자마자 <파이란>이 떠올랐다. 영화를 보다 눈물 좀 쏟겠는데?
굉장히 슬프다. 아마 많이 울게 될 거다.
1년 동안 다른 거 안 하고 이 작품만 찍을 건가?
얼마 전에 제주도로 이사를 했다. 어려서부터 제주도를 좋아해서 언젠가는 꼭 내려가서 살아야지 하는 꿈이 있었다. 마침 아이들도, 집사람도 좋아하길래 그냥 내려가자고 결정했다. 어차피 제주도에서 살고 있으니까, 여유를 가지고 1년 내내 몰두하려고.
영화만 ‘임창정’ 장르가 있는 게 아니다. 노래에도 ‘임창정표 발라드’가 있다. 임창정이 부르는 발라드의 필수 요소는?
마흔 즈음에 느끼는 사랑의 감정을 자극적이지 않은 가사로 표현하는 게 관건이다. 구속하지 않고, 멀리서 지켜봐줄 줄 아는 사랑. 그게 실은 더 깊은 사랑이다. 요즘 아이들보다 나이가 어느 정도 된 사람들이 이해할 만한 정서가 있다. 9월에도 새 앨범이 나오는데, 이후 하반기에 듀엣 프로젝트를 발표할 거다. 여자 보컬과 듀엣, 남자 보컬과 듀엣 곡을 이미 완성했다. 여자는 내가 발굴한 보석 같은 친구고, 남자는 아이돌 보컬리스트다. 상상도 못할 조합인데 이따 인터뷰 끝나고 들려줄 테니 한번 맞혀봐라.
“마흔 즈음에 느끼는 사랑의 감정을 자극적이지 않은 가사로 표현하는 게 관건이다.
구속하지 않고, 멀리서 지켜봐줄 줄 아는 사랑. 그게 실은 더 깊은 사랑이다.
요즘 아이들보다 나이가 어느 정도 된 사람들이 이해할 만한 정서가 있다.”
아이돌이라면 내가 금방 맞힐 수 있다. 근데 지금 영화와 앨범뿐 아니라 요식업계의 큰손이 됐다. ‘소주 한잔’이라는 술집이 대박 나지 않았나? 거의 제2의 백종원 수준이다.
‘소주 한잔’이라는 노래가 유명하니까, 그 이름을 딴 아지트를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다. 집 앞에 조그맣게 만들었는데 그게 그렇게 잘될 줄은 몰랐다. 제주도에도 족발집을 프랜차이즈로 낼 생각이다.
인스타그램에서도 열심히 홍보 중이더라. 요즘엔 왜 일상 사진 안 올리나?
오직 홍보용으로만 사용하고 있다. 원래 인스타 팔로어가 30만 명 정도 있었는데 누가 자꾸 이상한 게시물을 올려서 싹 밀어버렸다. 게시물 하나만 지우면 되는데 그걸 모르고 그만. 그래서 최근에 다시 시작해서 팔로어 2만 명을 넘겼다. 그리고 꼭 뭐만 올리면 이러쿵저러쿵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그냥 홍보 창구로만 사용한다.
원래 팬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으로 유명하지 않나? 디시인사이드에 올린 ‘아재’스러운 글 때문에 ‘휴먼 창정체’란 말도 생겼고.
팬들이 나를 연예인보다는 동네 형으로 봐준다. 그래서 내가 과한 행동을 해도 ‘우리 동네 형이니까’ 하고 이해해주는 부분이 있다. 아무래도 다른 연예인보다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이 조금 넓다. 서로 편하게 소통하긴 하는데 가끔 정색하는 친구들이 있다. 웃자고 한 얘기에 달려들어서 그걸 앞뒤 조리 있게 요모조모 따져서 설명하는 친구들 보면 참, 짜증이 난다. 하하.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나?
보성이 형처럼 의리가 1등은 아니다. 의리도 적당히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나와 내 가족이 먼저다. 의리를 지키더라도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해야지. 근데 사실, 피해를 주긴 한다. 남한테 돈을 빌려주니까.
아, 그런 거 하지 마라. 제일 위험한 거다.
아이참, 그렇게 된다. 생각은 ‘선을 지키자’고 하는데 막상 행동이 잘 안 따른다. 정에 약해서.
요즘 임창정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일은 뭔가?
이 세상에서 하는 일이 딱 세 가지 있다. 일, 골프, 소주. 요즘 제주도 사니까 강남의 비싼 술집도 못 가고, 비싼 차 같은 것도 예전에 다 타봐서 흥미가 없다. 옷에도 관심 없고 도박도 안 한다. 오로지 일, 골프, 소주뿐이다. 특히 저녁에 아주 맛있는 음식과 소주를 먹는 게 가장 행복하다. 늦게까지 마시지도 않는다. 밤 9시에 자리를 마치고 집에 가서 바로 잔다. 그리고 아침 6시에 일어난다.
규칙적으로 사는 편이네?
아니지. 술을 엄청 많이 먹는다. 그래서 빨리 먹고 빨리 숙취를 해소하기 위한 최적의 타임 테이블이다.
아, 그래서 헛개차 광고를 찍었구나. 제주도에서는 소주가 더 맛있나?
훨씬 달다. 내가 늘 기분 좋게 여행하던 곳이 이제는 우리 집이라는 생각에 행복하다. 요즘엔 수영장이 딸린 타운 하우스를 짓고 있다. 작은 일에 감사하고 행복해하는 습관을 가지려고 한다. 행복도 자꾸 연습을 해야 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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