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 신선한 즐거움을 줄 수 있다면 배우이기 전에 사람으로서도 행복하다.”
서울예대에서 연기를 전공했다. 어려서부터 연기자를 꿈꾼 건가?
아니다. 어려서는 성악을 했고, 고3 때는 실용음악을 했다. 그러다 뮤지컬을 보고 연기와 음악을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 연기학과에 진학했다. 고3 때 몇 개월밖에 준비를 못 했는데, 다행히 어려서부터 음악과 무용을 해서인지 운 좋게 합격할 수 있었다.
실용음악을 했다면, 아이돌 제의를 받았을 것 같다. 아이돌 가수를 생각한 적은 없었나?
마이너한 감성이 있다. 대학 다닐 때도 방송보다는 연극과 뮤지컬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데뷔가 빠른 편이 아니다. 음악 할 때도 마찬가지다. 아이돌보다 인디 신에서 활동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내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 좋지만, 그것보다 내 음악을 하고자 하는 욕심이 더 컸던 것 같다. 글을 쓰고, 가사도 쓰고 음악도 만들면서 내 감정, 내 이야기로만 노래하고 싶었다. 에이미 와인하우스처럼 말이다. 고등학교 때는 홍대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노랫말을 직접 쓴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최근에도 가사를 써본 적 있나?
하하. 지금은 랩을 한다. 우울한 정서가 담긴 랩을 많이 한다. 본래 그런 정서를 좋아했다. 내가 쓴 랩의 주제는 주로 사회적인 이슈나 내 자아에 대한 이야기다. 또 그런 음악을 오랫동안 좋아하다 보니 지금 내 감성은 사랑이 꽃피는 예쁜 가사보다, 더 콰이엇의 ‘상자 속 젊음’ 같은 곡에 가깝다.
흥미롭다. 이엘리야의 캐릭터는 도도하게 예쁜 아나운서, 못됐지만 예쁜 악녀, 청순하게 예쁜 소녀다. 여기에 우울한 힙합 가사를 쓰는 예쁜 펀치라이너도 추가해야겠다. 그래서 랩은 어떤 방식으로 쓰나?
가사를 쓸 때는 주로 관찰자 입장에서 내 이야기를 담는다. 내가 겪었거나 겪게 될 문제들에 대해 쓴다. 쓰다 보면 어느 순간 라임을 맞추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예전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다. 일기는 어릴 때부터 꾸준히 썼고.
일기는 언제까지 썼나?
어젯밤에도 썼다. 글쓰기를 좋아해서 휴가 때는 일기장과 책을 들고 떠난다. 이렇게 일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도 많이 하는 거지, 평소에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는 편은 아니다. 그냥 내 이야기를 글로 쓰고, 또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글 안에서 나를 발견하게 된다.
“연기자는 어떤 대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힘이 필요한 것 같다. 그러니까 나는 0이고, 무채색이라는 태도를 갖춰야 한다. 그런 뒤에 색이나 감정을 입히는 작업을 해나가야겠지.”
글을 쓸 때 독자를 상상하나? 타인에게 혹은 미래의 나에게 보여주기 위한 기록을 하는 건가? 아니면 단순한 욕구 해소를 위해 쓰는 건가?
오로지 나만을 위한 글이다. 어렸을 때 쓴 일기를 아주 가끔 꺼내 본다. 그런데 지금보다 더 철들어 있어서 놀랄 때가 있다. 뭐, 스무 살 때 쓴 글을 보면 너무 우울하고 어둡고 깊고 그렇다. 시간이 갈수록 나에게 여유를 주려고 한다. 나 자신을 더 사랑하자는 생각을 한다.
우울한 정서를 좋아하는데, 글이든 음악이든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우울함은 좋은 소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슬플 때는 노래를 녹음한다. 아무에게도 들려주지 않고 혼자 듣기 위한 노래다.
글쓰기, 랩, 음악 등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작업이 연기에는 어떤 도움을 주나?
나를 스쳐 지나가는 것들, 내가 느끼는 것을 잘 수용하는 편이다. 주위 상황이나 사물을 잘 흡입하는 사람이다. 연기자는 어떤 대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힘이 필요한 것 같다. 그러니까 나는 0이고, 무채색이라는 태도를 갖춰야 한다. 그런 뒤에 색이나 감정을 입히는 작업을 해나가야겠지.
관찰력이 좋은 편인 것 같다.
맞다. 그래서 한 번 지나간 길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다. 길을 잘 외운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은 무엇인가?
<오리지널스>와 <인간의 위대한 여정>을 번갈아가면서 읽고 있다. 소설보다 인문학 서적을 더 좋아한다. <오리지널스>는 재밌으니까 꼭 읽어보길 권한다.
바쁜 시간을 쪼개서 다독하는 게 대단하다.
사실 그렇게 안 바쁘다. 하하. 연기자란 직업이 프리랜서이니까 일 없을 때는 시간이 많다. 스트레스 해소법이 ‘사람들 만나기’가 아니라 ‘독서’다. 책을 항상 옆에 두려고 한다.
이상형도 궁금하다. 이엘리야는 어떤 남자를 만날까?
이상형 있다. 밤하늘의 별을 함께 보면서 밤새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다. 밤하늘의 별을 함께 본다는 것은 나와 감성이 비슷한 사람이라는 것이고, 또 밤새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은 나와 말이 잘 통한다는 뜻이다. 밤을 새운다는 것은 신뢰하는 사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믿고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감성이 잘 맞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그럼 먼저 함께 별을 보러 갈 수 있는 사이가 돼야겠네? 예선이 쉽지 않다.
하하. 그건 그들의 기술이겠지.
배우 이엘리야의 다음 행보는 어떻게 될까?
보는 이로 하여금 미소 짓게 할 수 있는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다. 그림 그리는 사람도 좋고, 일에 순수하게 몰입해 현실과 부딪치는 캐릭터도 재미있을 것 같다. 사람들에게 신선한 즐거움을 줄 수 있다면 배우이기 전에 사람으로서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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