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작품의 무게
2018 S/S 맨즈 패션위크 취재차 밀라노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아주 강렬한 15분을 경험했다. EDITOR 안주현
밀라노 컬렉션 취재 기자에게만 주어지는 일종의 보너스가 있는데, 바로 프라다 재단 박물관, 폰다치오네에 갈 수 있다는 것이다. 폰다치오네의 특별전은 매우 독특하고 수준이 높은 걸로 유명하다. 고맙게도 프라다 코리아에서 특별전을 쉽게 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번엔 VR 체험이라고 했다. 그때만 해도 별 생각이 없었다. 제목은 〈살과 모래(Carne y Arena)〉,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과 에마누엘 루베스키 촬영감독이 협업한 가상현실(VR) 영상이란 거창한 내용을 들었을 때도 ‘아~’ 하고 말았다. 전시장의 철문을 열었다. 실내는 천장이 낮고 사면이 회색인 스테인리스 감옥. 우선 신발과 양말을 벗고, 모든 소지품을 사물함에 넣으라고 했다. 맨발로 덩그러니 놓인 벤치에 앉았다. 아무도 없었고, 바닥엔 온갖 낡은 신발들이 흩어져 있었다. 곧 문 위에 달린 빨간 알람이 울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온통 컴컴한 공간, 이어 도우미 두 명이 다가왔다. 발을 딛는데 거친 모래가 느껴졌다.
도우미는 나에게 백팩과 VR 헤드셋을 장착해주곤 마음껏 움직여도 된다고 말했다. 영상이 시작되자 끝없는 사막이 펼쳐졌다. 고개를 360도로 돌려봐도 메마른 사막. 이윽고 사람 무리가 나타났다. 병들어 비틀거리는 할머니와 젊은 여자, 몇 명의 장정, 그리고 어린아이도 있었다. 그들은 맨발로 사막을 지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정적을 깨며 경찰이 나타나 그들을 겨눈다. 경찰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총구를 들이댔고, 반항하면 때렸다. 너무 사실적이라 심장이 쿵쾅거렸다. 영상은 약 6분 정도 계속됐고, 나는 내내 움츠러들어 그 광경을 지켜봤다. 영상이 끝나자 주변은 다시 암흑. 도우미들은 장치를 내게서 떼어내고 다음 코스로 이동하라고 했다. 좁은 복도엔 멕시코와 미국 국경에 설치되었던 쇠 벽이 있었다. 다음 방으로 들어서자 아까 VR로 본 얼굴들이 영상에 담겨 있었다. 그들은 온두라스와 과테말라 출신 난민이며 실제로 미국 국경을 넘다 내가 VR로 본 일을 겪었다. VR 영상엔 그들이 직접 출연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빛이 쏟아져 눈이 부셨다. 난민에서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강렬한 경험이었다. 지금도 누군가는 지구 반대편에서 그 삭막한 국경을 몰래 지나고 있을 거다. 패션 같은 게 뭐가 중요할까, 그저 먹먹한 심정으로 걸었다.
Tech
유튜브 세대
포털에서 검색하자 ‘아재’ 소리 들었다. EDITOR 조진혁
모르는 게 생기면 포털에서 검색했다. 한때는 그게 당연했다. 주변에 잘 아는 사람한테 물어봐도 미심쩍고, 전문가라고 할 만한 사람도 흔치 않았으니까. 인터넷을 하다 보면 모르는 게 너무 많고, 몰라도 될 만한 것들을 쓸데없이 보게 된다. 대표적인 사이트가 유튜브다. 정보를 얻으려고 찾는 게 아니라 웃긴 영상이나 뮤직비디오나 메시 드리블 스페셜 등을 보는 용도로 이용했다. 유튜브는 지금 보고 있는 영상과 비슷한 주제의 영상을 추천해주는 알고리즘으로 운영되니 한 주제에 빠져들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게 된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다르게 이용한다. 새로운 카메라를 리뷰할 때였다. 카메라를 짐벌에 장착하려면 메모리 커버를 탈착해야 했는데, 아무리 봐도 탈착하는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사용설명서에는 그림으로 대충 설명되어 있는데 전혀 이해가 안 됐다. 옆에 있던 20대 초반의 사나이에게 물어보니, 유튜브에서 해당 카메라 사용법을 검색해 내게 보여줬다.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보여주던 그 친구의 표정은 익숙했다. 15년 전 아저씨들에게 이메일 보내는 방법을 알려주며 내가 짓던 표정이었다. 아저씨들은 로그인하는 법과 첨부하는 법을 작은 노트에 메모하고 있었다. 당시의 나는 그런 행동이 답답했고, 이해할 수 없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변할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화가 났지만 어른에게 화를 낼 수는 없어 미간만 찌푸렸다. 그 표정을 보았을 때 마음은 아팠지만 인정해야 했다. 내가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닌데, 나이가 들어버렸고 시대에 조금 뒤처졌다. 그날 유튜브에 들어가서 궁금한 걸 검색했다. 예를 들면 포토샵에서 구름 효과 내는 방법이나, 합성하는 것이나, 영상 편집 기술이나 그런 것들이었다. 그 외에 처음 보는 장비를 유튜브에 검색하면 사용법이 자세히 나왔다. 영상을 보고 따라 하면 되니 글로 읽는 사용설명서보다 친절했다. 요리나, 청소나 무엇이든지 있었다. 세대는 바뀌었다. 유튜브를 보고 자란 세대는 영상을 검색하고, 영상으로 글을 읽고, 영상을 보면서 시간을 때운다. 지식인이 쓴 글을 읽고 따라 하던 시대는 지났다. 내가 떠나보낸 건 아닌데…. 그래도 이제는 인정할 때다.
Issue
책을 어떻게 사느냐면
작은 서점에서 정말로 책을 샀다. 그것도 많이. EDITOR 이경진
먼저,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 소식을 듣고 목 빼고 기다렸다가 인터넷 예약 판매를 통해 산다. 연중 가장 분명하게 계획하고 실행하는 도서 구매 패턴이다. 이 밖에는 대중 없다. 눈에 띄는 대로 사고 읽는다.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에서 ‘팔로’한 친구가 소개한 책, 전에 ‘좋아요’ 눌러둔 리스트를 다시 보다 눈에 띈 책, 이것저것 훑어보다 문득 읽고 싶어진 책을 보통은 산다. 어릴 땐 무조건 큰 서점에 갔다. 대형 서점은 언제나 두 팔 벌려 나를 반기는 것 같았다. 어리고 아무것도 아닌 내가 언제든 파묻혀 종일 신세를 져도 좋기만 한 곳이었다. 그때는 책을 어떻게 읽느냐면, 그냥 읽었다. 아무 책이나 잡고 읽었다. 지금은 어떤가 하면, 그 큰 서점을 헤매고 있을 시간이 솔직히 부족하다. 일도 해야 하고, 건강하게 일하려면 운동도 해야 하고, 술도 마셔야 하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를 해야 한다. 책의 세계는 점점 광활해지는데, 나에겐 그 세계를 마음껏 탐험할 여유가 부족해졌다. 그리하여 이달에는 작은 서점 몇 군데를 다녔다.
서점 주인들에게 당신들이 읽고 있는 책에 대해 말해달라 했다. 〈아레나〉 독자에게, 당신의 그 사적인 독서 리스트를 귀띔해달라고 했다. 작은 서점 주인들은 책을 고를 줄 안다. 그들의 책 ‘셀렉트’ 프로세스에는 아주 촘촘한 그물이 장착되어 있으니까. 주어진 물리적 공간의 크기대로, 그들은 거르고, 골라서 판다. 좋아하는 책, 읽고 싶은 책, 온 국민이 읽었으면 하는 책, 의미 있는 책들을 건져 올린다. 작은 서점은 그렇게 작고도 컸다.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책들과 대형 서점에서 내걸어둔 ‘카피’나 표식 밑에 서지 못하여, 발간되고도 그 존재를 뽐내지 못한 책들이 반짝거렸다. 서가에 듬성듬성 꽂힌 책 등을 살피기만 했을 뿐인데, 읽고 싶은 책들이 우르르 손에 잡혔다. 결국 4곳의 서점을 다니며 10권의 책을 샀다. 작은 서점의 매력에 푹 빠진 거다. 잠시 들른 대형 서점에서는 보지 못했던, 재미있는 책들이 평균 면적 약 10㎡도 되지 않는 작은 서점에는 뭐 그렇게 많던지. 어차피 마감이라 당장 읽을 수도 없는데. 마음이 달아 마음에 들어온 책들을 다 사버렸다. 그리고 다음 주말에 꼭 다시 오리라는 다짐도 했다지. “요즘 유행인데, 그곳들 정말로 장사는 되냐”는 말을 듣던 작은 서점에서 마음에 드는 책을 샀다. 그것도 너무 많이.
Fashion
박수칠 때 떠나라?
파리의 편집 매장 콜레트가 영업 종료를 선언했다. EDITOR 노지영
에펠탑, 그리고 콜레트 없는 파리는 생각해본 적 없다. 1997년 ‘파리에서 발견할 수 없는 것을 판매하는 곳’이라는 콘셉트로 문을 연 편집매장 콜레트는 올해로 꼭 20주년을 맞이했다. 그런데 돌연, 올해 12월을 마지막으로 영업 종료를 선언했다. 공식 SNS 계정과 홈페이지를 통해서. ‘섭섭해. 내 의견은 묻지도 않고!’라고 댓글을 달려다 말았다. 애인에게 문자로 차인 기분이랄까? 적어도 패션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면 나와 같은 마음일 테지. 콜레트는 그 자체가 브랜드였으며, 소통과 협업의 장이었다. 1유로짜리 막대사탕부터 9천유로의 드레스까지 이곳에 디스플레이된 모든 제품은 무엇이든 간에 상품성을 인정받으며 팔려나갔다. 또 신인 디자이너들의 입신 관문이었는가 하면, 이들만의 심미안으로 큐레이팅한 미술관, 전시장, 런웨이가 되기도 했다. 삶과 직결된 모든 것을 다루며 ‘물건을 파는 곳’ 그 이상의 상징성을 지닌 곳이었던 것. 내가 학생일 때 이곳에서 ‘앤트워프 6인방’이라고 불리는 디자이너 관련 서적이라면 모조리 캐리어에 실어오곤 했다. 후에 ‘패션 에디터’라는 직함을 달았고, 작년 이맘때쯤 내가 편집에 참여한 잡지가 콜레트에서 판매된 일은 앞으로도 두고두고 자랑할 일이다. 아마, 내 마음속에 ‘패션에 대한 동경’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이 감동은 영원히 잊을 수 없겠지. 나에게 콜레트는 이런 의미다.
콜레트가 밝힌 영업 종료 이유는 창립자 콜레트 루소의 은퇴. 창립자가 없는 콜레트는 의미 없다고 판단, 박수칠 때 떠나는 방법을 택했다. 매장의 뷰가 담긴 디스플레이가 아닌 네모난 피드와 ‘좋아요’ 수치로 트렌드를 확인하는 시대. 런웨이 쇼와 동시에 휴대폰으로 옷을 구매할 수 있는 시대. 매장 앞에 줄을 설 필요도 없고, 교류와 소통은 SNS에서 더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편집매장만이 지닌 특별한 메리트는 더 이상 없는 것이다. 플랫폼은 계속 변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생겨난다. 이건 당연한 흐름이고 이것을 부정하는 건 어리석다. 이미 우린 그 변화를 맞이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아직은, 그 변화를 받아들일 때 느껴지는 온도 차가 분명 있다. 한 세대의 퇴장을 지켜보고, 섭섭함과 쓸쓸한 마음이 들었던 건 그러한 이유에서다. 그리고 계속 되묻게 된다. 에디터로서 ‘앞으로’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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