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게 빛나진 않아도 길게 갔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지금도 그게 내 목표다. 어떻게 보면 지금 내 예상보다 빠르게 가고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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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윤현민을 오해하고 있었다. 그를 드라마 〈무정도시〉에서 제대로 봤는데, 수트를 차려입어서 그랬는지 되게 도도하고 차가운 남자 같았다. 이후에도 꽤 많은 드라마에서 본부장이나 이사급의 잘나가는 도시 남성을 연기했는데, 꽤 잘 어울려서 정말 그런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나 혼자 산다〉를 통해 엿본 그의 사생활은 전혀 달랐다. 일단 하루 종일 집을 치우고, 빈티지 인테리어 소품과 조명을 모으고, 강아지와 함께 놀았다. 시간을 쪼개 청소할 엄두도 못 내던 동료 배우 이시언 집에 가서 헌 집을 새 집으로 만들어줄 줄도 알았다. 모두에게 다정하고 친절하며 아기자기한 감성의 남자였다. 최근 드라마 〈터널〉을 끝내고 더 홀쭉해진 그에게 ‘냉미남인 줄 알았다’고 말을 하자, 반문했다. ‘차갑고 도도한 남자라는 뜻’이라고 부연 설명하자 쑥스럽게 웃었다. “제가 미남은 아닌데.” 겸손하기까지 한 윤현민을 이토록 오래 오해하고 있었다니. 사죄하는 의미로 새 드라마를 챙겨 보기로 약속했다. 차기작은 아마도 그의 다정하고 섬세한 감성을 십분 살린 ‘로코(로맨틱 코미디)’가 될 것 같다고 했다. 벌써부터 여자들의 호감을 사는 소리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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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촬영을 진행하면서 느끼는 거지만 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데서 사진을 찍는 건 불가능할 것 같다. 처음에 야구 선수 관두고 배우로 데뷔했을 때 대학로에서 공연한 것으로 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게 의식되지 않는 순간이 오던가?
작품 할 때마다 초반엔 엄청 의식이 된다. 나 자신과의 싸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방송이 나가기 전, 시청자의 반응도 가늠이 안 되고 스태프들과도 친해지지 않은 그때 나 혼자 자유로워야 하니까, 좀 힘들다. NG 낼까 봐 걱정되기도 하고. 그러다 한 3회 정도 지나면 카메라 앞에서 자유로워지는 순간이 온다. 매번 1, 2회가 굉장히 걱정되고 고민돼서 엄청나게 집중하는 편이다. 두렵기도 하고 눈치도 보이는 그 기분과 싸워야 한다.
마지막 촬영날의 분위기도 궁금하다. 이번에 드라마 <터널>을 끝내면서 슬펐을 것 같다. 꽤 오래 매일같이 고생하던 사람들과 헤어져야 하니까.
작품 끝날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 아쉬운 상태에서 ‘아, 이렇게 했어야 하는데’라는 기분으로 끝나는 드라마도 있다. 반면 ‘와, 진짜 할 수 있는 건 다 토해냈다’ 싶어서 모든 게 좋은 채로 끝나는 경우도 있다. <터널>은 물론 후자였다. 마지막 촬영이 터널 장면이었는데, (최)진혁이와 내가 유독 끈끈하게 지냈다. 우리 둘은 아예 집에 못 가서 동네 찜질방에서 씻고 바로 촬영장으로 향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만큼 5개월 동안 함께 고생을 많이 해서, 또 감독님, 스태프들과도 많이 친해져서 마지막 촬영 끝나고는 눈물이 났다.
그나저나 <나 혼자 산다> 덕분에 새로운 면을 알게 돼서 좋았다. 드라마에선 주로 차갑고 도도한 배역을 맡아서 그런 남자일 거라 생각했는데 훨씬 섬세하고 다정하더라. 대중 앞에서 자신의 생활과 성격을 보여준다는 게 괜찮았나?
<나 혼자 산다>를 찍기 전에 PD, 작가와 미팅을 했다. 걱정이 많았다. 내가 진짜 재미없는 사람인 데다 집에서 하는 일도 별로 없다. 그렇다고 집 밖으로 나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또 인맥이 넓고 사람들 좋아해서 맨날 만나는 편도 아니다. 이런 걱정을 늘어놓았더니 PD가 괜찮다고 하는 거다. 재미는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하던 대로 하라고 그러시더라고. 그래서 그냥 나대로 했는데, 반응이 괜찮아서 기분이 좋았다. 강아지들 똥 치우고 훈련시키고, 다림질하고 청소하는 모습을 좋게 봐주시다니.
주변에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온 사람들은 방송 보고 뭐라고 하던가?
친구들은 “그래도 이거 방송인데 너무 아무것도 안 한다. 그냥 너 같다”고 한다. 나는 어떤 친구냐면, 왜 여럿이 소주 마시러 포장마차에 가면 그중 한 명은 꼭 계속 소주 주문하고 안주 시키고 다 먹은 안주 치우고 그러지 않나. 누가 쓰러지면 챙기고 기절하면 깨워서 택시 잡아주고. 그런 성격이긴 하다.
이시언 씨 집에 가서 인테리어도 싹 고쳐주고 잘 챙기는 모습이 새롭더라. 원래 다정한 성격인가?
중·고등학교 때 야구를 해서 단체 생활을 오래 했다. 당시 내가 주장이기도 해서 누군가를 챙길 일이 많았다. 또 합숙하면 누군가 숙소를 치워야 하고 이래저래 그런 생활이 밴 것 같다.
방송을 통해서 본 모습이 실제 윤현민의 모습 그대로인가?
그대로다. 그렇지 않으면 그 프로그램은 촬영할 수 없다. 내 모습이 아닌 걸 만들어서 대중에게 각인시키겠다고 하면 스스로 너무 괴로울 거다. 진짜 카메라 수십 대를 설치하고 하루 종일 따라 다니면서 찍는 프로그램이라서. 이미지 메이킹의 신이라고 하면 가능할까. 내가 그렇게까지 똑똑한 편은 아니라, 지금 보고 있는 방송이 바로 내 모습이다.
집 꾸미는 걸 좋아하던데 요즘 새로 생긴 취미가 있나?
항상 멋진 인테리어에 대한 꿈이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 내 소유가 아니라서 벽에 못도 마음대로 못 박고 제약이 많다. 아무래도 집주인이 싫어하니까. 계속 <리빙센스> 같은 잡지를 사서 보며 인테리어를 고민한다. 인스타그램 팔로잉한 계정들도 리빙, 디자인 관련이 많다.
언제부터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았나?
요즘 들어서 더 미래를 생각하게 된다. 내가 완전히 어린 나이는 아니라 훗날 언젠가는 결혼하겠지. 그럼 이렇게 집을 꾸미고 옷방을 어떻게 하고, 거실은 여유롭게 둘이 영화를 볼 수 있는 구조로 만들고. 미래의 내 부인이 좋아하겠지. 그런 꿈을 꾼다. 지금은 나중을 위해 공부하는 거다. 어디 다니다 조그만 소품을 보면 무조건 산다. 길을 지나다 예쁜 카페가 있으면 사진도 찍어놓고 그런다.
미래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처음에 연기자를 꿈꾸고 준비할 때는 먼 훗날을 어떻게 그렸나?
야구를 관뒀을 때, 그리고 그다음 인생을 결정할 때 엄청나게 큰 결심이 필요했다.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실패의 과정 속에 살고 있지만, 어쨌든 나는 야구 선수로서 실패했다. 전공을 한 것도 아니고 엉뚱하게 배우라는 직업을 선택했을 땐 이런 생각이었다. ‘내가 야구라는 실패를 통해 얻은 것을 되새기자. 연기를 더 오래, 길게 해보자.’ 화려하게 빛나진 않아도 길게 갔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지금도 그게 내 목표다. 어떻게 보면 지금 내 예상보다 빠르게 가고 있는 거다.
“꾸준하게 작품 활동하면서 매번 얻는 것이 있다. 한 작품이 끝나고 나면 한 번에 몰아서 드라마를 본다. 드라마 촬영하는 동안은 모니터링을 잘 못한다. 다 너무 아쉽지만 점차 나아지는 모습도 보게 된다. 또 어떤 때는 실패도 맛보고 하면서 살다 보면 마흔이 될 것 같다.”
연기를 시작한 지 이제 7, 8년 정도 되지 않았나?
스물여섯 살에 시작했는데, 그때는 목표가 ‘빨리 서른이 되는 것’이었다. 연기를 금방 잘하고 싶은데 잘 안 되더라고. 공연을 열심히 할 때였는데 뭔가 풀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나이가 어려서 인생의 경험이 없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서른이 되면 더 잘 알겠지 싶었다. 그래서 거울 보면서 ‘왜 내 얼굴은 이렇게 탱탱한 거야. 눈가에 주름이라도 있어야 되는데’ 중얼거렸다.(웃음) 그런데 서른이 지난 지금도 역시 인생을 잘 모르겠다. 요즘은 빨리 마흔이 되길 기다린다. 하하.
이런 고민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은 적 있나?
그래도 내 속마음 털어놓을 수 있는 배우는 정경호다. 경호 형과 둘이서 낮술을 종종 마시는데, 결국 연기 얘기로 빠진다.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형도 고민이 많더라고. 우리 둘이 백날 이런 얘기해봤자 인생을 덜 살아봐서 결론이 잘 나지 않는 것 같다. 예전에 전인화 선배님한테 ‘좀 더 멋있는 남자가 되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현민아, 네가
아무리 멋있어봤자 지금은 허우대 좋은 것에 불과해. 진짜 멋은 마흔부터 나오는 것 같더라”고 하셨다. 그만큼 내면을 잘 채워야 한다는 얘기 같다.
시간은 공평해서, 다들 기다리면 나이를 먹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되잖아.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꾸준하게 작품 활동하면서 매번 얻는 것이 있다. 한 작품이 끝나고 나면 한 번에 몰아서 드라마를 본다. 드라마 촬영하는 동안은 모니터링을 잘 못한다. 다 너무 아쉽지만 점차 나아지는 모습도 보게 된다. 전작에서 세 장면 정도만 맘에 들었다면 다음 작품에선 네 장면, 다섯 장면이 맘에 들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실패도 맛보고 하면서 살다 보면 마흔이 될 것 같다.
과거로 돌아가서, 카메라 앞에 섰던 순간을 떠올려보자. 처음부터 잘했나?
엄청 긴장했다.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도 모르겠고. 결국 내 첫 드라마 촬영을 통째로 날렸다. 그때 내 대사가 남자 주인공에게 “형, 무슨 일이야? 나중에 소주 한잔해”였는데 그게 그렇게 안 되더라고. 걷는 것도 로봇처럼 팔과 다리를 같이 움직이고 그랬다. 심장이 빨리 뛰니까 말이 더 꼬이고, NG를 계속 냈다. 그러니까 감독이 “야, 됐어. 너 가. 이 장면 없애자” 하더라. 뭐, 상처는 조금 받았는데 내가 야구 할 때 워낙 거칠게 커서. 하하. 욕먹는 것엔 단련이 되어서 주눅 들진 않더라.
그나저나 <나 혼자 산다>는 고정인가?
그렇다.
방송이긴 하지만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친해진 게 가장 큰 수확 같다.
고정 멤버들과 굉장히 친해졌다. 원래는 시언이 형 말고 아는 사람이 없었는데 방송을 계속 하면서 가까워졌다. 오늘 어떤 일이 있었냐면, 한혜진 씨가 일 때문에 발리를 다녀왔는데 내 선물을 사오셨더라. 술 한 병을 주셨는데, 사실 촬영장에서 만나면 굉장히 시크한 분이거든. 누나고 하니까 나도 쉽게 다가가지 못했는데 나까지 챙겨줄 줄 몰랐다. 굉장히 감동이었다. 나래에게는 맛집에 대해 물어보면 빠른 시간 안에 굉장히 많은 정보를 알려준다. 현무 형에게는 ‘이런 프로그램 섭외가 들어왔는데 하는 게 나을까요?’ 하고 상의한다. 그럼 또 세심하게 조언해준다. 시언이 형은 원래 친했고, 헨리도 귀엽고 그렇다. 아, 그리고 PD와 작가들도 다 정말 좋다. 나에 대해 안 좋은 얘기가 들리면 당사자인 나보다 더 분해한다. 정말 좋은 사람들을 얻었다.
갑자기 머리색을 바꾼 것도 재미있었다. 반듯하기만 한 줄 알았는데 엉뚱한 면이 있는 것 같은데, 어떤가?
한동안 움츠러들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고 나니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아직 아름다운 30대를 살고 있는데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거 다 해보자. 할 수 있는 한 많은 걸 경험해보고 싶다. 머리 탈색도 더 나이 먹기 전에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스포츠카를 타볼까? 엄청 불편하겠지? 실용성도 없겠지? 뭐 이런 고민을 하면서 살고 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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