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펑크 로커였던 어린 시절의 영향 때문인지 예나 지금이나 단단한 소수 정예가 좋다. ‘Us against the world(우리 vs 세상)’.
하지만 아무리 오래된 친구라도 배신자는 처단한다.”
검정치마의 팬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2008년 데뷔 앨범 〈201〉과 2집 앨범 〈Don’t You Worry Baby〉를 통해 보여준 ‘야마’, 날것을 좋아하는 올드 팬과 특유의 순수함과 고집이 묻어 있는, 사랑이 전부라 노래하는 곡들 ‘Hollywood’와 ‘EVERYTHING’ ‘기다린 만큼, 더’로 검정치마를 접한 현재 10대, 20대 젊은 세대. 검정치마는 두 세대를 아우른다. 간혹 한쪽 세대에서 변한 거 아니냐는 목소리를 내기도 하지만, 그런 질타보다는 ‘역시 검정치마다’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분야를 막론하고 동시대에 모든 아티스트가 그의 음악을 주목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말이다.
2017년 5월 30일 검정치마가 세 파트로 나뉜 3집 앨범의 파트 1 〈TEAM BABY〉를 발매했다. 사랑에 관한 곡들로 구성돼 있다. 그의 노래는 대중에게 사랑받는 다른 사랑 노래와는 결이 다르다. 과한 것 같지만 넘치지 않고 유치한 것 같지만 매력이 넘치며, 순수했던 첫사랑이 떠오른다고나 할까? 직관적으로 어떤 기억과 이미지를 선명하게 떠올리는 힘이 있다. 이 힘이 뭘까? 궁금했다. 대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랑을 담고 싶었던 건지. 그래서 직접 만났다. 그가 ‘어린 시절의 할머니집 같아 편하다’며 좋아한 장소에서, 거리낌 없는 사춘기 소년처럼 솔직한 대화를 나눴다.
“‘Baby’를 넘어서는 ‘Team’ 같은 사랑을 얘기하고 싶었다. 어떠한 희생도 치를 수 있을 정도로 끈끈한 의리가 있고 외부로부터 보호받는 사랑.”
6년 만에 돌아왔다. 아내 씬킴의 ‘관찰일기’ 인스타그램(ssinkim_everyday)을 통해 근황을 훔쳐봤더니 게임과 햄버거를 즐기며 지냈던데.
원래 햄버거가 주식이다. 피자도 연달아 먹으면 질리고 초콜릿도 목숨 걸고 끊으라면 끊을 수 있는데 햄버거는 영원히 함께하고 싶다. 대학생 때 2년의 채식 생활에 마침표를 찍어준 것도 치즈버거다. 음악이랑 영화 외에는 별다른 취미가 없어서 어떻게든 새로운 취미를 만들어보려고 시작한 게 비디오 게임이다. 2집 활동이 끝날 무렵 플레이스테이션3을 구입해 1년간 짧고 굵게 시간 낭비했다. 그 후로는 전혀 하지 않는다.
영화, 산책, 게임 말고는?
목욕탕에 자주 간다. 쑥 향 가득한 습식 사우나와 냉탕과 온탕에 번갈아 들어가는 걸 좋아한다. 직업병인지, 아니면 자세가 나쁜 건지, 목이랑 어깨가 많이 결리는데, 그럴 때 냉탕과 온탕에 번갈아 들어가면 도움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목욕탕의 평온한 분위기가 좋다. 2집 발매 전에도 심적으로 많이 지쳐 있었는데, 거의 본능처럼 매일 수영장을 찾았다. 목욕탕 물줄기 소리를 듣고 있으면 이명도 덜하고, 확실히 심신이 안정된다.
이명이 있나?
가끔. 왼쪽이 더 심한 편이다. ‘Hollywood’를 만들던 당시 갑자기 한쪽 귀가 아예 안 들려서 많이 걱정했는데, 스트레스성 난청이었던 것 같다. 물론 지금은 괜찮다. 이번 앨범을 듣다 보면 여기저기서 기타 피드백과 노이즈를 발견할 수 있다. 특별한 음악적 의도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노이즈를 듣고 있으면 귀가 편해 평소 작업실에서도 백색 소음을 틀어놓을 때가 있다. 나는 굉장히 양호한 편이지만 이명이 심한 사람들에게는 일반적인 일이다. 아무래도 내가 일상에서 느끼는 불편함이 모르는 새 음악에 녹아든 것 같다. 생각해보면 굳이 노이즈가 필요 없는 곡들에도 많이 들어간 편이다. ‘혜야’의 끝부분도 노이즈로 떡칠돼 있었는데 믹스하면서 걷어냈다.
그동안 한국, 미국 어디서 지냈나?
2010년 2집을 녹음하는 동안 미국에 있었던 1년을 제외하면, 2008년부터 쭉 한국에 있었다. 벌써 8년이 됐다.
3집 앨범 〈TEAM BABY〉가 나오기까지 6년이 걸렸다. 6년이란 시간이 부담이 되기도 했을 것 같아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했다.
노래를 만들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타입은 아니다. 안 되는 걸 잡고 학구적으로 파는 성격이 아니거든. 안 되면 1년이고 2년이고 기타도 안 친다. 이번 앨범은 2집 활동을 하면서 만들어둔 노래가 너무 많다 보니까 여유 부리다 늦어졌다. ‘노래는 이미 많고 이제 녹음만 하면 되겠네’ 이런 오만함이 늦어진 원인이다.
〈또 오해영〉 OST ‘기다린 만큼 더’가 나왔을 때, 팬에게 기다린 만큼 더 기다리라는 건가 싶었다. 5년을 기다렸는데 5년을 더?
그랬나? 하하. 사실 그 노래는 어쩌다 보니 나온 곡이다. 드라마가 잘되면서 OST 제의를 받았는데 3일 안에 노래를 넘겨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미공개 곡을 주는데 딱히 괜찮은 게 없었다. 데드라인을 하루 남겨두고 충동적으로 강원도 양양에 놀러 갔다. 돌아오는 길에 내일 아침까지 못한다고 전화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었는데, 그날 밤 우연히 악상이 떠올라 완성했다. 솔직히 별로 애착이 가는 곡은 아니다. 근데 이런 곡들이 대개는 기대보다 많은 사랑을 받는다. ‘Antifreeze’도 그런 곡이다.
3집 앨범의 파트 1 〈TEAM BABY〉에 대해 얘기해보자. 5월 29일 음감회에서 앨범명에 들어간 ‘TEAM’에 대해 ‘팀은 애정을 넘어서 한 가지 목적을 공유하는 같은 편’이라 했다.
‘TEAM BABY’의 가제는 ‘BABY’였다. 모든 수록곡의 후렴마다 ‘Baby’라는 단어를 넣고 싶었다. 클리셰적인 내용이자 장르인 노래들이다 보니 누가 들어도 처음부터 의도한 걸 알 수 있게 아예 더 노골적으로, 조금은 장난스럽게 남용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앨범을 진행하는 도중 심경의 변화가 있었고, 연인이 사용하는 가벼운 애칭인 ‘Baby’를 넘어서는 ‘Team’ 같은 사랑을 얘기하고 싶었다. 어떠한 희생도 치를 수 있을 정도로 끈끈한 의리가 있고 외부로부터 보호받는 사랑.
“하나의 주제로 콘셉트 앨범을 만들 때는 일관된 흐름을 위해 통일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TEAM BABY〉는 순수한 사랑 노래들만 선별해서 묶은 앨범이다. 그것에 조금이라도 못 미친다고 생각되는 노래는 탈락했다.
그러다 보니 가사에서 사랑의 영원성을 많이 부각하지 않았나 싶다.”
표지에 부모님 결혼사진을 넣은 건 검정치마가 생각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팀 베이비’가 부모님이어서?
맞다. 굉장히 화목한 가정에서 부족함 없이 자랐다. 어릴 적에는 아무런 불행이 없는 우리 집이 불만이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동경한 거의 모든 록 스타가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지금까지도 부모님은 내가 아는 가장 이상적인 팀이자 부부가 아닌가 싶다. ‘Team Baby’로서 두 분이 의무를 다하셨고. 덕분에 ‘baby’였던 내가 별 탈 없이 잘 자라서 어느새 잘 늙고 있다. 난 10대 때 남들보다 반항도 심하게 했고 꽤 오랜 시간 방황했다. 그래서 아직도 부모님과는 서먹서먹할 때가 많은데 이걸 계기로 좀 나아지지 않을까.
〈TEAM BABY〉 앨범은 사랑에 대한 ‘영원성’을 담았다고 느껴진다. 초월적인 영원한 사랑이랄까. 이를테면 ‘Diamond’에서 ‘변하지 않는 건 다이아몬드하고 널 사랑하는 나밖에는 없다고’, 그리고 ‘폭죽과 풍선들’에서는 ‘내 노래가 멈춘 뒤엔 모두 떠나가고 너와 나 둘만 남겠지’라고 한다. ‘Love is all’은 대놓고 사랑이 전부라 하고.
내가 엄청난 로맨티시스트라서 혹은 내 사랑이 남들보다 특별해서 그런 건 아니다. 앨범 가제를 ‘Baby’라 정한 순간부터 이상적인 사랑만을 다루고 싶었다. 하나의 주제로 콘셉트 앨범을 만들 때는 일관된 흐름을 위해 통일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TEAM BABY〉는 순수한 사랑 노래들만 선별해서 묶은 앨범이다. 그것에 조금이라도 못 미친다고 생각되는 노래는 탈락했다. 그러다 보니 가사에서 사랑의 영원성을 많이 부각하지 않았나 싶다.
‘나랑 아니면’의 ‘날 위해 죽을 수도, 죽일 수도 있다고’나 ‘혜야’의 ‘너랑 있는 게 제일 좋아’ 가사 등은 영원을 꿈꾸는 사랑이 팀, 의리를 기반으로 이뤄진다는 뜻을 담고 있다. 결국 영원함을 꿈꾸는 사랑도 의리, 우정이 있어야 가능하니까. 이런 맥락에서 앨범명과 전체 곡들의 디테일과 구성이 유기적으로 촘촘히 연관돼 있다.
맞다. 사랑도 그리고 우정도 결국엔 끝없는 노력과 의리가 있어야 유지된다는 건 진부할 정도로 다 아는 사실이지만, 실천하며 사는 건 또 다른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아내는 내가 아는 그 어떤 사람보다 의리가 있다. 사랑할 때는 물론이고, 우정 역시 답답할 정도로 의리파여서 자기 편한 대로 쉽게 친해지고 멀어지는 여자들 사이에서 상처받는 걸 오래전부터 자주 봐왔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주변 사람에게 한결같은 아내가 대단하다고 느낀다. 어쨌든 나는 펑크 로커였던 어린 시절의 영향 때문인지 예나 지금이나 단단한 소수 정예가 좋다. ‘Us against the world(우리 vs 세상)’. 하지만 아무리 오래된 친구라도 배신자는 처단한다.
반면 첫 곡 ‘난 아니에요’는 〈TEAM BABY〉에서 가장 에고가 세다. 과잉까지는 아니지만 다른 곡에 비해 자의식이 가장 강한, 앨범 테마와 가장 동떨어진 곡이다.
2집에서도 그랬고, 1번 트랙은 항상 앨범의 인트로 성격을 띤다고 생각한다. ‘난 아니에요’ 역시 마찬가지다. 이번 앨범에서 유일하게 사랑 노래가 아니지만, 자기애도 사랑이니까.
동떨어져 있지만 잘 어울린다. 별자리로 비유하자면 가장 멀리서 빛나는 별. 가장 멀리 있지만 그 별이 연결돼야 전체 별자리가 완성된다. 즉 ‘난 아니에요’의 에고가 앨범 전체의 화자로서 구체성을 부여한다고 느꼈다. 보통 사랑 주제의 노래는 감정만 남아 붕 뜨기 마련인데. 1번 트랙부터 ‘난 이런 사람이야’라고 알려주니 앨범에 담긴 사랑이 어떤 사람의 어떤 사랑인지 구체적으로 다가오는 거지.
맞는 말이다. 국자 모양 별자리를 보면 맨 끝에 손잡이 부분이 가장 밝다. 그게 없으면 뭔가 싶다. 1번 트랙은 애초에 사람들이 별로 안 좋아할 거라 단정 짓고 만들고 싶은 대로 완성한 곡이기도 하고, 별이 되고 싶지 않다는 가사와 음악이 조금도 어긋남이 없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처음엔 훨씬 더 시끄럽고 듣기 힘든 노래였는데 후반에 어느 정도 순화한 거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그 곡을 좋아해줘서 신기했다. 덕분에 대중에 대한 선입견도 어느 정도 깨졌고.
좀 다른 얘기인데, 이번 앨범에 담긴 영원한 사랑이 존 레넌이 오노 요코에게 느낀 감정과 유사한 것 같다. 이를테면 비틀스 ‘Don’t Let Me Down’에 ‘이 마음이 오래갈 것이라는 걸 넌 모를 거야. 이건 영원한 사랑이야. 과거 시제가 없는 사랑이지’라는 가사가 있다.
‘혜야’는 비틀스 이후의 존 레넌 스타일로 만들고 싶었다. 당시 존 레넌은 난봉꾼 같았는데, 그럼에도 오노 요코한테는 계속해서 사랑을 고백하지 않았나? 그 와중에 많은 노래들이 탄생했고. ‘혜야’는 음악적으로도 그 당시 분위기를 살리고 싶었다. 그래서 드럼이나 전체적인 믹스를 1970년대 팝 음악처럼 한 거다. 개인적으로 존 레넌 곡 중에서 ‘Oh Yoko!’를 굉장히 좋아한다. 생각할수록 신기하지 않나? 당시 세계 최고의 팝 가수였던 존 레넌이 굳이 왜 볼품없고 괴팍한 오노 요코를 만났을까? 뭐든지 다 가질 수 있던 스타에게도 사랑이란 ‘다른 무게의 것’이었던 게 아닐까.
검정치마의 앨범 1·2·3집에서는 공통으로 소년 같은 순수함과 고집이 느껴진다. 몸은 이미 어른이 됐는데 정신은 소년이고 싶은 비성년적인 태도랄까. 1집의 ‘Antifreeze’ 가사 ‘너는 내가 처음 봤던 눈동자야’나 2집의 ‘아침식사’ 가사 ‘그래 난 숫자 따위는 몰라 실컷 계산기나 두드려라 정말 아쉬운 건 없어. 하나 있다면 우리 짧은 아침 식사뿐’이나 이번 3집에서 ‘난 너랑 있는 게 제일 좋아’나 ‘야 나랑 놀자’를 보면 그렇다. 어린애의 태도가 보인다고 해야 하나.
내가 철이 덜 들어서 그렇다. ‘난 아니에요’의 첫 줄, ‘좋은 술과 저급한 웃음’을 쓰면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리더라. 하하. 아무래도 대부분 아티스트와 그들의 결과물을 동일시해서 내 가사만 보고 지적인 아티스트를 상상하는 것 같은데, 나는 실제로 독서를 전혀 즐기지 않는다. 아니 즐기지 못한다. 쉽고 빠르고 편하고 단순한 게 좋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복잡한 어른 세계를 경계하는 게 아닐까?
독서에 관해서는 시인이자 작가인 찰스 부코스키를 유일하게 좋아한다고 했던데.
어려운 걸 전혀 못 읽는다. 악기를 사도 매뉴얼을 못 읽겠더라. 참을성이 없는 건지. 찰스 부코스키는 읽기 쉽더라. 인간 극장을 보는 기분도 들고. 심리적으로 바닥을 찍던 어린 시절, 찰스 부코스키 책을 아무 페이지나 펴서 읽곤 했다. 매번 비슷한 얘기를 한다. 이를테면 경마장에 갔다가 여자를 만나고 술에 취한 채 집에 왔더니 배가 너무 아파서 ‘나도 이제 죽는구나. 하느님 이제 똑바로 살겠습니다’ 기도하다가 화장실에 한 번 갔다 와서는 ‘괜찮네? 그 말 취소할게요’ 이런 식이다. 하하. 그 천박함이 좋다. 부코스키는 평생 자기 얘기만 썼는데 그게 나에겐 항상 알 수 없는 위안을 주었다. ‘이렇게 막 살던 놈도 결국엔 잘 풀렸구나’라는 위안. 심지어 그는 젊은 시절부터 죽으려고 그렇게 애를 썼는데도 무병장수했다. ‘언더독’이 승리한 좋은 예다.
“파트 1의 주제는 사랑이었고, 파트 2는 파트 1과는 조금 상반되는 내용일 것 같다. 파트 3는 1, 2와는 아무 상관없는 얘기를 주제로 삼았다. 참고로 파트 1, 2는 같은 시기에 만들어 형제, 자매 같은 사이라 음악적 스타일이나 음향적으로는 많이 비슷할 거다.”
‘혜야’가 동양화가 씬킴, 그러니까 검정치마의 아내 김신혜를 위해 만든 곡이 맞나? 소리소문 없이 결혼했던데.
맞다. 그리고 소리소문이 있을 이유가 없지 않나? 사생활이기 때문에 당연히 알려질 필요가 없는 거다. 한국에 들어와 1집 활동을 시작하면서 만나 몇 년 전에 결혼했다. 꽤 많은 사람이 내가 신혼생활에 취해 음악이 바뀌었다는 얘기를 하던데, 우리는 지난 7년 동안 떨어져 지낸 날이 거의 없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신혼생활은 이미 1집 활동 때 끝냈다. 거의 10년 전 얘기란 말이다. 아내는 내가 아무것도 없이 데뷔한 시절부터 1집 이후 가장 힘들었던 시절을 거쳐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함께해온 사람이다. 소속사 없이 2집 활동을 할 때도 아내가 모든 사무와 공연 기획부터 매니지먼트, 메이크업, 헤어 등 전부 다 도와줬다. 팀이었던 거다. 그러면서 우리 관계가 더 단단해졌고.
아내 씬킴의 인스타그램 계정 ‘씬킴의 관찰일기’에는 조휴일의 일상이 디테일하게 담겨 있더라.
5년 전부터 심심할 때마다 쓴 그림일기라 집에 미공개분이 꽤 쌓여 있다. 공개할 수 없는 내용도 많지만. 내가 그림일기 보는 걸 굉장히 좋아한다. 한지에 먹으로 그리다 보니 어떻게 보면 낙서에 가까운 그림체인데, 계속 봐도 새로운 매력이 있다. 또 나는 내 얘기를 제일 좋아하거든. 재작년부터는 한 편당 5백원씩 받으며 그려주더라. 혼자 보기엔 너무 재미있어서 인스타그램에 공개했는데 반응도 의외로 좋고.
신비주의로 가려져 있던 조휴일의 일상이 가장 가까이 있는 아내의 그림으로 공개되니 재밌던데?
내 삶이 방해받고 싶지 않은 것뿐이지 내가 뭐라고…. 난 신비주의가 아니다. 운전 중 시비 붙으면 창문 내리고 쌍욕도 하고 싶고 아내와 남들에게 방해받지 않으며 산책하고 밥 먹으러 다니고 싶다. 다행히 아직은 아무 문제 없이 유지되고 있다. 만약 예능 프로그램에라도 나가게 된다면 내가 소중히 여기는 일상이 송두리째 흔들리겠지? 그래서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거다. 끔찍하다. 방송에 노출되면 될수록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내 음악을 들어주겠지만 그렇게 끌어들인 리스너는 대부분 그냥 많이 들리는 음악을 별 생각 없이 소비할 것 같다. 물론 대중적인 인지도를 다지는 데 필요한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치르는 값이 너무 가혹하다.
‘Big Love’를 타이틀로 하려고 했다던데.
‘나랑 아니면’은 본래 타이틀 곡이 아니었다. 회사에서는 ‘한시 오분(1:05)’이 타이틀로 적합하다고 생각했는데, 개인적으로는 뭔가 부족한 것 같아 ‘Big Love’를 고집했다. 하지만 예전부터 LA 한인타운을 배경으로 누아르 스타일의 뮤직비디오를 찍자고 친구인 감독 윤킴과 얘기해서 결국 ‘나랑 아니면’을 타이틀로 결정했다.
인스타그램에 친구가 보낸 문자메시지 캡처한 ‘조선소에서 즛나 힘든데 웃긴 게 니 노래가 힘이 되 부재 중 통화는 사탕이구나’라는 피드가 있다. 고백하자면 나도 4년 만난 친구와 헤어졌을 때 새벽까지 술 마시고 집 부엌에서 ‘Everything’ 들으며 엄청 운 적이 있다. 뒹굴면서. 참고로 나는 아직 부모님과 함께 산다. 하하. 비단 나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SNS를 보면 검정치마의 곡 때문에 우는 사람을 곧잘 발견할 수 있다.
어떤 노래든 결국에는 듣는 이의 기억이 더해지면서 특별해진다. 내가 평상심을 유지한 채 만든 노래가 누군가의 가슴을 후벼 팔 수도 있고, 죽을 듯이 애절한 노래가 누군가에게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기 좋은 곡으로 소비될 수 있다.
사운드 얘기를 좀 하자. 〈TEAM BABY〉에는 1990년대 사운드가 많이 담겨 있다. ‘한시 오분(1:05)’은 투투의 레게, ‘폭죽과 풍선들’에서는 당시 댄스 뮤직 느낌이 난다. ‘내 고향 서울엔’은 뮤직비디오가 1990년대 느낌이고. 1990년대 사운드에 몰입한 이유가 있나?
말 그대로 나는 이제 아저씨다. 새로운 음악을 찾아 듣는 걸 안 한 지도 벌써 2, 3년은 된 것 같다. 이제는 1990년대 미국 음악을 들으며 ‘그래, 저때 음악이 좋았지’ 하고 회상하는 나이가 된 거다. 옛날 사람이라서 그런 감성이 나온 건데, 천운처럼 최근 1990년대 것들이 유행하고 있다. 그렇지만 받아들이기 힘들다. 내가 겪은 것이 복고가 되는 걸 이전에는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거든. 실제로 복고 개념이 대중화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는 미지의 영역을 탐구하고 있었다.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부터 개러지 록 밴드가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처음으로 사람들이 옛 음악과 패션을 재탕하기 시작했다. 물론 내가 단순히 옛날 사람이라서 그때 그 시절 사운드에 몰입한 건 아니다. 옛 느낌의 어덜트 컨템퍼러리 음반을 만들고 싶었다. 옛날의 한국, 그리고 미국의 가요 음반처럼. 특히 색소폰 솔로들이 1980~1990년대 미국 시트콤 주제가 느낌을 내길 간절히 바랐다.
이번 앨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곡은?
나는 여태까지 만든 곡 중 ‘Everything’이 가장 마음에 든다. ‘Everything’은 처음 데모를 만들 때 연주한 기타 파트들을 원곡에 그대로 다 사용했다. 모든 기타 파트가 즉흥 연주였기 때문에 음악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시작부터 끝까지 실수 연발이다. 하지만 그 형편없는 연주가 곡의 정서가 되어버리고, 정이 붙고, 그걸 다시 재현할 수 없게 돼서 그대로 썼다. 믹스나 편곡적인 측면에서 보면 필요 이상으로 과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노래 제목처럼 머릿속에 들렸던 소리는 하나도 빼놓지 않고 전부 다 억지로라도 욱여넣었다. 그래서 참 다행이라 생각한다.
1, 2집에서는 이슈가 된 곡이 있을 정도로, 소위 말해서 ‘야마’, 날것의 힘이 강했는데, 3집에서는 그런 걸 누르고 오히려 직관적으로 표현한 것 같다는 의견도 있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레 에너지 레벨이 떨어진 건지도 모르겠다. 많은 사람이 나한테 아직 그런 걸 기대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근데 그 팬들도 이제 나만큼 나이가 들어 그런 음악을 예전만큼 즐겨 들을 것 같지 않다. 그런데 굳이 나한테는 아직도 그런 걸 요구하는 걸까? 그냥 검정치마 1집을 들어라. 보름을 밤새며 놀아도 눈에 실핏줄 하나 터지지 않을 만큼 젊었을 때 만든 음반이다.
오히려 10대 후반이나 20대 친구들이 3집 앨범을 굉장히 좋아한다.
그런 것 같다. 이번 게릴라 공연에도 올드 팬은 거의 안 온 것 같더라. 나는 오히려 지금이 좋다. 요즘 세대는 인터넷 때문인지 몰라도 외국의 인디 음악과 서브컬처에 훨씬 개방적이다. 내가 검정치마로 처음 데뷔하고 나서 제일 많이 들은 말이 ‘블러(Blur) 같다’는 얘기다. 그 말은 결국 내 세대, 그리고 윗세대에 인디 음악 좀 듣는다는 사람들이 두뇌를 풀가동해 검정치마를 음악적으로 정의하려 할 때 찾은 것이다. 1집 몇몇 곡에서 노골적으로 보이는 ‘위저(Weezer)’나 ‘렌털스(The Rentals)’의 색깔을 놔두고 ‘블러’를 거론하는 건 굉장히 게으르고 무지한 짓이다. 난 영국 음악이 미국에 침투할 틈이 조금도 없을 정도로 미국 음악이 우세했던 시대에 미국에서 자랐기 때문에 ‘블러’ 노래는 지금까지도 ‘Song2’밖에 모른다. 성장하며 자양분으로 삼은 영국 음악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하지만 다행히도 현재 젊은 세대는 구세대보다 다양한 음악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편견도 없을뿐더러, 어떻게 해서든 자신이 아는 외국 밴드의 이름을 거론하려 드는 사대주의적인 태도도 없는 것 같다. 외국 음악과 인디 음악은 대한민국에서 더 이상 소수의 것이 아니다. 그런 맥락에서 앞으로는 굳이 내가 하려는 음악에 조금씩이라도 물을 탈 필요가 없어졌다. 빠르고 개방적인 젊은 세대 덕분에 감사하게도.
올해 발매 예정인 파트 2와 파트 3 두 앨범의 힌트를 준다면?
파트 1의 주제는 사랑이었고, 파트 2는 파트 1과는 조금 상반되는 내용일 것 같다. 파트 3는 1, 2와는 아무 상관없는 얘기를 주제로 삼았다. 참고로 파트 1, 2는 같은 시기에 만들어 형제, 자매 같은 사이라 음악적 스타일이나 음향적으로는 많이 비슷할 거다. 파트 2는 올해 안에 내고 싶다. 파트 1과 긴 공백을 두지 않고 내야 사람들이 이질감 없이 받아들일 것 같다. 이미 상당 부분 완성돼 있고, 어서 이 노래들을 졸업해야 다음 앨범으로, 다른 색깔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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