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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해보는 거야

TBWA 코리아에는 ‘0팀’이라는 컨버전스 팀이 있다. 크리에이티브 대표(CCO) 박웅현이 이끄는 0팀의 목표는 단 하나. 어찌됐든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지르는 것.

UpdatedOn July 25,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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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TBWA 코리아 0팀의 카피라이터 서준혁,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김재호, 카피라이터 이태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김민철, TBWA 코리아의 CCO이자 0팀을 이끄는 박웅현.

(왼쪽부터) TBWA 코리아 0팀의 카피라이터 서준혁,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김재호, 카피라이터 이태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김민철, TBWA 코리아의 CCO이자 0팀을 이끄는 박웅현.

광고 제작에 머무르지 않는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고, 전에 없던 일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 각 분야의 전문 인력들이 뭉쳤다. 창의력 빼면 시체일 것 같은 사람들이 모였건만, 0팀은 스스로 “창의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라 말한다. 이토록 다양한 분야의 광고인들이 함께 책 하나를 펴냈다. 세상에서 가장 어처구니없는 시도와 뭔가 다른 창의력 11가지에 관해 말하는 〈안녕, 돈키호테〉다.

1976년, 당시 출판계에서 ‘이렇게 하면 망한다’던 룰은 모조리 따른 전설의 잡지 〈뿌리깊은 나무〉.

1976년, 당시 출판계에서 ‘이렇게 하면 망한다’던 룰은 모조리 따른 전설의 잡지 〈뿌리깊은 나무〉.

1976년, 당시 출판계에서 ‘이렇게 하면 망한다’던 룰은 모조리 따른 전설의 잡지 〈뿌리깊은 나무〉.

책날개에 쓰인 0팀에 관한 소개를 읽었다. ‘영역을 허물고’와 같이 좋은 말이 많이 있었지만 여전히 감이 안 잡힌다. 0팀은 대체 무엇인가? TBWA 코리아는 왜 이런 팀을 만들게 됐나?
박웅현 광고의 판도가 완전히 바뀌고 있다. 새로운 유형의 광고가 나와야 하는 상황이다. 광고가 아닌 광고, 지금껏 하던 광고에서 벗어난 어떤 것을 고민할 팀이 필요했다. 보통 부서가 1팀, 2팀, 3팀… 이렇게 나뉘는데, 아예 시작부터 다른 팀을 말하고자 0팀이라 이름 지었다.
팀의 구성원도 좀 다를 것 같다. 지금 0팀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나?
김민철 구성원이 일단 많다. 대개 콘텐츠 팀이라 하면 구성이 일률적이다. 카피라이터, 아트 디렉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딱 이렇게 구성된다. 0팀은 독특하게 디지털 쪽 콘텐츠를 계획하는 콘텐츠 플래너가 있고, 인원수도 보통의 콘텐츠 팀보다 많다.
김재호 우리는 0팀의 일부다. 열 명 혹은 열두 명 정도이고, 프로젝트에 따라 서너 명이 뭉치기도 한다. 잘할 수 있는 사람들끼리 손을 잡고 달린다.
박웅현 일부러 팀을 좀 크게 꾸렸다. 지금 이 자리에는 5명이 모여 있는데, 책을 집필한 인원이고, 다큐멘터리 〈오! 진짜 짧은 다큐〉에는 0팀의 다른 구성원들이 참여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유병욱을 비롯해 카피라이터 홍인혜와 아트 디렉터 이승화, 김세윤, 이지윤이 함께했다.
더 많은 인원이 모였다는 건, 그만큼 자극을 밀접하게 주고받을 기회가 많아졌다는 뜻이겠다. 팀에서 발생하는 창의성의 크기가 적은 인원일 때와는 또 다른 수준일 듯한데.
김민철 사람이 많아지니 질도 함께 상승하는 기분이다. 인원이 많아서 더욱 새로운 시각에서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다.
0팀이 결성된 지 2년 정도 흘렀다. 이미 여러 가지를 시험하고 시도했을 법한 시간이다.
박웅현 굉장히 바빴다. 여러 시도도 많이 했다. 한두 가지 성과도 냈고 실패한 것도 있다. 성과 중 하나가 ‘돈키호테 프로젝트’다. 이 콘텐츠를 다큐멘터리로 만들고, 책으로도 엮은 것이 0팀이 일군 의미 있는 성과 중 하나다.
김재호 사실 지금 박웅현 CCO가 0팀이라는 이름이 굉장히 쉽게 나온 것처럼 말씀하셨는데…(웃음) 굉장히 많은 고민과 다양한 이름을 거친 결과다. 이런 이야길 하는 이유는, 이름이 상징하는 바가 꽤나 크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당장 뭘 만들어내고 성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다들 이 이름의 무게를 느끼고 있다.
회사에서 무언의 압박을 주는 건 아닌가?(웃음)
김재호 하하. 압박은 없다. 우리 모두 좋은 의미에서 긴장을 안고 있다. 명색이 0팀인데 뭔가 해봐야 하지 않겠어? 하는 마음이다. 성과에 관한 질문을 종종 받는데 우리는 일단 이런 태도 면에서 나름의 성과를 얻고 있다고 생각한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0팀의 가장 빛나는 성과 중 하나가 ‘돈키호테 프로젝트’다. 하나의 콘텐츠가 다큐멘터리로 제작돼 방송되었고, 책으로도 묶여 세상에 나오게 됐다.
김민철 사실 처음 이 프로젝트에 대해 들었을 땐 ‘이걸 왜 해야 하지?’라고 생각했다. 아마 다들 이런 생각을 한번쯤 했을 거다. 방송국에서 다큐멘터리 제작비를 많이 주나 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우리가 평소 책정하는 제작비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훨씬 더 긴 분량의 영상을 열두 편이나 만들어야 했다. 과연 가능한 일인가 싶었다. 0팀이 생기기도 전에 이 콘텐츠는 태어난 상태였고, 여기에 맞는 광고주를 찾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으며 방송되기까지도 한참 걸렸다. 방송이 되고 나자, 우리는 모두 이제야 드디어 끝났구나 생각했는데 돌연 민음사에서 책으로 출판하자고 하더라. 우리는 의심했다. 에이, 결국 안 되겠지, 이게 책이 되겠어?
하나의 콘텐츠가 두 가지 방식으로 소비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콘텐츠가 힘이 있다는 뜻 아닐까?
박웅현 아이디어가 살아나는 걸 보면 굉장히 묘하다. 아이디어가 많이 나왔는데, 어떤 건 실현되고 또 어떤 건 중간에 탈락한다. 어떤 콘텐츠로 만들었다 해도 인기 없이 처지는 경우도 있다. 내 경험상 아이디어란 그 자체로 살아 있어야 한다. 만져지는 게 아니어서, 내가 어떤 아이디어를 살려야겠다고 기를 써도 죽을 아이디어는 죽고 만다. 〈안녕, 돈키호테〉도 처음엔 죽을 것 같은 아이디어였다. 살 것 같다가 죽고, 또 살 것 같다가 죽는 과정을 계속 겪었다. 2012년 처음 착상했다. 이제 관 뚜껑 열고 들어갔다 생각했는데 OtvN이 그 관 뚜껑을 두드린 거다. “걔 아직 살아 있냐”고. 그래서 살려낸 거다. 그거면 됐다고 생각했다. 죽은 줄 알았던 자식이 여기까지 왔으면 됐다고. 그런데 또 살아난 거다. 민음사에서 책을 만들자고 하면서 말이다. 방송국은 방송국대로, 출판사는 출판사대로 각자의 관점에서 이 콘텐츠에 매력 혹은 공감대가 있다고 봤겠지. 이게 더 잘된다면 주식회사 돈키호테가 될 수도 있다. 모르는 얘기다. 우리가 하는 일이 언제나 이렇다. 아이디어를 잘 닦아서 던져놓고, 기다리는 것. 반응이 없으면 어쩔 수 없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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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돈키호테〉에 실린 박웅현 CCO의 창의력 노트.

〈안녕, 돈키호테〉에 실린 박웅현 CCO의 창의력 노트.

〈안녕, 돈키호테〉에서 11가지 창의성을 소개하고 분석했다. 정선이나 고흐 등 누구나 알 법한 인물들의 창의성을 새로운 관점으로 조명했고, 아무도 모를 법한 잡지 〈뿌리깊은 나무〉 발행인이자 그 시대의 세련된 ‘모던 가이’ 한창기를 소개했다. 주제 하나하나가 모두 흥미로웠다. 각 주제를 누군가에게 던질 만한 콘텐츠로 매끌매끌하게 닦는 과정에서 0팀 스스로 돈키호테가 되어야 한 순간이 있었나?

김민철 사실 책으로 만들 땐 민음사 쪽에서 필자 섭외에도 도움을 주고, 많은 부분을 함께했다. 0팀 쪽에서 필자 리스트를 제안하면 민음사에서 섭외에 나서주기도 했다. 힘든 점이 꽤 있었는데 지나고 보면 다 까먹는다.
하지만 창의력만큼 광범위한 주제가 또 어디 있겠나. 그중에서 11가지를 고르는 일이 녹록하지 않았을 것 같다.
김민철 다들 어디에서 들은 것, 봤던 것, 읽었던 것들을 모아서 회의 테이블에 풀어놓고 시작했다. 그러면서 조각들을 맞춰봤다. 이 중에 가장 돈키호테다운 게 뭘까? 하면서. 각자 정말 많이 찾아왔는데, 그중에 모두가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추려내고 그것들을 바탕으로 카피를 써봤다.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게 카피라이팅이니까.
콘텐츠를 책으로 완성하는 과정에서 각자 맡은 역할이 있었나?
김민철 모두 하는 일이 비슷했다. 각자에게 주제를 따로 던져주지도 않았고, 처음 아이디어를 낼 때부터 다 같이 했다. 괜찮을 것 같은 아이디어를 회의 테이블에 펼쳐놓은 순간부터 말이다. 회의 때 내놓은 아이디어는 공동의 것이니까. ‘무한 경쟁’ 시스템이었다. 하하.
김재호 진행 역시 다 함께했다. 인터뷰하러 가고, 녹취를 받아 적고, 회의를 기록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 혹은 하고 싶은 사람이 자진해서 했다.
‘무한 경쟁’ 시스템 안에서 굉장히 자율적으로 책을 만든 것 같다. 모두가 적극적이어야 하고 모두가 자신의 프로젝트라고 생각하지 않고서야 완성되기 어려웠겠다.
박웅현 모두가 주인 의식이 센 사람들이다. 이 일이 자신의 메인 프로젝트라고, 모두 생각했던 것 같다. 각자가 잘할 수 있는 일을 나서서 했다.
소리꾼 장사익의 인터뷰는 박웅현이 했다.
김재호 역시 자진해서 하신 거다. 박웅현 CCO가 그분을 굉장히 좋아했다.
책에 소개된 11가지 안에 들지 못하고 탈락한 것 중, 각자 개인적으로 아쉽다고 생각되는 주제가 있나?
서준혁 나는 멍게가 가장 아쉽다.
김재호 나도 멍게.
잠깐, 멍게를 인류의 창의성으로 삼았다는 건가?
김재호 멍게는 한편으로 흉측하게 생긴 생물이다. 누군가 그걸 먹을 생각을 처음 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것 자체를 돈키호테적인 발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봤다.
서준혁 영상이 참 잘 나왔었다.
김재호 영상을 잘 만들었는데. 멍게가 TV 화면을 가득 채우는 게, 환 공포증 있는 사람들이나 대중에게 호감보다는 비호감을 얻을 가능성이 크다는 외부 의견이 있어 아쉽게 탈락했다.
책을 만들며 겪은 가장 어처구니없는 일은 무엇인가? 0팀은 기본적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지르는 집단 아닌가?
박웅현 처음 시작할 때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이 아이디어를 콘텐츠로 발전시키기까지의 과정이 참 어처구니없었고 힘들었다. 일단 주변에서 엄청나게 많은 우려를 표했다. 이 이야기가 새롭겠냐, 창의력을 두고 ‘돈키호테력’이라 표현한 것 이외에 다른 창의력 관련 콘텐츠와 변별력이 있냐, 이것들 모두 유튜브에 검색하면 나오는 정보 아니냐, 광고하는 사람들이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있냐, 광고나 하는 사람들이 너무 자신의 실력을 과대평가하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다들 그렇게 반대했다.
불가능하게 느껴질 법했겠는데.
박웅현 주제에 대해 우리끼리 카피라이팅을 해봤다. 재미있는 것이 정말 많았다. 괜찮을 것 같았다. 그냥 우리 자신을 믿고 진행했다. 그때부터 이 콘텐츠를 어떻게 팔아야 할지 고심했다. 제안이 와서 만든 콘텐츠가 아니니까, 누군가에게는 팔아야 하는 거잖나. 2분짜리 영상을 만들려고 해도 제작비가 꽤 든다. 소스를 쓰거나 음악을 써야 하고 녹음도 해야 하고 내레이션도 붙는다. 그게 다 돈 아닌가. 팔려면 또 레퍼런스가 필요한데, 그걸 어디서 따서 쓸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때 내가 ‘직권남용’을 좀 했다. 함께 일해온 프로덕션에 “의미 있는 일이다. 재미있는 일이다. 일단 샘플 4편만 먼저 만들어달라”면서. 충분한 제작비 없이 만들었다. 그때 만든 것 중 하나가 ‘멍게’ 편이다. 샘플 4편을 들고 2년 동안 보따리 장사를 했다. 광고주 앞에서 프레젠테이션도 하고, 팔기 위해 애썼다. SBS에도 가봤다. PD들이 너무 좋아했다. 그런데 방송하기엔 너무 짧고, 광고는 아니고, 협찬은 괜찮은데 그러려면 방송국도 돈을 벌어야 하는데 협찬사를 잡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식이었다.
참 지난했다. 박웅현이 광고 외에 이렇게까지 매달린 콘텐츠가 있었나? 지금껏.
박웅현 사실은 많다. 좋을 땐 그런다. 좋으니까.
〈안녕, 돈키호테〉는 수십, 수백 가지의 안 될 이유를 뚫고 태어났다.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고, 지치지 않고 밀고 나간 값진 결과물이다.
박웅현 세종대왕에 대한 강의를 종종 한다. 세종대왕의 위대한 점은 사실 수천 명이 내지르는 “통촉하여주시옵소서!”를 뚫고 나아간 힘이라고 생각한다. 위대한 것, 값진 것을 만들려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며 개인적으로 깨달은 게 바로 그 대목이었다. ‘창의력은 실행이다’라는 것. 박웅현이 책 서두에 써두기도 했고, 책의 챕터로도 등장하지 않나. 지금껏 창의력을 실행이라는 행위 자체와 연관 지은 콘텐츠는 거의 없었으니까. 이 콘텐츠를 만들며 ‘창의력’에 관해 여러모로 생각해봤을 것 같다. 새로 얻은 정의나 관점이 있었나?
이태호 이 책이 나오고서 주변 사람들은 대개 “대단하다, 신기하다”라는 말을 해줬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좋아했는데, 나는 솔직히 아니었다. 내가 만들었기 때문에 이게 그렇게 대단한가? 싶은 생각이었다. 그런데도 이 책을 사람들이 꽤 괜찮게 생각하는 걸 보면, 결국 창의력이란 목소리를 내서 말을 하고, 어떻게든 만들어서 세상에 내놓아보는 것. 거기에서부터 시작하는 것 아닌가 싶다.
서준혁 아끼던 아이디어가 죽어버리는 경우를 많이 겪었다. 머릿속, 한쪽 구석에 그런 아이디어들이 계속 쌓인다. 그런데 다시 보면, 결국 그걸 실행할 용기가 없어서 버린 것도 태반이더라.
그러니까 창의성은 용기다?
서준혁 그런 것 같다. 생각한 것을 실행하려고 할 때,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런 식으로 뭔가 해보기 전에 접어서 뒤편에 넣어둔 경우가 굉장히 많다. 그런데 이 책을 만들면서, 버린 것들을 모아둔 하드디스크를 다시 뒤지는 일이 많아졌다. 용기가 부족해 버렸던 게 있나? 하면서. 그런 것들을 다시 살려볼까 생각하면서. 죽어 있는 아이디어에게도 애착을 부리게 됐다.
김민철 나는 창의성이 평소 체력에서 오는 것 같다. 평소에 그냥 재미있었던 것, 그냥 했던 것, 읽었던 것, 어딘가에서 주워들은 것, 트위터에서 ‘좋아요’ 눌렀던 것들이 다 나의 평소 체력이 되어 창의성을 힘껏 밀어주는 것 같다. 일상을 잘 살아가는 일은 결국 창의력을 위한 평소 체력을 길러놓는 일이 된다. 그것이 결국 창의력의 밑바탕이 되고.
김재호 우리는 사실 아티스트가 아니지 않나. 광고란 결국 협업이다. 우리가 어떤 창의적인 일을 만들어냈다고 치면, 그때의 창의성은 사실 많은 사람들의 힘으로 구성되는 거다. 아티스트가 아닌 이상, 누군가의 창의성은 결국 협업에서 온다고 생각하게 됐다.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할수 있는 일들을 잘해내는 일, 그게 결국 창의성 혹은 창의력을 만들어낸다.

 

“어떤 아이디어는 실현되고 어떤 아이디어는 탈락한다. 콘텐츠로 만들었다 해도 인기 없이 처지는 경우도 있다. 경험상, 아이디어란 그 자체로 살아 있어야 한다. 만져지는 게 아니어서, 내가 어떤 아이디어를 살려야겠다고 기를 써도 죽을 아이디어는 죽고 만다.”


영원히 늙지 않는 소리꾼, 장사익과 박웅현 CCO.

영원히 늙지 않는 소리꾼, 장사익과 박웅현 CCO.

영원히 늙지 않는 소리꾼, 장사익과 박웅현 CCO.

광고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꼭 그들의 창의성에 관한 질문을 하게 된다. 창의적이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들이니까. 그런데 박웅현은 책의 서두에 이렇게 썼다. ‘나는 창의성을 정의 내릴 수 있는가? 언감생심. 그런데도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내게 그 질문을 해왔다. 물론 내가 창의적이라 생각해서 하는 질문은 아니었다. 광고인이라는 나의 직업 때문이었다.’ 박웅현 외의 다른 팀원들에게 묻고 싶다. 이 말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민철 나는 완전히 동의한다. 내가 창의적인 사람인가? 정말 모르겠거든. 나는 특이하다는 말을 한번도 들어보지 못하고 자란 사람이다. 그냥 열심히 공부해서 회사에 입사했다. 나 자신을 창의적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카피라이터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지만, ‘카피라이터’라는 단어를 듣고 머릿속에 연상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과 나는 정반대에 있다. 나는 평범하고 어쩌다 이런 직업을 가진 것뿐이다.
그렇다면 0팀이 해내고 있는 창의적인 일은 결국 조금 전 언급한 것에서 나오는 걸까? 평소 체력, 협업, 용기 같은 것들.
김민철 박웅현 CCO가 많이 하는 이야기 중에 ‘과정 관리’가 있다. 물론 어떤 프로젝트나 콘텐츠에는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이 있지만, 사실 그것이 창의적 결과물을 내기 위해서는 아이디어의 시작보다 과정 관리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경력이 쌓이다 보니 그 말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이디어 하나가 어찌저찌 태어나면, 제때 필요한 밥을 먹이고 옷도 입히고 그런 과정 관리를 잘해나가야 아이디어가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거다.
박웅현 이 회사에서 인턴으로 3개월쯤 일하고 얼마 전 다른 회사에 정직원으로 입사한 친구가 있다. 3개월간의 인턴 생활을 마칠 때쯤 회사 파티에서 그 친구에게 물었다. “3개월 동안 광고 회사에 대해 뭘 알게 된 것 같니?” 그랬더니 그 친구가 대답했다. “시간 관리를 참 잘해야 돼요.” 광고 회사에서 중요한 일은 창의적인 발상이 아니라, 하루 스케줄과 시간을 관리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거다. “아주 제대로 배웠다”고 말해줬다. 그 친구는 아마 자신이 한 말이 그렇게 큰 의미가 있는지 지금도 모를 테지만. 광고 회사는 천재성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일하는 곳이 아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관리가 정말 중요하다.
0팀의 다음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안녕, 돈키호테〉 후속으로 준비하는 것이 있나?
박웅현 〈안녕, 돈키호테〉의 두 번째 얘기도 기획해놨다. 일단은 다큐멘터리로 만들고자 기획하고 세팅까지 해놨는데, 아직 살아나지 못한 거다. 지금은 죽어 있는 상태다. 근데 모르지. 또 이게 어떻게 될지.
김민철 〈안녕, 돈키호테〉의 아이디어 착상부터 책까지 나오는 데 5년이 걸렸다. 그럼 또다시 5년의 시간이 필요한…. 하하.
김재호 음. 5년은 좀 심했고, 올림픽 주기로는 해봐야지.
세상으로 내보내고 나니, 결국 어떤 사람들을 위한 책이 될 것 같나?
서준혁 주변 사람들에게 책 추천을 했는데, 친구 중 한 명이 그랬다. “할까 말까 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일본계 광고 대행사에서 일을 하던 친구 하나가 〈안녕, 돈키호테〉를 읽고 회사를 그만뒀다더라.(웃음) 이전부터 여성 눈썹 관련 사업을 하고 싶었는데, 그 일을 해보겠다고.
박웅현 야, 멋지다. 멋지지 않나? 우리 사회에 그런 사람들이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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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적인 누드화로 온갖 비난을 받았던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1863). 1백50년이 흐른 뒤 수많은 패러디를 양산하며 명작으로 인정받는다.

사실적인 누드화로 온갖 비난을 받았던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1863). 1백50년이 흐른 뒤 수많은 패러디를 양산하며 명작으로 인정받는다.

  • 사실적인 누드화로 온갖 비난을 받았던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1863). 1백50년이 흐른 뒤 수많은 패러디를 양산하며 명작으로 인정받는다.사실적인 누드화로 온갖 비난을 받았던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1863). 1백50년이 흐른 뒤 수많은 패러디를 양산하며 명작으로 인정받는다.
  • 마네의 ‘올랭피아’를 재해석한 펠릭스 발로통의 그림.마네의 ‘올랭피아’를 재해석한 펠릭스 발로통의 그림.
  • 낮에는 프랑스어 과외 선생이 되고, 밤에는 개념미술가로 살았던 마르셀 뒤샹. 낮에는 프랑스어 과외 선생이 되고, 밤에는 개념미술가로 살았던 마르셀 뒤샹.
  • 미국의 대표적 가구 디자이너 찰스 & 레이 임스 부부. 미국의 대표적 가구 디자이너 찰스 & 레이 임스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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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이경진
PHOTOGRAPHY 김윤식
COOPERATION 민음사
ASSISTANT 김윤희

2017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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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철부대> 속 UDT 대원들의 반전 매력을 포착하다. 이토록 담백한, UDT 대원들의 포트레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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