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질에 대해 활짝 열려 있다. 남의 말을 잘 듣고, 내 것으로 만드는 걸 잘한다. 오디션 볼 때도 특기는 경청이라고 썼다.”
셔츠와 니트는 모두 버버리 제품.
“모델 할 때는 모델로 끝장을 봐야지 했다. 처음 얻은 내 ‘일’이니까. 지금 나의 본업은 아무래도 연기인 것 같다.
〈별에서 온 그대〉로 방송에 첫발을 내디뎌서인지. 내가 내디딘 한 발에 대해서 책임감을 강하게 느낀다.
내가 선택했고 이왕 시작했으면 끝장을 봐야지, 하는 면이 있다.”
조금 옛날이야기 하나 해도 되나?
그럼. 내가 기억하는 옛날이겠지?
처음 안재현의 이름이 뭇사람 입에 오르내리던 때다. 2013년, ‘베가레이서2’라는 휴대폰 CF….
맞다! 와, 그걸 기억하네. “카메라, 촬영, 업로드” 딱 세 마디 했었지.
그때 꽤 이슈가 되지 않았나. 일단 목소리가 좋았고.
재미있게 촬영한 CF였다. 그런데 주변 친구들은 엄청 놀렸다. “업로드”지 “업노드”가 뭐냐면서. 그땐 내가 잘못하거나 실수한 것을 웃어넘기기 어려웠다. 상처 좀 받았다. 하하. 그런데 이제는 그럴 때 그냥 같이 웃고 만다. 내 망가진 모습에 내가 웃겨 죽을 때도 많다.
예능 활동을 하면서 생긴 맷집 아닐까?
그런 것 같다. 모델로 일할 때부터 무의식중에도 늘 멋있어야 하고 풀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거든.
〈신서유기 4〉의 첫 방송이 지금 막 시작했을 거다.
아, 5분 전에 시작했겠다. 이번 시즌 역시 지난 시즌의 연장선이다. 장소만 바뀌었다, 베트남으로. 〈신서유기〉는 다른 예능 프로그램보다 자극적인 요소가 많지 않나. 나는 그런 개그가 정말 재미있다. 그렇지만 〈신서유기〉는 여전히 어려운 촬영이다.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을 줄 알았다. 〈신서유기〉 시리즈에서 발견한 안재현은 정말 천연덕스러운 사람이더라고. 순간 집중력도 좋고, 임기응변에도 능하고.
게임할 때 좀 그랬지. 제작진의 힘이 크다. 아주 미세한 것까지 살려준다. 작은 포인트도 놓치지 않고 극대화해서 보여주니까. 출연자를 캐릭터화하는 능력이 뛰어난 것 같다.
함께 출연하는 이들은 본능적이고 동물적인 감각에 따라 움직이는 반면, 안재현은 뭔가 찬찬히 이해하고 움직이는 것 같다.
나는 완벽히 이해해야 움직일 수 있다. 뭔가 실행할 때, 1부터 10까지 계산을 해야 한다. 〈신서유기〉에서 내가 자주 ‘어?’ 하는 표정을 짓거든. 다른 사람들은 동물적으로 움직이는데 내가 그렇게 못할 때 짓는 표정이다. 기상 미션을 할 때도,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착착 준비하고 생각도 좀 해야 하는데 형들은 눈을 삭 뜨잖아. “형! 어떻게 일어나셨어요?” 물으면 형들이 “쎄- 하던데?”라고 대답한다. 그 ‘쎄-‘한 게 도대체 뭘까? 하하.
대신 안재현은 독하잖아. 기상 미션에서 이기겠다고 잠을 아예 안 자는 사람이지 않나. 하루 종일 촬영하고 어떻게 1분도 안 잘 수 있나.
그땐 진짜 이 악물었다. ‘10일 뒤에 자야지’ 생각하고 안 잤다. 뭐든 내 몫을 해야 하는데, 형들만큼 웃길 것도 아니거니와… 미션이라도 독하게 해내는 게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거든. 그거라도 제대로 해보자는 마음이었지.
근데 그게 또 캐릭터가 됐다.
그렇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스태프와 형들 덕분이다. 내가 뭔가 독하게 했을 때 재미있을 것 같은 상황이면, 형들이 리액션을 마구 해주거든. 그러면 나는 ‘아, 이 부분에서 이렇게 독하게 해야 재미있구나’ 하는 거다.
베트남에서 <신서유기 4>를 촬영한 이후로는 어떻게 지냈나?
이사를 했다. 용인으로 갔다. 이제 도시와 시골의 딱 중간에 산다. 처음엔 조금 먼 것이 아닌가 싶었는데 지내다 보니 좋더라. 난 힘든 게 없는데 매니저가 좀 힘들다. 왕복 3시간은 잡아야 하니까 너무 미안해서, 우리 집에 올 때는 차가 좀 막혔다고 하면서 땡땡이 부리라고 팁을 줬는데, 매니저가 워낙 착해서 ‘FM’대로 한다.
도시를 벗어난 생활을 꿈꾼 건가?
사실 나는 전혀 생각 안 해봤다. 도시가 주는 편리함에 젖어 있어서. 아내가 자연적인 걸 좋아하니까, 도시와 시골의 중간쯤으로 정한 곳이 용인이다. 집에서 산도 보인다.
드라마도 영화도 경험했고, 진행자 경력도 있고, 예능 대표작도 생긴 상태다. 이런저런 활동을 하면서 유용한 안재현의 장점은 무엇인 것 같나?
내가 지닌 장점을 쓴다기보다, 이것저것 흡수하면서 해온 것 같다. 원래 내가 제일 잘하는 것 중에 하나가 듣는 거다. 남의 말을 잘 듣는 것. 경청하는 것.
마음이 열려 있구나.
그럼. 지적질에 대해 활짝 열려 있다. 살다 보니 내가 맞다고 믿은 것이 틀린 경우가 정말 많았거든. 지나고 보면 혹은 결과물을 보면, 내가 고집 부려서 잘된 것도 있지만 남의 말을 듣지 않아 결과가 별로인 것도 많았다. 주변에서 하는 말은 보통 득이 되더라. 그래서 남의 말을 잘 듣고, 내 것으로 만드는 걸 잘한다. 오디션 볼 때도 특기는 경청이라고 썼다.
“버리고 싶은 게 많다. 20대 때 나는 욕심이 많았다. 너무 많아서, 욕심 없다고 말한 적도 많았다. ‘내가 욕심 없는 사람이었으면’ 하는 욕심이 있었던 거지.”
지금 자신의 ‘본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모델 할 때는 모델로 끝장을 봐야지 했다. 처음 얻은 내 ‘일’이니까. 지금은… 아무래도 연기인 것 같다. 〈별에서 온 그대〉로 첫발을 내디뎌서인지. 내가 내디딘 한 발에 대해서 책임감을 강하게 느낀다. 내가 선택했고 이왕 시작했으면 끝장을 봐야지, 하는 면이 있다.
일순간 내가 연기를 하는 사람이구나,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구나 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은 때가 있나?
종방연을 할 때? 다 같이 모여서 우리가 완성한 결과물을 보고 있자면 그런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어떤 장면이 마음에 들 때나, 순간 만족감이 크게 올 때도. 작품으로 이야기하자면 마지막으로 한 〈신데렐라와 네 명의 기사들〉(이하 〈신네기〉)이 그랬고.
〈신네기〉에서 안재현은 확실히 전과 달리 편안해 보였다. 왜 그랬을까?
그 역할을 하는 나와 대중이 나에게서 보는 편안한 모습이 맞닿아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아무래도 조금씩 경험이 쌓이면서 편안해졌을 수도 있고. 나중에 내가 더 잘하게 된다면 이런 질문도 받지 않겠지? 내가 잘해서, 나중에는 이런 말을 듣고 싶다. “재현 씨는 이럴 때 참 연기자처럼 느껴져요.” 잘하고 싶다.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드는 게 나의 본업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렇다면 지금 안재현에게 필요한 작품은 뭘까?
‘대박’ 흥행 공식에서는 조금 비켜나 있어도, 내가 제 역할을 잘해낼 수 있는 작품. 주·조연 상관없이 말이다. 물론 어떤 작품을 하든 얻는 것이 있을 테지만, 그런 작품을 하면 내 비어 있는 퍼즐이 좀 채워질 것 같다.
만나기 전에, 안재현의 지난 인터뷰를 모두 읽어 봤는데….
정말?
학창 시절 얘기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숨어서 담배 피울 바에야 안 피우고, 공부에 관심 없지만 혼나거나 눈에 띄기 싫어서 숙제 충실히 하고, 그래서 대학 진학에는 별 뜻이 없었는데 내신은 좋았다고. 게다가 수업 시간에 졸아도 안 걸릴 자리라며 맨 앞자리에 늘 앉았고. 보통 학생들과는 많이 달랐던 것 같다.
일단 그 당시에는 술과 담배에 호기심이 없었다. 그러니 굳이 숨어서 피울 필요도 없었다. 차라리 그 돈으로 맛있는 거 사 먹거나 PC방을 가고 말지, 그런 식이었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싫었다. 내가 숙제를 안 해서, 수업 시간이 나 때문에 지체되는 것도 싫었고 눈에 띄는 것도 싫었다. 보편적인 것들을 지키고 싶었던 것 같다. 뭐, 어쩌면 그냥 혼나는 게 싫어서 그랬던 것일 수도 있겠지만. 하하.
‘인생의 모토는 평화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지금도 그런가?
지금도 그렇다. 평화롭게 사는 것이 제일 어렵고 힘든 일이니까. 평화로운 삶은 굉장히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내 감정을 많이 쓰는 일을 하다 보니, 평소에는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평화 외에 더 얻고 싶은 건 없나?
버리고 싶은 게 많다. 20대 때 나는 욕심이 많았다. 너무 많아서, 욕심 없다고 말한 적도 많았다. ‘내가 욕심 없는 사람이었으면’ 하는 욕심이 있었던 거지. 이제는 정말로 욕심을 조금씩 버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다. 그래서 예전보다 말수도 줄었다. 예전에는 나를 어필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어필하지 않으면 내 존재가 사라질 것 같다고 생각했고. 이제는 내가 어떤 일 하는 사람이고, 어떤 사림인지는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욕심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로 어필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었나?
결혼 후 1년 동안 많이 달라졌다. 그리고 활동하면서 말이 주는 무서움도 점점 알게 됐고. 말은 기록되니까, 예전에는 저랬는데 지금은 이렇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 말을 피하게 된다.
사는 게 원래 그렇지 않나. 보고 느끼는 게 달라지면서, 목표도 기호도 생각도 바뀌고 믿는 것도 바뀐다. 자연스러운 거다. 연예인이라고 해서 변화된 인상을 숨겨야 할까? 누구나 그렇게 갈대처럼 흔들리면서 사는데.
그런 변화를 많은 사람 앞에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법을 아직은 모른다. 요즘 다시 이것저것 많이 듣는다. 그냥 듣는 상태다. 뭔가를 말하기보다, 듣는 일에 더 익숙해진 상태. 팟캐스트도 듣는데, 가리지 않고 다 듣는다. 고전 읽어주는 것도 듣고. 얼마 전에 〈데미안〉을 들었는데 내 기억으로는 그 책을 내가 20세에 읽었거든. 그런데 지금 다시 들으니, 느끼는 바가 너무 다르더라고. 주인공 싱클레어에게서 나와 비슷한 점이 보이기도 하고.
20세가 아니라, 지금의 안재현과 비슷하기 때문인지도 모르지.
그럴 수도 있다. 싱클레어는 계속해서 새로운 세상을 향해 간다. 혼란에 빠지고 고뇌하고 두려워하면서도. 나도 그렇게 반복하면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한 발 내딛는 것에 겁을 좀 내는 편인데, 많이 듣고 많이 배우면서 용기를 더 내야겠다는 생각을 최근에 했다.
지금 가장 자극받는 인물이 있나?
구혜선?
하하. 좋다. 그녀에게서 어떤 자극을 받나?
멋있다. 나는 그녀가 참 멋있다. 최근에 받은 자극은 용인으로 이사 간 것과 관련이 있다. 편리한 도시를 버리고 간다는 것이, 그럴 마음을 먹는다는 것이, 다 버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멋있었다. 그렇게 다 버리고 자연 속에서 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게. ‘옷도 한 벌만 있으면 살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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