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TC4루쏘 T를 파악하겠다는 것 자체가 오판이었다. 비록 실린더가 줄었더라도 V8 터보 엔진은 넘치는 출력을 자랑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같은 GTC4루쏘 T의 품에서 마냥 즐길 뿐이었다.
(내 딴에는)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차를 코너로 던져도 한계가 보이지 않았다.
엔초 페라리가 말했다. “페라리는 모두에게 꿈이다.” 페라리 창업자가 한 말이기에 면구하지만, 그럴듯하다. 자동차를 단지 이동 수단으로만 보지 않는 사람이라면 더. 얼마 전에 그 꿈을 즐겼다. 페라리를 인제 서킷에서 탔다. 짧지만 화끈한 꿈이었다. 작년에는 페라리를 이탈리아에서 탔다. 운치 있는 꿈이었다. 작년과 올해, 붉은빛이 가득한 꿈속을 들고난 셈이다.
올해 꿈결 같은 시간은 GTC4루쏘 T와 함께했다. 작년에는 GTC4루쏘와 함께했다. 잘못 반복한 게 아니다. 잘 보면 T가 있고 없다. T는 터보(Turbo)의 머리글자다. GTC4루쏘 T는, 그러니까 GTC4루쏘에 터보 엔진을 달았다는 뜻이다. 단, 실린더를 네 개 덜어냈다. V12에서 V8로. 실린더를 네 개나 덜어냈는데 출력은 아주 조금 덜어냈다. 페라리다운 다운사이징 모델이다.
페라리 관계자는 둘의 관계를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모델을 내놓는 심정으로 GTC4루쏘 T를 공개했다고. 보통 엔진 배기량 줄이고 가격 내려 엔트리 모델로 선보인다. 하지만 페라리는 성격을 달리한 차라고 말한다. 그것만 바뀐 게 아니다. 사륜구동에서 후륜구동으로 바뀌고, 더불어 무게도 줄었다. 배기량 차이를 떠나 자연흡기 엔진과 터보 엔진 성격 차이도 있다. 크기와 생김새가 같은 두 차인데도 질감이 다를 요소가 생긴다. 관계자 말을 이해했다.
사전 지식을 습득하고 GTC4루쏘 T를 탔다. 감각을 예리하게 벼렸다. 둘이 뭐가 다를까. 기억을 더듬었다. 작년 7월, 이탈리아 피에트라산타 굽잇길에서 선보인 안정적인 몸놀림이 스쳐갔다. 인근 터널에서 토해낸 사자후 같은 배기음도 떠올랐다. 외관과 실내는 그때 그 모습 그대로였다. 서킷으로 들어가며 마른침을 삼켰다. 차든, 운전자든 서킷에선 발가벗겨진다. 서킷에서도 그때 그 안정감과 풍성함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
확실히 시골 굽잇길과 서킷 코너는 비교할 수 없었다. 통제된 공간이라는 조건이 속도를 비약적으로 높였다. 이탈리아 터널의 사자후는 코너를 벗어날 때마다 터져 나왔다. 터널의 공명 효과가 없어도 짜릿함은 여전했다. 코너에 뛰어들 때 속도감이 곱절이었으니까. 코너와 코너, 진입과 탈출이 반복되자 애초 목표는 점점 희미해졌다.
GTC4루쏘 T를 파악하겠다는 것 자체가 오판이었다. 비록 실린더가 줄었더라도 V8 터보 엔진은 넘치는 출력을 자랑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같은 GTC4루쏘 T의 품에서 마냥 즐길 뿐이었다. (내 딴에는)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차를 코너로 던져도 한계가 보이지 않았다. 한계를 보긴 했다. 내 실력과 담력. 단지 자기 한계 안에서 즐기는 게 최선이었다.
GTC4루쏘 T는 그만큼 품이 넓은 그랜드 투어러였다. 서킷에서 내던졌는데도 여유롭게 받아쳤다. 그러면서 조금 더 용기를 내보라고 북돋았다. GTC4루쏘 T의 부름에 응할 실력이 없는 게 아쉬울 뿐이었다. GTC4루쏘와 GTC4루쏘 T의 가격 차는 1억 남짓. GTC4루쏘 T가 적은 쪽이다. 물론 덜어내도 3억원대지만. 그럼에도 왠지 후하게 이득 보는 기분이다. GTC4루쏘 T가 품은 역량을 겪어보면 이상한 숫자 관념에 빠진다. 뭐에 홀린 듯이. 아, 그래서 엔초 페라리가 꿈이라고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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