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밴드 공연을 보러 갔다. 요즘엔 다들 힙합을 많이 좋아하니까, 록 음악 공연장에도 당연히 이러한 영향이 미칠 거라 예상했다. 그런데 공연장 입구부터 지루하리만큼 길게 늘어선 입장 대기 줄을 보고 솔직히 좀 놀랐다. 아, 맞다. 이 공연은 라이프 앤 타임의 단독 콘서트였지. 팬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그에 상응하는 실력을 보여주는 그들이기에 가능한 현상이었다.
로로스(Loro’s)의 기타리스트 진실, 칵스(The Koxx)의 베이시스트 박선빈, 재즈 드러머 임상욱은 고등학교 친구 사이다. 각자 활발히 음악 활동을 하던 세 친구가 한자리에 모인 건 ‘새로운 음악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다. 사랑과 이별, 청춘 이런 거 말고 어떤 이야기를 음악으로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자연을 떠올렸다. 영국 BBC 다큐멘터리 〈Life〉와 〈Time〉에서 영감을 얻어 밴드명을 지은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밴드가 자연, 삶과 시간이란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지 벌써 3년이 흘렀다. 2014년 데뷔 EP 앨범 〈The Great Deep〉을 발매한 이후 새로운 사운드와 엄청난 연주 실력으로 페스티벌과 라이브 공연장에서 가장 사랑받는 믿음직한 팀이 됐다. 보컬이자 기타리스트 진실은 “다른 밴드들이 이전에 하지 않던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했다. 그리고 어찌 보면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밴드 멤버 구성, 즉 세 명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사운드를 기술적으로 더 실험해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Life and Time
라이프 앤 타임은 9개월 전 리메이크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CHART〉라 이름을 붙였다. 한국 밴드 신의 역사를 빛내준 선배들에 대한 존경을 담아 록 음악의 연대기를 다시 쓰고자 했다. 1970년대의 ‘산울림’을 시작으로 송골매, 크라잉넛, 롤러코스터의 대표곡을 리메이크했고 신곡 ‘차가운 물’을 수록했다. 라이프 앤 타임의 특장점인 ‘엄청난 연주 실력’을 감상할 수 있는 타이틀 곡이다.
생동하는 대자연을 음악적으로 구현해낸 정규 1집 앨범 〈LAND〉는 그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던 ‘새로움’을 놀라운 방식으로 보여준다. 기타와 베이스, 드럼만으로 드넓은 광야와 바다, 숲을 오가는 생경한 경험을 가능케 한 것이다. 그리고 정규 2집에 앞서 이들은 다시 한번 새로움을 실험했다. 197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록 음악의 중요한 지표가 된 곡을 선정하고 라이프 앤 타임의 감각으로 리메이크한 프로젝트 〈CHART〉는 장장 9개월에 걸쳐 한 장의 앨범으로 마무리됐다.
산울림의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 송골매의 ‘세상만사’, 크라잉넛의 ‘말 달리자’, 롤러코스터의 ‘Love Virus’를 곡마다 시대를 관통한 사이키델릭, 프로그레시브와 디스코, 스카펑크 등의 장르로 편곡, 라이프 앤 타임만의 스타일로 풀어냈다.
“모든 곡을 각기 다른 프로듀서와 작업했다. 원테이크로 녹음한 곡도, 공연장에서 라이브로 녹음한 곡도 있다. 우리에겐 엄청난 경험과 공부를, 대중에겐 우리를 친근하게 접하는 계기를 마련해준 앨범이다.” 박선빈의 말이다.
라이프 앤 타임의 세 남자는 이제 인생의 페이지가 바뀌었다. 모두 서른을 훌쩍 넘겼고 가정과 아이가 생긴 멤버도 있다. 임상욱은 “록 음악 신이 위축되었다고는 하지만, 계속해서 다채로운 결과물을 만들어 소개하다 보면 대중의 만족을 얻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 같다”고 말한다.
힙합 프로듀서 코드 쿤스트부터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나잠 수까지 다양한 뮤지션이 참여한 앨범 〈CHART〉가 바로 그 ‘할 일’이었던 셈이다. 소속 레이블인 해피 로봇 레코드의 밴드 솔루션스, 칵스와 함께하는 또 다른 프로젝트도 기대해봄 직하다. 라이프 앤 타임은 말한다. “지금 이 밴드는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 중 하나일 뿐”이라고. 그러니까 이들이 앞으로 해나갈 새로운 일들이 무궁무진하단 뜻이다.
이달의 신보
DPR LIVE 〈Please〉
한국 힙합 신에 또 한 명의 기대주가 등장했다.
이미 탄탄한 팬층을 거느리는 딘의 지원 사격으로 모습을 드러낸 DPR LIVE는 첫 싱글 앨범 〈Know Me〉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두 번째 싱글 앨범 〈Please〉는 EP 앨범 〈Coming To You〉의 예고편으로 아주 적절하다.호세 제임스 〈Love In A Time of Madness〉
솔, R&B 장르를 사랑한다면 호세 제임스의 목소리에 녹아본 경험이 한두 번쯤은 있을 거다. 2년 만에 발표하는 신보에서 그는 재즈와 솔, 힙합과 R&B를 감미롭게 조화시켰다.
특히 ‘To Be With You’는 첫 소절만 듣고도 반하게 되는 마법 같은 트랙이다.
칼리드 〈American Teen〉
이 정도면 천재라고 불러도 괜찮을 것 같다.
미국 텍사스 출신의 1998년생 싱어송라이터, 칼리드의 데뷔 앨범을 들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거다. 프랭크 오션, 위켄드 등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동명의 타이틀 곡 ‘American Teen’에서 ‘10대’를 느낄 수 없는 이유다.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