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코
‘커피바K’와 ‘키퍼스’를 거치며 주목받아온 손석호의 바. 소코의 스타일은 독보적이다. 은근하게 들려오는 재즈와 고요한 물소리, 가지런히 정돈한 술병들 사이로 흐르는 작은 분수, 동양의 백자와 서양의 구리 호리병을 함께 놓은 장식장까지. 개화기의 경성, 도쿄, 상하이와 같이 과도기 도시 이름과 어울릴 법한 풍경이 펼쳐진다. 하루의 끝에 들러 넥타이를 살짝 풀며 한잔 기울이기에 좋을 안락함, 친근한 격식, 정갈한 품위가 기분 좋게 흐른다.
“저를 찾아오는 손님들과 함께 나이 들 수 있는 바를 운영하고 싶었어요. 전 72세까지 바텐딩을 하고 싶거든요. 팔을 들 수 없을 때까지 할 겁니다. 그러려면 ‘트렌디’한 바는 안 되는 거죠.”
손석호의 주특기인 클래식 칵테일이나, 그가 여러 차례 대회에 참가하며 개발한 시그너처 칵테일 중 어떤 것을 선택하든 상관없이 좋다. 오랫동안 정갈하게 다듬어온 실력으로 근사한 한잔을 맛볼 수 있을 테다. 곧 와인 리스트도 늘릴 계획이다. 바텐더 이전에 소믈리에 업계에서 일했던 손석호의 특기를 살렸다. 일본식 달걀말이와 파스타, 라멘 등으로 출출한 배를 간단히 채울 수도 있다.
Editor’s Pick 싱글 몰트 바. 손석호의 창작 칵테일이다. 프로슈토를 얹은 멜론에서 착안했다.
주소 서울시 용산구 한남대로20길 47
문의 02-796-4486
코블러
이런 곳에 바가 있을까 싶은 작은 골목을 헤집고 들어가다 보면 ‘코블러’라 적힌 두툼한 목제 대문이 반긴다. 홍대 앞 로빈스 스퀘어의 대장인 로빈 대표가 새로 연 작은 바다. ‘진짜 동네 바’를 만들고 싶었다는 대표의 바람대로 서울이지만 서울 같지 않은, 종로의 작은 골목에 둥지를 틀었다. 코블러는 지난해 8월 문을 열었다. 그리고 여전히 ‘가오픈’ 상태다. 4월 5일에 정식으로 문을 연다. 길고 긴 ‘가오픈’ 기간을 통해 코블러는 이런저런 실험을 해보는 중이다. 일단 메뉴판은 없다. 100% 추천으로 술을 낸다. 평소 좋아하는 술 스타일을 이야기하면, 마음에 쏙 들 만한 것으로 알아서 척척 내어준다. 바 건너편에 앉은 이의 취향을 단박에 파악하는 내공은 웬만한 세월로 다진 실력이 아니다.
봄기운이 가득한 날, 바에 앉아 분홍빛 반짝이는 클로버 클럽을 마셨다. 1900년대 뉴욕 신사들 사이에서 인기를 끈 클래식 칵테일이다. 비피터 진에 라즈베리 시럽, 레몬과 달걀흰자를 더한 클래식한 조합은 그대로. 여기에 로빈 대표는 열대 과일 맛이 물씬 나는 비터를 슬쩍 버무렸다.
Editor’s Pick 클로버 클럽. 여성스러워 보이지만, 맛은 전혀 그렇지 않다.
주소 서울시 종로구 사직로12길 16
문의 02-733-6421
바 인 하우스
“모은 술을 쌓아두고 창고 겸 아지트로 쓰려던 공간이었어요.” 오너 바텐더 김병건이 바의 문을 열며 말했다. 안쪽으로는 각기 다른 술들이 기다란 찬장의 칸칸마다 서너 줄씩 서 있었다. 얼핏 봐도 엄청난 양이다. 바의 곳곳에는 김병건이 오랫동안 애정으로 모아온, 손님에게 칵테일 낼 때 항상 사용하는 빈티지 바카라들이 채 포장도 뜯지 않은 상태로 무더기를 이루고 있다.
성남시 복정동에 숨은 듯 자리한 바 인 하우스가 이 자리에 문을 연 건 2007년의 일. 이제 이 작은 바는 서울을 비롯한 타지에서 달려오는 단골들로 북적인다.
김병건이 잠시 보여줄 게 있다며 사다리에 올라 높은 찬장에 손을 뻗는다. “모은 술들 중에는 이런 것들이 꽤 있어요. 이것으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해볼까 합니다.” 1970년대에 생산된 고든스 진, 1980년대에 제조된 와일드 터키 라이 위스키다. 진짜 그 시대에 만든 술을 그 시대의 레시피로 빈티지 칵테일을 만들어보는 것이 이번 봄, 바 인 하우스의 새로운 계획이다.
Editor’s Pick 뉴욕 사워. 단단한 내공으로 정교히 쌓아 올린 달콤하고 상큼한 칵테일.
주소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복정로 20
문의 031-768-6616
더 웨스트 햄릿
호프집과 순댓국집이 제멋대로 뒤섞여 있는 방화동의 어느 골목에 더 웨스트 햄릿이 있다. 바의 문을 여는 순간, 거칠거칠한 매력의 골목과는 180도 다른 고요함이 온 감각을 사로잡는다. 바에는 오로지 8개의 의자만이 놓여 있다.
“스코틀랜드 아일레이 지역에 위스키 증류소가 8개 있습니다. 8개 의자는 그것을 뜻해요.” 전병준 오너 바텐더가 운영하는 이 바는 100% 예약제로 손님을 받는다. 어떤 단서도 없이 한 잔을 부탁하니, 생라임이 아닌 영국 로즈사의 라임 주스를 넣은 오리지널 김렛을 내준다. 빈티지 바카라 글라스에 손으로 깎아 만든 둥근 얼음을 넣고 탠커레이 진과 라임 주스를 1:1로 섞는다.
일본 긴자의 바에서 잠시 일하고 영국에서 술을 공부한 전병준은 경험을 살려 일본 혹은 영국의 빈티지 칵테일을 비틀거나, 발전시키는 데 일가견이 있다. 왜 이런 바를 서울의 서쪽 끝에 열었냐는 물음은 그를 언제나 따라 다니는 단골 질문. 그는 말했다. “진짜 찾아가야 하는 바를 운영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공항과 가깝다는 점도 좋았습니다. 더 웨스트 햄릿은 가장 서쪽에 위치한 어떤 동네를 뜻하죠.”
Editor’s Pick 오리지널 김렛. 챈들러 김렛이라 부르는 레시피에 직접 깎은 얼음을 넣었다.
주소 서울시 강서구 양천로14길 6
문의 010-6270-4109
대디서울
연남동에서 사랑받은 바 앤젤스 쉐어에서 위스키를 한 움큼 덜어내고 와인과 몇 개의 아름다운 음식 메뉴를 더하면 대디 서울이 된다. 대디 서울은 앤젤스 쉐어가 만든 세컨드 바다. “담담하게 이야기하자면 대디 서울은 그저 여러 종류의 술이 있는 바예요. 다이닝 바라고는 절대 할 수 없고요. 맛있는 술을 조금 더 쾌적한 공간에서 간단한 음식과 함께 즐겼으면 하는 마음에서 만들었어요.” 대디 서울의 매니저 서홍주의 말이다.
칵테일 메뉴에는 ‘칵테일’이라고만 쓰여 있다. 뭐든, 원하는 걸 말하면 된다는 뜻이다. 새콤달콤한 전복 세비체를 주문하고는 시원한 진 피즈를 달라 했다. 그렇게 한참을 홀짝이며 바를 둘러본다. 대디 서울에는 보통 바가 갖춘 전형적인 장면이 없다. 바의 뒤편 벽에는 술이 단 한 병도 진열되어 있지 않다. 대신 그 자리엔 몇 개의 팬과 투명한 글라스만이 빼곡하다. 메뉴를 보고 술을 주문하면, 그제야 비밀스럽게 감춰둔 수납공간에서 갖가지 술들을 꺼내어 펼친다. 독특한 와인 리스트를 살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와인 애호가인 서홍주가 밸런스 좋은 와인들을 찾아내 직접 라인업을 구성한다.
Editor’s Pick 진 피즈. 보태니컬한 향과 레몬 맛이 향긋하게 터진다.
주소 서울시 마포구 와우산로30길 80 지하 1층
문의 02-335-0180
샴
강남에서 괜찮은 싱글 몰트위스키 한 잔 마시기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샴은 그 시절 거의 처음으로 제대로 된 싱글 몰트위스키를 취급한 바였다. 일찍부터 싱글 몰트위스키를 유난히 즐긴 신종환 대표의 영향이다. 최근 부쩍 고개를 내미는 오센틱 바나, 한때 유행처럼 번지던 스피크이지 바, 클래식 바 등의 흐름과 샴은 언제나 동떨어져 있었다. 샴은 처음 로데오 골목에 문을 연 2010년이나 지금이나 작고, 맛있고, 편안한 바다. 샴에는 커버 차지도 없고 드레스 코드도 없다.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비싼 술들은 없지만 맥주는 은근 많다. 와인도 있고, 커피도 있다. 서비스는 합리적이다. 안주로 즐길 만한 메뉴는 거의 없지만 안주를 들고 오는 것은 허용한다. 부담 없고 자유로운 분위기 덕에 10년 된 단골들이 꽤 많다.
최근 신종환 대표는 샴을 사랑하는 단골에게 조금 더 프라이빗한 시간을 제공하기 위해, 샴과 가까운 곳에 비밀의 바를 하나 더 열었다. 이름은 ‘노터블(Notable)’. 샴 직원에게 안내받지 않으면 입장조차 불가능한, 진짜 스피크이지 바다.
Editor’s Pick 네그로니. 이탈리아 사람들이 마시던 아페리티프 스타일 그대로 만든다.
주소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660-17 로데오스타 1층
문의 070-4125-5413
펜테라
바 문화 불모지였던 잠실 지역에도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이태원 등지의 바에서 경험을 쌓은 이들이 직접 바를 열면서 칵테일의 매력을 전파하기 시작한 것. 판테라도 그중 하나다. 단출하게 꾸민 공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흡사 낫과 같은 모양의 바 테이블. 직각보다 좁은 각으로 되어 있는 이 테이블에 앉으면, 건너편 끝에 앉은 타인과도 눈인사를 할 수 있다. 그렇게 바에 있는 모든 사람을 밀착시킨다.
“중요한 건 결국 술과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술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오붓하게 한잔할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것 아닐까요?” 메뉴는 클래식 칵테일과 몇 개의 시그너처 칵테일로 구성했다. 시그너처 칵테일에는 ‘Starry Night’ 등 익숙한 노래 제목들이 붙어 있다.
“맛을 상상하기 힘들게 하고 싶었거든요. 음악을 워낙 좋아하기도 하고요. 지금은 메뉴에서 클래식 칵테일의 비중을 높인 상태입니다. 이 동네에는 클래식 칵테일을 생소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서요.” 그렇게 점차 시그너처 칵테일의 비율을 늘려가는 것이 판테라의 목표다. “언젠가는 시그너처 칵테일만을 메뉴에 두고 싶어요. 그런 날이 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Editor’s Pick 스태리 나이트. 압생트에 생제르망, 라임과 로즈메리 등을 더했다.
주소 서울시 송파구 올림픽로10길 24
문의 02-419-4949
올드패션드
버번 혹은 라이 위스키에 앙고스투라 비터와 설탕, 얼음을 넣고 오래 저어준 다음 오렌지 껍질로 마무리하는 것. 일반적으로 알려진 올드패션드의 레시피다. 그러나 이게 다는 아니다. 시대에 따라 혼합하는 재료와 제조 방식을 달리한 올드패션드가 존재한다.
연남동 구석진 자리에 위치한 바, 올드패션드는 이렇듯 시대별로 다양하게 존재해온 칵테일을 깊이 있게 탐구할 수 있는 바다. 바의 한편에는 두툼한 칵테일 서적들이, 안쪽 선반에는 희귀한 리큐어들이 즐비하다. 메뉴판에는 마티니, 맨해튼 같은 익숙한 이름들이 시대별로 도열해 있다. 1898년 다이키리와 1920년대 다이키리, 1867년 김렛과 1950년대 김렛도 선명히 적혀 있다. 술 잘 모르는 이들의 호기심마저 자극할 칵테일 연대기다. 고독한 칵테일 탐구가의 서재에 앉은 기분으로, 이한별 오너 바텐더가 내어준 아베르나 스매시를 한참 동안 홀짝였다. 라이 위스키에 이탤리언 리큐어인 아베르나를 혼합하고 체리 등의 과일을 으깨어 완성한 한 잔이다.
Editor’s Pick 아베르나 스매시. 아마로에 버번위스키, 체리, 호두 기름을 더해 온 미각을 뒤흔든다.
주소 서울시 마포구 동교로46길 29 3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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